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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조강봉의 울릉도, 독도의 역사와 지명 연구(6)

‘于山國’ 본래 鬱陵島라는 島名과 관련이 깊다...于+(陵:탈락)+山(첨가)+國(島)
등록날짜 [ 2019년08월16일 17시08분 ]

(1) ‘于山國’과 ‘亏陵 或云 于陵’ 관계

  『三國史記』지리지에서 ‘于山國’처럼 첫음절에 ‘于’자가 쓰인 지명을 찾아보면 于尸郡과 于尸山郡이란 지명이 있고, “有隣郡本高句麗于尸郡景德王改名今禮州今禮州”<『三國史記』35>  “于尸郡{于市郡}”<󰡔三國史記󰡕권37.> 또 󰡔삼국사기󰡕 권44에도 ‘于尸山國’이란 지명이 있다.
 

  “居道, 失其族姓, 不知何所人也, 仕脫解尼師今, 爲干. 時, 于尸山國 ․ 居柒山國, 介居隣境, 頗爲國患. 居道爲邊官, 潛懷幷呑之志, 每年一度, 集群馬於張吐之野, 使兵士騎之, 馳走以爲戱樂, 時人稱爲馬叔{技}. 兩國人, 習見之, 以爲<新羅>常事, 不以爲怪. 於是, 起兵馬, 擊其不意, 以滅二國.”<󰡔삼국사기󰡕 권44, 열전4, 거도(居道)>
 

  위의 ‘于尸郡’과 ‘于尸山國’에는 ‘于’자뿐 아니라 ‘尸’자가 하나 더 있다. 그러면 ‘于尸郡’과 ‘于尸山國’에서 ‘于尸’는 어떻게 읽히는 지명일까?

  도수희(2007:118)는 고지명에서 ‘阿尸兮:阿乙兮’의 대응에서 尸와 乙이 대응을 보이고, ‘文峴:斤尸波衣’, ‘沙尸(사리)良>新(사이)良>黎(샐)陽’에서 尸가 ‘리 ․ ㄹ’일 가능성이 있고, ‘召尸:水銀’(水銀城本召尸)에서도 尸가 ‘리’로 추독될 수 있다 하였다. 

  ‘于尸郡’과 ‘于尸山國’도 ‘于’는 ‘우’로 음독하고 ‘尸’를 ‘ㄹ’로 읽으면 ‘于尸-’는 ‘우리, 우ㄹ-’로 읽을 수 있다. 鬱陵島의 옛 지명인 ‘亏陵, 羽陵’도 ‘亏’와 ‘羽’는 ‘우’로 읽고 ‘陵’을 ‘ㄹ’로 읽으면 ‘우ㄹ-’로 읽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于尸郡’과 ‘于尸山國’의 ‘于尸-’와 ‘亏陵, 羽陵’은 모두 ‘우ㄹ’로 읽을 수 있다.

  앞에서 소개한 ‘于尸山國’이라는 이름과 鬱陵島의 옛 이름인 ‘于山國’을 비교하면 ‘于山國’에는 ‘尸’자로 발음되었음직한 차자가 없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기록된 ‘于山國’의 異稱인 ‘鬱陵’, ‘亏陵, 羽陵’에는 ‘ㄹ’음이 존재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于山國’의 이름도 애초에는 ‘ㄹ’음을 가졌을 만한 글자가 존재했을 가능성은 있다.

  다시 말하면 ‘于山國’은 본래 鬱陵島라는 島名과 관련이 깊다고 생각되는데, 그런데도 ‘于山國’은 鬱陵島國, 또는 鬱陵國, 鬱陵山國, 亏陵國, 亏陵山國 등으로 불리지 않고 ‘于山國’으로 불리게 된 것은 이것이 國名이므로 島名과는 차별화할 목적도 있었을 것이며, 또한 ‘于山國’의 본 명칭이 ‘于尸山國’에서 ‘尸’가 탈락하여 ‘于山國’이 되었다는 근거는 없지만 󰡔삼국사기󰡕에 ‘鬱陵島’란 기록과  '삼국유사'에 ‘亏陵, 羽陵’라 한 기록, 그리고 '고려사'의 고려 태조 때의 ‘于陵’이란 기록으로 보아 이들 지명에는 ‘ㄹ’음이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으니, '삼국사기'의 ‘于山國’은 ‘于’자 아래 ‘ㄹ’음을 빌린 ‘陵’자처럼 어떤 차자가 탈락하고 이후 ‘山’자가 새로 첨가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① 于+(陵:탈락)+山(존재)+國(島)
    ② 于+(陵:탈락)+山(첨가)+國(島)
 

  도수희(2007:117)는 󰡔삼국사기󰡕권34(지리1)의 지명인 ‘古尸山郡’은 진흥왕 15년(서기 554)에 ‘菅山城’으로 고쳐졌고, 경덕왕 16년(서기 757)에 ‘菅城’으로 줄여졌고, 고려 충선왕 때(1309~1313)에는 ‘沃州’로 고쳐졌는데 이후 조선 태종 13년(서기 1413)에 ‘沃川’으로 고쳐졌다. 이를 보면 서기 554년~757년 사이에 이미 ‘菅山城’이란 3자 지명이 ‘菅城’인 2자 지명으로 개정되었다고 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于山國’은 ‘ㄹ’음을 가진 글자를 탈락시키고 글자를 줄여 부른 國名이 아닐까 생각하며, 고로 󰡔삼국사기󰡕의 ‘于山國’은 󰡔삼국유사󰡕의 ‘亏陵 或云 羽陵’과 그 뿌리가 같은 데에서 나온 이름이 아닐까 생각한다.
 

        (2) 于山과 亏陵 ․ 于陵 ․ 羽陵 ․ 芋陵의 관계

 『삼국사기』에 기록된 “于山國 或云 鬱陵島”에 쓰인 ‘于山’은 鬱陵島의 신라시대의 명칭이다. 그런데 이 ‘于山’은 고려 초기까지 쓰였고, 『삼국유사』에 기록된 “亏陵 今作 羽陵”도 ‘亏’자가 ‘于’자의 本字이므로 󰡔삼국사기』의 명칭 ‘于山’과 맥을 같이 하고 있으며, 또한 『고려사』에 ‘于陵’으로 기록되고 있으니 역시 ‘于’자의 맥을 잇고 있다. 

  또한 ‘亏陵’과 ‘于陵’의 ‘于’나 ‘亏’는 ‘우’음의 차자표기이고, ‘陵’은 ‘ㄹ’음을 빌린 표기자라 생각하며 아울러 ‘羽陵’과 ‘芋陵’의 ‘羽’와 ‘芋’는 ‘亏 ․ 于’자와 음이 같기에 차자한 표기라 짐작되므로 ‘亏陵 ․ 于陵 ․ 羽陵 ․ 芋陵’은 모두 동일 지명의 이표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3) 鬱陵과 亏陵 ․ 于陵 ․ 羽陵 ․ 芋陵 관계

  앞에서 울릉도의 지명은 『삼국사기』에는 “于山國, 鬱陵島”로 표기되었고, 『삼국유사』에는 “亏陵 今作 羽陵”으로 표기되었다고 했다. 그러면 鬱陵과 亏陵(于陵 ․ 羽陵 ․ 芋陵)은 어떤 관계였을까?

  먼저 鬱陵과 亏陵, 羽陵의 字音의 구성을 살펴보면

     ㉠ 亏陵 ․ 于陵 ․ 羽陵 ․ 芋陵은 ‘우+릉’, 
     ㉡ 鬱陵은 ‘울+릉’로 구분된다. 그리고 ㉠과 ㉡을 비교하면 제2음절 ‘陵’은 같고, 제1음절은 ‘亏’와 ‘鬱’로 말음 ‘ㄹ’이 있고 없음이 다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 亏陵(羽陵, 芋陵, 于陵)과 ㉡ 鬱陵의 두 갈래로 나누어지게 되었을까? 그것은 고대국어에서 단어를 개음절로 읽은데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즉 亏陵 ․ 于陵 ․ 羽陵 ․ 芋陵은 개음절 표기이고, 鬱陵은 폐음절 표기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① 亏陵島, 羽陵島, 芋陵島, 于陵島는 ‘울+은+셤’으로 분석할 수 있으니 이는 개음절 발음 규칙에 따라 ‘우른셤’으로 발음되므로 제1음절 ‘우’는 ‘亏’를 빌리고 어간 말음 ‘ㄹ’과 관형사형 어미 ‘은’이 합해진 ‘른’은 표기할 마땅한 한자가 없어 ‘陵’자를 빌어 표기하게 되면서 ‘우른셤>우릉셤’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한편 亏陵島, 羽陵島, 芋陵島, 于陵島는 ‘우르+ㄴ+셤’으로 분석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더라도 ‘亏’는 ‘우’를 차자한 표기자이고, ‘陵’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르+ㄴ>릉’을 차자한 표기자로서 ‘우른셤>우릉셤’으로 굳어져 생겼을 것이므로 결국 같다고 생각한다.

  ② ‘鬱陵島’는 ‘울+은+셤’으로 분석할 수 있다. 이는 개음절 발음 규칙에 따라 ‘우른셤’으로 발음되어야 할 것인데 처음부터 1음절 어근 ‘울’을 ‘鬱’자를 차자함에 따라 ‘울은셤>울른셤>울릉셤’으로 발음되면서 굳어진 표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편 ‘울+은+셤’은 개음절 발음 규칙에 따라 ‘우른셤’으로 발음되어야 할 것이 ‘우른셤>울른셤’으로 설측음화 되었다가 마침내 ‘울릉셤’으로 발음되며 鬱陵島로 표기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가능하다.

  우리말에 “산에 오르다”란 말이 있다. 登의 뜻이다. ‘오르다’를 15세기 표기법으로 표기하면 ‘오-’가 된다. ‘오-’의 ‘ㆍ’는 양성모음이다. ‘오-’를 음성모음과 교체하면 ‘우르-’가 된다.

  鬱陵島의 자연환경은 망망대해에 조그만 섬이 떠 있는 형상이다. 이런 환경에서 선인들은 울릉도와 독도를 바라보면서 넓은 바다에 작은 섬이 하나 ‘솟아올랐다’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이런 발상을 지명에 연결시키면 于陵島, 鬱陵島는 망망대해에 솟아 ‘오른 섬’이 된다. 

  한글학회 지은 󰡔우리말사전󰡕에서 ‘우ㄹ’을 어근으로 하였음직한 단어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①우리다:[옛]프른 믈든 뵈 므레 가 우려 그 므를 머그라<분문27>
   ②우러나다:[옛]쳥 믈든 뵈 가 우러난 즙 서 되 머그라<구간>
   ③우럴다 :[옛] ⇒울월다(仰). 우러러하늘로 춤밧고<역해>
   ④울잣 :[옛] 울타리, 니영이 다 거두치니 울잣신들 셩소냐(靑p43>
   ⑤울통불통 :[옛]洛陽 十里 밧게 울통불통 져 무덤아<靑大 p.83>
   ⑥울뚝불뚝 : 울둑불뚝한 꼴  
   ⑦울뚝 : 울뚝한 꼴
   ⑧울겅거리다 : 단단하고 우둘우둘한 물건이 잘 씹히지 않고 입안에서
                  이리저리 미끄러지다.
   ⑨울렁거리다 : 큰 물결이 자꾸 설레며 흔들리다
   ⑩울다 : 아프거나 슬프거나 좋아서 눈물을 흘리는 것
   ⑪울다 : 남포가 터져 바위에 금이 가다
   ⑫울컥 : 갑자기 토하는 때 나는 소리 또는 그 꼴
   ⑬울놀음 : [민속]윗놀음   
   ⑭울가리 : 윗가리(제주)
   ⑮울목 : 윗목(전남)

   (16) 우리 : [옛], 우리(圈), 겨유 우리<譯語上,19>
   (17) 우 : [옛], 우뢰. 우ㅅ 소리(雷響)<譯語上,2>
     
  우리는 위에서 ‘우ㄹ’이 명사와 동사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①~② ‘우리다’, ‘우러나다’는 무엇을 속에서 나오게 하거나 나오는 것을 뜻하는 말이고, ③의 ‘우럴다’는 위쪽을 향하여 바라보는 뜻이나 한편으로는 위로 향하는 뜻을 내포한다고 생각되는 어휘다.

④의 ‘울잣’은 ‘울타리’로 ‘잣’은 城을 뜻하는 말인데 ‘울’은 城처럼 무엇으로 높이 솟게 한 것을 의미하는 뜻이 있는 말이고, ⑦은 ‘울-’은 무엇이 위로 솟아 있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고, ⑤~⑥의 ‘울통불통’과 ‘울뚝불뚝’과 ⑧~⑨의 ‘울겅’과 ‘울렁’은 무엇이 움직이며 솟았다가 가라앉는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고, ⑩~⑪의 ‘울다’와 ⑫의 ‘울컥’은 무엇이 속에서 터져 나오는 뜻이 있고, ⑬~⑮ ‘울놀음’, ‘울가리’, ‘울목’의 ‘울’은 뜻이 ‘윗(上)’의 뜻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신라 진흥왕 때의 가야국에서 12현금을 만들었던 ‘우륵(于勒)’이 란 사람이 있다. ‘우륵(于勒)’은 당시 가야금 분야에서 뛰어난 분이었다. ‘우륵(于勒)’이란 이름이 한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루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면 이는 울릉도의 이칭인 ‘亏陵’의 ‘우ㄹ’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우리는 ‘울-’이라는 어사가 무엇이 ‘솟아나오는 뜻’을 나타내는 말임을 보았다. 鬱陵島, 亏陵島, 羽陵島는 망망대해에 무덤처럼 ‘솟아 오른’ 형상이다. 그러기에 鬱陵島, 亏陵島, 羽陵島는 이런 뜻을 가지고 있는 고대어 ‘우ㄹ’에 어원을 둔 지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4) 于山國과 流山國

  『삼국사기』지명 ‘于山國’은 고려초와 조선 태종대와 세종대의 문헌에도 ‘于山’이란 이름으로 계속 출현하고 『태종실록』에는 ‘流山國’이란 명칭도 아래와 같이 1회 출현한다.

  “流山國島 사람 백가물 등 12명이 고성 어라진에 와서 정박하여 말하기를, "우리들은 武陵島에서 생장하였는데, 그 섬 안의 인호가 11호이고, 남녀가 모두 60여 명인데, 지금은 本島로 옮겨 와 살고 있습니다.”
 

  위의 내용을 보면 流山國島 사람 백가물 등 12명이 ‘武陵島’에서 생장하여 本島에 옮겨와 살고 있다고 하여 ‘武陵島’와 관련이 있으므로 ‘流山國島’는 ‘于山國島’의 ‘于山’이 ‘流山’으로 표기된 지명이라 생각한다.
 

        (5) 于山武陵等處安撫使의 ‘于山武陵’의 해석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태종부터 세종, 세조의 기록에 ‘于山武陵’와 ‘于山武陵等處安撫使’란 말이 나온다. 鬱陵島는 신라 때 于山國이라 불렸고, 조선시대에는 武陵島와 茂陵島라고도 불렸는데 또 ‘于山武陵’이란 지명이 쓰인 까닭은 무엇일까?

 『조선왕조실록』에는 于山, 亏陵, 羽陵, 武陵, 茂陵 등의 기록이 대다수였다. 그러나 獨島에 관한 기록은 잘 알 수 없어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于山武陵等處安撫使’란 관직명이 보이므로 해석에 혼란이 온다. 우선 옛 문헌에서 관련 자료를 보이면 다음과 같다.
 

  ① “以前判長鬐縣事金麟雨 爲于山武陵等處安撫使”
  ② “于山武陵等處按撫使金麟雨 搜捕本島避役 男婦二十人來復命.”
  ③ “賜于山武陵等處安撫使金麟雨 冬衣二領笠靴”
  ④ “江陵人言 牛山茂陵兩島 可以設邑”
  ⑤ “于山武陵二島 在縣正東海中 二島相去不遠 風日淸明 則可望見.”
  ⑥ “江原道監司柳季聞啓 武陵島牛山 土沃多産”
 
  위의 ①~③을 보면 ‘于山武陵等處按撫使’는 于山과 武陵 등 울릉도 지역의 여러 곳을 관리하는 안무사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④의 “牛山茂陵兩島”은 ‘牛山’과 ‘茂陵’이라는 두개의 섬으로 해석되고, ‘兩島’는 울릉도 주변에 鬱陵島와 獨島 밖에 없기 이 두 섬을 지칭하는 말이라 생각한다.

⑤에는 “于山과 武陵의 2섬이 현의 정동쪽 바다 가운데 있어 두 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아니하므로 날씨가 맑으면 가히 바라볼 수 있다” 하였으니, 이는 두 섬이 평시에는 잘 볼 수 없는 거리에 있지만, 특별히 날씨가 맑으면 볼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므로 이 지역에서 이런 관계를 가진 섬은 바로 鬱陵島와 獨島밖에 없다는 결론을 얻는다.

  그렇다면 ‘于山’과 ‘武陵’ 중 鬱陵島와 獨島를 지칭하는 명칭은 각각 어떤 말일까? 필자는 武陵은 鬱陵島를 지칭하고, 于山은 獨島를 지칭하는 어사라 생각한다. 우리 선조들이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 초기부터 명확히 인식하고 관리해 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이런 인식이 우리나라에서 제작한 1953년의『신증동국여지승람』의 부속지도인「八道總圖」(강원도)와,「八道總圖」에 울릉도와 함께 獨島를 그려 于山島로 표기하였다고 생각한다. 또한 『八道全圖』의 道里圖表에 수록된 6장의 전국지도에도 獨島가 于山島로 표기한 것은 예로부터 조상들이 이렇게 알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6) 鬱陵과 蔚陵, 武陵과 茂陵

  鬱陵 이외에 蔚陵으로도 표기되었다. 蔚陵은 『고려사』의 고려 중기 인종때부터 원종 때까지의 기록에 4회 출현한다. 이 기간에도 羽陵과 芋陵은 1회씩 출현하지만 그래도 蔚陵은 4회 출현하므로 고려시대에 주로 쓰인 명칭인 셈이다. 蔚陵은 鬱陵과 음이 같아 불린 이름으로 보인다. 이는 고려 조정에서 신라의 鬱陵이란 명칭과 차별을 두기 위한 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참고로 鬱은 그 뜻이 ‘막히다, 무성하다’는 뜻이고 蔚도 ‘무성하다’는 뜻이 있다. 고로 鬱陵, 蔚陵, 茂陵의 명칭은 쓰인 한자의 字意로 볼 때 약간 상통하는 점이 있다.
  武陵은 史書에 고려 우왕 때부터 출현하여 조선 세종대부터는 茂陵과 혼용하다가 성종 이후 鬱陵이 쓰였다. 조선 태종대 말부터 세조대까지는 于山武陵과 于山武陵等處按撫使 등도 쓰였다.

  武陵은 한문학의 융성으로 중국의 고사 ‘武陵桃源’의 영향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 茂陵은 鬱陵島에는 소나무와 대나무가 무성하였다는 『실록』의 기록으로 보아 산림이 무성하다는 의미에서 武陵의 ‘武’와 음이 같은 ‘茂’를 빌어 茂陵으로 표기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4.  독도(獨島) 지명 연구

    1) 독도(獨島) 자료

       
(1) 우리나라의 자료

연도

도서 및 문서와 지도

울릉도

독도

1530

신증동국여지승람』「八道總圖

 

于山島

1701

안용복 渡日 사건의 肅宗實錄

竹島

子山島

1868

八道全圖6장의 전국지도

 

于山島

1900

고종황제칙령제41鬱島郡 설치

鬱島,竹島

石島

1908

융희 2증보문헌비고

鬱陵

于山

1910

황현 매천야록

鬱陵島

獨島


(2) 외국 자료

연도

지도(地圖)

독도

1787

프랑스함대Lepaute Dagelet

Dagelet

1849

프랑스 포경선 Liancourt

Liancourt Rocks

1849

미국 William Thompson

3 Rocks

1849

미국 Cambria

‘two small islands’

1854

러시아극동원정대 Unkovski대령

올리부차(서도)

메넬라이(동도)

 

미국 포경선 Cherokee

‘two small islands’

 

(3) 일본 자료

연도

도서 및 문서와 지도

울릉도

독도

1592

九鬼嘉隆, 朝鮮國地理圖

鬱陵島

于山島

1667

사이토호센(齋藤豊仙)隱州視聽合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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