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돌아가시고 안 계신 어머니께 아주 예전에 여쭈어본 적이 있었다. “엄마, 왜 그렇게 일찍 결혼했어?”하고 말이다. 그때 나이가 열여덟이었으니 당시로는 아주 이른 결혼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내 생각에는 너무 이른 나이였다. “그때 일본인들이 처녀는 정신대로 잡아간다는 소문이 나돌아서 집에서 서둘러 결혼을 시켰다.” 내 질문에 대한 어머니의 대답이었다. 아마 내가 정신대에 대해 처음 들은 게 그때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지금 내 작은 딸이 영화 속의 ‘정민’이 나이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 어머니의 삶과 내 딸의 삶이 겹치면서 힘들었다. 아무리 태연한 척 하려 해도 자꾸만 살이 떨리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시절 내 어머니의 삶도 한 순간 어그러졌으면 영화 속 ‘정민’처럼 저토록 참혹한 삶과 죽음을 맞을 수도 있었다. 이 땅이 다시 저런 야만의 땅이 된다면 사랑하는 내 딸의 삶도 언제든지 ‘정민’이처럼 처참하게 망가질 수 있다. 소름끼치는 자각이었다.
전쟁은 인간을 야수로 만든다고 흔히들 말한다. 전쟁의 극단적인 공포 앞에 인간의 이성이 마비되고 평상시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만행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서 만에 하나 저들 일본군들이 극단적인 죽음의 공포 앞에서 이성을 잃고 우발적이고 개인적으로 폭행과 살인을 했다면 그래도 인간으로서 용서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 국가가 전쟁 목적을 위해 무수한 어린 처녀들을 조직적으로 납치해서 상상할 수 없는 성적 학대와 폭력을 행사하고 끝내 총으로 쏘아 죽이고 불에 태워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걸 어떻게 용서하란 말인가?
그건 용서해서는 안 된다. 그 만행을 기억하고 또 기억하고 책임을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그래야 이 통한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그 참혹한 삶과 죽음 앞에서 용서를 말하고, 보상을 말하고 잊기를 강요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용서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야 말로 저 일본군들의 또 다른 모습이다. 내 말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귀향(鬼鄕)을 보기 바란다. 죽어 넋이 되어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이 땅의 무수한 ‘정민’이를 우리가 기억하지 않는다면 누가 기억하겠는가?
미스 킴 라일락
거실 베란다에 새로 들어선 화분 하나
진한 보랏빛 꽃송이들이 무리지어
온 집 가득 오래 잊었던 향기를 뿜는다.
그 향기 사이로 들려오는 라디오 소리
한 위안부 할머니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메마른 눈물이 되어 꽃잎에 떨어진다.
수수꽃다리,
우물가 수줍은 처녀 같은 이름이 지워지고
새로이 얻은 이국의 이름, 미스 킴.
순이야,
이웃집 선머슴이 가슴 뛰며 부르던 이름
빼앗기고 죽은 듯 살아온 엉겅퀴의 시간.
먼 낯선 땅 이 꽃 저 꽃 수정되어
꽃대 속 아슴프레 남은 이 땅의 기억 안고
자그만 화분에 동그맣게 자리 잡은 나무.
그 가지에서 눈물 같은 꽃이 필 때
할머니의 검버섯 낀 얼굴에 스쳐지나가는
꽃 같이 환한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