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제/오늘 이틀간 청와대에 올린 글입니다. 16부작??!?
청와대 게시판엔 조건이 있는데 한페이지 500자, 하루 10페이지이상 글을 못 올립니다 그래서 500자 이내로 죄다 편집해 놓구 이틀에 걸쳐서 올렸어용~~^0^
작금의 현실이 믿어지지도 않고 여태껏 자랑스럽게 생각해온 대한민국호가 이대로 세계 역사속의 뒤안길로 침몰하는건 아닌지 심각한 생각이 드는 한해인거 같네요~~~
전 1973년 4월 1일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만지리에서 태어난 허클베리핀(닉네임)입니다.
저희 아버님은 8대 독자인 이유(?)에서인지 그때 당시에 피임을 할 방법이 없어서인지 8남매의 자녀를 생산(?)하셨습니다. 그중 전 막내입니다.
부모님 말로는 저 바로 ? 누님 임신했을때도 애기를 뗄 생각이었다고합니다. 어떤 방법으로 뗄수 있는지는 지금 생각해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다가 저까지 운좋데(?) 태어난겁니다.
이건 뭐 거의 꽁짜인생이라고도 할수 있죠~~~풋!!
그 시절엔 흔하다고 하지만 둘째 형님은 아기때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셋째 누님은 17살엔가 어린 나이에 무작정 서울로 상경해 자취하면서 봉제 공장에 다닌걸로 알고 있습니다. 1년에 1~2번 명절때 내려오면 전 기억이 잘 안나는데 어머님 말씀 들어보면 제가 누나를 엄청 싫어했답니다. 방구를 자주 뀐다고...ㅠㅠ
그리고선 20대 초반에 제 나이 5~6살경에 돌아가셨습니다. 경찰말로는 연탄불 피워놓구 자취방에서 자살했다는군요.
그때 저는 눈물도 흘리지 않았어요.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적이 없어서인지...
ㅡㅡ;
근데 초등학교 3~4학년 지나면서 죽음, 우주, 외계인에 대해 심취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로 돌아가신 누님 생각만 하면 눈물이 쏟아집니다. ㅠㅠ
전 초등학교부터 공부는 그리 잘하지 못했습니다. 한 반에 46명정도 됐는데 20등 정도했던가 같습니다.
근데 달리기는 잘했습니다. 운동회때면 공책이란 공책은 거의 싹쓰리해서 친구들한테 나눠주기도 했고요. 5학년때엔 오래달리기를 하는데 그땐 4~6학년 남자 대표선수가 같이 뛰었거든요.
그때 1년 선배인 6학년형을 이기고 제가 1등도 했어요. 제가 6학년일때가 하이라이트였죠. 달리기란 달리긴 모든 종목에 출전하여 모두 1등을 하니 공책이 21권인가 됐으니깐 7종목정도 출전했나봐요. 100m달리기, 부락대항, 청팀/홍팀(1~6학년)이어달리기, 장애물 뛰기, 오래달리기등...
저의 부모님과 동네 어르신들이 엄청 좋아했었죠~~~그립당!!......ㅡㅡ;
중학교는 인근에 있는 임천중학교에 입학했고요. 이때 저의 부모님은 대전으로 이사갈려고 준비하셨는데 일차로 부모님 두분이 먼저 대전의 큰 이모님댁의 쪽방 하나를 얻어 아버님은 노가다, 어머님은 식당일을 하시며 정착 준비를 하셨습니다.
저는 그 당시 둘째형님(저보다11살위),누나(2살위),할머니와 함께 살던 집에서 살고요. 집은 국민학교때 배우는 이승복어린이집을 생각하시면 될꺼 같고요. 그렇게 외진 집이었죠.
매일 편도 4km를 걸어다녔습니다. 1년을 그렇게 살면서 별의별 사건이 많이 발생했죠. 부모님이 안 계시니까?!?! 할머니는 워낙 늙으셔서 허리도 90도 꺽인 상태에서 생활하셨고요. 이때 일은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다시 얘기하고요.
중2학년 올라가서 드디어 대전 중앙중학교로 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모집은 태평동5거리였고요.
전학을 하게 되면 친구들께 인삿말을 하잖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왜 그리 쪽팔렸는지 그게 지독히도 하기가 싫더라구요~~~ㅜㅜ
전학와서 처음 중간고사를 치렀는데 한 반55명중 22등 했어요. 이모 딸인 경숙이 누나가 왜 이렇게 시험을 잘 봤냐고 하더군요. 전 속으로 날 놀리는건가??? 이런 생각을 했어요. 무슨 상위권도 아니고 중위권인데 이 난리를 치나???
사실 저희 형님분들은 공부를 잘 했어요. 특히 세째형,네째형이 그랬는데 세째형은 구미공고, 구미공대 나와서 현재 공군 중령으로 근무하고 계시고요. 넷째형은 수원에 있는 수도공고 전자과 나와 삼성전자 취업후 2년인가 돈을 열심히 벌어 경기대학교를 나와 고려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요즘 말하는 자수성가 케이스가 세째/넷째형을 두고 하는 말일겁니다.
다시 중학교로 돌아와서 그렇게 시험을 보고 생활하다가 쌕(가방), 농구화(그땐 엄청인기좋았음)가 갖고 싶은데 그땐 용돈이란게 없으니까 아르바이트를 했지요. 신문배달!!!
그때 처음 정치인 김대중대통령을 알았어요. 중앙일보를 배달했었는데 신문 중간에 B5만한 광고성 종이를 신문지사에 많이들 가져오는데 배달요원이 신문 각 부에 그걸 하나씩 죄다 끼워넣는거죠.
그때 그 글을 읽고 충격을 받았고 이후로 시사에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1년을 다니고 큰형님이 현재 제가 살고 있는 서울 양천구 신월7동에 연립주택 입주 신청했다가 당첨되어 88올림픽이 열리기 직전 제가 중3때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데 그때 13평이나 될까? 하는집에서 부모님 두분, 큰형, 둘때형, 넷째형, 저 그리고 조카 이렇게 7식구가 살았습니다. 참고로 큰형님은 1~2년 전에 이혼을 하신 상태였습니다.
신원중학교 3학년으로 전학을 가서 보니 친구들이 하는말이 자기들 1~2학년 체육시간에는 항상 운동장에 나와 길게 한 줄로 서서 돌맹이를 주웠답니다. ㅋㅋㅋ 새로 지은 학교 우리가 1기 졸업생이니 당연하겠죠!!
전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0^ 그러면서 2학기때는 담임선생님과 진학에 관한 면담을 했죠.
제가 저를 돌아봤을때 시골서도 그랬지만 서울와서도 찢어지게 가난한데 실업계를 가기로 마음먹고 용산공고 전자과를 택했습니다. 그때 제가 내신 42%로 합격했던걸루 기억하는데요.
가을에 용산공고 소집일이 있어 갔는데 전자과는 남녀공학이었어요. 건축과, 통신과와 함께...
1989년 3월2일 드디어 용산공고에 갔습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양말 혹은 봉제 공장같은 포스(?)가 느껴졌어요. 아침 조회 시간에 줄맞춰 정렬하는데 그때 눈에 번쩍 띄는게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 반에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여자애가 있는겁니다.~~~^0^
며칠동안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제가 특별히 잘생긴것두 아니고 돈이 많은것두 아니고...ㅡㅡ;
결론은 서로 잘들 모르고 새로운 학교에 입학했는데 뭔가 튀어야 산다!! 이리 생각하고 안하던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뭐 학원 다니고 그런게 아니라 수업시간에 덜 졸구 집에 와서 자기전에 복습도 좀 하고 정도였습니다. 물론 제가 축구를 좋아해서 과에서 운영하는 비공식 축구부를 들어 점심시간 혹은 일과 끝나고 열심히 뛰어놀았습니다.
첫 중간고사 시험을 치르고 결과가 나왔는데 반에서 제가 1등을 과에서 2등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제 존재감이 여자들 사이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죠~~~^0^
이때부터 남자들 사이에선 시험볼때마다 저를 기준으로 앞/뒤에 앉을려고 했습니다. 왜???
제가 컨닝을 도와주었기 때문이죠. 방식은 일단 제가 문제를 다 푼후 두발을 뒤로 하면 뒤 친구가 발로 문제 번호를 물어보는거예요. 가령 7번 문제를 물을려면 왼쪽발 1번 툭, 오른쪽발 2번 툭 그러면 제가
왼손 머리 만지면 1번, 왼손 어깨쭉지 만지면 2번, 오른쪽 머리 만지면 3번, 오른쪽 어깨쭉지 만지면 4번 이런식이거나 혹은 헛기침 한번, 두번, 세번, 네번 이런식으로 하거나 여하간 다양하게 선생님께 들키지 않고 무사히 컨닝을 했어요~~~ㅋㅋㅋ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마음에 쏙 들어하던 그 여자애 행동이 좀 이상한거예요. 지금 생각해보면 약간 정신장애가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이런 이유도 있고 또 제가 용돈도 없는 상태라 알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시작한게 영등포역 근처에 민속마당이라는 분식점에서 써빙&배달일을 시작했습니다. 아마 5시간 했던걸루 기억하는데요. 3학년 되어서야 취업준비 때문에 그만두었습니다.
처음 고등학교에 들어왔을때 친구들이 저를 보구 환타지보이라는 별명을 지어줬어요 왜 그럴까요?
제가 시골에서 와서 그런지~~~
1. 사투리를 많이 사용
2. 저희 큰 형님이 저보다 20살 많다는거
3, 8남매라는거
4. 브룩실즈, 소피마르소를 모른다는거
5. 영화관을 한번도 못가봤다는거...등등 ㅠㅠ
1991년 7월 21일인가?? 동화계량기(주) 첫 취업. 환영식에서 저하고 여자동기하고 호프집을 갔는데 선배분들이 생맥주 1000cc를 각자 시키더니 저와 동기더러 원샷을 하라는거예요. 물론 전 알바를 하면서 즐겨 마셨으니깐 상관없는데 동기는 그걸 다 비워버리더군요. 그리고 5분인가 지나서 수면모드 전환...ㅋㅋㅋ
저희 회사는 주 생산품목이 주유기(차량에기름넣는기계)를 생산하는 국내 유일의 업체였고 그외는 일본업체가 주류를 이루었죠. 요즘도 주유소 가보면 예전 그 회사 주유기가 많은걸 보면 매우 흐뭇하답니다. 국가에서 지정하는 방위산업체 비슷하게 저희 회사도 병역특례업체였었고요. 전 1년 가까이 고민을 했습니다. 군대를 갈까?말까? 그 당시엔 어른들로부터 군대 갔다 와야 진정한 어른이 된다고 많이들 말씀하셨거든요.
결국 저는 안가기로 결정하고 한달간 훈련소 갔다 돌아와 다시 근무를 했습니다. 제 고등학교 친구들 보면 대학교를 많이들 갔더라고요. 전 그런 친구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대학을 갈려면 인문계 가서 대학을 가는게 훨씬 효율적인데 왜 공고를 와서 굳이 대학을 가는지...
월급을 모아서 처음에 산게 오토바이(대림/125cc/VF.Dream)를 샀습니다. 고등학교 다닐때 몇몇 친구들이 경주용 오토바이(MX)를 타고 등하교를 했는데 엄청 부러웠었거든요. 드디어 제 세상이 온거 같았습니다
물론 오토바이 면허가 아닌 승용차량 2급 보통면허를 1992년 11월경에 땄습니다.
1995년말경 전 지금은 이혼한 애인을 친구한테 소개받고 2달인가 사귀다가 1996년 2월경부터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양천구 신월3동(부모님 바로 옆동네)에 반지하 단칸방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25만원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때 제 월급이 50~60만원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물론 와이프도 일을 했지만 생활이 너무 빠듯해 회사를 그만두고 주유기 수리업체 혹은 간판 시공업체 다니다가 인터넷으로 회사를 물색하던중 드디어 제가 원하는 회사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1997년 5월경 드디어 RTM이라는 SKTelecom 협력사를 들어갔습니다. 기지국 장애가 발생하면 24시간 비상대기하면서 유지보수하는거죠. 그렇게 통신업종에서 일을하다 2009년 5월 퇴사를 했습니다. 군대에서 5분대기조라고 하죠?? 유지보수 정말 지긋지긋합니다. 핸폰만해도 엄청 깨부셨어요.
장애나면 망센터 혹은 SK감독자&SK전송실등과 얘기하다보면 말도 안되는 일들이 실제로 많이 벌어지거든요.
그렇게 퇴사를 하고 수개월간 쉬면서 여행도 가다가 고향도 한번 방문해보고 예전 살던 집도 가보니 초가집은 무너졌고 새로 지었더군요. 그 해 가을께 앞으로 무슨일을 할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때 제 나이가 38살이었거든요. 제가 그동안 돈을 많이 모아 놓은것두 아니고 애들 엄마와 이혼한 까닭에 제가 잘못되면 아이들이 안좋은 길로 빠질까봐 노심초사했거든요.
인터넷으로 아이쇼핑하면서 경량목조주택이란걸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성남에 있는 이론교육해주는곳에 돈을 내고 수강을 들었습니다. 그때 돈으로 40만원정도 했던거 같은데요. 제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꺼 같은 학원비용이예요!!
제 적성에도 맞을꺼 같고 또 정년퇴직 같은 스트레스 안받아도 되고 제일 맘에 드는건 5분대기조가 아닌 일할때일하고 쉴때 쉴수 있을꺼같다는 생각에 맘에 들었습니다.
2010년 2월 구정 끝나고 곧바로 현장을 찾아가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 업종도 단점이 많이 있었습니다. 단점을 나열해보면
1. 집에서 출퇴근 할수 없고 지방 현장 숙소에서 대부분 생활
2. 별의별 인간의 종합백화점이어서 적응하는데 어려움
3. 개인 차량이 없으면 현장 옮길때 옷가지,개인공구등 짐이 많아 이동 한계를 많이 느낌
4. 일당제로 중간에 일이 없을때 다음달 생활비 수급의 어려움
5. 개인 생활이 없기 때문에 같이 어울려야하는데 유흥비로 지출이 많음
6. 근로장려금/근로자녀금등 소득 증빙하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7. 동료와 같이 생활하다 보니 술주정 혹은 잠꼬대, 이갈기등 예기치 않은 상황 발생
8. 퇴직금이 없음등등...
나열하다보니 나쁜 것만 있는거 같은데요. 막상 하다보면 좋은점도 많아요~~~^0^
저는 앞으로 3~5년안에 제 사업자 명의로 전원주택을 짓고 싶습니다. 그게 꿈이고요.
근데 왜 제가 저의 살아온 이야기를 다 하느냐면 재거 청와대 정확히 박근혜에게 할 말이 있어서입니다. 먼저 제 신상을 모두 까발리고 얘길 해야 그나마 귀담아 들어 주실꺼 같애서요...
박근혜 피의자에게 묻는다!!!
넌 세계 역사를 바꿔 놓았다. 근거로 현실의 작태에서 외국 유수의 언론들이 대한민국의 현실을 똑똑히 사실대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세계 역사상 초유의 사건이라고 한다. 분명 현대사에 있어서 세계 만방에
대한민국의 쪽 팔림을 죄다 드러내 놓았다. 조금 있으면 탄핵될게 확실시 되는데 내가 그 짧은 시간을 의미있게 보낼수 있는 방법을 조언한다.
국민앞에 나서서 진실된 마음으로 선서를 다음과 같이 하기 바란다.
1. 개검찰이 된 현실에서 민주주의 3권분립 원칙을 현실화하기 위해서 검찰총장직을 선출직으로 전환
2. 대법원장을 상기와 같은 이유로 선출직으로 전환
3. 헌법소장을 상기와 같은 이유로 선출직으로 전환
4. 경찰청 수사 독립권을 보장하고 경찰청장을 상기와 같은 이유로 선출직으로 전환
5. 지방자치분권을 제대로 정착시키기 위해 국세와 지방세율을 5:5로 한다.
6. 공직자 비리 수사처를 속히 신설하고 공수처장을 상기와 같은 이유로 선출직으로
전환
7. 지방자치분권을 제대로 정착시키기 위해 인사권을 지자체장에게 이양
8. 모든 선출직 공무원(국회의원 포함)은 국민 소환제를 두어 감시 역량을 키움
9. 공영방송의 지배 구조를 완전 독립, 종편등 편협 방송 정상화 방안 마련
10, 모바일 투표시스템 확립 및 이후 선거시 곧바로 적용
개선해야 할게 많이 있지만 제가 생각할때 중요한 부분만 나열한 것이니, 이와 같이 선언을 하고 관련 부처에 법안 초안을 작성 지시토록 하고 국민 민심의 말을 항상 귀울이며 적극적 소통을 주도하면 현 4% 민심이 30%이상으로 올라가 퇴진을 하더라도 지금까지 저질렀던 지목이 상당부분 낮아질것으로 판단한다.
P.S 정의당원 여러분께
저는 서울 양천당원 허클베리핀(조남석)입니다. 이 글을 청와대에 동시에 올리려고 합니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혹시 제 신변에 문제가 생길지 모르니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 주시기바랍니다.
감사합니다. ㅡㅡ;꾸벅
정의당 가입시 추천인을 저를 쓰면 특별한 혜택이 있습니다.
2017년 목조주택(전원주택) <효동이네집> 법인체 회사를 설립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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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조남석
- 닉네임 : 허클베리핀
- 정치색깔^0^ : 정의당 양천당원
- 언론색깔^0^ : 프레시안 조합원
- 하는일 : 목조주택(전원주택) 빌더
- 취미 : 컴퓨터,시사,정치,축구,여행,캠핑,등산,동호회활동,인터넷등...
- 인생목표
. 자유로운 삶을 살자! 허클베리핀처럼~^0^
. 상상하는것만큼 현실이 된다.
. 미래는 30%, 현재는 70% 현재를 즐기며 살자! 미래의 현재를 되돌아보면 후회
없는 추억이 되도록 노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