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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CIA한국요원☜▷ 2017-06-22 22:4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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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젊은 사람들에게 북조선(북한)에게 속지 말라는 뜻으로 책을 쓴 것 같다. 하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이 이 책을 보면 다른 생각을 떠올릴 것이다. '나도 마이클 리 할아버지처럼 한국을 떠야겠다/한국 직장 때려쳐야겠다. 미국으로 이민가야겠다/미국계 기업에서 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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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마이클 리(Michael P. Yi)는 1933년생으로 충남 부여 가난한 농부의 집에서 태어났다. 돈이 없어 고등학교 대신 선교사들이 하는 신학교에 갔다. 통역병으로 군복무를 했고, 제대 후 주한미군에 취직했다. 북한에서 내려온 간첩, 귀순자, 탈북자, 포로 등을 심문하는 일이었다. 미군 군속 심문관으로 20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김신조, 박순국 등 수많은 사건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고 대화했다. 


그렇게 한 20년 일하시다가 1976년인가에 직장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이민간다. 약 2년 동안 메릴랜드에 있는 슈퍼마켓에서 일하다가, 당시 CIA 국장이었던 조지 부시 시니어에게 취직시켜달라고 편지를 써서 진짜 취직이 된다. 그와 가족들은 미국시민이 된다. 2000년 은퇴했고 지금은 연금을 받으면서 해피한 노후를 보내고 계시다. 알라스카에 좋은 집도 사셨다고 한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안보 관련 강연 활동과 종편 TV 출연 등을 하고 있다. 자식들도 다 미국에서 잘 키우고 교육 잘 시켜서 교수/의사 등을 만들었다.


재미교포 노인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리 씨는 전형적인 반공/친미/보수/개신교/친박근혜/친새누리당 성향을 가진 사람이다. 그게 꼭 나쁜 건 아니다. 현재 60대 이상의 한국 시민 상당수(아마도 70~80% 이상)은 마이클 리 씨와 비슷한 성향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리 씨는 '박근혜가 통일 대통령이 될 수 있다'라든가, '박근혜의 대선 득표율이 51.6% 였던 건 계시였다(5.16 쿠데타 날짜와 같기 때문)'는 식의 주장을 편다. '이승만이 박정희보다 더 훌륭한 대통령이며 광화문에 이승만 동상을 세워야 한다'라고도 말한다.

 

FBI는 국내정보요원지만 CIA는국외 전담인 모양이다 우리나라 곳곳에 이들이 엄청난게 많은 숫자가 있다고 하였다

아고라에도 이 정보원들이 글쓰는데 뒷글로 제지하고 있다 어디 이뿐인가 곳곳에 다 있고 10명중 7명이상이라는 글도 있었다 너도 나도 먹고 살기위하여 그것이 권력이라고 현재도 정신을 못차리는 모양이다

 

 분단의 거대한 슬픔과 모든 혈육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안고 살아가는데 그들이 내 조국보다는 특정국가에 매달려 내 조국을 팔아먹고 사는 기생충들이 바로 그들인 것이다 중증 정신장애자이기에 가능한 그들이 정치 사회 중요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보통일이 아닌데 곳곳에 암적인 존재로 있는 이곳에 과연 정상적인 무엇이 하나라도 될 것인지 의문이다

 

北공작원 몰린 한국인 CIA 요원, 재심서 일부 '무죄'

    기사등록 일시 [2016-01-27 11:57:10]

 

          

 

【서울=뉴시스】강진아 기자 = 미국 중앙정보국(CIA) 지시에 따라 '이중간첩' 활동을 하다가 북한 공작원으로 몰려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한국계 전직 CIA 요원에게 50여년만에 일부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부장판사 최창영)는 국가보안법 위반 및 간첩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박모(82)씨에 대한 재심에서 국보법 및 반공법 위반 등 일부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단해 징역 7년을 선고했다고 27일 밝혔다.

함경도 출신 박씨는 6·25 전쟁 당시 가족들을 북한에 두고 홀로 남쪽으로 내려왔다.

1960년 대만에서 유학 중이던 그는 북에 있던 가족과 서신을 주고 받았고, 아버지로부터 소개를 받은 북한 공작원과 접촉하게 됐다.

 

박씨는 월북해 보고할 목적으로 한국정부 요인 등 국내 정보를 수집했고 1962년 북한 공작원들의 권유로 입북했다.

 

북에서 남한의 정치, 사회 등의 실정과 포섭가능한 인물 등을 보고한 박씨는 신뢰를 얻어 당 간부로 대우를 약속 받았고, 이듬해 일본에서 활동하라는 지령을 받았다.

하지만 사실 그는 '이중간첩'이었다. 1961년부터 미국 국무성 정보원으로 홍콩에서 중국 관련 정보를 수집해오던 박씨는 북에 들어갔다가 나온 1964년 일본 동경에 있는 CIA 극동지부의 정식 정보원이 됐다.

박씨는 정보 수집을 위해 매달 두차례 북한과 주기적으로 교신했다. 그러다 교신체계에 대한 문제로 CIA 관계자의 지시를 받고 1964년 9~11월 북한을 다시 방문하기도 했다.

북한에 방문해 남한 정세를 보고하고 간첩 활동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씨는 1967년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박씨는 모범수로 석방되기까지 약 22년을 구치소에서 보냈고, 45년만인 2012년 재심을 신청했다.

재심을 맡은 재판부는 1962년 1차 입북은 CIA의 지시로 보기 어렵다며 징역 7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CIA 요원의 진술 등에 비춰 1964년부터 CIA 정식 정보원으로 활동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1964년 금품수수로 인한 국보법 위반 및 간첩미수 혐의, 1966년 국보법 위반 혐의 등 상당 부분에 대해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박씨가 1964년 2차로 입북한 것은 CIA의 지시에 의한 것이며, 당시 정세에 비춰 CIA가 북한 정보를 얻기 위해 정보원에게 북한 잠입을 명령한 것을 위법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CIA가 북한으로부터 금품수수를 직접 지시하지 않았어도 무사귀환을 명령한 만큼 사실상 CIA의 지시나 승인 아래 이뤄졌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박씨가 북한의 정보원으로서 북을 위한 정보수집 업무 등을 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북의 정보원으로도 근무했다면 미국 정부로부터 혜택을 받지 못했을 것으로 보여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모든 사건 뒤에는 그들이 있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이다. 1945년 2차 대전이 끝난 후 냉전 체제에서 소련의 KGB와 함께
첩보 세계를 양분했던 CIA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무엇보다 CIA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미국의 의지"를 관철시키려고 노력했고
또 얼추 성공도 많이 했지만 실패도 많이 했다. 국제정치학을 강의하는 저자가 CIA에 대해서 담은 책이다.

이란의 모사데크 정부 전복, 칠레의 아옌데 대통령 시해, 중남미의 공작,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 이 모든 것이
CIA의 주도로 이뤄진 비밀공작의 결과인 것이다.
물론 쿠바의 경우 피그스만 침공 작전이 실패로 돌아갔고 그 외에도 콘트라 반군의 스캔들도 들통이 났다. 베트남 전쟁때는 바로 옆 국가
라오스의 한 종족을 첩보원으로 만들어 그 민족 전체를 불행의 나락으로 빠뜨렸다. 미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집단이 활개치는 데
과연 전 세계적으로 평화가 올 것인가. CIA가 카스트로 암살을 시도하려 했던 몽구스 작전을 본다면, 이들이 과연
북한에 작전을 하지 않았을까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이란이 1950년대에 내부 분열로 인해서 팔레비 국왕의 친미 쿠데타가 성공했다.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돈에 매수되어 내부를 분열시켜
나라가 혼란스럽게 되었으니, 지금의 이란이 동정을 받을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들 역시 선조의 업이니까. 

이 책에 따르면 미국과 관련이 있는 나라들은 한번 정도는 CIA의 공작을 거쳤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은? 한국에선 군부에 의한 쿠데타가

무려 2번이나 있었는데, 모두 주동자들만이 책임이 있을까? "모든 사건 뒤에는 그들이 있다"고 했는데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는

과연 아닐까? 

 

김종훈 후보자는 미 중앙정보국(CIA) 정보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9년 김 후보자는 CIA가 설립한 회사 인큐텔 이사로 참여하였다. 2001년 김 후보자는 미국 정보기관의 업무를 재검토하기 위해 부시 전 대통령이 직접지시하고 조지 테닛 CIA 국장이 선임한 스코크로프트 패널 8인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최근에도 2007년부터 2011년까지 CIA 자문위원회에 참여해온 전력이 있다.

 

 

<역사의 파편들>(지난 5월 한국어판 발간)에서 미국 외교정책의 고질적 문제에 대해 일침을 가했습니다. "우리가 싫어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 지도자나 집단을 무조건 '악마화' 하려 드는 경향이 우리를 끊임없이 곤경에 몰아넣는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어 "체제를 제거하여 변화를 강제하려는 전통적인 미국의 접근방식은 이란, 과테말라, 쿠바에서 그랬던 것처럼 더 큰 혼란과 지속적 분쟁만을 초래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는 그 실례로 베트남, 이라크, 북한을 꼽습니다.

베트남의 국부 호치민은 미국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토마스 제퍼슨과 미국 헌법을 너무도 존경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호치민은 트루먼 대통령에게 미국이 자국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의 독립을 허용한 것처럼 베트남의 독립도 인정해달라는 편지를 6차례나 보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베트남을 공산 중국의 꼭두각시로 오판했고, 또 베트남의 식민종주국 프랑스를 미국 진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프랑스의 식민 지배 지속을 지원했습니다. 프랑스가 베트민(프랑스 식민지배 시절 결성된 베트남의 공산주의 독립운동단체)에게 결정적으로 패한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까지는 간접적으로, 그 이후에는 직접 개입해 무려 30년간 베트남과 전쟁을 벌입니다. 그 결과는 미국의 패배였습니다. 미국의 젊은이 5만8000명이 목숨을 잃었고, 수천억 달러의 전쟁 비용을 탕진함으로써 미국 경제는 쇠퇴의 길에 접어들었습니다. 가장 중요하게는 세계 지도국가로서 미국의 위신이 여지없이 추락했습니다.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를 중동의 군사강국으로 만들어준 것은 미국이었습니다.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년) 당시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아낌없이 지원을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1990년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미국은 1차 걸프전을 통해 그를 격퇴했습니다. 하지만 권좌에서 밀어내지는 못했죠. 2001년 9.11테러가 발생하자 미국은 후세인 제거를 위한 2차 걸프전에(2003년) 나섰습니다. 후세인은 테러의 배후세력도 아니었고 핵무기를 가진 것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미국은 예방전쟁이라는 명분으로 전쟁을 도발했고 후세인을 제거했습니다. 그러나 12년이 지난 지금, 미국의 숙적이었던 이란이 후세인 몰락에 따른 어부지리로 중동지역의 강국으로 부상했고 중동 전역은 전쟁의 불바다가 됐습니다. 지난해 여름 미국은 3차 걸프전에 나섰습니다. 미국의 최대 골칫거리가 된 것이죠.

 

 

                                        

한국내의 美 CIA - 韓國現代史의 뒤안길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歷代 지부장 12명의 이력서
  
  한국 현대사의 뒷무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미국CIA 한국지부는 대사관5층에 있다. [대사특별보좌관]이란 직명을 가진 역대 지부장들은 4ㆍ19, 5ㆍ16, 유신선포, 金大中납치, 10ㆍ26의 격변기에 어떻게 행동했던가, CIA캐이시 부장과 그리릴 극동국장의 극비방한은 무슨 의미를 지녔는가. 이 글은 미CIA의 한국 내 활동36년을 추적한 최초의 보고서다.
  
  <1986년 2월 월간조선>
  
   CIA를 다루는데 있어서...
  
  대한민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미국 중앙정보부(Central Intelligence Agency : CIA)의 활동을 보도함에 있어서, 지난 70년대에 미국언론과 의회가 미국 안에서 활동한 한국 중앙정보부를 까발린 식으로 할 생각은 없다. 미국사람들은 망명한 전직 중앙정보부장, 뉴욕분실장, 워싱턴책임자들을 청문회에 불러내 거의 자학적으로 국가정보기관의 내막을 폭로하도록 유도했다.
  
  우리 정보기관원의 신원은 물론이고 대미(對美)공작계획서 같은 기밀문서, 미국 국회의원들이 한국의 대통령과 중정부장에게 보낸 사신(私信)까지도 노출시켰다. 그런 식으로 미 CIA의 한국 내 공작을 폭로할 생각은 없다는 말이다. 미CIA나 미군정보기관의 활동에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다.
  
  그들은 두 번이나 우리 나라의 대통령을 암살하거나, 쿠데타로 뒤엎으려는 모의에 관계했다. 한국 수사기관에 쫓기고 있는 한국인들을 몇 차례 외국으로 탈출시켜 주었고 그들의 치외법권적 시설을 반정부 모의에 제공하기도 했으며, 대통령집무실을 도청했다. 우리 정보기관이 미국에서 활동한 것에 비교하면 질이나 규모에서 상대가 안 되는 일을 하고도 여짹沮?한번도 본격적인 취재의 대상이 된 적이 없었던 미국CIA 한국지부를 알리는 데 있어서, 미국의 언론이나 의회보다는 훨씬 자제할 생각이다. 특히, CIA 종사자들의 인명을 밝히는 데 있어서는, 그들이 스스로 자신들을 노출시킴으로써, 이미 보호할 가치가 없어진 범위 안에서만 할 것이다. 보고들은 것을 다 쓰지는 않을 것이다. 미 CIA 한국지부는 그래도 한국인을 위해서 나쁜 일보다는 좋은 일을 더 많이 한다고 믿고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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