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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의칼럼>일제강점기와 대한제국 성씨에 대한 만행

전 국민 지배, 감시와 양반계급 지도자의 의병활동 제지 그리고 악랄한 세금 수탈 위해
등록날짜 [ 2019년01월21일 00시42분 ]

지금이야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모두가 姓氏(성씨)가 있으며, 姓氏(성씨)란, 누가 뭐라해도 그 가문의 상징이다. 왜냐면 오로지 양반들만이 姓氏(성씨)를 사용했고 반상의 구분이 심한 조선시대만 하더래도 中人(중인)이하 평민, 천민들은 이름만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姓氏(성씨)가 없는 사람은 없으니 천민들의 후손은 몽땅 다 멸종해 버린 것인가?


역사를 살펴보면 1909년 구한말. 당시 대한제국을 사실상 지배한 일제는 "민적법"을 시행한다. 즉, 전 국민이 성씨를 가지게 어거지를 부린 것이다.
먼저 일본은 철저하게 대한제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누구나 본인이 쓰고 싶어 하는 본관과 성을 그들이 원하는 대로 신청 받았는데 "김, 이, 박, 최씨"가 당시 무 姓氏(성씨) 층에게 인기가 많아 자신의 성으로 삼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물론 다른 姓氏(성씨)를 선택한 경우도 있다. 자기가 모시던 주인의 姓氏(성씨)를 택한 경우, 해당 마을 전체가 공동으로 성씨를 택한 경우가 있다. 또한 인심 좋은 양반은 자신이 부리던 노비들에게 자신의 姓氏(성씨)를 주며 족보에 오르게 한 경우도 가끔 있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는 남의 姓氏(성씨)를 갖다 쓰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1950년대 전에 姓氏(성씨) 조사를 한 결과로는 우리 한국의 姓氏(성씨)는 약 280개의 姓氏(성씨)가 등장하나 이후에 늘어나서 약 300개 姓氏(성씨)로 늘어난걸 알 수 있다 그러다가 현대사회에 와서는 다문화 뿐 아니라 외국인들까지 우리나라에 歸化(귀화)하여 姓氏(성씨)를 만들었기에 그 숫자도 엄청 많아 졌다.

필자는 앞서 <강대의칼럼> 일본인 姓氏(성씨)로 본 근대 일본편에서 밝힌바와 같이 명치유신 이후에 각종 姓氏(성씨)가 등장하여 당시 일본에 무려 2만개가 넘는다고 말한 적이 있고 우리나라는 갑오개혁(신분제가 폐지된 갑오경장 1894년)무렵에 姓氏(성씨)가 없는 사람들이(국ㅁ빈의 70 ~ 80%이상) 남의 족보를 송두리째 사거나 또는 물질적 거래로 姓氏(성씨)를 새로 만들기 보다는 뼈대 있는 가문에 돈을 주거나 그 집 머슴이나 하인이 통사정을 해 마님 즉 주인의 족보에 사정해 올렸다.(부치기 또는 붙이기라 함)

이 계층의 부치기 수법은 당시 시대상에 힘입어 실로 다양하게 다가왔다.
첫째로는 족보에는 무사(無嗣, 자손이 끊어진 사람)로 자손이나 대까지  끊겨 기재되지 않은 경우가 있었는데 대부분 아들도 없고 집안 사정상 양자를 두지 않아 덩그러니 남아 있는 것으로 여기에 조부나 애비를 끼워 넣는 수법을 사용했다.


이를 투탁(投託)이라 말하기도 했는데 두말할 나위도 없이 특정 宗中(종중)의 허락을 득해야만 했다. 이런 절차때문에 투탁(投託)의 대상은 자연스럽게 족보는 있지만 별스런 벼슬도 얻지 못해 재산마저 없는 종중이 대상이었다. 


투탁(投託)이 이루어지면 정식으로 족보에 오르는 경우도 있었으나 대개 종중에서는 그나마 별보(別譜)라 하여 족보 가운데 끼워 넣거나 별도로 표시하는 방법을 택했다. 일명 이러한 별보(別譜)를 ‘부치기 또는 붙이기일가’라 했다.


‘부치기 또는 붙이기일가’는 대신 이들은 경제력이 약한 이들 종중의 시제나 향사를 지낼 적에 전적으로 경비를 부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당연히 종중으로부터 따돌림이나 멸시를 받지 않으려는 필사의 노력이기도 했다.


또 당연스럽게 이들 ‘부치기 또는 붙이기일가’는 족보에 기재된 항렬이 아래인 조카뻘이나 손자뻘에게도 함부로 반말을 못하고 매사에 조심스럽게 行動擧止(행동거지)를 했다.

‘부치기 또는 붙이기일가’는 거의 종중 집단거주마을에 살지 못 하고 마을에서 되도록 멀리 떨어져 살았다. 이들은 오로지 타인들로부터 ‘부치기 또는 붙이기일가’ 一家(일가)임을 감추려고 무척 노력했으며 그나마‘상놈’이라는 손가락질을 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안도를 하며 살아갔다.

또 이들 외에 재력이 많고 지적 능력이 있는 상인들은 양반을 노려 아예 남의 족보를 위조하거나 유명한 인물에 끼워 넣으며 보학에 밝은 인사를 초빙해서 그럴 듯하게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들은 결코 본 종손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지식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들은 자식들에게도 결코 반상에 대한 진실을 말하지 않고 철저히 교육을 시켜두었으며 세월이 지나가면 ‘방귀뀐 놈이 더 성을 내듯’ 더 태연하면서도 떳떳하게 족보를 내밀며 가짜 양반행세를 했다.


이들을 결코 욕보이고자 하는 건 아니다. 반상이 그 어디에 있는가?! 왜 거짓으로 살아야 하는가가 더 큰 문제인 것이다. 반상이 없어졌는데 이제와서 내 할아버지가 양반이 아니면 어떻고 양반이면 어찌한가?! 감추고 거짓으로 사는 게 더 문제인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정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그 집안의 결속력을 갖고 가문을 갖추는게 더 좋은 것은 아닐까 싳다.


물론 이러한 반상의 문제는 양반, 상놈을 차별하는 사회구조의 문제가 큰 탓이며 상인에게 벼슬을 주지 않는 신분차별에 그 원인이 있었던 것!!


필자는 결론적으로 "先代(선대)의 조상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모르고 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더 나쁜 것은 ‘왜 거짓으로 살아야 하는가가 더 큰 문제인 것이다.’ 아니면 ‘부치기 또는 붙이기일가’ 또는 투탁(投託)일가라면 진실을 감추지 말고 훌훌 털고 이젠 더불어살아가는 모습을 솔선수범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게 그나마 당신의 할아버지나 선친의 ‘부치기 또는 붙이기일가’ 또는 투탁(投託)일가에 피눈물나는 노력에 대한 예를 갖추는 것이다.

비록 현대사회는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회로 변모했지만, 최소한 자기 자신이 어디서부터, 누구로부터 나왔는지는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최소한 4대 명절 때 전혀 관계없는 남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잘못을 범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며 종중을 아예 찾지도 못하는 것도 참으로 통탄할 만한 일이 아닐까?!

<편집자 주>
1. "민적법" : 일종의 호적법으로 당시 무성씨층에게 전부 본관과 성을 강제적으로 가지도록 법제화하는 법.

2. 천민들의 성씨 : 본래 평민, 천민이었던 자들은 여전히 성씨가 없었으며, 사람다운 이름은 커녕 돌쇠, 개똥이, 작은놈, 큰놈, 언년이 등등 애완동물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당시 인구의 대부분이었다.

3. 일제가 당시 성씨를 갖도록 한 3가지 이유 :
첫째, 당시 의병활동은 양반가의 인물들이 주도하였기 때문에 양반 상놈 의 신분 차별이 없으면 단결력이 약해지고 활동에 저해가 됨.

둘째, 천민 층을 양성화시켜 세금을 수탈하기 위해 이들을 모두 호적에 올려 수탈을 증대하기 위함.

셋째, 대한제국의 국민 모두를 문서(호적)에 등록하여 전 국민을 한눈에 지배하고 감시가 용이하기 위함.

◘ 자신의 姓氏(성씨) 진짜 임을 확인하는 방법
1. 본관과 어느 파의 몇 세손을 알아야 한다.
2. 중시조(파시조)와 입향조가 누구이며, 집성촌을 알아야 한다.
3. 마을의 선산과 조상 묘를 알아야 한다.
4. 족보에 있는 고조부 현조부 6~9대조 등등 계보가 정확해야 한다.
5. 종친회와, 시제봉행에 참석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6. 중앙종친회에서 편찬한 대동보에 본인집안이 수록되어 있는지 알아야 한다.
이 6가지가 가장 간단한 확인방법이다. 이것이 전부 해당이 된다면, 비로소 진짜 그 가문의 후손일 확률이 높다.

◘ 이들이 족보에 등재하는 수법과 종류
1. 투탁(投託)  - 자손이 끊긴 곳에 자신의 조상을 끼워 넣기로 가난한 문중에게 돈으로 댓가를 치루고 들어가는 방식.

2. 별보(別譜)  - 부치기 또는 붙이기일가, 투탁(投託)이 족보에 정식으로 오르는 반면 별보는 족보 한가운데 끼워 넣거나 부록에 별도로 표시하는 방법. 

3. 위보(僞譜)  - 족보를 위조하는 것으로 들통나지 않게 보학에 밝은 사람을 초청하여 위조가 발각되지 않게 철두철미하게 남의 족보를 위조하여 자신이나 그 후손도 철저한 교육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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