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들이 부흥하고 발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과 더불어 강력한 실행력에 의해 이루어 집니다. 즉 예수님의 언행에 대한 확고부동한 믿음과 더불어 그의 언행을 지키고 따를 때에만 비로소 그 지키고 따른 말씀들에 대한 해석들이 진솔하게 펼쳐질 수 있을 뿐, 이런 경로를 거치지 않고 단순히 지식과 지혜와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아무리 오묘하게 그럴듯 하게 해석된 말일지라도 그것으로는 추호라도 하나님이 하신 말씀의 뜻을 나타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 말씀 모두가 믿음으로 지키고 순종하여야 할 것을 전제한 결론 같은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지키고 따르도록 전제되어 있는 윗분의 말씀은, 아랫 사람의 지적, 능력적, 경륜적 수준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즉 아랫 사람의 지금과 같은 수준(상황)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이 같은 윗분의 말씀을 아랫 사람이 들었을 때에는 오직 믿음으로 지키고 따를 때에만 비로소 그 말씀이 해석되고 이해됩니다. 일례를 들어,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세기 2:17) 하신 하나님(윗분)의 말씀은, 왜 아랫 사람들이 그것을 따먹게 되면 죽게 되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으로 이해시킬 수 없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그것을 먹게 되면 반드시 죽게 된다는 결론만 말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같은 결론의 말씀들은 모두다 그 말씀을 믿고 지켜야 한다는 전제 조건하에서만 말씀할 수 있습니다. 지혜와 능력과 연륜이 동등한 수준의 사람들끼리는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말을 얼마든지 주고 받을 수 있지만, 지혜와 능력과 연륜의 격차가 심한 상하 관계의 사람들, 다시 말해 윗분과 아랫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반드시 윗분의 말씀은 아랫 사람들이 믿음으로 실행해 지켜야만 비로소 이해될 수 있는 결론이 깃든 말씀들이기 때문에 아랫 사람들은 반드시 윗분의 말씀을 믿음으로 지키고 따라야 할 것을 전제하고 들어야 할 절대절명의 의무만 있습니다.
이런 믿음의 법칙을 적용해 아랫 사람들에게 말씀하셔야 할 분들이 바로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과 또 삶의 오랜 경험을 치르고 생존하여 자식들을 낳은 부모님과 또 그에 상응한 경륜을 가진 선생님들과 상전들과 또 오지를 탐험해 그곳 지리를 훤히 꿰뚫어 아는 안내자들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들을 낳고 키우신 부모님의 말씀이나 또 지식과 능력이 뛰어난 선생님들의 교훈이나 또 산전 수전 다 겪은 상전들의 명령이나 또 오지를 안내하는 가이드(안내자)들의 결론이 깃든 말씀들에 대해서는 별로 이의를 달아 해석을 요구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따르고 지키지만, 유독 천지만물과 생물들과 사람들을 창조하신 절대 윗분, 곧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해석을 요구합니다.
이 세상 그 어떤 지식과 능력과 연륜을 쌓은 부모급에 속한 선임자라도 창조주 하나님의 지식과 능력에 비하면 시쳇말로 조족지혈에도 못미치는 지식과 능력과 연륜들에 불과합니다. 천지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전지전능한 능력과 인공 위성을 만들어 쏘아 올린 과학자의 능력을 비교한다는 것은 실례와 교만 그 자체일 뿐, 그것은 비교할 대상의 수준에도 들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거룩함(생명)에서 발생되는 명령이지만, 과학자들의 능력은 추악(죽음)으로 감 쌓인 흙(물질)에서 발생된 습성입니다. 즉 흙에게 무릎 꿇고 그의 습성과 행동거지를 피땀 흘려 배워 익힌 능력들입니다. 샘영의 능력과 죽음의 습성은 비교할 수 없는 이율배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거룩한 생명의 능력에서 발생되는 명령이고, 인간들의 능력은 물질들의 죽음의 습성에서 발생되는 힘입니다. 즉 만물의 종이 되어 그들의 본적지, 곧 아무 것도 없는 죽음의 무(無)의 상태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습성을 면밀히 관찰해 익힌 죄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과학자들의 능력이 비교할 상대가 못 되듯, 하나님(생명)의 뜻과 마음과 생각과 사람(죽음)의 뜻과 생각과 마음 또한 비교할 상대가 못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는 사람이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못하도록 규제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거룩한 생명에서 발생되는 명령이고, 사람들의 뜻과 생각과 마음은 만물(죽음)의 습성과 풍토에서 발생된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제가 성경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가르치는 어떤 부류의 유명한 사람들이라도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확고부동하게 믿지 않거나 강력하게 순종치 않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임의로 해석해 가르치는 모든 말과 지식과 능력들을 초개 같이 무시해 버립니다. 왜냐하면 생명에 속한 하나님의 말씀은 죽음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이 믿음으로 지키고 따라야만 생존할 수 있는 말씀들이기 때문에 이런 전제 조건이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죽음의 지식과 능력과 연륜이 남들보다 뛰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주제넘게 임의로 해석해 가르칠 때에는 하나님(생명)의 뜻과 생각과 마음을 전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교만된 성경 해석이 불신자나 이단자나 안티들에 의해 발생된 것보다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즉 정통신앙 운운하는 자들에게서 주로 많이 발생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가 더욱 더 제 마음 속에서 타오르고 있습니다. "내가 기뻐하는 자의 회에 앉지 아니하며 즐거워하지도 아니하고 주의 손을 인하여 홀로 앉았사오니 이는 주께서 분노로 내게 채우셨음이니이다"(예레미야 15:17) 하셨고 또, "그러므로 여호와의 분노가 내게 가득하여 참기 어렵도다"(예레미야 6:11) 하심 같이, 제가 만일 나의 생각과 다르다 하여 저들에게 분노하면 그것은 나의 사사로운 본노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일 때문에 분노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일으킨 분노입니다.
저는 사람들의 뜻에 의해 해석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전도자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뜻이 추호라도 흐트러짐 없이 작용되고 기재되어 있는 말씀만 믿으려고 하는 평범한 신자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말씀을 믿는다 하면서도 그 말씀을 믿음으로 생활 속에서 적용해 실행하지 않고 다만 거짓되고 교만된 생각과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임의로 해석하거나 자의적으로 판단해 가르치는 수많은 자들을 꾸짖지 않거나 책망치 않는다면, 이는 제 자신도 그들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확실하게 믿거나 아니면 저들의 실족을 모르는 체 하는 악행으로서 하나님께 책망 당하게 됩니다.
제가 저의 하는 일에 대해 변명하는 것도 하나님이 짊어지게 하신 십자가를 회피하는 것 같아서 심히 부끄럽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당하는 모욕에 대하여서는 굳이 해명하지 않고 다만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사명, 곧 십자가로 생각해 묵묵히 지고 갔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겪는 모든 억울한 사건에 대하여서는 오직 하나님의 손길과 판단에 맡기고 묵묵히 십자가를 짊어지셨건만, 저는 아직도 그런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하나님 앞에 못난 자임을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이러한 연약한 믿음은 본받지 마시고, 오직 예수님의 담대한 믿음만 본받기 원합니다.
아무튼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되신 여러분! 일흔번의 일곱번이라도 용서하라신 주의 말씀을 의지해 여러분들에게 권면합니다. 기독교인들이 부흥하고 발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고 강력하게 실행하는 일에 있습니다. 신앙의 성장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여러분들의 신앙 성장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확고부동하게 강력하게 믿는 것 이 외에는 그 어떤 힘과 능력과 지식으로도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지키는 믿음에서만 태어날 뿐, 이런 확고부동하고 강력한 믿음이 배제된 상황하에서 그 어떤 미사여구의 인간적인 사랑도 참된 하나님의 사랑이 아닙니다.
비판치 말라, 판단치 말라 등등의 성경 문구를 인용해 가면서 저를 하나님과 사람들께 고소하여도 그 고소가 하나님께 합당치 않는 것은, 저들이 마귀에게 속하여 그 모든 성경 말씀을 오용, 남용, 과용, 도용, 악용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들은 믿음으로 제 말을 수용하기 때문에 제 말을 이해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지만, 그 외에 대부분의 식자들은 "나는 화평을 원할찌라도 내가 말할 때에 저희는 싸우려 하는도다"(시편 120:7) 하심 같이, 제 말을 자신들의 인간적인 지식과 능력과 경륜으로 성경말씀을 해석하는 것처럼 제 말도 임의로 해석하려 합니다. 그러므로 마귀 쪽에 서서 제 말을 대적하지 마시고, 한발자욱 물러 서서 성경 말씀을 지키고 실행하는 것으로 해석받으십시오.
예수님의 말씀은 결론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로 태어난 분들은 긍정적인 뜻으로 그 말씀을 지키고 행하여 해석을 받습니다.이런 사람들에게만 성령이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해석해 주십니다. 이런 교육방식은 하나님이 자신의 참된 자녀들을 찾기 위한 기묘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지키고 실행할 뜻이 없는 적대 세력들에게는 하나님이 그 모든 말씀들을 암호화시켜 깨닫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저 또한 예수님께로부터 발생된 이 같은 믿음으로 성경 말씀을 배우고 익혔기 때문에 그 같은 방식으로 성경 말씀을 전할 뿐, 카톨릭교의 교황이나 개신교의 교주 목사들처럼 많은 사람들을 자기 제자 만들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임의로 해석해 전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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