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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따뜻한 독재”가 필요한 사회,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017-03-10 15:3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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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독재”가 필요한 사회,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먼저 유승민전원내대표의 사태가 일단락이 되어 사태가 수습이 된 것을 의미 있게 생각한다. 이슈가 될 수 없는 문제로 오래 동안 끌어서 사회 혼란을 가중했다는 점은 우리 정치사의 현주소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 언론인들은 개인을 스포트라이트로 해서 부각 시키는데 에너지를 소모하는 경향성이 크다고 본다. 물론 진정한 우리 사회 발전에 귀한 인재라면 키워 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언론들이 띄우는 인물들 대부분은 정부와 척을 지는 대상들을 골라서 일정한 기간 동안 활용을 하여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는데 그 원인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즉, 톡톡 튀고 정부의 권위에 도전을 하는 정치인들을 신선한 대상으로 여겨서 시민사회에 여론 띄우기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볼 때 기자들이나 언론의 눈이 단세포적인 시각으로 사회를 편협하고 선정적인 경향으로 몰아가는 것이 아닌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개인 정치인의 개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라의 정체성과 현재의 나라가 처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바라보는 언론의 눈이어야 한다. 어떻게 언론의 역할을 통해서 바른 정치가 실현되도록 해야 할 것인지? 국제 역학구도의 격동기(激動期) 속에서 우리 정부가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 직시하고 자생적으로 국가 앞에 서는 언론의 사명을 가져야 한다.

 

 

 

이 같은 현실 앞에서 통합적인 사회 내부를 지향하도록 하는 언론적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가를 국민들은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헌데 우리 사회 언론구조는 자기 국가 앞에 서는 언론이 아니라 세계화 앞에 서는 언론이 되어서 자국의 상황을 어려운 쪽으로 몰아가는 언론 플레이를 정의라고 규정하고 그 정의의 이름으로 자기 사회를 재단하는 것에 목숨을 걸고 있다.

 

 

 

그 어느 언론매체도, 전문가들도 세계화가 정의의 기준이 되어 그 같은 시각으로 우리사회에 길잡이를 해가는 언론의 정체성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겨우 개인 정치인의 독보적인 행동에 감정을 빼앗겨서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자기 정치를 하고 있는데도 소신 있는 정치인으로 영웅몰이가 고작이지 않는가?

 

 

 

이 같은 언론놀이에 국민들은 식상해 한다. 적어도 언론은 국민들의 눈을 뜨게 해주고, 국민들에게 자기 정체성을 고취시켜주며, 국가가 나아갈 길 뿐만 아니라 구심점에 대한 국민적 자각이 일어나도록 사회적 책임과 나라중심의 언론구조가 되어 정치기반이 사회정의와 현실 논리 사이에서 그 책무를 잘 이행할 수 있도록 정보 배경이 되어 주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언론은 이런 차원에서 이미 탈선되어버린 기차처럼 언론의 기본 레일에서 벗어나 버렸다는 사실이다. 유승민 전원내대표의 사퇴 회견에는 상당한 문제점이 노출되었다. 일단 개인 중심적 사고로 너무 오랫동안 사회를 혼란스럽게 한 점에 대해서 사과를 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여기에 무게를 두고 사퇴를 했었더라면 좋을 뻔 했다. 이유가 어찌 되었던 대통령의 국가 경영에 협력을 해야 하는 것이 여당의 기본정당으로써의 정책기조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협력을 하려고 하기보다는 각을 세웠던 것이다. 초기 취임식 직후 소견 발표에서 정당중심의 의회민주주의를 지향 하겠다 하면서 대통령의 창조경제 등, 청와대와 대통령에게 각을 세웠던 것이다.

 

 

 

성공하는 대통령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 백년대계와 같은 국가적 기반과 기둥이 잘 세워져야 하는 국가 경영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여당은 철저하게 대통령 중심으로 모든 정책과 경영이 이루어져야 한다. 솔직히 본인은 이와 같은 국가경영의 구심점 차원에서 대통령이 여당의 대표를 겸직해야 하거나 대표는 얼굴마담 역할이 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본인은 이를 “따듯한 독재”라는 논리로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따듯한 대통령이란 마음이 따뜻하고 훈훈한 대통령으로 나라와 국민을 보듬고 그 어떤 위기도 헤쳐 나가며 나라의 발전과 국민들의 마음 놓고 꿈을 이루어 가는 행복한 사회 건설에 앞장서는 대통령을 의미한다.

 

 

 

국민의 아픔을 알고, 나라의 어려운 현실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며 고통 받는 나라 현실을 직시하는 가슴을 가진 대통령, 이것이 따듯함이라 한다면 독재는 이 같은 사회 건설을 위해서 강력한 국가 통치권을 만들고, 국가 발전을 위한 기반을 이룩해가고, 정신이 투철한 인적 자원을 관리하는 강렬한 통치권을 행사하는 대통령의 행정력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개인의 정치적 목적이자 권력을 탐하여 추구하는 독재와는 구별된 독재, 즉 우리사회에 맞는 통치권의 권위를 보존하고 그 앞에 복종하게 하는 힘이라 할 수 있다. 역사와 현실이란 수레바퀴를 따스한 가슴으로 국민들을 아울리는 나라적 공간을 만들고, 그 같은 배경을 위해서 강력한 나라 현실을 구축하는 길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현대 시작과 함께 어쩌면 자주국방이나 자주 국력을 상실한 채로 시작 된 국가체제였다. 그것이 지금의 너무 약한 행정부, 그래서 통치력의 권위가 약해져 있고, 그러자 나란 안에서조차 권위를 우습게 여기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고, 이러한 배경을 둘러싸고 있는 우방과 세계 역학구도가 마음대로 유린하는 현실이 되어 있는 것이다.

 

 

 

군대의 육군 해군 공군에서 방산 업체 비리는 국가 무기체제와 발전에서 후퇴되도록 한 비리사태는 이 같은 나라 통치권이 약해져 있다는 반증이다. 건설 업체 각 분야에서 담합과 비리 등은 솜방망이 처리로 더욱 골이 깊어져만 오는 문제들도 역시 통치권이 무너져 있다는 반증이다.

 

 

 

정치권이 국가의 국정 운영에 발목을 잡는 것도, 그것도 행정부 견제라는 합법적인 이유를 통해서 말이다. 이 또한 국가의 구심점이 무너져 있다는 반정이다. 그렇다. 비록 작은 나라지만 통치 기반은 탄탄해야 한다.

 

 

 

대통령의 강력한 통치가 작용되는 사회, 국가적 권위와 기강이 살아 있는 사회 안에서 감히 부정비리 등이 판을 칠 수 있는가? 하지만 이 같은 사회가 되도록, 그렇게 해야 한반도 상황을 마음대로 요리 할 수 있는 배경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정부와 대통령의 위치를 제압하고 약화시켜 놓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사회 정치적 견재라는 구조가 필요한 것이다. 우방이란 힘으로 그 동안 음으로 양으로 구축해 온 인적 자원들을 동원하여 대통령을 견제하는 체제를 구축해 온 것이다.

 

 

 

지금 공권력과 법과 사회적 질서가 대통령의 명을 통해서 모든 사회 문제를 바로 잡지 못하는 현상은 대통령의 힘을 제도권적으로 묶어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 그리고 우리 사회 상황에서 나라 살림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고 나라의 권위가 살아나는 사회가 구축되어져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대통령의 힘을 무너트려 왔다. 의회 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면서 너무 대통령에게 힘을 싫어주면 독재로 나아간다고 하며 대통령과 국회를 비등하게 해 온 것이다. 삼권분립이지만 엄연히 우리 사회는 의회 민주주의 중심 국가가 아니라 대통령 중심제이다.

 

 

 

대통령이 나라를 말아먹거나 일본과 같은 나라에 같다가 바치려고 하지 않는 한 국회는 행정부 견제라는 이유아래 행정부와 대통령의 국정운영의 세법 문제로 발목을 잡으면 안 된다. 국회가 그렇게 하고자 하는 것은 의회민주주의라는 명분을 가지고 그렇게 한다고 할지라도 우방과 같은 연계 된 구조에 이간계(離間計)처럼 이용되는 정치구조라고 이제는 오해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어떤 분들은 우리나라 현 사회 정치적 상황을 가리켜서 정치적 균형이 이루어진 민주주의의 발전이라고 스스로 자긍(自矜)하는 발언을 하고자 하는가? 하지만 어째서 현실은 사회가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국가경제가 바닥이 되고, 빚은 산 덤이 처럼 쌓여만 가고, 공권력을 비롯한 모든 사회 구조가 이상한 기류변화로 몸살을 앓고만 있는가? 이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는 조절되는 사회 구조라는 반증이다.

 

 

 

이런 의미에서 유승민전원내대표는 잘못 생각을 했고 행동을 한 것이다. 정의를 말하고, 헌법 제1조를 강조했지만 이는 사퇴하면서 강조해야 할 사안이 아니었다. 오직 자신이 너무 고집을 부려서 우리 사회가 메르스나 여러 상황들이 사회를 복잡하게 몰아가고 있는 혼란 중에 자신의 문제까지 겹쳐서 더 가중시킨 것에 대해서 사과를 집중했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자신의 정치철학을 반영하여 다음을 도모하고자 하는 여운을 남긴 것이다. 정공법을 통해서 역으로 대통령의 국정운용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간접화법을 사용한 것이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자신의 옳았다는 것을 우회하고자 했다고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인간은 항상 그래 왔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서 다른 누군가를 상대적으로 ‘아니다’라고 하면서 올라서지 않는가? 메르스 사태가 심각하게 누가 그랬는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는 상황에서 동시에 정치기반까지 가세하는 그림이 그려졌던 것이다.

 

 

 

다행스럽게 초기의 여론몰이처럼 상황이 일단락되면서 유승민전원내대표의 정치적 혼선이 함께 사회 혼란으로 움직임이 되지 못한 것이다. 만에 하나 이것이 계획대로 모두 동시에 이루어지는 그림이 그려졌더라면 유승민 전원내대표의 역할을 무서웠을 것이다.

 

 

 

확실히 우리 사회 안에는 부추기는 음성적 지대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우리 정부가 찾아내고 바로 잡지 못한다면 계속해서 이 같은 사회 불안 요인들은 붉어지게 될 것이다. 본인이 예전부터 줄기차게 분석하며 강조해 왔듯이 우리 사회 안에 일찍 들어와서 똬리를 틀고서 앉아 바이러스 증세로 몰아가는 보이지 않는 파괴자들을 몰아내어야 할 것이다.

 

 

 

예전에는 군이고 경찰이고 자국을 보호하는 특수 부서들이 암암리에 활동하며 우리 사회 안에서 이적(移積)질을 하거나 스파이 짓을 하는 우리 사회 파괴자들을 분쇄하고 축출해내는 역할들을 했기 때문에 안보와 치안이 더욱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그 기관들을 모두 제거했거나 사장 시켜 버린 현재는 우리 기반이 얼마나 약화되었단 말인가?

 

 

 

따뜻한 보수? 여당의 보수의 의미는 정당으로써 자신의 정부와 함께 그 궤(軌)를 같이 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나라 살림을 잘 하여 길이 역사에 남고 부강하고 강력한 나라로 나아가는 길이 되는데 일조하는데 보수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헌데 “따뜻한 보수”라는 차별적인 개념을 던져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고자 한 화두로 던진 것이지, 나라를 진정으로 생각하고서 작심한 고별사는 아니었다고 보여 진다. 현재 우리 사회와 직접적인 여야 개념은 보수 진보라는 양축의 의미이고 여기에 보수는 대통령을 잘 받들어 국가 발전을 가져오는데 쓰임 받는 정당의 의미가 되는 것이다.

 

 

 

우리 언론은 이 같이 꼼수 부리기를 잘하는 그 배경들을 잘 밝혀서 국민들로 하여금 바른 시각을 갖도록 해주는 역할을 잘 해야 한다. 언론 매체들은 아무도 이 같은 우리 사회 변화에 대해서 알아차리고 끄집어내어 국민들에게 알리는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자국 국민들에게 자기나라 외부로부터 시작되는 힘의 영향력 아래 문화적 컨셉이나 정책, 혹은 방향 등을 각인 시키려고 하는데 어 열을 내는 언론구조가 되다보니 바로 이 같이 마땅히 분별하여 국민들을 바로 일깨워야 할 역할들을 하지 못하는 지경이 되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아야 할 시점인가? 본인은 이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주장하는 것은 “따뜻한 독재”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강력한 행정부를 말하고 싶다. 국가 조직에 오직 복종하는 자유와 인격체를 가진 집단 구조를 의미한다. 국가 중심의 각인 된 윤리적 정신이 강하게 형성 된 이들이 나라와 정부에 충성을 다하는 강력한 행정부로 움직이는 국가 체계를 말하고 싶다.

 

 

 

여기서 “따뜻한 독재” 개념이 나오는 것이다. 기존의 민주주의와 윤리와 도덕적인 인간 자율이 그대로 적용되지만 우리처럼 자기 주관이 너무 강하고 개인주의화 된 사회 안에 독자적인 정치 행보가 정당조차도 이익집단들로 나라의 발목을 잡는 현실공간이 되었지 않는가?

 

 

이 같은 사회 배경, 즉 미성숙한 제도와 국민들은 근본적으로 나라를 생각하는 기반우에서 적절한 독재가 필요한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서 따뜻한 독재라고 말하는 것이다. 대통령에게 강력한 권위와 힘을 실어 주어 국가 행정에 복종하는 시스템이 구축되도록 하는 것이다.

 

 

 

정책과 민주주의 원리를 실천함에 있어서는 기존 법칙 그대로 이행이 되지만 행정에 대해서는 무조건 복종하는 강력한 국가 체제로 우리는 들어가야 한다. 이는 유대인들의 비밀 조직 운영체계나 일본과 같은 국가관 중심의 국가 체계를 확립하는 것과 동의적으로 보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나라가 도외시 되는 국가 행정부는 말단 공무원 직원까지도 나라에 대한 애국정신이 결여되어 있는 구조이다. 우리의 정부가 너무 약해져 있기 때문에 외교부를 비롯한 각 부서의 인적 자원들이 다른 힘에 휘둘리고 정치 지대가 이간계(離間計) 혹은 반계(反計) 등으로 외교술에 놀아나는 것이다.

 

 

 

다시 행정부를 통한 국가 권위와 기강이 강력해져야 한다. 철저히 나라 중심의 행정부의 힘의 강력한 시스템이 세워져야 한다. 우리 국가 권력 기반을 약화시키는 지금의 배경은 우리를 둘러싼 다른 힘들이 목적을 이루어가는 사회체계를 위해서 상대적으로 정부권력을 약화시키는 장치가 작용 되고 있는 배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찌 매사가 언론이나 정치구조가 정부 무력화에 집중 포화를 퍼붓고,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거나 반대를 하는 정치인들을 세워주는 언론 플레이가 주가 되고 있다. 이것이 이상하지 않는가? 이것이 민주주의 사회라고? 어떻게 자기 정부를 집중 공략하는 민주주의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정부가 잘못하는 점을 철저하게 해부하는 언론 플레이를 통해서 국민들에게 자세하게 알려 국민들이 자기 정부를 싫어하고 미워하게 만드는 여론 몰이가 어떻게 민주주의인가? 이는 민주주의 이름으로 정부를 공격하게 만드는 어떤 힘의 작용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정부를 제압하는 어떤 힘이 믿는 구석이 되기 때문에 언론과 정치지대가 합법적인 이유들로 정부 공략에 나선 것이다. 이러한 불합리한 구조로부터 자국을 보호하는 일은 “따뜻한 독재”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 수 없다.

 

 

 

강력한 국가 권력으로 국민과 국가를 다양한 적들과 사회 내부 내홍의 문제들을 봉합하고 결집시켜 낼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진 정부를 의미하지 않을 수 없다. 힘이 없는 행정부나 대통령은 나라 밖으로는 외세에 휘둘리고, 나라 안으로는 교활한 정치수단이나 간사한 언론 구조들의 농간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낼 수가 없는 것이다.

 

 

 

국민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국가 안에서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국가 기반을 확보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대통령과 행정부가 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국가 행정부에 속한 모든 공무원들이 자국 국가 기반에 무조건 순종하고 복종할 수 있는 체제를 확보해야 한다.

 

 

 

먼저 이것이 이루어 진 다음에 다양하고 자유로운 외교전이 펼쳐져야 할 것이다. 내부 단속이 안 된 오합지졸로 어떻게 이 작은 나라를 강대한 나라들의 틈바구니 사이에서 살아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겠는가? 따뜻한 독재로의 체제, 여러분! 어떻게들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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