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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의칼럼> 부치기 一家(일가)와 한 세상 잘 사는 법

선조의 선양사업만은 '너와 내가 다를 수도 없는 것이고 달라서도 안 되는 것'
등록날짜 [ 2019년01월23일 07시25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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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와 대한제국 성씨에 대한 만행’이라는 칼럼에서 강조한 사안처럼 부치기 一家(일가)들이 자연스럽게 탄생하게된 것은 昨今(작금)의 우리네 부모들이 그랬듯이 ‘비록 나는 없어서 못 배웠지만 자식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가르쳐야 겠다’는 갑남을녀 부모들의 눈물겨운 向學熱(향학열)의 발로와 무척 비슷해 보인다.

 생각해 보면 日帝强占(일제강점)기에 極度(극도)로 악랄한 일본인들이 당시 이러한 우리네 국민감정을 역이용해 저지른 씻을 수 없는 만행이 되고 말았다. 

굳이 이들 일본인들이 善意(선의)라는 美名(미명)아래 차별화를 막고자 조선시대의 班常(반상)제도를 역이용하는 치졸한 방법을 선택하지 않고 일본인 그네들이 姓氏(성씨)부여를 했던 것처럼 가장 알기 쉽게 일본지역의 산이나 들판, 뽕밭, 밭 한 가운데 등등의 기상천외의 방식으로 성씨를 만들어 내 장소와 때를 姓氏(성씨)로 사용했던 것처럼 했거나 아니면 자유롭게 지역이나 신분에 맞춰 姓氏(성씨)를 갖도록 했으면 지금에 와서 우리나라 사회곳곳에서 제 2, 제3의 일가들이나 宗親(종친)들의 마찰과 갈등으로 빚어져 公的(공적)으로나 私的(사적)인 부분으로 까지 飛火(비화)되는 일만은 없었을 것이다.

부치기 一家(일가)들이 貫鄕(관향)을 알고 뿌리를 정확히 안다면 조상을 凌蔑(능멸)하고 祭祀(제사)와 새앙을 들먹거리며 ‘直孫(직손)으로서 못 다한 게 뭐있느냐’며 습관처럼 막말은 토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부모에 대한 孝(효)를 다 하려고 해도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고 훌륭한 선조에 대한 뿌리의식을 갖지 못하면 체면을 아는 사회생활을 뭣 때문에 하고 더불어 배움은 또 무슨 필요가 있으며 뭣 때문에 자손들에게 높은 향학열을 말하고 자자손손 가르치려고 노력을 다 기우리랴!!

어느 가문이든 先代(선대)의 흐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벼슬이나 高位(고위)공직이 아니라 學文(학문) 즉 學(학)을 얼마나 어떻게 알았고 어찌 행동했는가가 그 시대의 선비의 기준점이었으며 愛國愛族(애국애족)의 척도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낮 제사나 새앙에 초점을 맞춰 선조에 대해 토로한다는 것은 厚顔無恥(후안무치)의 단세포적인 思考(사고)일 뿐이다.

앞 칼럼 ‘일제강점기와 대한제국 성씨에 대한 만행’에서도 언급한바와 같이 ‘부치기 또는 붙이기일가’는 거의 종중 집성촌 즉 집단거주마을에 살지 못하고 집성촌에서 다소 멀리 떨어져 살았다.

이러한 주거생활은 철저히 남들에게 부치기 일가임을 감추려는 의도가 가계에 깊숙이 깔려 있는 사실이었다. 이들이 이렇게나마 족보를 갖고 거주하게 됨은 족보로 벼슬자리 밑천을 삼을 엄두를 내지도 못했으나 한편으로는‘상놈’이라는 손가락질만은 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또 다른 방법으로 재산이 많고 그나마 知識(지식)이 조금 있는 천민계급층들은 아예 남의 족보를 위조하거나 유명한 인물에 끼워 넣기도 했다. 곧 譜學(보학)에 밝은 인사를 초빙해서 그럴 듯하게 만들어내는데 혈안을 갖고 덤벼들었다.

이들은 더더욱 족보에 조금이라도 사실이 어긋나면 일가들에게 발각되기가 쉬워 아주 비밀리에 愼重(신중)을 기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선대가 끊긴 아무개의 몇 대 손으로 만들고 이름자에도 거기에 맞는 항렬을 따르고 조상의 내력도 미리 익혀 두는 것이다. 이들은 결코 본 직, 종손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지식을 誇示(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십 수 년의 세월이 지나면 어엿하게 족보를 내밀며 주위에 자랑스럽게 내놓으면서 양반행세를 했다. 이렇게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신분상승을 꾀한 것은 班常(반상)이 없어지자마자 여기저기에서 지역을 가리지 않고 상징적 욕구의 표현이 표출되었고 결코 이들을 나무라거나 비웃을 일만은 아니다.


양반, 상놈을 차별하는 사회구조 탓이며 노비나 천민계급에게 벼슬을 주지 않고 아에 출세를 할 수 없는 사회적 신분차별에 그 모든 원인이 존재했던 것이다.

결국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말은 이렇게 班常(반상)이 허물어지고 根本(근본)이 모두 다 같아졌다는 생각이라면 항상 살얼음판을 걷듯 앞과 뒤 즉 전후를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일가들이나 종친들의 올바른 일에 그대로 잘 따라주는 것도 한 가지 아주 현명하게 사는 현대사회에서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中(중)이라도 간다는 말이 곧 위와같은 방법을 잘 따름으로써 처세의 普遍妥當性(보편타당성)을 말하기도 한다.

10여 년 전에 광주대학교 법과대학장을 지낸 김 모교수가 막걸리를 마시며 이러한 말을 토로한 적이 있다. 00고등학교를 1회로 졸업하고 그 학교의 총동문회장을 하고 있는데 어렴풋이 생각나는 한 사람이 동창회모임과 동문회모임 주변에서 뱅뱅 돌더라는 것이다.

그러다가 마치 00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처럼 다가 오길레 동문들의 명예를 위해 단호하게 ‘1학년 재학 당시 퇴학 당 한 학생’임을 개인적으로 주지시키고 결코 용납할 수 없어 아닌 건 아니라고 선을 엄격하게 그어버렸다고 당시를 회고하며 무용담처럼 토로한 적이 있다.

다만 위 사례와는 별개로 血緣(혈연)과 地緣(지연)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부치기 일가에 대해서는 결코 그럴 수는 없다고 본다. 또, 한민족 한겨레를 單一民族(단일민족)으로 자랑하는 우리 민족의 특성상 결코 매몰차게 그럴 수는 없다.

이렇게 된 이상 그렇게 班常(반상)을 없애고 그네들의 방식으로 우리나라 姓氏(성씨)를 디자인 한 일본인들에게 보란 듯이 함께 잘 살아야하고 어찌됐건 先代(선대)에서 그렇게 해 같은 姓氏(성씨)로 들어왔으면 잘 적응하여야 하고 잘 받아들여지면 다 좋은 것이다.

또 이렇게 해서 소리 소문없이 그네들은 그만큼 제값을 해주면 상호간에 모든 게 원만하게 정리가 되어 불협화음이 생길 수가 없다.

그러나 꼭 그네들이 먼저 先代(선대)를 부정하고 종친회에 나와 더 목소리를 높이고 얼토 당치도 않은 말로 자기주장을 펴고 억지논리를 펴는 게 일가 개개인까지 그 파장이 번질만큼 번져 문제가 생기고 더 나아가 강에 돌멩이를 던져 파동이 생기듯 심각성이 대두되고 두고두고 곰씹게 되는 것이다.

오죽하면 어떤 종친회의 000회장은 ‘우리 宗親會(종친회)에서 비토를 놓거나 전체 大義(대의)를 따라주지 않는 사람은 우리 일가가 아니다. ’라고 선언하기도 했다고 우스개소리도 전해온다.

언필칭 父母(부모)없는 자신이 어디 있으며 그 부모의 부모인 先代(선대)의 조상없이 내가 어떻게 존재하며 김씨, 이씨, 박씨를 가리지 않고 각 분야의 위대한 祖上(조상)을 姓氏(성씨)에 얽매여 지역민들까지 合勢(합세)하여 偏狹(편협)적으로 00성씨의 조상모시기로 바라본다면 그 지역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그로 인한 지역 관광발전은 요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거듭 강조하건데 어느 투탁(投託)일가가 생존의 법칙을 알고 현명하게 판단해 그 집안을 빛냈던 이야기가 제사나 새앙을 넘어 先代(선대)에 훌륭한 門中(문중)으로 滅私奉公(멸사봉공)했던 逸話(일화)로 전해지고 있다.

이러하듯 아주쉬운 고사성어와 같이 知彼知己(지피지기)면 百戰百勝(백전백승)이요, 修身齊家治國平天下(수신제가치국평천하)이니 항상 조심스럽게 言行(언행)에 愼重(신중)을 기하되 지역민을 아는 듯 條件反射(조건반사)처럼 나서서 민심운운하며 反對(반대)명분을 찾을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門中(문중)에 협조하여 일이 성사될 수 있도록 돕도록 적극 개입하되 결코 本意(본의) 아닌 行動擧止(행동거지)로 宣揚(선양)사업에 훼방을 논다는 인상을 줘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사회생활이나 정치판에서는 ‘내 편 네 편’이 있을 수 있으나 선조의 선양사업에 있어서는 너와 내가 다를 수도 없는 것이고 달라서도 안 되는 것이라고 先輩(선배)들의 말을 강조하며 여명의 아침에 떠오르는 찬란한 태양을 바라보며 글을 작성하게 되어 더 의미가 있고 그래서 무척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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