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는 비정상적인 과정을 통해서 왕이 됐다. 그의 통치 말기 조선의 시스템은 완전히 망가졌고 노론일당 독재로 들어섰다. 정조시대도 마찬가지 정조는 그 노론벽파틈에서 자기신하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왜란과 호란을 겪은 조선은 안망한것이 특이 한것이다. 조선왕조는 특이하게 그 생명력을 이어갔다.
그러나 우리는 영정조 시대때를 조선전기에 비해 근대적인 사회로 배웠다.
그것은 바로 실학의 탄생과 자본주의의 태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조선전기 사회는 뭐라고 하느냐 딱 두자
'봉건' 그 사회는 자본주의도 없고 답답한 성리학만 있고 공리공론만이 있고 실질적 학문은 없는 사회 봉건사회
식민사학의 영향으로 우리는 성리학이 아주 답답한 학문으로 알고 있으나 성리학자만큼 실용적인 사람이 없었다. 조선이 세워질당시 지금의 서양선진국과 중국 일본이 어떤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었는지 조금만 살펴보면 조선의 통치시스템이 그 시대에 얼마다 완벽했는지를 알수 있다. 그리고 성리학자들이 추구하는 사회가 얼마나 훌륭했는지를 알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 봉건으로 치부됐다.
영정조시대의 성리학자들은 성리학에 바탕을 둔 자기 주장을 했다. 토지나 상업에 대한 개혁적 발언이 있었다고 해서 그것이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식민사관에서 실학을 강조하는 이유는 마치 조선은 성리학이라는 옷을 잘못입어서 망할수 밖에 없는 나라 취급을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조선을 실학에서 태동한 귿대화의 싹을 짓밟은 왕조란 식으로 묘사를 한다.
우리는 알게모르게 조선전기를 아무것도 아닌 사회인양 취급하였다. 지금 하버드 입시에서 요구하는 리더쉽의 가장 잘 맞는 사람이 성리학자이다. 그들이야 말로 가장 실용적인 학자였다. 성리학은 물질과 정신을 이분화하지 않았다.
우리는 조선이 세계에서 가장 성리학이 발달했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줄을 모르고 살았다.
그리고 영정조 시대의 자본주의의 싹을 아주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는 발상은 바로 맑스가 말한 역사발전 5단계설을 그대로 답습한 아주 잘못된 것이다. 즉 자본주의 태동 그리고 발전 그다음 사회주의로 간다는 맑스 학설을 그대로 답습한 꼴이다. 그러면 조선전기에는 자본주의가 없었나? 우리는 우리역사를 그대로 서양사관에 틀어박았다. 영정조 시대의 자본주의의 싹을 좋게 평가하다 보니 광업을 독점한 큰손이나 대토지를 소유한 대지주가 나타난 현상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어처구니 없는 짓들을 하고 있다. 검인정 교과서를 손본다면 이런 것을 손봐야한다.
성리학자들이 자영업자의 몰락과 자본과 토지 집중을 얼마나 경계했는지 아는가?
정말 실학이란 단어 실체도 없고 꿰맞추기에 급급해서 만든 이 단어는 없어 져야한다.
그리고 조선전기와 성리학을 폄하하는 짓도 이제는 멈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