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는 '제제라는 곡은 내가 밍기뉴가 돼서 제제에게 하는 말을 담았다'고 설명했다고 하는데, 이후 '가사 속 제제는 소설 내용의 모티브만을 차용한 제3의 인물이다'고 또 해명을 했다. 제3의 인물이면 일단 같은 이름을 쓰지 않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가사를 살펴보면 '발그레해진 두 뺨''순진하나 교활'투명한 듯 하지만 더럽다'라고 5살 아이 제제를 표현한다. 또한 앨범에 다수의 노래가 담겨있지만 일반적으로 가수가 말하고 싶은 주제나 이야기에 대해 어느정도의 일관성이 담겨진다. 같은 앨범 '스물 셋'의 가사엔 '물기있는 여자가 되겠다'는 가사가 나오기도 하는데, 제제에 대한 표현에 분명 성적인 뉘앙스가 강하게 담겨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진중권씨 표현대로라면 나도 포르노를 너무 많이 봤나.. 발그레해진 두 뺨이 한겨울 추위에 콧물 흘리며 밖에서 썰매타던 시골 꼬마들의 순수한 추억을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으며 발그레해진 뺨은 여러 예술 작품에서 성적인 코드로 많이 쓰여 왔다.
너무나 유명해 제목은 들어봤었고, 개인적으로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는 읽어보지 않았지만 아동성애를 다룬 소설은 아니며, 1968년에 처음 출판 된 후 브라질의 초등학교 문학 수업에 교과서로 쓰이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한다. 브라질 교육청에서 초등학생 성교육 교재로 선택한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문학이나 예술에서 아동성애를 다룬다는 자체가 비난대상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동성애를 다룬 소설 '로리타'는 타임지에서 선정한 '가장 위대한 영어 소설 100편'에 오른 바도 있다. 이 책에서는 13살의 소녀가 등장하며 다른 아동성애 소설이나 예술 작품에서 10살도 안된 아이가 등장하는 지에 대해, 또 현대 서구에서 어느 정도선까지 허용하는 지 궁금하긴 하다. 인류 역사에서 아동성애가 현재의 미국처럼 그런 포르노물을 소유하고 있었단 사실만으로 수백 년의 징역형을 받을 정도로 극악무도, 파렴치한 범죄가 된 지는 아마 100년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동물에서 지금의 인간 사회를 이룬 인간으로 진화하고 진보해 온 바로 우리의 모습 중 하나이기에 아동성애는 아직도 인류학의 중요한 연구 대상이다.
출판사측의 비판은 원 소설의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방향으로 아이유가 곡의 모티브를 삼고 해석을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고, 거기에 여러 유명인사들이 그것은 아이유의 자유일 뿐이라고 맞받아 쳤다. 그런데 아이유에게는 소설을 자유롭게 해석하고 표현할 예술적 자유가 있고, 출판사측의 해석에 따라 아이유의 노래를 비판할 자유는 없어야 옳은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꼭 출판사가 아니더라도 일반 대중도 비판의 자유는 있고 있어야 한다. 아이유는 그런 성적 코드를 담고 싶다면 다른 아동성애 소설도 많은데 굳이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의 제제를 끌어와 더러운 아이로 만들어야 했는지 궁금하다.
물론 해석은 자유다. 황순원의 '소나기'를 읽으며 남자 아이의 등에 업힌 물에 젖은 소녀의 섹시함에 성적으로 흥분해서 그것을 평생 추억으로 삼는 독자도 아마 있을 것이기 때문에.. 해석이 자유긴 하지만 차용을 하려면 적당한 작품을 선택하는 것도 수준있는 예술가의 몫일 것이다. 또한 수준낮은 해석이 문제가 아니라, 수준낮은 해석이 인기가요 1등이 되는 것이 문제일 수도 있으며, 초딩수준의 해석까지 찾아다니며 일일이 문화적 자유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유명인들도 재밌다. 과한 해석과 차용의 오류라 생각해 지적한 출판사측이 포르노 중독이면,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읽고 눈물이 흘렀다는 독자들은 성욕에 눈물로 반응하는 변태들인가 보다.
P.S. 맨 아래 관련글에서 '현대고'님의 글 '창작과 해석의 자유도 어지간해야지'를 꼭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제가 표현하지 못했던 바를 논리적으로 더 쉽게 잘 설명해 주는 좋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