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한 3.1 정신 훼손과 잘못 된 의미부여의 상관관계
오늘은 3.1운동이 일어났던 날이다. 우리 땅과 주권, 국민이란 3박자 차원에서 한 나라가 존재 해오기까지의 장구한 역사란 의미를 갖게 했다. 숭고한 구국 운동의 한 획이었다. 우리 한인의 정신이 위대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던 날이었다.
한 나라의 존재란 온갖 풍파, 질고, 배반, 전쟁 등의 질곡의 세월을 통해서 지금과 미래의 후손들에게 복과 과제를 동시에 물려주는 현장이다. 그래서 실현 된 역사를 앉고 살아가는 공동체적 동력의 장이요 영구적으로 실현 해 가야 하는 삶의 현장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존재를 어떻게 보존하고 계승 발전해 갈 것인가? 이것은 그 때 그 시대의 책무를 안고 태어나고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순수한 시민적 책무라 할 수 있다.
사회 공동체적 울타리 안에서 개체와 공공적 구조로 잘 결합 된 근원적 사회 환경을 통해서 한 나라의 역사가 실현되어가는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잘 융합하고 종합되도록 하여 거대한 국가적 발전과 방향을 이끌어내는가? 라는 것과 어떻게 국민적 공감대와 행복을 추구해 가는가? 라는 차원에서 관건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역사 문제가 이상해지고, 어떻게 태극기에 대해서 국민들이 난감해 하는 일들이 벌어지는가? 라고 할 때 전혀 반대적 현상이다. 이것은 정상적인 국가 기반으로써 태생적이고 그 사회 근본이 되는 공간이 위협을 받고 있다는 의미를 말해 준다.
나라와 사회라는 바운다리를 떠나서 인간이란 의미 자체가 주도되는 나라적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나라를 상관 않고 인간적 의미만을 추구하는 세계화적 의의에서 주어지는 신질서 개념에서 나오는 성질이다.
하지만 이는 상대적으로 자기 기반을 분리시키고 그 자리에 다른 힘이 들어오도록 과도기적 공간을 갖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즉, 인간을 강조하는 것은 인류사적 측면에서 순수하고 자연적으로 그 의미가 주어지는 것이라면 당연히 중심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같은 이유와 동기부여로 어떤 사회를 길들이고 무력화 하기 위해서 인간성을 강조하는 경향성이 주도한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이는 그 사회 본연의 구조나 인격성을 파괴하면서 형성되는 기류변화이다.
기존의 나라배경을 배격하는 문화가 형성되게 하는 전형적인 현대적 흐름이다. 각 나라 그 사회 지도자들과 국민들이 얼마나 각성되어 막아내느냐는 그 사회의 몫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때는 힘이 강한 다른 배경이나 그에 준하는 다른 힘의 존재가 주도하는 나라적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의미와 맥을 같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얼마든지 인간중심이란 인류공통적인 의미로 자기본래의 나라란 실체를 무의미하고 무력하게 해버리는 환경을 새롭게 구축하려 하는 의미에서 신질서이기 때문이다.
결국은 자기 환경을 사라지게 하는 파괴적 근원이라는 사실이다. 이 때는 공간적이고 개인적인 대립적 인간 불신 관계가 공격적 나라 배경으로 몰아가는 불협화음의 나라 공간으로 강성해 진다는 의미이다.
이는 그 사회가 스스로 혼란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가치의 전도로 딜레마가 주도하는 나라 현실로 직결되는 과도기적 현상이 주도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3.1절을 눈앞에 두고서 촛불을 들고 옳다고 주장하던 부류들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딜레마에 빠지는 현상이 얼마든지 가능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무덤덤해 지고 이러한 심리 현상이나 정서가 반복되면서 자기존재와 자기사회 본위로부터 굳어지고 멀어지는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까지 오랜 시간 거치는 동안 형성 되어 온 우리사회 기류이다. 견고하고 완전하게 자리를 잡고 우리의 기반처럼 굳어져 있는 사회 현실이다. 우리 사회 정신적 바탕으로 이루고서 우리 사회를 역행하는 파괴적 힘이다. 이것을 우리는 신질서적 현상이라 말 할 수 있다.
이 같은 신질서는 기존 우리 스스로 자기사회 보존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노력이나 발전을 지향하는 동력을 무너트리는 현대 침략적 배경이다. 즉,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그 사회 자체적인 건강하고 역동적인 에너지로써 본이 되는 사회 구성요건을 철저하게 배격하고 없애는 파괴적 에너지를 의미하는 것이다.
3.1절은 바로 우리 사회 근본정신으로 오랜 세월 내려오며 자리를 잡고 있었던 그 뿌리적 힘이 3.1 운동 같은 숭고한 정신을 온 나라적으로 종합하고 규합하여 일어날 수 있도록 한 배경이었다. 그런데 이것을 영원히 시기하고 반대하는 또 다른 힘의 뿌리가 지속적으로 이를 부정하고 배격하는 움직임으로 공격대형을 해 왔던 것이다.
너무나 지능적으로 배격 운동을 해 왔고, 그 힘이 지금과 같은 그림을 그릴 정도로 우리 사회 안에서 힘이 되어 온 것이다. 이것은 바로 우리의 근본 땅과 주권 국민들의 인격을 참탈했던 일본과 그들에게 충성을 맹세한 부류들로부터 나오는 파괴적 에너지이다.
지금도 이 같은 은밀한 인적 기반으로써 우리사회 안에 들어 와 있는 일본은 여전히 한국과 한반도 찬탈을 목적으로 하는 백년 대계를 경영하고 있는 것이다. 온 에너지를 거기에 집중시키고 공략하는 에너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이 3.1운동 같은 한민족 정신을 극도로 싫어하고 이것을 다른 저급한 정신으로 대처하여 무너지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파괴적 정신이 주도되게 하는 공작을 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일본에 충성맹세를 한 우리 사회 내부 협력자들의 존재를 지적하는 것이다. 즉, 여전히 일본의 개가 되어 간자 노릇을 하는 자들이다.
바로 지금 촛불과 태극기 집회를 리더하는 자들의 폭력적 성향과 직결되는 배경이다. 이것을 우리사회가 간파해내지 못하고 이러한 양 진영의 대립구조를 좌시하고 방임한다면, 우리사회는 걷잡을 수 없는 대 혼란 사회로 들어가고 곧이어서 대공항사회로 몰리게 될 것이다. 그러한 목적으로 지금도 준비되어 가는 꺼리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태극기를 들고 흔들어 대는 이들의 행보를 우리는 순수하게 보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고발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나라 찾기 위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그 소리가 여전히 우리의 가슴과 귓가에 들리고 메아리 치는 소리인지?
숭고하게 죽어간 순국선열들을 비롯해서 애국지사와 나라 사랑하는 국민들의 울부짖고 통곡하던 그 날의 그 태극기로 의미부여를 하는 것는지? 우리는 그 의미를 진지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 한다.
태극기를 흔든다고 모두 다 정의와 진실이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이미 탄핵 이후를 이미 결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자신들의 뜻대로 안 되었을 경우 폭도들로 변해서라도 자신들의 목적을 추구하겠다는 의미를 부여하는 자들이다.
거리를 피가 낭자하도록 하겠다라고 과감하게 말하며 공포하던 이들의 얼굴에는 그 어디에도 나라 사랑하고 중심하는 이들이 아니었다. 이는 오래 전부터 그렇게 행동하도록 프로그램화 되어 있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니까 탄핵은, 우리사회 전복을 노리는 자들이 자신들 목적과 입장을 위해서 도구로 이용하고자 하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는 사실이다. 이들의 행보는 이미 극단을 향해서 정해 놓고 있는대로 내달리고 있을 뿐이다.
어떻게 헌법 재판관들이나 특검장에 대한 테러나 직접 살인에 대한 공포와 위협으로 폭력 모리배와 같은 언어를 구사하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가? 탄핵을 결정하고 나면 도로가 피투성이로 변할 것이다 라고 한치의 나라 생각도 없이 내뱉고 눈 하나 까닭 하지도 않는 태도들은 몸서리 쳐지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처음부터 우리 땅과 나라를 어지럽히고자 하는 방식으로 삶을 살아왔고 오로지 그러한 방향으로 나라 무너트리기를 자행하는 대표적 사람들임을 밝혀주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태극기를 흔들면서 미국의 성조기를 함께 흔들어 댈 수 있는지? 얼마나 우리 선조들이 한탄하겠는가?
이 모든 것은 우리사회를 둘로 갈리게 몰아가는 보이지 않는 사악한 무리들의 행보이다. 이들의 우리사회 농단이 빚어 낸 불협화음내지 부조리한 사회현상이다. 처음부터 의미부여를 잘못 제시하여 우리 국민들을 속인 사기적 행보이다. 이들은 우리 현대사 처음부터 우리사회를 갈리게 하는 역할자들이었던 것이다.
어떤 특정하게 정해진 일상의 독특한 인물들이 아니다. 일본과 그 맥을 같이 하면서, 일제 강점기 직후부터 어떠한 형태로든 일제 강점기를 자신들 인생의 전부로 생각하는 자들의 적극적인 행보라 할 수 있다.
이는 성경의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하면서 자신들의 영원한 땅으로 들어가기 보다 과거를 돌아보며 애굽에서 떡을 먹고 고기를 먹던 종노릇을 더욱 귀하게 여기던 부류들과 똑 같은 이치이다.
이들은 주로 종노릇으로 자신들의 배가 따스했고 자기 민족을 괴롭히고 그것으로 애급인들에게 칭찬 듣고 인정 받는, 자기들 민족과 땅을 경시하던 무리들이었다. 세상에는 바로 이들처럼 인생 철학이나 저급한 삶의 방식으로 화려하게 자신들을 포장하는 무리들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이다.
자신들 개인의 가족사와 개인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나라와 민족을 버리고 그 같은 환경을 조성하는 역할 중심으로 망하는 나라 현실을 추구하는 무리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우리사회 안에서 결코 단순히 개인적인 경향성이 아니다.
일본은 다시 제3차 침략을 감행할 그 날을 위해서 그 사전 정지작업으로써 한국과 한반도를 불신과 대립구조로 몰아가게 자신들이 포섭하고 종으로 부리는 한인들을 조정하여 바로 3.1절 같은 나라 근본과 그를 받추어주는 애국이나 사랑을 뒤엎어 버리게 하는 파괴적 운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데올로기 대립각을 세웠던 좌우 대립 공간을 이어서 새롭게 진화 되려 하는 촛불 태극기 집회 유형의 우리사회 파괴 운동이다. 3.1절에 맞추어지는 우리사회 파괴적이고 혼돈적 사회 동력을 새롭게 구축하는 파괴적 에너지이다. 이것이 소수의 무리들을 통해서 만들어가는 드러나지 않는 살인적 사회 파괴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사회에 사회 운동 측면에서 새롭게 주어지는 의미부여에 대해서 심도 있는 진단이 필요할 것이다.
의미부여란 우리 인간들의 마음에 자리 잡게 하는 형식으로 행동의 동기부여이자 사회 구심력을 추구하게 하는 힘을 갖게 하는 동력이라 할 수 있다. 우리사회 촛불이란 의미를 새롭게 부여하여 시민들의 힘을 모으고 끌어내려 한 동력이지만 이는 처음부터 잘못 된 것이다.
이는 “노란 리본” 몰이, 혹은 “화이트데이”, “발렌타인데이” 등, 이것들은 현대사회 안에 가만히 자리를 잡는 일종의 의미부여들이라 할 수 있다. 어떤 목적을 지향하는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 어떤 날을 특별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것을 사람들에게 특별한 날로 여기고 지키게 함으로써 그 기념일을 통해서 자신들을 그 나라 사람들 심리에 자리잡게 하고 소리 없이 확산 되는 부대 효과를 노렸다는 차원에서 의미부여이다.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를 잡게 되면 사람들을 몰아가는 힘이 되고 기념의식이 되어 결국은 그 사람들을 지배하려 하는 형식이 되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일본은 아시아에서 이 같은 꼼수 부리기 날들을 가장 많이 만들었다. 특히 이 같은 영향력이 우리 한국사회에 가장 중요하게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지금에 이르러서 특히 한국 젊은이들 사회에서 친일본적 경향은 이와 같은 의미부여의 의식과 무관치 않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배경으로써 촛불집회 또한 우리사회 안으로 들어 온 것이다. 처음 시작 되었고 거대한 물결의 이슈로써 시발이 되었던 의정부 중학생들의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사건은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시사해 주는 비밀스런 부분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즉, 현대 우리사회 공간 안에 다양하고 새롭게 형성되려하는 새로운 움직임들을 우리사회만의 근본적이고 원칙적인 공공의 각 부처들이 바로 파악하고 바로 잡는 공적 기능이 강화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제언하는 것이다.
왜, 중국과 일본은 이 같은 나라 중심의 사회적 기능이 강화되는데 우리만 지나칠 정도로 의존적이고 자기기피적인 힘이 더욱 강성해 져 가기만 하는가?
이는 우리사회와 나라가 어떤 힘에 제압 된 상태에서 정해진 방향으로 일방적으로 나아가려 하는 것과 직결되는 문제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즉, 일정하게 조절되는 사회구조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나라 안에 협력 동력을 갖춘 힘의 논리가 자기 사회를 대하여 조절내지 통제하는 기반으로 충직하게 행동하는 조직화 된 구조를 지적하는 것이다.
이유가 어떻게 되었던 이 같은 의미부여 배경들은 기존의 우리 정신과 기둥이 되는 기존 의미 부여들을 없애고 몰아내기 위한 대처 의식으로 아무런 의심 없이 우리사회를 지배해가는 신질서의 힘으로 등극을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을 드러내 놓고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사회에 필요와 유행으로 언론들이 몰아 인식변화를 일으킨 다음 중지를 모으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온 것이다. 또 한 편으로는 가장 한국적 역할로 자작극하거나 트릭을 사용하여 추구하는 합법적 이유들로 진행 되어 사회적 힘이 되어 온 것이다.
물론 언론 구조가 모두 다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들 하부 구조로 만들어 놓은 얼론 구조나 언론인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 같은 힘에 영혼을 팔아버린 언론인이나 구조를 말함이다.
이 같은 영향력이 우리사회를 지배해 온 사회적 배경이다. 전통적으로 자국중심의 배경에서 좋고 나쁜 공간이 형성 된 것이 아니다. 완전히 기계적이고 조절되는 통제적 사회로 변질 되면서 오히려 우리를 배격하고 제압해 온 이물질적 경향성을 말함이다. 그래서 우리사회에 대한 파괴적 에너지인 것이다.
이것은 우리사회 안에서 거대한 힘이 되어 오랜 시간 동안에 우리 현대사회를 현혹시켜 놓았다. 즉, 속이는 힘으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막대한 손해를 끼쳐 온 힘이다. 그 속이는 힘이 대단하게 조작하는 힘이 였기 때문에 공적이든, 사적이든, 여론이나 많은 국민들로부터 환영받는 우리네 현실로 자리를 잡아 온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어둠의 지대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사회에 유익이고 합당하며 과거부터 우리의 뿌리요 전통으로 이어지는 미래요, 미래후손들에게 좋은 영향력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를 지배하기 위해서 건강한 정신을 빼고, 우리의 좋은 미풍양식이나 국기, 국권을 무너트리기 위한 잘못 된 정신을 함양토록 몰아가는 것인지? 등, 이에 대한 사회적이고 전문적인 확인 절차 없이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근본적이고 진정한 태극기 중심의 국가와 국민적 정신은 우리사회를 지속하고 유지하는 건강하게 하는 의미부여였다. 기존 우리의 동력이고 구심점으로써 우리의 정신적 문화로써 우리의 힘이었다.
그런데 새로움을 가장하여 다가 온 현대적 힘의 배경하에서 우방이란 관계는 우리의 근본 기반을 대적하는 힘의 기류였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새로움을 동경하는 우리사회 국민적인 정서는 이를 이용하는 촛불집회나 노란 리본 운동을 새로운 의미부여로 기껍게 받아들여 신질서에 편입을 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태극기를 이용하는 부류들은 본래 태극기는 마음에도 없는 자들이다. 대한민국 정신을 옹호하고 환호하며 외치지만 이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현재의 나라 팔아먹기 흔듬의 집회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거기에 성조기가 함께 펄럭이는 것이다. 그리고 리더자들은 막말을 하는 시정잡배나 다를바 없이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저급하고 폭력적인 말들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나라에 대한 생각을 잃어버린 민족의 어리석은 행보들이 아닌가! 3.1절을 맞으면서 친일 잔재를 몰아내자고 하는 나라에 대한 선행을 한다고 하는 이들이 태극기를 부정하고 촛불로 나라의 중심정신으로 대처를 하고자 했더란 말인가?
이러한 시민운동은 어떻게 되었든 미국이나 일본 같은 현대적 힘이 우리의 근본적이고 대중적인 기반 빼내기로 새로운 목적을 위해서 그 무엇도 하려는 모든 사회적 배경을 새롭게 형성하려고 하는 잘못 된 문화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지향한다는 숨은 의도가 밖으로는 이러한 정신적 운동으로 기존의 대한민국 정신사인 숭고하고 뜻깊은 의미들을 대처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정치지도자들이 가세하여 편 가르기를 하는 것이다.
지난 세월 동안 지역감정과 같은 차원에서 나라를 둘로 갈리게 한 대립적 성질을 그대로 이어 받는 짓을 하는 것과 동일한 행동들을 다른 형태로 재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직 자신들 욕심 때문에 말이다.
이런 점에서 중립을 서는 정치인들을 우리 국민들은 더욱 소중하게 들여다 보아야 할 것이다. 거기다가 국민적 통합을 위해서 정당과 자신을 배제하고 나라 자체를 생각하여 진지하게 임하고자 하는 지도자를 우리들은 눈여겨 보고 지금의 우리사회에 가장 적합한 인물을 찾을 수 있고 선택할 수 있는 안목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야당은 너무 대권에 매여서 편협하고 작은 행보로 자국 근본을 회복하는 일을 그르치지 않기를 바란다.
정작 일본의 잔재로부터 나라를 보호하고 자국의 실리를 지속하는 현실을 만들자고 외치는 야당이 이러한 삶의 의미들에 대해서 모르고 촛불집회를 나라의 정신적 기반으로 삼고자 한 것인가? 그래서 정치지도자들은 중립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시민들이나 대중들은 언제나 정확하고 명확한 지식과 정보에 의해서 움직이는 물결이 아니다. 특히 오늘 현대 시대는 이러한 군중몰이, 여론몰이로 침략배경을 삼는 파괴적 기운이 주도하는 시대이다.
하지만 사회란 언제나 명확하게 드러내 보이면서 움직이고 제도와 관습이 형성되고 구축되는 것이 아니다. 불특정하고 가려진 의도성의 어떤 힘의 목적에 의거해서 침략 대상으로 삼는 국가와 사회 안에 소리 없이 포섭 된 힘이 자기사회를 유린하는 공간을 확보해 가는 것이다.
먼저 사람을 포섭하여 계획되고 지속적인 공략의 단계를 거치면서 타락한 언론과 정치적인 몰이를 통해서 몰아가는 거짓의 소수자들이 유린하는 사회로 연결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요즘 우리사회 안에서 일고 있는 태극기와 촛불 집회는 모두 다 우리사회를 잘못 된 방향으로 몰아가는 파괴적 에너지가 그 힘을 만들어가고 있는 과정, 즉 과도기적 현상이고 지금은 그 힘이 주도하는 사회적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태극기 집회를 주도하는 집단들이 이 같은 사회 기반을 깔아가는 우리사회 내부에서 협력하는 동력의 주체일 것이다. 왜냐하면 태극기에 반하는 촛불로 우리사회를 딜레마로 몰고 그것이 완전히 무르익었다 싶을 때 이들이 태극기를 가장 먼저 버릴 수 있는 배경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것을 보여주는 것은 미국 성조기를 함께 흔들어 댄다는 사실이다. 이는 명백하게 외세의 힘을 더 중시하여 그것을 위해서 자국을 이용하겠다는 의지의 행위가 이러한 집회 형태로 힘을 드러내고자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들 틈바구니 가장 깊은 곳에 숨어서 이러한 사회적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조정하면서 철저하게 우리사회를 둘로 갈리게 자작극을 하는 무리들이다. 언제나 소수의 무리들, 즉 가장 깊은 곳에다 비밀의 회합구조를 한 이너써클 그룹들이다.
우리사회는 이들을 드러내고 처리할 때 비로써 우리 나라의 광명이 환하게 비추고 그것이 힘이 되는 현실이 될 것이다. 우리의 희망과 진정한 발전을 이룩하는 나라기반으로 국민들이 행복해 하는 나라 현실로 나아오게 될 것이다.
오늘, 3.1절 숭고했던 나라 찾기 운동 그 자체가 우리가 비록 나라를 빼앗겼어도 우리의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었음을 보여주었다는 차원에서 역사적 의미가 주어지는 것이다. 즉, 이는 나라 땅이 없어도 역사와 국민들의 정신이 살아 있을 때 언제라도 나라적 존재가 영원할 수 있다는 의미는 2천년이 넘게 나라를 잃어버렸던 유대인들을 통해서 보여 주었다.
우리는 바로 3.1 정신이 이 같은 정신과 나라의 근본 힘이 되어 국민들의 마음을 숭고하게 이끌어가는 역동적인 에너지라는 측면에서 아픈 역사도 역사라는 의미가 주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우리의 역사의식이다.
그런데 이것을 잘못 된 생각과 목적을 가지고 우리사회 안에서 비밀리에 움직이는 무리들이 자신들이 목적하고 그 목적에 의거해서 조정되는 힘에 복종하여 그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자들이 자신들의 뜻에 맞추어서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우리 국민과 사회를 유린하고자 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3.1절 운동과 그 역사적 의의와 정신적 기조가 무너지지 않도록 우리사회는 온 힘과 심혈을 기울려서 지키고 보존되도록 해야 할 것을 역설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