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의 여왕’ 박근혜 대통령을 대표하는 닉네임이다.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침몰해가던 한나라당의 대표를 맡아 17대 총선에서 121석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또한 그 후 세월호 사건, 성완종 부패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의 승리를 이끄는데 그녀는 늘 중심에 있었다.
선거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파란색을 빨간색으로 바꾸기도 하고, 야당의 복지, 민주 이슈를 선점해 쓰기도 한다. 박근혜 대통령 패션을 중요시한다. 그녀의 패션은 실제 50대 이상 아줌마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대단한 패션 감각만큼이나 선거에 있어서 이미지 정치의 중요성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을 높이 평가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녀가 대단한 것은 바로 안면몰수 정치를 한다는 점이다. 급하면 뭐든지 끌어다 쓰면서 결국 나중에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한다. 그게 가능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건 확실한 집토끼가 있기 때문이다. 60대 이상의 고령층에서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 그녀의 힘이다. 30% 대의 철옹성 지지율은 단지 30%가 아니다. 그 30%는 선거참여율이 엄청 높기에 실제 선거 득표율에서는 40%도 될 수 있고, 50%의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
즉 박근혜 대통령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30%의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30%는 실제 선거에 참여하는 비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일단 지고 들어간다는 것이다. 결국 늘 키는 이른바 중도층이 잡고 있는데 그 중도층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이른바 정치싸움이다. 정치인들은 싸움꾼이고 그들의 정쟁에 신물이 나며 그래서 정치에 무관심하다. 물론 투표도 참여할 생각이 없다. 그런 정치 불신을 증폭할수록 결국 승리하는 쪽은 박근혜 대통령이 된다.
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을 촉발한 박근혜 대통령은 두 마리 토끼 잡기에 나서고 있다. 첫째는 아버지 박정희대통령에 대한 효도이다. 가난으로부터 대한민국을 구한 훌륭한 대통령이라는 평가와 군사독재로 민주주의를 짓밟고, 공포정치를 단행한 독재자라는 중첩된 평가 속에서 전자만을 부각시키겠다는 것이다.
둘째는 바로 내년 2016년 국회의원 선거를 이념논쟁으로 끌고 가서 또 한 번 선거의 여왕을 입증하겠다는 전략이다. 요즘 재벌개혁이냐 노동개혁이냐를 가지고 전선을 형성해야 할 즈음에 그 구도를 자신들이 유리한 좌경화 논쟁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야당은 좌익친북세력이라고 몰아세움으로 자신들이 유리한 고지에 올라서겠다는 의도이다. 정쟁을 유발함으로써 이른바 중도층으로 하여금 정치 혐오감을 극대화시켜 투표장에 나오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신들의 집토끼의 위력을 증폭시키겠다는 것이다.
참 아이러니한 것은 새누리당이 그렇게 싫어하는 북한의 방식을 답습한다는 점이다. 북한의 공식명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나라 이름에 ‘민주주의’를 집어넣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북한을 ‘민주주의’국가라고 인정할 수 없다. 일당독재국가이며, 다양성과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힘은 다양성의 존중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런데 단 하나로 가르치는 ‘국정 교과서’라니 그게 북한의 방식과 다를 바가 무엇이 있는가? 이미 충분히 검인정 교과서라는 체제 속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주장하는 바를 담은 교과서가 나오고 있다. 이른바 교학사 교과서 파동을 통해서 뉴라이트계열의 역사관을 담은 교과서가 있지 않은가? 그런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자신들의 주장을 표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정교과서를 단행하겠다는 것은 결국 다양성을 중요시하는 민주주의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백년만년 집권을 계속하겠다는 자만심의 표현이기도 하다. 국정교과서를 채택하면 정권을 야당에게 넘겨주었을 때 그 내용이 바뀌는 것에 대해서도 인정할 것인지 묻고 싶다. 내가 하는 것은 괜찮고 남이 하는 것은 안된다가 아니라 내가 되었건 남이 되었건 다 괜찮을 수 있도록 제도를 안착시키는 것이 이른바 민주적 절차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민주적인 시스템을 붕괴시킴으로써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바만 성취하면 된다는 몰염치의 리더쉽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 것인가?
하긴 그들은 정권을 혹시나 빼앗긴다 해도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야당은 어차피 민주주의를 할 것이기 때문에 자신들은 밑져야 본전이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른바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쪽에서도 민주정부가 집권하면 새누리당이 했던 것처럼 똑같이 앙갚음을 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국정원을 사유화해서 철저히 새누리당을 파괴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을 동원해서 이른바 조중동을 손봐줌으로 싹을 잘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강경파들이 있다. 그러나 대다수는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말한다. 바로 그 점을 노려서 장난을 치는 세력이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이 된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이 대단하다고 엄지척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들의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의 논리만을 강요하겠다는 것은 분명 민주주의가 아니라 독재다. 그것은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또 다른 모욕일 뿐이다.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는 오명을 남길 뿐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진정으로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효도는 박정희 대통령을 넘어서는 것이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그림자인 민주주의를 딸 박근혜 대통령이 성취함으로써 아버지를 완성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효도이다.
박근혜 대통령 그녀는 선거의 여왕일 수는 있지만 과연 존경받는, 후세까지 인정받는 정치인이 될 수 있을까? 과연 그녀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가진 역사관에 대해 자신만이 참임을 주장하고, 국민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국정교과서에 반대한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담은 검인정 교과서를 만들고 당당히 경쟁해라. 비겁하게 자신이 갖은 힘으로 밀어붙이지 마라. 분명 그런 노력은 또 다른 역풍을 불러올 것이고 그럴수록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후퇴할 뿐이다.
내일의 희망이 없을 때 사람들은 자살이라는 극단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떻게 오늘이, 내일이 늘 희망적일 수 있겠는가?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일시적인 흐름은 역류할 수 있었도 역사의 도도한 흐름은 결국 민주주의의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고대 노예제, 중세 봉건제, 왕정, 민주주의 시대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소수 힘 있는 자들의 독점에서 다수의 분권으로 발전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 역사의 흐름이 때로 너무 더디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인생 기껏해야 80여년 사는데 역류를 만나게 되면 한숨만 쉬다 인생 종친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역류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노 젓는 이가 있기에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것이고 후세는 좀 더 나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노를 부지런히 저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