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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무성 대표 부친, 공작 속에 묻혀버린 ‘애국자’▲◑↑ 2017-03-15 07:5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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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대표 부친, '해촌(海村) 김용주' 선생‥

공작 속에 묻혀버린 ‘애국자’[2탄]

 

“애국 운동 탓에 요시찰 인물 찍혀…헌병대까지 끌려가”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부친(父親) 해촌 김용주 선생

 

[스페셜경제=김영일 기자]

해촌(海村) 김용주 선생(1905년~1985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부친이다. 해촌 선생은 교육자이자 기업가이며 외교관이자 정치인으로서 한국사 여러 분야에서 많은 활동을 해온 인물이다. 또한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인들을 위해 사재를 털어 학교를 설립하거나 일본 자본에 맞서 조선상인회를 설립하는 등 그 누구보다 ‘애국자’적인 삶을 살았다. 하지만 친일인명사전에 실려 있는 동명이인 때문에 오해를 불러오면서 애국자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친일파라는 억울한 의혹을 받고 있다. 물론 이러한 의혹은 이미 명백한 거짓으로 밝혀졌지만 여전히 터무니없는 의혹의 여파로 일각에서는 김무성 대표와 해촌 선생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에 <스페셜경제>는 김무성 대표가 언론을 통해 밝힌 인터뷰 내용과 해촌 선생의 생전 활동자료를 통해 이 문제에 대해 상세히 짚어봤다.

 

일제강점기 시절 사재 털어 ‘영흥학교’ 설립
‘3·1운동’ 정신 이어 받아 설립한 ‘삼일상회’

 

지난 9일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최고위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의 언론사주를 겨냥해 친일행적에 대한 비난의 글을 게재했다. 정 최고위원의 게시글은 ‘친일 논란’을 일으키며 온라인 커뮤니티 등으로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김무성 대표, ‘강력 대응’ <왜>

이런 가운데 온라인상에서는 뜬금없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부친인 해촌(海村) 김용주 선생의 친일 의혹이 다시금 불거졌다. 해촌 선생의 친일 의혹은 이미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이에 대한 진위여부를 따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13년 7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김무성 대표를 ‘친일-반공-보수 세력의 총아’라고 몰아세우며 해촌 김용주 선생에 대한 친일 의혹 불을 지폈다.

김무성 대표는 이에 유시민 전 장관이 친일 행적을 근거로 제시한 대목에 대해 즉각 반박에 나섰지만 정치권과 인터넷, SNS상에서는 김무성 대표의 반박은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췄고 확인되지 않은 해촌 선생의 친일 의혹만 부각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김무성 대표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부친인 해촌 선생의 친일 의혹은 명백한 거짓임을 밝히는 동시에 해촌 선생의 애국자적 삶을 강조하면서 강력 대응에 나섰다.

지난 2013년 9월 김무성 대표는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부친의 친일행적 의혹과 관련해)지금까지는 무시하거나 관용으로 대했지만 이제는 언론중재위에 제소하거나 고소 등의 조치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당시 한겨례가 사설을 통해 해촌 선생이 친일행적을 보였다고 보도하자 김무성 대표는 ‘당시 경북도회 의원들은 조선인 농민들의 편에 서서 조선총독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반대하였으며 부친은 사재를 털어 조선인 한글교육 야학을 개설하고 일본자본에 맞서 조선상인회를 설립하는 등 애국자적 삶을 살았다’고 강조하며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을 요청했다.

결국 한겨례는 지난 2013년 10월 언론중재위 조정에 따라 <김무성 의원 부친 관련 반론 및 정정보도>를 냈다.

 

‘교육의원’이라 불린 해촌

김무성 대표의 주장대로 해촌 선생은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인들이 교육 받을 곳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우려해 경영난으로 존폐위기에 처한 영흥학교를 새롭게 설립하였다.

1936년 2월 28일자 동아일보 기사를 살펴보면 당시 포항지역 포항예수교 장로회에서 임시적인 형태로 영흥학교를 운영해 왔는데 일제의 신사참배, 일장기 계양 등의 강요와 억압에 의해 경영난을 겪자 영흥학교는 존폐위기에 처했다.

이를 지켜본 해촌 선생은 자신의 재산 절반 이상을 털어 교명과 학생들을 인수받아 사실상 영흥학교를 새로이 신설했다.

 

 

▲ 해촌 김용주 선생 포항 영흥초등학교 교장 시절

 

그러면서 환경적 제약으로 비교적 배움과 거리가 있는 여성들을 모아 부인야학을 개설해 한글을 가르쳤다. 여기에 소요되는 모든 비용은 해촌 선생이 부담했는데 당시 해촌 선생의 이런 행보가 지역민들에게 칭송을 받았다는 내용이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또한 1940년 1월 7일자 기사에 따르면 해촌 선생은 학교와 운동장 등이 협소하고 기타 불편한 점을 해결할 목적으로 2만원을 사재 출연해 영흥학교를 시내중앙에 이전 토록하면서 새로 신축했다.

 

▲ 사재 털어 영흥학교 신축(1940년 1월 7일자 동아일보-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같은 해 4월에는 포항지역에 학교가 부족한 것을 고려해 포항지역 초등교육기관 확충기성회를 조직해 포항 지역 학교 확충에 기여하였다.

이에 앞서 1938년 해촌 선생은 조선총독부의 지나친 교육 간섭과 규제로 몇 되지 않는 한국사회의 사학이 말살되고 기본적 인권이 침해됨을 지속적으로 주장하면서 당국에 일본인 교원이 아닌 한국인 교원 채용 충원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의 이러한 교육에 대한 관심과 노력 때문에 일각에서는 해촌 선생을 ‘교육의원’이라고 불렀다.

 

조선상인회 설립

더불어 해촌 선생은 경북도회의원 시절 일본상인에 밀리는 조선상인들을 위해 ‘조선상인회’를 설립했다.

해촌 선생이 도회의원 활동 당시 포항지역 조선인 80%는 자본금 100원에서 2000원 정도의 소상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는 일본인 상인들에 비해 자본금 규모 등 여타 조건이 턱 없이 미비한 수준이었다.

 

▲ 해촌 김용주 선생이 포항 지역 조선상인들을 위해 조선상인회를 설립했다는 기사(1938년 8월 18일자 동아일보-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때문에 일본인 상인과 조선인 상인간의 격차는 엄청나게 벌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이런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한 해촌 선생은 포항지역 조선인 상인들을 위해 조선상인회(포항상공번영회)를 설립했다

.

삼일상회 설립 배경

한편, 김무성 대표는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해촌 선생이 3·1운동 정신을 이어 받자는 취지에서 설립한 ‘삼일상회(三一商會)’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김무성 대표는 “부친께서는 은행원 신분으로 독서회를 만들고 야학에서 가르치다 은행에서 내침을 당했다. 그래서 세운 게 3·1운동 정신을 이어받은 ‘삼일상회’다. 일본 경찰로부터 집요한 상호변경을 압력을 받은 끝에 간판을 내려야 했다. 몸도 약한 분이 헌병대·경찰서에 수시로 끌려가는 등 요시찰 인물로 찍혔다”고 설명했다.

해촌 선생은 1905년 8월 30일 경남 함양군 함양읍 신관리 관변마을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김용주로 본관은 김해이며 호가 해촌(海村)이다. 해촌 선생은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10세에 함양보통학교에 입학했으며 1923년 부산상고를 졸업했다.

이후 해촌 선생은 포항에 있는 한 은행에 재직하면서 비밀리에 포항청년회 지육(智育)부장을 맡아 ‘독서회’를 만들고 신문화의 보급과 민족운동을 전개하는 등의 애국활동을 펼쳤다.

 

 

  ▲ 해촌 김용주 선생

 

1925년에는 포항 노동야학을 개설하여 무료로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이듬해인 1926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일본 경찰에 의해 검거돼 구금되었다.

 해촌 선생은 이 일로 인해 은행을 그만두게 되면서 1926년 10월 포항에서 철도운송으로 수산물을 위탁판매 하는 '삼일상회'를 세웠다. 삼일상회는 국내 주요 도시 곳곳에 거래처가 즐비했으며 해촌 선생은 거래처로부터 사업 수완을 인정받아 사업이 날로 번창했다.

하지만 ‘삼일(三一)’이라는 상호가 반시국적이고 불온하기 때문에 상호를 변경하지 않으면 구속시키겠다는 일본의 위협에 맞서다가 결국 삼일상회를 세운지 18년 만인 1944년 강압적으로 간판을 내리게 되었다.

 

 

▲ 삼일상회 간판을 내려야 했던 이유(1984년 2월 6일자 매일경제-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맥아더 찾아가 ‘주요문화재’ 보호 간곡 요청
해촌 선생에 대한 의혹‥“명백한 정치 공작”

 

 

조선 해운의 발전

뿐만 아니라 해촌 선생은 일본인들에게 해운산업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조선해운대책위원회’를 결성해 우리나라 해운의 자주건설과 발전을 도모하였다.

1946년 6월 15일 이와 같은 내용이 기사에 실렸는데 “삼면이 바다인 조선을 해양국으로 건설하려는 원대한 설계아래 조선해운대책위원회가 14일 시내 종로기독청년회관에서 결성되었다. 결성준비위원회 대표 김용주씨를 비롯하여 해운관계자 다수 참석한 가운데 결성식을 시작하고…(중략)이 위원회는 조선 해운의 자주건설과 급속적 발전을 도모하는 것…(생략)”이라고 동아일보는 보도했다.

 

▲ 일본에 끌려간 어선 반환 교섭을 위해 해촌 선생을 미국에 파견시켰다는 내용의 기사(1949년 8월 1일자 경향신문-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아울러 1949년 8월 1일 경향신문은 해방 무렵 일본이 한국어선 82척을 끌고 가 반환하지 않자 정부가 해당 어선 반환 교섭을 위해 조선해운 발전에 힘쓰던 해촌 선생을 미국에 파견시킨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해촌의 ‘애국심’

이 외에도 해촌 선생의 애국자적 면모를 보인 일화는 또 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UN군의 인천상륙작전계획이 워싱턴의 승인을 받은 다음날인 9월 10일. 당시 주일공사였던 해촌 선생은 맥아더 장군을 찾아갔다.

그 자리에 인천상륙작전 관계자들이 동석한 가운데 해촌 선생은 5대 궁궐과 4대문 등을 하나하나 지도에 표시해가며 우리 역사유물과 주요문화재들을 보호해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

 

▲ 맥아더 사령부 장성들과 함께한 해촌 김용주 선생

 

맥아더 측은 난색을 표하면서도 해촌 선생의 나라를 위한 마음에 감동해 인천상륙작전에 있어 서울에 대한 폭격이 진행되는 동안 덕수궁 일대와 종로 거리는 폭격 대상에서 제외시켜 소중한 문화재를 지킬 수 있었다.

해당 내용은 1975년 5월 16일자 경향신문에 실렸으며 ‘EBS 역사채널e’에서도 방영된 바 있다.

 

▲ 대한민국 주요 문화재를 지켜낸 해촌 김용주 선생 일화(EBS 역사채널e 유튜브 화면 캡쳐

 

특정세력 정치 공작

이처럼 여러 가지 정황을 모두 종합해 보면 해촌 선생은 친일파는커녕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애국자의 삶을 살았던 것을 알 수 있다.

김무성 대표는 이와 관련해 2013년 9월 26일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친일파라는 주장은 참으로 어이없는 주장”이라며 “차라리 저에게 모욕을 주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돌아가신 아버지를 끄집어내 친일의 굴레를 씌우는 일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주장”이라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김무성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일제 말에 일본이 조선의 주요 인물 3000명을 학살하는 계획을 세웠는데 아버지도 거기에 포함돼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가족들을 산중으로 피신시키고 당신께서도 몇 달 동안 도피생활을 하시다가 광복을 맞았답니다. 이런 게 친일입니까?”

이에 대해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애국자인 해촌 선생이 친일 의혹을 받게 되니 김무성 대표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 아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해촌 선생의 친일 의혹은 특정세력의 명백한 정치 공작”이라고 지적했다.

 

김무성 대표 부친, '해촌(海村) 김용주' 선생‥공작 속에 묻혀버린 ‘애국자’[2탄]

http://www.speconomy.com/news/articleView.html?idxno=50731

 

김무성 대표 부친, '해촌(海村) 김용주' 선생‥공작 속에 묻혀버린 ‘애국자’[2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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