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과 아우
단일 민족국가이면서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남북한은 지난 60여 년 동안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매년 막대한 국방비를 쏟아 붓는 등 불필요한 소모전을 하며 국력을 낭비하고 있다.
미?소 양국의 주도로 대변되던 냉전 시대의 희생자인 남북한은 이데올로기의 갈등 속에서 상호 비방 및 대화의 부족으로 인적?물적 자원의 활용에 상당한 제한을 받고 있다. 남북한이 상호 경제력의 장단점을 이용하여 무역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 및 경제 영토를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문민정부의 전 외무장관은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미국과 벼랑 외교를 벌이는 것에 대하여 남북한의 관계를 ‘동생(북한)이 수류탄(핵무기)을 갖고 방에 들어가 형(남한)하고는 얘기하지 않겠다고 버틴다. 그러나 옆집 영감(미국)하고는 대화를 하고 방에서 나와 수류탄을 내줄 수 있다며 경찰(UN 등 국제사회)을 부르면 수류탄을 터뜨리겠다고 위협한다. 이때 형의 입장에서 경찰을 불러야 할 것인가? 경찰은 작전을 한 번 하면 되지만 집안은 풍비박산 날 것이 뻔하다.’라고 설명을 한 적이 있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다소 우여곡절이 있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대화를 통해 북한 핵 문제를 풀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최근에는 북한이 미사일 개발은 물론 3차 핵실험까지 강행하며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를 수년째 하면서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우리는 왜? 3차 남북 정상회담을 열지 못하는가? 동생과 형이 다시 만나 술 한 잔을 하면서 지지부진한 남북 대화 및 협력 방안에 대하여 솔직히 얘기하는 기회를 갖지 못하는가? 서로의 입장을 듣고 가슴속에 쌓아 두고 있던 말을 몽땅 쏟아 붓는 것만으로 만남의 의의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처음부터 그 무슨 거창한 결과를 기대는 하지 않고서 말이다. 서로 만나 술 한 잔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남북관계가 복원되는 첫 단추를 끼우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냉전 시대의 주역이었던 미국과 소련을 비롯한 세계의 모든 나라가 이념 대결에서 벗어나 서로 선린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동반자로서 또 협력자로서 자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서 서로 노력하고 있지만, 한민족만이 서로 둘로 나뉘어 원수지간처럼 싸우고 있다.
우리는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오랑캐라고 하며 원수로 여겼던 중국 공산당하고도 손을 내밀어 친구가 되었다. 수많은 우리의 젊은이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간 공산화된 베트남은 물론 동구 공산권 국가들과도 이제는 서로 선린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경제 협력을 하고 있다. 왜? 한 핏줄인 북한과는 당국자간의 대화 채널도 제대로 가동하고 있지 못하단 말인가?
대북문제에 오래 종사했던 한 고위 전문가는 1970∼80년대의 남?북 정책이란 것은 마치 아녀자들의 감정싸움 같다고 했다. 긴장과 대립이 지속된 수십 년 동안 남북한은 겉으로는 거창하게 민족과 통일을 내세웠지만, 내막으론 상대방을 어떻게 골탕 먹이고, 한 방 먹으면 어떻게 보복하느냐는 것이었다는 고백이었다.
서로 말꼬리를 잡고 상대방 주장의 허점을 파고들고, 실수를 잡아 낚아채고……. 그런 것들이 남북정책이란 이름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져서는 안 된다는 체면과 명분이었다고 한다.
“저 XX들이 까불어서 한 방 먹였지!”
“저 XX들 이번에는 골탕 한 번 먹었지!”
라는 것이 평가의 기준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문민정부 이전의 남북대화에 관한 일면이다. 우여곡절 속에 1980년대 중반 남북 이산가족 고향 방문이 성사되어 남한과 북한지역을 이산가족들이 직접 가서 감격스러운 상봉의 기쁨을 맛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만남이 순수한 인도주의적인 차원으로 남북한 당국자가 계속 발전 승화시키려는 노력보다는 상호 매스컴을 통해 체제 홍보와 우월성을 선전하는데 급급하였다.
결국은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현재는 어쩌다 한 번씩 어렵게 양측이 합의를 하면 갖게 되는 요식행위 수준의 상봉행사로 전락하고 말았다. 아마도 북한으로서는 체제의 특성상, 위험을 무릅쓰고 대단한 모험을 시도한 것이었다. 상호방문 등 개방으로 인하여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더 많았을 북한의 입장을 우리가 이해를 하기보다는 혹시 너무 압박만을 한 것이 아닌지 되돌아보는 자세도 필요하다.
한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이후에 새롭게 등장한 김정은 위원장의 자격과 자질에 대해 우리 매스컴은 얼마나 흔들어 댔던가? 대화 상대국의 지도자에 대해서 성격이 비뚤어졌다든지 또 여성 편력증상이 있다든지 등등 부정적이고 선정적인 장면들을 매스컴들은 경쟁적으로 국민에게 부각시키는 노력을 수없이 하고 있다.
상대방 지도자의 약점과 치부만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는 방송사와 언론사의 노력은 남북대화에 상호 믿음과 신뢰감을 갖고 발전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도리어 찬물을 끼얹고 불신의 벽만 두껍게 만들며 은근히 방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삼척동자라도 다 알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행히도 대결만 하던 남북관계의 긴장이 조금이라도 완화되기 시작한 것은 1998년 출범한 DJ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이었다. 그동안의 대북 적대정책보다는 보다 더 적극적으로 인내심을 갖고 북한이 대화의 장에 나서도록 수구세력의 끊임없는 비난과 저항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노력한 덕분이었다.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같은 가시적인 성과를 이룬 것은 남북관계가 획기적인 발전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었다.
그러나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남북 간의 경제협력 및 교류 관계가 퍼주기라는 비난과 함께 도리어 후퇴하는 상황이 빚어진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2015년 새해가 밝으면서 남북 최고지도자가 서로 정상회담을 거론하는 등 다시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었다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이다.
이렇게 분위기가 무르익은 시점에서 정경분리의 원칙에 따라 만약 ‘조건 없는 순수한 남북 정상회담’이 제안되고 실제로 실현된다면 남북관계는 획기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남북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라는 소극적인 자세에서 ‘우리 아무런 조건 없이 한번 만납시다.’라고 파격적으로 마음의 문을 먼저 활짝 열고 남북 정상회담을 제의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남북 정상이 만나면 남북한이 겪고 있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북한의 노동력과 자원, 남한의 자본력과 기술력을 어떻게 서로 협력하여 도울 수 있는지 방안을 모색하고 합의하는 것이 최대 현안이다. 또한,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이산가족들의 한을 풀 수 있는 방안들도 협의한다.
서로의 자존심을 존중해주면서 체제 개방에 따른 위험을 최소화하는 방안들도 서로 허심탄회하게 얘기 나눌 수 있다. 남북관계에 있어서 최고지도자 간의 만남은 상호 신뢰감 구축 및 대화의 장을 마련하며 남북관계가 진일보할 수 있는 획기적인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핵 문제는 남북한, 특히 북?미 사이에 풀어야 할 핵심 당면과제임은 너무나 분명하다. 하지만 이 문제를 풀겠다고 의욕이 앞서면 처음부터 모든 문제가 꼬이게 된다. 우선은 서로가 합의 가능한 것부터 하나하나 실행을 하면서 상호 신뢰감을 쌓아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서 핵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심을 발휘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처음부터 통일이란 목표를 가지고 정치적인 얘기를 나누는 것은 양측의 상반된 입장으로 갈등과 불신이 다시 시작될 빌미가 될 수 있다. 서로의 이념과 체제에 대해서는 상호 존중하고 정경분리의 원칙이 대화의 기본자세임을 명심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바라는 통일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방식의 흡수통일이다. 반면에 북한이 바라는 통일은 적화통일로서 완전히 반대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통일이란 목표를 “통일은 대박이다.”라는 말로 외친다면 그것은 갈등만 유발할 뿐이다.
도리어 통일이란 단어 대신에 ‘상호신뢰’를 먼저 얘기하자. 통일보다는 신뢰가 먼저다. 서로 합의 가능한 것부터 하나하나 찾아내어 신뢰를 바탕으로 실천을 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상호 신뢰감이 쌓이면 교류와 협력이 더욱더 활발해지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통일의 필요성이 대두하게 될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이 열려 상호 신뢰감이 형성되고 각 분야에서 대화를 통한 협력관계가 이루어지면 남북한은 상호 취약한 경제 기반을 보완, 발전시킬 수 있다. 또한, 무한 경쟁시대의 세계무대에서 막강한 무역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남북한이 연간 국가 예산의 10%에 달하는 막대한 국방비 지출도 절감할 수 있다.
이 예산을 국가 기간산업 및 사회 간접시설에 투자하여 무역 경쟁력을 높이고 또한 21세기 복지국가 건설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음은 물론 남북한이 상호 협력함으로써 유형?무형의 막대한 국가 이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 박근혜 대통령 임기 내에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기대하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기’처럼 거의 불가능할 것 같다. 남북관계를 오로지 자신의 정치적 지지자인 수구보수층만을 규합하기 위한 국내 정치용으로만 이용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민족의 미래와 통일에 대한 올바른 국정 철학과 주변 국가와의 외교력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그의 냉철한 이성과 결단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