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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루이 14세□◎← 2017-03-05 22:5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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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내 영토를 놓고 격돌한 백년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진 프랑스에 유명한 잔 다르크 등이 등장하여 패배의식에 사로잡힌 프랑스 신민들에게 새로운 용기를 불어넣었고 이들의 분전으로 프랑스는 침략자 영국군을 도버 해협 밖으로 몰아낼 수 있었지요.

그 후 국내를 안정시킨 프랑스는 지중해로 진출하였지만 서남쪽의 신흥강국 스페인과 동쪽의 전통강국 신성로마제국의 협공으로 진출이 저지되었습니다.

분노를 참으면서 기회만 기다리고 있던 프랑스에 드디어 기회가 찾아 왔습니다.

루터에 의한 종교혁명으로 신성로마제국은 신 구교 세력의 갈등으로 혼란에 빠졌지요.

그리고 스페인은 지나친 구교에 치우친 정책으로 신교도 세력의 씨를 말리려고 하는 불관용으로 일관하여 부의 근원이었던 네덜란드 지방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지요.

프랑스에서도 신 구교 세력 간의 갈등은 상당히 심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영명한 군주 앙리4세가 종교관용을 표방한 낭트칙령을 발표하여 갈등이 거의 사라졌지요.

그 후 숙적인 신성로마제국에서 신 구교 세력이 격돌한 30년 전쟁에 참전한 프랑스는 명재상들의 활약으로 서남쪽의 스페인과 동쪽의 신성로마제국을 아주 약화시켰지요.

이로서 프랑스는 유럽 대륙의 강자로 군립하게 되었지요,

이 황금기에 등장한 군주가 바로 ‘짐이 국가다!’로 유명한 루이 14세입니다.

그러나 프랑스를 강국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거듭된 전쟁으로 루이 14세가 많은 빚과 문제를 남기고 저 세상으로 갔지요.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심각해진 것은 루이 14세의 손자인 루이 16세가 통치할 때입니다.

전통적으로 프랑스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귀족, 승려, 평민으로 이루어진 삼부회에서 해결하였지요.

그러나 중상주의 정책으로 대상인, 법관, 의사 등으로 이루어진 부유한 평민들의 세력이 크게 증가하여 소집된 삼부회를 좌지우지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상황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였던 루이 16세, 귀족, 승려 등의 기득권 세력은 자신들의 권익 유지에만 관심을 보였고 이런 수구적인 그들의 향동에 분노한 평민들이 대거 가담한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것입니다.

루이 16세가 이들 혁명 세력을 인정하고 타협하였다면 계속 왕위를 유지하였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실제로는 대결자세로 일관한 루이 16세는 결국 혁명세력에 의하여 처형되었지요.

루이 16세는 관용에서 나온 타협 대신 외국의 도움에 의지한 강경 대응으로 불행한 최후를 맞이한 불운한 왕이었습니다.

그 후 등장한 나폴레옹이 영국, 오스트리아. 프러시아, 러시아의 연합 세력으로 몰락한 후에 왕이 된 루이 18세는 비교적 온건한 통치를 하였지만 뒤를 이은 샤를 10세는 아주 수구적인 군주였고 혁명 전의 상황으로 되돌리려고 안간 힘을 쓰다가 분노한 부르주아 등의 7월 혁명으로 폐위되어 영국으로 망명하였지요.

샤를 10세는 통치 중에 이런 말을 남겼다고 전해집니다.

 

“나의 임무는 혁명과 나폴레옹이 남긴 먼지를 남김없이 쓸어버리고 옛 질서를 회복하는 일이다.”

 

“영국 왕 같은 입헌군주가 되느니 장작이나 패고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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