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부터는 의류 사업에도 뛰어들며 '에스에스패션'이라는 자회사도 설립하고, 1990년대 런칭한 새로운 패션 브랜드인 '카운트다운'의 광고 차원에서 김원준이라는 걸출한 신예 가수를 발굴하여 브랜드 이미지 향상에도 한몫하는 등 선전했다. 하지만 에스에스패션이 근본적으로 대한민국 시장에서의 중저가 브랜드 이미지가 너무 강했던 탓에 고급화 전략에 실패하여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이 불투명했고[3], 외환위기 이후 삼성그룹내 사업 구조조정이 실시되어 결국 제일모직에게 의류사업 부문을 넘겨주게 된다. 한창 에스에스패션을 키울 1980~1990년대에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스폰서를 했다.[4]
[3] 에스에스패션은 짐작되겠지만 삼성에서 이니셜을 따 왔다. 그러니 초기에는 SS패션이라고 했는데 이게 해외에서 문제가 되는 터라 이후에 Essess (혹은 Esses) 패션으로 표기를 바꾼다. 구조조정의 이유에 한몫한 듯하다. 참고로 www.esses.co.kr 도메인은 아직도 살아있고 제일모직 온라인 쇼핑몰로 연결된다.
[4] 그시절 월드컵 예/본선 경기를 보면 '위크엔드','라피도'라는 브랜드의 유니폼을 볼 수 있다. 라피도 브랜드는 2004년 SS311로 바뀌었다가 현재는 없어졌다
신세계가 삼성에서 빠져나간 후 "삼성이 해서 안 되는것은 없다!" 라며 '삼성물산 유통부문'으로 유통사업에 진출했는데 망했다.
[5] 할인마트로
홈플러스를 오픈하였으나 IMF당시
영국계 유통그룹
테스코와 현물출자방식으로 합작회사 삼성테스코를 설립하면서 넘겼고, 2011년 지분 정리까지 완전히 끝나면서 외국계 할인점이 되었다. 또한
백화점 부문에도 진출하여
서현역 민자역사 삼성플라자 분당점, 명동 유투존을 세우기도 했으나 명동 유투존은 2006년 폐점, 삼성플라자는
애경그룹에 인수되었다. 인터넷 쇼핑몰로 삼성몰을 오픈했으나 역시 같이 애경그룹에 매각되었고, 소규모 택배사를 인수하여 삼성HTH택배를 만들었으나 이거마저 CJ GLS(현
CJ대한통운)에 매각되었다.
[5] 삼성 쪽의 말로는 비주력 사업을 정리하고 무엇보다 삼성다운 매출이 안나온다고(...)하여 철수했다고 한다.
[6] 삼성 특유의 엔진·모터 징크스도 여기에 한 몫 했다
구포참사가 발생할 때까지만 해도 삼성건설은 삼성의 네임밸류로 먹고 사는
듣보잡 2류업체에 불과했다. 그런데
구포참사에 대한 처벌로 받은 6개월의 영업정지가 오히려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성장 계기가 되었다. 영업정지와 내핵까지 떨어진 이미지로 인해 국내 수주가 불가능했던 삼성물산은 해외로 눈을 돌렸으며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 등 해외의 대형 건설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인지도와 경험을 쌓아 초일류 건설업체로 도약하게 된다.
절대 삼성그룹 직원들 앞에서 여기를 삼성건설이라고 부르면 안된다. 회사의 역사를 보면 그렇게 부를 당위성도 아예 없지는 않으나 흑역사를 불러 일으키는
역린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에 역시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특히 여기 앞에
이력서를 낸 사람이라면 정말로 주의하자.(...) 또한 삼성그룹에서는 여기 말고도 삼성엔지니어링, 삼성중공업, 삼성에버랜드 등이 건설업을 하기 때문에, 2014년 이건희 입원 이후 교통정리가 진행중이라지만 하여튼 이거 때문이라도 회사명을 구분해서 불러주는 것이 필요하다
[12]
[12] 하지만 실제 건설부문 임직원들은 내부문서에서나 대화에서도 자사를 삼성건설로 많이 불렸다. 그것이 2010년 이후에 다시금 삼성건설이라는 명칭 사용금지 지침이 내려졌다.
2014년 들어 최악의 위기에 직면해있는데, 잠실 석촌 일대에서의
싱크홀 현상이 삼성물산 건설부문에서 맡은 지하철 공사 구간의 부실공사 때문이라는 조사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현재 건설부문 및 총괄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최치훈 사장에게도 커리어에 커다란 오점을 남길 수 있고, 오너인
이건희 회장의 병환으로 인한 부재 상황 때문에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지 의문이다. 특히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전신이
어떻게 망했는가를 생각해본다면 "지하에서의 부실시공으로 인한 지반 침하'라는 똑같은 이유로 21년만에 위기가 찾아왔다는 점에서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닐 듯 하다."는 게 대체적인 여론.
孟子曰: “舜發於?畝之中, 傅說擧於版築之間, 膠?擧於魚鹽之中, 管夷吾擧於士, 孫叔敖擧於海, 百里奚擧於市.
맹자왈 순발어견무지중 부열거어판축지간 교격거어어염지중 관이오거어사 손숙오거어해 백리해거어시
<고자 하告子 下 15장> 맹자가 말했다. “순 임금은 밭에서 일하다가 등용되었고, [은나라 왕 무정에게 발탁된] 부열은 담을 쌓다가 등용되었다. [은나라 말기의 현자인] 교격은 생선과 소금을 팔다가 등용되었고, 관중은 감옥에 갇혔다가 등용되었다. [초나라 재상] 손숙오는 바닷가에 살던 비천한 신분으로 등용되었고, 백리해는 저잣거리의 천한 신분으로 발탁되었다.
故天將降大任於是人也, 必先苦其心志, 勞其筋骨, 餓其體膚, 空乏其身, 行拂亂其
고천장강대임어시인야 필선고기심지 노기근골 아기체부 공핍기신 행불란기
所爲, 所以動心忍性, 增益其所不能. 人恒過, 然後能改; 困於心, 衡於慮, 而後作; 徵於色, 發於聲,
소위 소이동심인성 증익기소불능 인항과 연후능개 곤어심 형어려 이후작 징어색 발어성
而後喩. 入則無法家拂士, 出則無敵國外患者, 國恒亡. 然後知生於憂患而死於安樂也.”
이후유 입즉무법가불사 출즉무적국외환자 국항망 연후지생어우환이사어안락야
그러므로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임무를 내릴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고통스럽게 하고, 근육과 골격까지도 수고롭게 하며, 그의 육신도 굶주리게 하고 헐벗게 하며, 하는 일마다 어긋나게 하나니, 그것은 타고난 작고 못난 성품을 인내로써 담금질하여 하늘의 사명을 능히 감당할 만하도록 그 역량을 키워주기 위함이다. 사람들은 항상 잘못한 뒤에야 뉘우치고 고칠 줄 알며, 마음이 막히고 그 생각에 커다란 통나무가 가로지르듯 절망감이 찾아올 때 비로소 분발하며, 그 처참함이 얼굴 표정에 드러나고, 그 애절함이 목소리에 나타날 때 비로소 깨닫게 된다.
[이것은 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니] 나라 안에 법도를 지키는 세가와 임금을 보필하는 현인이 없고, 나라 밖에 대적하는 나라와 우환이 없다면, 그 나라는 [무사안일에 빠져] 언젠가는 망하고 만다. 그러니 개인이든 국가든 이런 시련을 겪은 뒤에야, 오히려 우환 속에서 살아갈 수 있고, 안락한 가운데 죽어간다는 이치를 알게 되는 것이다.”
<진심 상盡心 上 18장> 맹자가 말했다. “덕행이 뛰어나고, 지혜가 출중하며, 수완이 있고, 지모가 탁월한 사람은 항상 환난과 고난 속에서 그 자신을 단련했기 때문에 그와 같은 경지에 이른 것이다. 특히 임금에게 버림받은 신하와 어버이에게 천대받는 서자는 그 조심스러움이 늘 백척간두에 서 있듯 위태롭고, 환난이 닥칠 것을 항상 깊이 염려하기에 자연스럽게 사리에 통달해 뛰어난 인물이 많다.”
孟子曰: “人之有德慧術知者, 恒存乎?疾. 猶孤臣孼子, 其操心也危, 其慮患也深, 故達.”
맹자왈 인지유덕혜술지자 항존호진질 유고신얼자 기조심야위 기려환야심 고달
그러므로 자신에게 닥친 위기 상황에 절망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은 시공을 초월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금과옥조가 된다. 그러므로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중도에 포기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어에도 이와 유사한 표현이 있다. “Winners never quit, quitters never win(승자는 결코 중단하지 않고, 중단하는 자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
_【 세 번째 장 】어떻게 살 것인가? 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