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는 보리가 아니다 보디 boddhi
중국어에서 유래된 보리 菩提가 아니고
보디 boddhi 가
바른 발음이다.
煩惱란 산스크리트어의 로마자는 domanassa 문자적으로는
'sad-mindedness', grief, i.e. mentally
painful feeling 등을 말한다.
번뇌가 정말 깨달음일까?
병원에가서 환자들을 한테
‘질병은 곧 건강이다’라고
한다면
환자들로 부터 욕을 직사하게 먹는다.
암 환자가 건강하게 되기위해서는 소수만이 가능하다.
가난한 학생들에게 가서
‘흑수저는 금수저이다’라고하면
욕을 얼마나 먹을까?
흑수저가 금수저가 되는건 평생을 노력해도 안된다.
불교는 업을 중요하게 여긴다.
번뇌가 깨달음이되려면 엄청난 노력을해도 불가능이다.
수만명 중에 몇사람만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불교 교리는 엉터리인가?
결론은 아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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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팔복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마태복음 5장 3절.
[개역개정]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KJV]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NIV]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ASV]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ESV] (For ver. 3-12, [Luke 6:20-23])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5장 4절.
[개역개정]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KJV] Blessed are they that mourn: for they
shall be comforted.
[NIV] Blessed are those who mourn, for they
will be comforted.
[ASV] (1) Blessed are they that mourn: for
they shall be comforted. (1) Some ancient authorities transpose verses 4 and 5)
[ESV] Blessed are (Isa. 61:2, 3; John
16:20; 2 Cor. 1:7; 7:10; Rev. 21:4; [James 4:9, 10]) those who mourn, for they
shall be comfor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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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이 가난한자에게 정말 복이 있을까?
가난이란 단어는 경제용어이고 싫어하는 단어이므로
사람들은 거부한다.
심령이나 마음이 가난한것을 좋와하는 사람은 없다.
마음이 가난하다는게 무슨 뜻인지는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으나
가난한 마음에 복이 아님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애통해하는자는 복이 있다는데도 교인들은 애통해하지 않으려한다.
애통해하는게 복이 된다는 보장은 없기때문이다.
교리의 모순이다.
천국이 좋다면서도 죽지 않으려하는 기독교인들애게 문제가 있는게 아니고
교리에 문제가 있다.
천국이 아무리 좋다해도 이 세상만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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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번뇌는 탐진치에서 생겨난다고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누구도 탐 진 치를 없게할수가 없다. 죽어야 가능해진다.
그러니 번뇌가 보디(깨달음)이
되려면 죽어야 가능해진다.
이것도 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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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
종교에 상식에서 벗어나는 교리가 많이있다.
그런데 이런 모순된 교리로
재물을 엄청 모았다는게 참으로 이상하지 아니한가?
천국, 지옥이 있다는게 증명이 안되고
교인들은 구원을 받을수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엄청 많은 돈을 교회, 천주교, 이스람교, 흰두교에 받치는것일까?
불교 교리도 마찬가지이다.
깨달은 사람이 있었는지도 모르면서
스스로 깨닫지도 못하고
교리는 모순 투성이인데
실천 할수 없는 교리가 너무나 많은데도
돈을 엄청 많이 받쳐서 불교의 재산이 넘쳐난다.
옳은건지 나쁜건지 따지지못하고,
분석하지 못하고, 그 문화에 물들어버리는것을
나는 새 용어로
‘집단 문화 중독’
CCA ‘Collective Cultural Addition’ 이라고 말한다.
아직은 없는 새 단어이다.
이 새 용어와 유사한게
종교심리학자 Carl Jung 의 ‘archetype’ 이다
집단적 무의식 ‘collective unconscious’이라하는데 그러나 요즘 심리용어로는
집단적 잠재의식 collective subconscious 더 적합하다. 무의식은 혼수상태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참조;
집단무의식(集團無意識
Collective unconscious)은 카를 융이 제창한 분석심리학의 중심개념이며 인간의 무의식의 심층에 존재하는 개인의 경험을
넘은 선천적 구조 영역이다.
보편적 무의식(普遍的無意識 universal
unconscious)이라고도 부른다. 개인적 무의식의 대어로 융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심층심리의 역동을 설명하기 위해 이 무의식 영역을 제창했다.
a collectively-inherited unconscious idea, pattern of
thought, image, etc., that is universally present in individual psyches, as in
Jungian psych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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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문화 중독에 걸리면
옳고 그름의 분별이 마비되고
분석력을 잃어버린다.
의심을 하지않는다.
왜? 라는 질문을 망각해버린다.
분석, 의심, 왜? 라는 생각을 떠올리는건
반사회적이고, 죄 sin 이라
생각하고,
따지면 왕따되어 외톨이가 되는것을 두려워한다.
집단 문화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궁지에 몰리거나 자기보호, 자기방어가 필요할때만
집단 문화 중독에서 탈피해서 항거한다.
반 집단 문화 중독 anti collective cultural
addiction 에 속하는 행동이
세월호 항의, 사드 반대 항의이다.
또는 집단문화중독 탈피 escape from CCA [collective cultural
addiction] 이다.
집단 문화 중독에서 탈피할수 있는 사람들은
진보이거나, 시대를 앞서가는 소수만이 가능하다.
교리를 따져보지도 않고 믿는 사람들을
맹신 blind faith 라한다.
나도 종교단체에 간다.
그러나 교리는 나 스스로 분석할뿐
다른 사람들과 논쟁하지 않는다.
논쟁으로인한 분열보다 화합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이유는
대면이 아니므로
분쟁, 분열없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교리 모순은 그들이 스스로 눈을 떠야 하거나
성직자들이 바로 가르쳐주면 되나
성직자들은 교리 모순을 절대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직자의 교리 모순 지적은
종교단체 붕괴 음모로 몰릴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