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과 박정희 박근혜 세습 권언유착 여기자 성추행? 조선[사설] 기업이 공무원 접대할 일 없게 해줘야 김영란법 성공할 것 에 대해서
(홍재희) ====TV 종합편성 채널 까지 확보한 방씨 족벌이 변함없이 진실과 거리가 먼 거짓과 불공정 편파 왜곡된 사설과 칼럼을 통해 대한민국 사회의 건강한 여론형성에 걸림돌 역할을 하고 있는 친일 반민족 반민주 반 통일의 냉전수구적인 방상훈 사장의 조선일보 사설은
“'김영란법' 시행이 확정되자 기업인들은 이 법이 정당한 기업 활동마저 위축시킬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그동안 법에 반대해온 전경련은 28일 성명을 내고 "시행에 따른 혼란을 줄이고 어려운 경제 상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세종시 정부 청사에는 요즘도 매일 수십, 수백 명의 기업인들이 방문한다. 정부 공무원들에게 업계 상황이나 관련 규제에 대한 입장을 설명하거나 개별 사업과 관계된 인허가 문제를 풀려는 게 목적이다.문제는 이런 정상적인 면담과 김영란법이 금지하는 부정 청탁을 현실적으로 구분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김영란법은 공무원에게 부정 청탁을 받지 못하게 하고 두 차례 이상 같은 청탁을 받으면 서면으로 상관에게 보고하도록 의무화했다. 공무원들이 괜한 오해를 피하려고 재량껏 처리할 수 있는 민원도 미뤄 버리고, 아예 기업인 면담 자체를 기피하거나 줄이면서 몸을 사릴 가능성이 높다. 그 피해가 결국 기업에 돌아갈 것이 뻔하니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권언유착이라고 본다. 이명박 정권당시 박근혜 대통령도 적극 동참해 국회 날치기 통과 시킨것이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에 이명박근혜 정권이 선심쓰듯이 전달한 종합편성TV채널 선물(?)이었다. 특히 족벌언론사주체제와 정권의 권언유착의 문제심각하다.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아버지인 방일영 조선일보 전 사주와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인 군사쿠데타의 원조이자 유신독재자인 박정희와의 관계는 권언유착이 왜 무엇 때문에 김영란 법을 자초했었는지 잘알수 있다. 정운현의 역사 에세이에 기록된 내용을 본다면
<격랑 60년-방일영과 조선일보>(방일영문화재단, 1999)에 따르면, 5.16 쿠데타 이후 박정희가 몇 차례 신문사 사주들과 술자리를 갖는 과정에서 서로 가까워졌을 거라는 게 주위사람들의 추측입니다. 말하자면 평소 술자리를 좋아하던 두 사람이 몇 차례 만나 술을 마시다가 ‘술꾼’끼리 서로 의기투합했을 거란 얘깁니다. 박정희가 방일영의 흑석동 집을 찾은 것도 바로 그런 친분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때는 제5대 대통령선거를 보름여 앞둔 1963년 9월 28일. 이날 박정희는 서울고등학교 교정(현 새문안길 서울역사박물관 자리)에서 첫 선거유세를 가졌습니다. 1962년 12월 26일 개정헌법에 따라 내각책임제를 대통령중심제로 바꾼 후 처음 치르는 직선제 대통령선거로 후보는 민주공화당의 박정희를 비롯해 민정당의 윤보선, 자유민주당의 송요찬 등 7명이 출마했었습니다.
박정희가 서울고교 교정에서 유세를 한 바로 그날 송요찬도 종로국민(초등)학교에서 유세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당시 송요찬은 살인혐의 등으로 구속돼 있어서 녹음방송을 통해 유세를 했습니다. 당일자 <동아일보> 호외에 따르면, 박정희 유세장에는 4만명, 송요찬 유세장에 3만명 정도가 모였다고 합니다. 송요찬은 박정희의 군 선배로 5.16후에는 내각수반을 지내는 등 한 때 박정희와 가까웠으나 나중에 ‘반혁명사건’에 연루돼 결국 둘 사이가 틀어졌습니다. 유세 경험이 없는 ‘정치초년생’ 박정희로서는 첫 유세가 적잖은 부담이었습니다. 게다가 윤보선 등 야당진영에서 그의 ‘좌익전력’을 걸고넘어지자 이를 해명하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박정희는 이날 유세에서 “5.16직전 용공세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고 나라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 참다못해 일어선 나를 그 당시의 실정(失政)에 책임져야할 구정치인들이 ‘위험한 사람’이니 ‘공산주의에 가깝다’느니 하고 있으니 이는 적반하장도 유만부득이다”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참고로, 1948년 10월에 발생한 ‘여순사건’ 당시 육군소령이던 박정희는 군부 내 좌익분자로 지목돼 그해 11월초 특무대장 김창룡에게 체포돼 군법에 회부되었습니다. 이후 군사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복역 중이던 박정희는 원용덕, 이응준, 백선엽 등 만군(滿軍) 선배들의 도움으로 재심에서 징역 15년으로 감형되었고, 다시 이듬해 4월 형집행정지로 풀려났습니다.) 박정희가 첫 유세를 치른 그날 저녁 7시경, 박정희는 대구사범 동기생이자 당시 문화방송 사장으로 있던 황용주(黃龍珠)와 육군참모총장 민기식(閔耭植)을 대동하고 흑석동 방일영 집을 찾았습니다. 이들은 냉면으로 저녁식사를 마친 후 의례히 술자리가 벌어졌습니다. 제법 분위기가 무르익자 기생 몇 명을 불러 동석시켜 좌중의 흥을 돋궜습니다. 동석했던 황용주(2001년 작고)는 그날의 술자리 풍경을 이렇게 증언한 바 있습니다. “첫 입후보 연설을 마치고 그날 밤 방일영 회장의 흑석동 자택에서 연(宴)이 벌어졌다. 주석(酒席)에서도 좀처럼 둘레를 벗어나지 않았던 대통령(박정희)이었는데 그날 밤은 자제를 하지 않았다. 만당(滿堂)에 흥이 무르익게 되자 그는 ‘선거가 끝나면 이런 기회도 없겠지’ 하면서 피아노 앞에 앉아 ‘노란 셔츠 입은 사나이’를 건반을 두들기면서 불러댔다. 그래도 직성이 풀리지 않았는지 ‘미꾸라지 잡기’라는 일본의 민속무(民俗舞)를 멋들어지게 추었다. 대사(大事)를 앞두고 청하는 사람도 없었는데 그가 스스로 좋아하는 노래와 춤을 추게 된 것은 방 회장이란 천하의 주도(酒徒, 술꾼) 때문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날 ‘흑석동 술자리’가 나중에 문제가 됐습니다. 통금시간이 다가올 때까지 너댓 시간 질펀하게 논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날 술자리 얘기가 육영수 여사 귀에 들어간 것입니다. 선거를 앞둔 사람이 신문사 사장 집에 가서 기생들을 불러다 놀았다고 하니 육 여사로서는 답답기도 했던 모양입니다. 며칠 뒤 육 여사는 청와대 비서들을 불러 모아서는 “다시는 흑석동 방 사장 집에 대통령을 가지 않도록 하라”고 엄명을 내렸습니다. 이 일로 청와대에서 냉면 소리만 나와도 방일영 이름이 거론됐다고 합니다. 두 사람의 친분은 이후로도 계속됐습니다. 1960년대 후반 박정희가 부산지방 시찰을 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공식 일정을 마치고 해운대 관광호텔에 숙소를 잡았는데 당시 비서실장 이후락 그날 저녁 박정희 술상대로 방일영을 차출한 것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분위기가 무르익은 후 복도를 지키던 경호원들이 아연 긴장하게 됐습니다. 방일영이 박정희에게 “대통령 형님, 쭈욱 드십시오!”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입니다. ‘각하’로 시작된 대통령 호칭이 어느새 ‘대통령 형님’으로 바뀐 것입니다. 둘은 그 정도로 죽이 잘 맞았다고 합니다.
서울 태평로 대로변에 자리 잡고 있는 코리아나호텔은 방일영의 둘째아들인 방용훈(60)이 사장으로 있는데 이 호텔은 1974년에 건립됐습니다. 언론사인 조선일보사가 어떻게 호텔을 소유하게 됐을까요? 결론부터 앞세우면 이는 박정희가 방일영에게 준 특혜 선물인 셈입니다. 60년대 중반, 한번은 청와대에서 장기영 부총리, 김성곤 공화당 재정위원장 등이 참석한 오찬모임에 방일영이 초대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박정희가 “거, 조선일보 사옥이 태평로 거리에 불쑥 튀어나와 있어서 볼 적마다 눈에 거슬리는데...”라며 느닷없이 한 마디를 던졌습니다. 박정희가 졸지에 내뱉은 말에 방일영은 미처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있던 차에 다시 박정희가 말을 이었습니다. “그것 헐어버리고 다시 지으시오.” 당시 도로 쪽으로 튀어나와 있던 조선일보 사옥이 도시계획선에 걸린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사옥을 헐고 다시 지으라니. 그래서 방일영이 “그건 아는데, 지금 형편으론 신문사 사정이 곤란해서...”라며 얼버무리자 박정희가 말을 받았습니다. “1차로 차관을 돌려 줄 테니 그 대신 좀 뒤로 물려서 다시 짓도록 하시오.” 당시 일반 금리가 연리 26%였던 걸 감안하면 차관 금리는 연리 7~8%였으니 이는 ‘대통령 형님’이 ‘아우’에게 큰 선물을 하나 안겨준 셈입니다. “가끔은 방일영 회장이 부러울 때가 있어. 외국 가고 싶을 때 언제나 나갈 수 있고, 놀고 싶으면 마음대로 놀 수 있고, 또 정부를 때리고 싶을 땐 마음껏 때릴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나도 대통령 그만둔 다음에는 신문사 사장이나 해볼까?” 언젠가 박정희는 이런 얘기를 했다고 방일영의 자서전 <격랑 60년-방일영과 조선일보> 243쪽에는 기록돼 있습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천하제일의 권세를 가졌던 ‘낮의 대통령’도 ‘밤의 대통령’이 부러울 때가 더러 있었던 모양입니다. 박정희 말마따나 신문사 사주는 4, 5년마다 한 번씩 선거를 치르는 법도 없고, 마음에 안들면 ‘낮의 대통령’도 자사 지면을 통해 마음껏 두들길 수 있으니 박정희가 부러워했을 법도 해 보입니다. 게다가 자리는 물론 부(富)까지도 세습이 가능하니 왕조시대나 하등 다를 게 없는 셈이죠.
(홍재희) ==== 라고 기록돼 있다고 한다. 방일영 전 조선일보 사장의 동생인 방우영 전 조선일보 사장이 1980년 전두환 신군부의 국보위에 참여해 언론인 대량숙청에 적극 협력하고 1980년당시 조선일보가 광주 민주화 운동을 폭동으로 광주 시민들을 폭도로 매도하면서 전두환 정권과 권언유착해 조선일보가 고속성장했다. 2016년 현재 방상훈 사장의 조선일보는 국미들 몰래 성주 군민들 몰래 사드성주배치 결정한 박근혜정부의 결정에 반대하는 성주 군민들 국민들과 고립시키는 논조 유지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권언유착인것이다.
홍재희) ===뿐만 아니라 방일영 전 사장의 아들인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은 1997년 대선당시 김대중 후보 낙선에 관여했다는 비판 제기됐었다. 구체적으로 사펴 본다면 2006년10월5일 서울남부지법 민사7단독 김도현 판사는 이른바 `안기부 X파일'을 주제로 한 매체비평 프로그램 때문에 대외신용이 실추됐다며 조선일보가 MBC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한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해당 프로그램은 원고에 대한 비난 의도가 다소 내포되긴 했지만 국정원의 불법 도청에 초점을 맞추면서 진실 규명을 외면하려는 태도를 비판한 것으로 주 목적은 X파일 사건에 대한 여론 형성과 토론의 장 마련이라는 공익성을 띤 것으로 보인다" "피고가 원고에 대해 `추악한 커넥션의 당사자' 등 다소 감정적이고 과격한 표현을 쓰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주 목적이 원고를 악의적으로 공격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재판부는 "피고는 X파일에 나타난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의 대화 내용을 토대로 원고가 1997년 대선 때 김대중 후보의 건강 문제를 거론함으로써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했다고 비판했는데, 홍씨의 신분이나 영향력, 당시 원고의 보도 행태 등에 비춰보면 진실로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결했다고 한다 조선일보는 MBC `뉴스플러스 암니옴니'가 2005년 7월29일 X파일 내용을 토대로 조선ㆍ중앙일보 등이 97년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의 건강을 다루면서 이회창 후보에 유리하도록 보도하고 자사 이익을 위해 X파일 사건의 초점을 불법 도청에 맞췄다고 보도하자 1억원의 소송을 냈었다고 한다.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은 삼성의 정치자금 100억을 이회창 후보에게 전달 했다고 그당시 MBC가 안기부 X 파일을 근거로 보도한바 있었다. 재벌과 조중동과 정권의 유착이 김영란 법의 정당성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조선사설은
“부작용을 줄이려면 기업들이 공무원을 만나야 일이 풀리는 구조를 뜯어고쳐야 한다. 우선 기업들 발목 잡는 규제부터 대거 없애야 한다. 정부가 법에 근거해 집행하는 규제는 1만5000건에 달하고, 지방자치단체들이 법에도 없는 규제를 조례·규칙이라며 만든 것만 3만9508건에 이른다. 국회·법원이 하는 규제, 병역법과 군사 시설 관련 규제, 세법 규제는 아예 통계도 없다. 규제에 기생하는 공무원들 숫자와 조직 역시 이번 기회에 확 줄여야 한다.과도한 정부 규제와 이에 기생하는 공무원들을 그대로 두고는 아무리 청탁을 금지하고 식대·선물값을 제한해도 공무원과 기업들 관계가 맑아지기 어렵다.정부는 12년 전 건당 50만원이 넘는 접대를 금지하는 '접대비 실명제'를 도입했다가 내수(內需)만 위축시키고 '쪼개기 결제' 같은 편법만 양산하다 실패했던 전례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김영란법이 우리 사회를 투명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려면 기업이 공무원을 상대로 로비하지 않고서도 마음 놓고 일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홍재희) ==== 라고 주장하고 있다.2006년 2월24일 저녁 박 박근혜 한나라당대표를 비롯해 한나라당 당직자들과 동아일보의 만찬후 이어진 별도의 술자리에서 최연희 당시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여기자를 성추행했고, 뒤늦게 `술에 취해 실수를 저질렀다'고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고급 한정식집에서 여성 접대부 서비스 받으면서 동아일보직원들과의 권언 유착성 주지육림의 질펀한 술판을 벌이다가 동아일보 여기자를 성추행한 사건이 발생했었다. 문제는 조중동 세습족벌언론권력사주 집단과 재벌들이 혼맥으로 얽혀 있다는 이다. 이건희의 삼성과 홍석현의 중앙일보 그리고 방상훈 사장의 조선일보 또한 아들들 혼맥으로 재벌들과 얽혀 있다는 이다. 이런 조중동과 정권의 유착 고리 끊는 김영란 법으로 재벌과 정권 정권과 족벌 언론 그리고 족벌언론과 재벌의 유착고리를 끊어야 한다.
(자료출처= 2016년7월29일 조선일보 [사설] 기업이 공무원 접대할 일 없게 해줘야 김영란법 성공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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