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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命, 숨, いのち이노치, life ★☎ 2017-06-23 18: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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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命, 숨, いのち이노치, life

 

 

 

 

 

 

로버트 그린의 『유혹의 기술』이란 책을 읽으면서 그가 언급한 기술 중에서 추구하지 않는 기술이 나다움을 외적으로 극대화시키는 인테리어 기술...다시 말하면 화장품이나 장신구를 활용하여 약점(?)을 최대한 보정하고 아름다움을 가미하여 존엄의 아우라 발산을 최대치로 광고를 하는 능력일게다. 바꿔 말하면 외미外美의 잣대가 나를 위해 세운 내미內美잣대보다 그다지 설득력이 없기때문에 그 잣대질에 나를 내어주지 않는다 함이다. 외연을 남에게 또는 스스로가 보여주거나 보기위해 투자하는 시간과 물질이 없으니 외연에서는 예의가 없다고 하는 화장하지 않는 민낮으로 살아가고 그리고 민낮이 내가 정한 잣대에서는 최고로 아름답다는 것을 알기에 자만한다. 자만自滿한다고 하는 말과 스스로 족함을 안다고 하는 말이 같은 것인데... 

 

 

 

입꼬리 사알짝 올리는 미소로 화장하는 센스는 있으니까. 인테리어 기술을 선택하지 않는 이유는 영혼 깊숙한 곳에서 울려내는 존엄의 소리를 정직하게 인정하는 때문일 것이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을 입에 달고 살면서 누구에게 가치를 평가받으려 인테리어 하려 한다는 말인가..의 내 속의 말...천상천하유아독존을 말하는 한 그 말의 현장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고...중생이라 하고 살면 중생으로 사는 것이고 중생의 일을 하는 것일 터....중생=죄인=자기자신을 모르는 자.

 

 

 

 

 

예전 글 스승이 다룬 명제 중에서 마리아와 마를린으로 대표되는 여자의 자기 인테리어 길에 대한 담론을 올린 적이 있었다. 자식에게 일신을 공양하는 마리아 자연의 길과, 남자의 세계에서 자기생명을 위해 스스로 방법, 방어기제를 강구하여야 하는 마를린의 길. 여자의 꾸밈이란 것은 여자로 태어나 힘의 순위에서 밀리는 약자로서 살아남으려는 방어기제다. 남자는 강한 것을 선망하고 약한 것을 무시한다. 여자는 약한 것을 동정하고 강한 것을 피한다. 그런데 남자와 여자의 구조로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한 자연의 이면의 의도가 무엇인지...남자는 육체의 힘에서는 강하지만 여자는 정신적인 면에서 강하다고 하듯이 힘에서는 밀리지만 약함을 보완하는 지혜에서는 앞선다. 남자의 여성성, 여자의 남성성....체력에서는 강하지만 위기관리 대처능력에서는 약한 남자와 체력에서는 약하지만 위기를 대처하는 능력에서는 앞서는 여자 이것을 서로 보고 배우라는 의미일게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마리아의 길은 주검을 마주하여 안은 죽음조차도 끌어 앉은 과부의 길이고, 마를린의 길은 죽음의 두려움을 도망하다가 화려한 빛남속에서 스스로 만든 죽음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길이다. 남자에게는 인간존엄이냐 물질우상이냐의 선택이 요구된다면, 여자에게는 마리아의 길이냐 마를린의 길이냐를 선택하도록 요구된다. 인간존엄과 마리아의 길이 생生의 길로, 물질우상과 마를린이 사死의 길로 있지만 99%가 선택하는 것은 사死의 길이다. 99마리 양과 한마리의 길 잃은 양으로 나오는 것..   

 

 

 

들릴라의 무릎을 배고 누운 삼손의 행적을 보면서 고민해야 하는 것이 남자존엄의, 가치의 문제다. 들릴라의 눈물에 인간존엄을 넘겨버린 삼손이야기는 창세기의 아담이 하와가 건넨 실과와 하나님의 명령을 바꿔치기 한 이야기의 속편이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존엄과 우상숭배를 대비하여 새끼줄 꼬임처럼 설명한다.

 

 

 

벼농사 문화권에서는 새끼줄을 꼬아서 일상의 끈으로 줄로 삼았다. 絲라는 그림기호는 볏짚으로 새끼줄을 꼰 모양이다. 볏짚을 적당하게 두갈래로 나눠서 꼬는 것....물론 그 다음에 진화된 것이 솜이나 고치나 삼이나...등등을 통하여 만들어낸 실을 의미하게 되고 글을 다룸에 있어서 실상의 실의 의미보다 문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차용되었다. 실絲부를 부수로 가지는 그림밑밭에는 볏짚으로 새끼 줄을 꼬던 원형이 있었음을 이해하면 문자를 풀어나갈 때 좀 더 즐겁게 풀어갈 수 있다. 미사려구美辭慮句라는 말이 있지만 나는 미사려구米絲慮句라고 이해하면서 본다. 나락을 털어 낸 볏짚으로 새끼줄을 꼬아 생활의 도구로 삼았듯이 문장이라는 것도 알맹이를 털어내고 남은 것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것을...나락이 도정되어 밥이 되어 생명을 보전하는 사실을 놓고, 문장이전의 알맹이가 도정되어 뼈가 되고, 법이 되어 영혼을 온전하도록 하는 것이라고......내가 그렇게 추론하고 이해하면서 문장에서 알갱이로 떨어진 낱자들을 본다. 처네들이 머리카락을 땋음이 말해주는 것. 머리를 땋고 푸는 일...이게 언어의 새끼꼬고 풀기의 비의지만...         

 

 

 

삼손의 머리카락이 무엇인가 왜 자르면 힘을 잃게 된다고 하는가...뿌리로 꾸는 꿈...이 머리카락이 상징하는  것이다. 머리카락을 자르면 꿈을 꾸지 못한다 머리카락은 우주로 놓인 뿌리다. 무명초라하여 삭발하지만 진정으로 우주의 꿈은 머리카락을 타고 뇌파에 접속된다. 하여 머리를 자르는 것이 성경에서는 부끄러움이라 했다 머리카락을 자르지 말고 할례, 육신의 정욕을 제어함을 말한 것이 성경이다. 상투를 높여 우주와 교신하려 한 조상의 깊은 뜻을 이해한다. 머리를 올린다는 것은 우주교감 안테나를 세운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에는 그렇게 신비하도록 해 아래와 해 위를 연결하는 몸짓을 이미 파악하여 적용하였다. 우리나라는 혼례식을 저녁에 행했다 해가 무엇인지 이미 조상들은 알았고 그래서 결혼하여 여자를 안해라 했고 상투를 틀어올림으로 어른이 되었다. 해 아래의 일을 통하여 해 위 뇌파속의 해마의 움직임을 연결하려하던 조상의 지혜

 

 

 


뇌파는 해마가 움직임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고 그 해마는 위장이란 곳에서 생성하는 자기력을 전기력으로 변환시켜 힘을 삼는다. 뇌파를 움직이는 것은 잉여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시키는 자기력의 발현 소리에 따라 움직이는 해마의 움직임이다...현실과 상상을 구별할 줄 모르는 뇌파에서 현실과 상상을 가름하는 일을 해마가 한다 .
 
꾸미지 않아도 생명력이 충일하여 당당할 수 있는 천상천하유아독존의 경지를 해마가 만든다.
동양과 서양의 언어표현, 동양은 표의 문자 한자를 중심으로 문화가 형성된 곳이며 서양은 표음문자 알파벳을 중심으로 문화가 형성된 곳이다. 표의문자는 표음문자로 내용을 삼으며 표음문자는 표의 문자로 그릇을 삼아서 하나로 손뼉을 치는 문자가 우리나라 우리말문화다. 지구별에서 유일하게 표의와 표음을 같이하는 언어체계를 가진 나라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사실의 중요성을 그다지 잘 인식하지 못하고 표의 문자나 표음문자를 건너다 보며 목을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 사슴, 혹은 기린(?)처럼 하염없이 서양을 향해 늘이고 있다. 정작에 저쪽에 있거나 이쪽에 있는 이들은 서로에게 없는 것이 손뼉..하나 된 언어문화임을 알아 우리말 우리글을 넘보고 있는데도....우리나라에서는 우리말 우리글이 지구의 지유地乳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양손을 부딪혀서 소리를 내기때문에 손뼉 칠 박拍이라고 손수부에 흰白을 썼다. 손에서 빛(열)이나도록 하는 것이 拍이다. 拍 한자면 되는 말을 박수친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한자로 가져오면 巽霹이다. 손巽은 바람을 나타내는 괘卦로 손이 바람을 통하여 만들어내는 것이 벼락 벽霹이다 우뢰와 같은 손뼉소리..라고 말을 하는데 손뼉소리가 장맛비 내리는 소리와 구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같더라. 해서 나에게 응원의 손뼉을 치는 천사들의 손뼉 소리를 빗소리에서 듣는다. 하여 손뼉을 벼락처럼 치면 기혈 막힌 곳이 열린다는 것. 해서 손뼉은 너를 찬양하기 위하여 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건강을 위하여 손에 열이 나도록 백번은 치는 것. 백을 우리 말로 온이라 했다. 온전하도록 치는 것...온전하게 치면 몸에 땀이나거나 열이난다. 온의 구조는 卍을 의미하는 ㅇ 과 하늘, 즉 위를 의미하는 ㅗ 와 위의 기운이 내려와 퍼짐을 나타내는 ㄴ 으로 이뤄진 그림이다.

 

 

 

위에 있는 따뜻함이 아래로 내려옴을 나타내는 그림이기에 온을 따뜻함溫이라고 할 수도 있으리. 溫은 흐름의 삼수 갇힘의 수囚와 생명을 의미하는 피 血ち로 구성된 것이다. 온을 易하면 궁이 된다. 바꿀 역易인데 이 그림은 가로 曰에 말 勿로 되어 있다. 말하기를 그만둔다. 탁상공론, 이론은 그만두고 현장실천한다는 말이다. 쉽다는 것은 백 번 설명하는 것보다 한번 체험하는 것이다..는 것 백문이 불여일견.... 궁뎅이를 붙이고 책상물림을 하는 것으로는 궁뎅이는 따뜻할지 모르지만 남자의 후궁에서 옥음은 나오지 않는다. 책상물림 하는 남자는 자고로 옥음을 만들 그릇은 못된다는 말. 남자는 목소리에 권능이 있고 여자는 수궁에서 만들어내는 솜씨에 위엄이 있다.  

 

 

 

한국어에서는 ㅁ과 ㅇ을 구별하지만 한자에서는 ㅇ을 새김하기 힘들어 ㅁ으로 통일하였다 한다. 즉 본디 ㅁ은 ㅇ이라는 것이다. 목은 옥이다 목소리喉音는 옥소리玉音. 하여 임금님의 목소리를 옥음이라 하였다. 경우에 합당한 말을 아로새긴 은쟁반에 옥구슬같다...이게 옥음으로 임금의 덕성德聲이였다는 것. 하늘 집 후궁喉穹을 잘 다스리고 경계하여 옥음을 지키는 것이 남자의 지위를 만든다. 여자의 궁은 지기가 드나며 생명을 맺는 수궁手窮이라는 것. 여자는 자고로 손 끝이 맵짜야 한다, 내 손이 내 딸이다는 말을 했다. 남자는 말소리가 아름다와야 하고 여자는 손이 고와야 한다 손에 물을 안묻히는 고움이 아니라 거칠고 투박해도 그 손이 만드는 무엇들이 생명을 살리고 기루는 것이기에....   

 

 

 

비가 내리는 것은 하늘이 무거운 구름짐을 덜어내려 함이듯 박拍을 백번하면 탁기가 덜損어진다. 기를 축적하는 것은 입으로 해서 탁기의 최종인 암癌에도 입구가 셋, 청기의 최종인 영靈에도 입구가 셋이다. 셋은 천지인을 뜻하는 약속이다.

 

 

 

기를 덜어내는 것은 손이다. 믿음은 영성을 만드는 노력함이며 불신은 암을 만드는 두려움과 불안의 무력함이다. 믿음의 다른 말은 자기가 하는 말을 알고 한 말을 실천하려는 노력이다. 불신의 자기가 하는 말을 모르며 알기를 뜻하지 않을 뿐더러 한 말을 실천하지 않음이다. 너를 믿고 믿지 않고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너와 나는 신, 불신의 관계가 아니라 필요 불필요의 관계일 뿐이다. 너를 사랑하고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너의 요구가 아니라 나의 감정적 필요를 충족시키려는 욕망에서 표출되는 언어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에 믿음의 대상은 언어이며 그것을 이성과 감정에서 어떻게 공명하는가의 문제다.

 

 

 

예전에 우리말을 발음대로 알파벳으로 기록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우리말글을 영어나 외국어로 번역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기에 우리말을 번역하는 방법으로 발음나는 그대로 알파벳기호로 적어 내는 것...한동안 꿈 꾼 번역의 모습이다. 일본어 성경을 쓰면서 글이 들려주는 소리를 들으면서 남의 나라 언어를 이해한다는 것은 전생에 일본인으로 산 유전자가 없는 한 적어도 불가능한 꿈이구나...하는 생각을 하는데 내가 일본어에 대한 이해를 욕망하는 것은 윤회의 세월속에 적어도 천년 전에 일본에서 태어나 살았던 기억이 유전자에 담겨 있다가 어떤 계기를 통하여 그 정보가 드러나게 되었음에 있을 것이다. 사람이 여행을 하려는 근원적인 이유가 전생에 살았던 기억이 드러나게 되면 그 정보의 이끌림에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태어나면 태어나기 이전, 전생을 거슬러 올라가려는 의지가 생기는데, 돐잡이라는 형식을 통하여 아이의 전생을 부모가 읽고 전생을 이어 현생에서 더 나아가도록 아이를 양육하려던 문화가 한국에는 남아 있고 지금도 이어진다. 돐잡이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잡이를 통하여 드러낸 아이의 의지를 막는 것이 인간이 만든 지식체계라고 한다. 7세까지 마음대로 놀도록 함으로 전생에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았는지 부모는 관찰하고 이 생에서 어떻게 살아야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의식으로 성장시킬 수 있을 것인가를 북돋움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어떤 파동에 닿았던지 일본어 성경을 사경함이라는 의지가 생긴 것은 일본에너지파동의 근원을 이해함으로 한국인으로 태어난 나의 자리값을 일본의식보다 높은 자리에 내 자리값을 정하려는 것이겠다 생각한다.

 

 

 

목숨이라 하는 命을 일본에서는 이노치いのち라고 하는데 적어도 우리나라 말에서 목(옥)으로 숨이 드나는다고 숨의 기능까지 담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만 이노치いのち라고 할 때에는 いのち라는 히라가나가 가진 본의를 먼저 이해할 수 있는가 아닌가의 문제가 생기는 것. い는 나는 글꼴을 보고 二 라고 이해한다. 일본은 우리와 사유체계가 반대로 생성되어 한자를 놓고도 한국과는 역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二와 い는 발음에서 같다. 命에서 人과 一을 い가 담고 있는 것이다. 우리말 이(둘)가 일을 포함하듯이... "이"는 들숨과 날숨 무형과 유형..을 포괄하는 이진법. 한국어 목숨의 ㅗ, ㅜ 에 해당한다고 이해한다.

 

 

 

한자에는 ㅇ 이 없고ㅇ을 나타내는 것이 흐름의 통로를 나타내는 口, 흐르는 것이 무엇인가를 나타내는 流, 흐름을 나타내는 水가 있는데 한국어 ㅇ 에 해당하는 것은 水이고 흐름을 가두는 ㅁ, 즉 囚가 한국어 ㅁ이라고 나는 보고 있다. 人이 口안에 든 것...흐름이 멈춘 것이 수囚다. 囚는 기표도장으로 쓰이는 무늬이기도...흐름도 수 가둠도 수...수수방관..

 

 

 

 命은 人 一 口 ? 네개의 구조로 이뤄진 것으로 人은 삼태극, 一은 삼태극을 운행하는 알파와 오메가의 힘의 원리, 口는 무극으로서의 중심, ? 은 원리가 생성되는 모양으로 초끈이 만들어내는 폐곡선이라 한다. 일본어 の가 이 폐곡선을 나타내는 것이리라.

 

 

 

그리고 숨이 드나면서 생기는 발성이  뜨다는 의미를 가진  병부절로 한국어는 ㄱ이나 ㅅ 일본어는 치ち로 나타낸 것일 거라고...일본에서는 父를 치치ちち라고 하는데, 피를 ち라고 한다. 생명은 피에 있으니  일본어 いのち의 말뜻도 이러하구나...이해된다. 우리말에서 치는 홑말로 쓸 때 의성어로 기가 부풀어 새어나갈 때 생기는 소리다. 한자 命을 놓고 한국말 목숨의 몸에서의 相을 그린 글자라면 일본말 이노치는 상이 활용되는 태態를 나타낸 글자구나. 태態는 모월비비심?月匕匕心...匕는 일본어 히라에서는 ひ(히),

 

 

 

가로파동음을 그리는 일본어로 우리말 수직 주파수인 목숨을 표현하지 못한다. 하여 일본인은 목숨이라고 말하는 한국인의 말이 만드는 결기를 알 수 없지만, 이노치라고 하는 일본어를 한자를 놓고 파헤치면 발성도 가능하고 하고 의미도 알 수 있다. 이노치...는 여담이지만 이노치다...이노치못해...라고 말할 때 이것을 노치면 안된다...노치면 안되는 것이 목숨이다. 한글로 가져와 이노치를 理路治라고 하거나 利勞致....등등 한자를 가져와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풀어낼 수 창조영역이 있지만 일본어 히라가나로서만은....이런 창조영역은 불가능하리라... ...

 

 

 

한국어와 일본어의 력양차이로 일본어로서는 한국말이 가진 힘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한자라는 공통방편을 두고 일본이 한국말을 한국이 일본말을 이해하려고 할 때 쌍둥이 에서와 야곱같은 두 나라의 소통은 시작 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에서 빌려 온 거울로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해석해보면 들사람 장자 에서가 대륙의 머리 꾀없이 단순하고 무식한 배고픔에 장자의 명분을 팥죽에 팔아 넘긴 한국이라면, 집사람 야곱이 和의 나라라고 하듯이 잔머리의 대가 꾀보인 일본이라고 볼찐데 천사와 얍복나루에서 씨름을 하여 이스라엘로 변화기 이전 옛사람 야곱을 습성을 그대로 답습하는 일본을 역시 장자명분(전작권)을 미국에 팔아 넘긴 한국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한국인으로 일본정신을 어떻게 딛고 넘어설 것인가를 궁리하다보니 언어에서 일본인보다 일본 낱말을 내가 더 잘 설명하는 수 밖에 없구나...하는 생각에 도달한 것이다...사람의 가장 중요한 것이 命이니 이 한자 내가 확실하게 풀어 버리면 일본의식은 내 손 에 있는 것이 된다. 이것을 식신을 거느린다고 음양사에서는 설명한다. 글자를 놓고 누가 더 근원까지 짚어 들어가 본의( 혼네ぽんね. 일본인의 혼네는 아마도 혼내魂耐가 아닐련지...,...)에 도달하는가에 따라 그 글자가 가진 에너지를 습득하여 내 식신識申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命을 놓고 목숨과 이노치いのち, 그리고 life 의 연동관계를 풀어내는 것, 라이프는 L- IF-E 3형식이다. 숨이 ㅅ,ㅜ,ㅁ 삼구조듯이 いのち가 삼구조듯이..한국어는 목숨이라고 두자를 부요롭게 연대하였지만 숨이라는 글자만으로도 충분히 命이 해석된다. 영어 LIFE는 가운데 if 즉 가정법 만약에..를 놓고 좌우로 l, E를 놓고 있다. 이프 IF라는 저울에 I, E 접시에 우엇을 올려놓을 것인가...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덜어내어 저울접시를 기울지 않게 할 것인가의..... 

 

 

 

이런 같은 공명 같은 공감을 형성한다는 것은 뇌가 가진 것이 아니라 몸이 가진 70% 물의 정보가 동일한 까닭이고 물에서 문자가 생성되었음이다. 소리를 불에서 문자는 물에서....물의 울림은 늘 흐름으로 같은 수평의 원리 것이지만 시간의 향기, 우주의 지문은 언어가 언어 제 곳을 떠나면 향기를 잃게되는 위에 있는 것이 아래에도 있다는 수직의 원리에 속한다. 제 곳을 떠나 온 언어에 제 곳의 향기를 다시 살려내는 일을 언어를 부활시킨다고 한다. 즉 언어, 무덤속에 갇혀서 전달된 언어를 되살려내는 일을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룬다고 하는 수직법칙이다.

 

 

 

수평의 법칙, 물의 원리로 움직인다. 만물유전이다. 해서 여기저기 떠돌 필요가 없다. 모든 것은 낮아져 바다로 모이고 거기에 하늘이  깃든다. 생은 구름처럼 바람몰이로 여기저기 정처없이 떠도는 것이 아니라 낮은 곳에 자리하여 자신의 언어(씨앗)를 심고(글) 가꾸는 (살피고 가름하는)과정을 통하여 명이라는 열매를 맺는다.

 

 

 

글이란 우주의 지문, 시간의 향기다. 일차적으로 몸글이 중요하다 손글은 몸글이 그린 글을 가지런하게 정리하는 기능이다. 손글을 쓰기 이전에 몸글을 먼저 쓰는 것이다. 몸글을 쓰는 법.....이것을 스스로 찾아 훈련하는 것이 기도다.

 

 

 

RNA염기서열 변이 대규모 존재를 세계최초 확인했다 하는데 과학적으로야 최초 확인이겠으나 성경에서는 유전자를 변이시키는 일을 예수가 이미 했다 방법도 가르쳤고. 나사로를 살리심이라는 메타포를 통하여 가족력으로 전달되는 DNA의 오류있는 정보를 몸글을 쓰는 일(성령받음)을 통하여 염기서열변이를 일으켜 오류를 삭제함으로 건강한 몸으로 변화시키는 일이다. 예수의 성령이란 불완전한 정보를 완전하게 시정하는..시간의 향기, 우주의 지문이 제거된 언어에 시간의 향기 우주의 지문을 되살리는 현상이다. 언어에 우주의 지문, 시간의 향기가 생기면 언어가 가진 향기때문에 행복하고 즐겁고 감사하고 늘 기도한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섹스라는 몸글로도 서로 행복해지지만 정말 행복은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에 시간의 향기 우주의 지문을 새겨 언제 어디서나 언어의 살과 피를 먹고마심으로 영생을 아는 즐거움을 누리는 일이다. 예수는 내가 사용하는 언어다. 이천년 전의 어떤 인물에 머문다면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예수는 내 입에 오르내리는 언어 그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누구에게나 동일하지만 예수를 구원하여 그리스도로 누리는 몫은 나의 선택이다.

 

 

 

언어를 넘어서라...그 말은 언어에 시간의 향기와 우주의 지문을 담으라는 뜻이다. 언어에 향기를 답고 지문을 새기는 일을 영성의 삶이다. 위에 있는 것이 아래도 있다 . 즉 열매는 씨에서 시작되었다 꽃이 피고 잎이 우거지고 열매를 맺으나..결론은 다시 씨앗이다. 한 알의 밀알...이다. 누구나 저마다의 밀알(언어)을 가지고 있다. 이 밀알을 어디다 심느냐의 문제는 스스로의 선택이다. 구름에 심는 사람은 구름처럼, 비에 삼는 사람은 비처럼,  바람에 심은 사람은 바람처럼, 꽃에 심는 사람은 꽃처럼...그렇게 거둘 것이다. 몸에 심는 사람은 몸으로 거둘 것.. 가장 허무하지 않은 선택..언어를 몸에 심는 일이다. 언어를 몸에 심는 일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 언어의 재해석이다

 

 

 

자기사랑이란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에 향기와 지문을 만드는 일이다. 시간을 되돌리고 우주의 비밀을 알고 싶어하지만 정작에 언어에 시간의 향기와 우주의 비밀이 감추어져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내가 부리는 언어...얼마나 오랜 세월의 결을 가지고 대물림되어 내 입에서 오르내리는 것인지 아담이 부리던 언어를 , 붓다가 부리던 언어를, 예수가 부리던 언어를 지금 내가 부리고 있다는 사실을 놀라지 않는다면...무엇이 놀라움이겠는가

 

 

 

물의 언어는 세월을 감아돌면서 나에게 달려온 것이지만 물의 언어 안에 숨겨진 불의 언어(시간의 향기 우주의 지문)는 내 스스로 달구고 열어내는 연금술에 의하여 생명나무로 자란다. 모세가 만난 떨기나무의 불꽃, 에덴을 감고 있는 화염검 엘리야의 물수레 불병거, 예수의 겟세마네기도에 동원된 천군천사,....이 모든 상징이 바로  몸에 언어를 심는 과정, 열에너지법칙을 설명하는 것이다.  혼자서는 언어를 어디까지 깊이 높게 넓게 길게 새겼는지 파악하지 못하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이란 언어가 생성되기위해서는 그 반대개념이 분명 존재한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개념안에는 땅의 딸이란 개념이 스며있듯이 하나님 아부지라는 개념안에는 땅의 어머니라는 개념이 스며있듯이 언어를 대함에 있어서 살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무는 유를 통해서만 설명되고 유는 무를 통해서만 설명되고 오늘은 어제를 통해서 알고 내일은 오늘을 통해서 보는 것이듯 나를 인식하는 것은 너의 글말을 통해서 나를 보는 것이다. 하여 너를 인식하여 표현하는 그 표현은 너의 것이 아니라 나의 의식이다

 

 

 

내 이웃을 내 몸과같이 사랑하라는 명제는 당연한 것이다. 너를 인식하는 것이 나이며 나를 인식하도록 하는 너도 나라는 것, 말씀이 육신이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몸에 언어를 새겨보지 않고서는 이 문장을 자신의 것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외연의 모습이 여자라해서 남자라 해서 내면이 서로 다르지 않다고...속은  같은 존재가 사람이라고 ..보이는 다른 모습안은 같은 내장의 구조로 이루어진 것이 인간이란 종이라는 것...겉은 다르지만 속은 같은 이 이중나선의 자연원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나와 나의 외연의 다름이 내면까지도 다를 것이라 생각하여 만들어진 숱한 오류들...남자와 여자는 외양에서 차이가 존재할 뿐 내면은 다를 것이 하나 없는 몸의 원리
 
언어세계가 몸의 세계를 지배하기시작함으로 생성된 것이 자연스런 이중성을 죄악시하여 고민하게 된 것이 죽음에 이르는 병의 원인이 된 것이 아닌가 한다.

 

 

 

몸은 이중나선으로 이루어진 자연의 흐름이고 그 흐름을 따라 일고지는 우주의 꽃이며 나무며 열매다  몸이 생명나무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인데 나무와 실과를 분리하여 각자 하나로 놓고 보는 관점에 길들여진 것이 내 스스로를 죄악시하는 눈이 생성된 원인이구나...물론 나처럼 죄인열등감이 삶의 전체를 지배하도록 키운 이들이 있을 것이고 이중성을 당연하게 받아 누리면서 사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해마는 측두엽에 있고 측두엽은 귀를 통해서 전기력을 끌어당겨 해마에게 공급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귀는 천시를 듣는 곳이고 천시는 뇌의 세포들의 사이를 잇는 전기에너지이니...해서 예수의 이야기는 귀 있는 자가 듣는 것이다. 외연의 귀가 크다고 천시를 잘 듣는 것은 아닐게다. 보여지는 귀는 보이지 않는 귀를 설명하기 위한 내면의 외면화, 즉 내면의 귀(콩팥)의 거울이다. 귀를 보면 콩팥의 상태를 보게되고 콩팥은 귀를 통해서 자신의 상태를 드러낸다. 몸 안에서 귀는 콩팥, 즉 신장이다. 콩과 팥을 가름하는 기능
 
콩팥은 몸안의 귀이기 때문에 생긴 것도 닮아있다. 귀의 기능을 늘 건강하게 할 수있는 방법이 걷기다. 발이 역시 귀와 닮아있듯이 발은 자연의 콩팥이며 손은 우주의  콩팥이다. 귀와 손과 콩팥과 발...이 넷을 천시를 듣는 곳이라 한다. 나의 이해다. 많이 걷고 손뼉을 많이 치고 손을 많이 사용하면 콩팥은 건강할 것이고 청력도 좋아 말을 흐리게 듣지 않을 것이다. 말귀가 어두운 사람은 콩팥에도 문제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손을 많이 쓰고 많이 걷는 내가 콩팥이 튼튼하고 귀가 건강할 것이고 귀가 건강하니 해마에 혈류를 풍성하게 공급할 것이고 그러니 해마가 통통하여 세포간에 전기에너지를 이어 신경체계의 가지를 고속도로망으로 이어가면서 튼튼하게 펼치고 있으니 매일 두드려도 두드릴 글이 넘쳐나는 것일테니........

물은 그저 낮은 곳으로 흐른다. 여자의 길은 그렇게 아들을 낳아 대를 이어가는 길을 같이 함으로 흙의 생명을 몸으로 새긴다. 무지한 겸손이라 말하는 길일테다. 그러나  불은 여자가 낳아 이어준 대를 거슬려 올라가 스스로가 하나님이되는 자리까지 마디 마디 불태우고 다시 살이를 거듭하면서 곤에서 붕이되는 열림의 길을 몸으로 가야한다. 깨달음의 길이라고 하는 이 길. 즉 역으로 가는 길이기에 깨달음이란 오만이 생성될 수 밖에 없는 길이다

발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손의 중요성을 그려갈 때 귀의 중요성을 설명할 때 눈의 중요성을 풀어 낼 때...무엇을 보고 인체를 설명하는 가에 따라 달라지는 언어선택일 것이다. 발에서부터 시작하여 뇌에까지 올라와서 설명이 된다는 것은 내가 성장하고 그리고 이해하는 각도가 많이 다양해졌다는 의미일게다. 뇌의 옆모습을 보면 무릎을 꿇고 팔을 모두어 머리를 바닥에 대고 엎드린 옆모습과 아기가 태 안에서 웅크리고있는 모습과 닮아있다. 나만 그렇게 보는 것이지 모르겠지만 내가 뇌의 옆모습이 그렇더라고 생각하고 도반에게 책을 보여주면서 그렇지 않냐고 했더니 정말 그러네...했다. 태 안에서 뇌의 모습으로 웅크리고 있던 아기가 출생하여 몸을 펴고 뼈를 곧게하고 대지를 딛고 十자로, 大 자로 수직으로  수평으로...외연에서 몸을 가지고 할 수있는 모든 동작을 할 수있는 기능을 갖춘 것이 몸의 외연의 성장이라면 뇌의 내면의 성장, 즉 영혼이라고 흔히 말하는 성장은 어떤 것인가...몸을 영육으로 가름하는 근원을 찾아들어오면서 몸 자체를 놓고 아무리 봐도 영혼이라는 것이 있는 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가 뇌에 올라오면서 영혼이란 것이 무엇인지...내 스스로가 영혼의 근원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육신은 배고픔이라는 위장의 신호를 통하여 음식을 투입함으로 목숨을 이어가고 영혼은 뇌고픔이라는 뇌장의 신호를 통하여 해마를 통통하게 채우는 숨쉼을 함으로 생명을 이어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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