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모아파트에서 길고양이를 돌보던 캣맘과 그 여자와 함께 길고양이를 돌보던 남자가 아파트 위에서 떨어진 벽돌에 맞아 40대 여성은 숨지고 남자가 크게 다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 초기 캣맘의 행동에 대하여 분노한 아파트 주민의 행위로 추측되었다.
어른들의 이기주의에 의한 고의적 행위로 유추되었다.
하지만 이 사건의 가해자는 만9살의 초등학생이었다.
아이의 진술에 의하여 놀이터에서 놀기로 했던 아이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에 올라가서 학교에서 배운 자유낙하 운동을 시험하다 사고를 낸 것이 된다.
하지만 사고지점은 아파트로부터 수평으로 7미터 떨어졌다. 그래서 대다수 사람들은 고의적 사고를 의심한다. 고의적인가. 고의적이 아닌가에 대하여는 나의 판단을 유보한다.
7미터 떨어진 곳에서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벽돌을 던졌다는 것은 확실하다. 자유낙하 운동의 개념에 맞지 않는다면서 고의적 사고를 유추한다. 하지만 9살 먹은 초등학생이 자유낙하 운동에 대한 개념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
?
실험조건에 대하여 제대로 알고 있을까. 7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사고가 났다고 해도 초등학생의 지식수준에서 실시한 자유낙하실험이 맞다고 충분히 주장할 수 있다.
이런 아이들의 놀이는 매우 위험하다. 그래서 이런 놀이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가끔씩 나온다. 따라서 아파트나 고층의 건물에서 외부로 무게가 있는 물건을 던지는 행동의 위험성에 대하여 가르쳐야 한다.
아이들이 놀이로 선택한 행동 중에서 이 놀이과정에서 생명을 잃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특히 요즘처럼 고층 건물이 많은 시대에는 아파트 외부로 위험한 물건을 던지는 행위를 하지 않도록 교육시켜야 한다.
그럼 만일 아이의 행동의 고의적인 것이라면 대다수 사람들이 추측하는 것처럼 고의적인 것이라면 말이다. 무서운 초등학생이라는 생각에서 멈추지 말아야 한다.
?
“왜 용인초등학생이 벽돌을 던진 것일까.”라는 질문을 우리는 가져야 한다.
인터넷에서는 가해자 초등학생에 대한 적개심이 넘친다. 동물애호가가 중심이 되어 가해 아이에 대하여 쏟아내는 분노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 사건으로 생명을 잃은 분의 아이는 이제 어머니의 따듯한 밥을 먹을 수 없다.
진짜 만일 고의로 사고를 낸 것이라면 대상을 아이들이 무작위로 선택한 것일까. 아니면 사고를 당한 캣맘이 아이들의 타켓이었을까.
무작위로 대상을 고른 것이라면 인터넷에서 쏟아지는 분노, 적개심이 정당하다. 그러나 캣맘을 노리고 한 행동이라면 왜 아이가 그런 끔찍한 선택을 했는지 우리는 분석해 보아야 한다.
공격행위는 적개심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캣맘을 향하여 아이들이 돌을 던진 것이라면 아이들은 캣맘에 대하여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캣맘의 고양이 먹이주기로 인하여 아파트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는 걱정 때문에 아이들이 적개심을 가졌을까. 어른들이라면 이런 이기적 생각을 가질 수 있지만 아이들이 이런 생각으로 적개심을 분출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없다.
오래된 에니메이션 중에 무서운 개가 버티고 있는 길이 학교와 집을 왕래하는 지름길이지만 그 개 때문에 돌아서 가야 하는 아이의 개에 대한 공격성을 보여주는 내용이 많았다.
집으로 갈 때마다 지름길로 가지 못하는 아이는 그 개를 생각하면서 매일 공포에 사로잡히게 된다. 개를 무서워하지 않는 아이는 개를 무서워하는 아이의 공포를 이해할 수 없다.
이 사건의 가해자인 초등학생들이 고양이를 매우 무서워한다면 캣맘의 고양이 대한 선의는 그 고양이들이 모여 있는 곳을 매일 지나는 아이들에게는 폭력이 된다.
?
만일 아이들이 놀이터가 고양이의 행동반경에 있다면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아이들에게서 캣맘은 놀이터를 빼앗은 것이 된다.
길고양이에 대하여 애정을 갖고 있던 캣맘의 행동은 고양이를 싫어하는 아이에게는 폭력이 된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어른들이라면 적극적으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캣맘에게 표현했을 것이다. 끔직한 사고 대신 다툼으로 작은 전쟁이 이어졌을 것이다. 캣맘은 생명존중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우면서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가치있는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캣맘이 자기만족을 위하여 버리는 행동은 고양이를 매우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폭력이다. 이것을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만족을 위하여 하는 행동이 타인의 삶에 심각한 저해를 줄 때는 대의명분을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 타인에게는 생존이 걸린 문제이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아이는 매일 매일 정신적으로 폭력을 겪어야 했다는 것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9살 먹은 아이가 가해자라는 것을 모를 때 인터넷 상에서 캣맘을 지지하는 사람의 글 중에서 “중재점을 찾으면 되는데 왜 폭력적이 방법으로 캣맘의 행위를 막으려고 하는가”라는 글이 있었다.
?
물리적 폭력만을 폭력으로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캣맘의 행위 때문에 고양이들에게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은 하루 하루 정신적으로 폭력을 당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해마다 학내폭력 또는 왕따 때문에 자살하는 아이들이 나오곤 한다. 피해 아이들은 매일 학교가는 것 자체가 두려웠을 것이다. 사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고양이에게 공포심을 느끼는 아이는 몰려 다니는 고양이로 인하여 매일 정신적 폭력을 당하며 살았을 것이다.
?
삶 자체가 두려움에 연속일 것이다. 고양이가 없는 곳에서 살수 있다면 이라는 생각뿐이었을 것이다.
피해자의 아이는 영원히 어머니의 따듯한 밥을 먹을 수 없다 .가해자의 어머니는 아이의 행동으로 발생한 끔직한 결과를 영원히 기억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왜 이런 아픔이 계속적으로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의 욕심, 늘어나는 욕심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기만족을 위하여 남의 시선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자기만족을 위하여 타인의 피해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욕심 때문에 이런 아픔이 계속되는 것이다.
우리가 언제부터 동물의 삶까지 생각하고 살았는가. 같은 인간의 삶에 대하여 조금의 생각도 못하는 사람들이 동물의 삶에 대하여 생각하면서 살아갈 자격이 있을까.
욕심이다. 나를 대단한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는 욕심의 결과로 이런 사단이 난 것이다. 더 이상 이상한 사상이 확장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살인자의 인권에서 이제는 동물권으로 가치를 내세우는 자들이 세상을 이렇게 전쟁터로 만들어 버렸다.
인간처럼 살자. 거짓된 자들이 만든 허상의 옷을 벗자.
?
그럼 이런 끔직한 일들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아이는 놀이터에서 자유롭게 놀고 어머니는 아이들의 그런 모습를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바라보는 세상, 엄마의 따듯한 밥을 아이들이 맛이 있게 먹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의 욕심을 버리면 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