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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경성형무소, 사라져버린 기록↓☎♠ 2017-03-30 09:2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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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형무소, 사라져 버린 기록

항일독립운동가 정용선 옹 3대 증손 정병기씨 38년째 유공자 인정 못 받아

오주섭 선임 기자

입력 2015-08-09 18: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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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악명 높았던 마포 경성형무소가 새로운 문화역사관으로 건립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8.15광복 70주년을 맞아 일제강점기 잔혹한 역사 바로 세우기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재조명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당시 이 형무소에 수감돼 옥사한 항일독립투사 자료 발굴 작업도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항일독립운동가 정용선 옹 3대 증손 정병기(58)씨는 해마다 광복절이 돌아오면 누구보다 가슴이 먹먹하다.
38년째 증조 할아버지에 대한 항일투사 기록을 찾아 독립운동가라는 증빙을 밝히려 백방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정부가 증빙 서류를 가져와야 독립유공자로 인정 해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씨의 증조할아버지 정용선 옹은 지난1928년 5월20일 경성형무소에서 옥사했다는 호적기록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정부 측으로부터 '언제 어디서 왜 형무소에 수감이 됐는지 죄명이 뭔지 조차도 모르는 것은 말 할 것도 없고 어느 법원에서 판결 선고를 받았는지 기록을 찾아와야한다'는 답만 듣고 있다.
정씨는 이에 굴하지 않고 당시 증조할아버지가 살았던 경북 봉화군에 수형인 명부 보관을 질의했다.
하지만 봉화군의 답변은 “지난1980년 제정된  ‘형의 실효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폐기 소각 됐으며 수형자 명부에는 등재돼 있지 않다”는 청천벽력 같은 답변을 받았다. 군청을 방문 확인결과 수형자색인명부 표지만 남아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표지만 남았고 내용은 모두 소각돼 버렸다.
정부가 지난1980년 전과기록의 관리와 형의 실효에 관한 기준을 정하고 전과자의 정상적인 사회복귀 보장을 목적으로 제정된 법률이 항일독립투사 후손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 ‘형의 실효 등에 관한 법률’은 지난 1980년12월18일 법률 제3281호로 제정 돼 시행되면서 이들의 발목 마저 잡고 있다.
당시 모든 기록을 정부가 모두 소각 해 버린 것이다. 서류를 태운 정부가 서류를 요구하며 숨바꼭질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정씨는 미국 기록보관소에 편지를 써 증조할아버지 기록이 남아있는지 문의했지만 이 역시 미국에는 기록이 없고 일본 도쿄 신주쿠 혼무라 이치가와 방위청 방위연구소 전산실 어디에 기록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답을 받았다.
이어 정씨는 희망을 갖고 외교통상부를 통해 자료를 요청했으나 일본 대사관측이 “어디에 쓸 자료며 왜 필요한지라”는 정용선 옹의 자세한 기록을 요구하는 어처구니 없는 반문을 해왔다. 
 항일투사 정용선 옹은 1983년12월17일 경북 봉화군 춘양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1900년부터 1916년까지 고향인 봉화를 중심으로 의성, 울진, 영덕, 영주 등을 중심으로 군자금 모금운동을 벌였다.  
 그는 군자금을 모으기 위해 친일파 집을 털기도 하고 파출소를 습격했다.
 정씨의  증조부는 일제 강점기 독립군 군자금모금 활동 중 1916년 이후 행방불명 됐다.
10여년이 지난 1928년 경성형무소에서 옥사했다는 통지서 한통만이 날아왔다.
  1차 서대문형무소로 입감 후 장기수(일제잔학 심문에 불응 동지들 함구)로 분류되어 2차로 이감된 마포 경성형무소에서 병사(잔학고문, 강제노역: 붉은벽돌제조)했다는 소리와 서류상 옥고병사 자료만 확보했다.
그 당시 활약상을 친인척이나 주변인물을 통해 군자금 모금운동을 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지만 법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가 군자금을 모아 전달한  근대문화유산으로 남아있는 봉화군 척곡교회에도 증빙자료 조차 남아 있지 않다.
이는 당시 군자금모금을 하는 항일투사들은 별명이나 가명을 썼기 때문에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조직의 서열이 높은 몇몇 만이 알 뿐이다.
정용선 옹이 독립운동을 했다고 주장하는 여러 주민들에 의하면, "항일애국 독립군 군자금모금 책 임무를 수행하면서 독립운동"을 펼쳐왔다고 구전으로 전해 듣고 있다.
또 “그 특수 비밀임무 수행 상 그 흔적과 최근 일본 측은 일제 침략사 마저 사기날조 시키는 시점에서 그의 행적자료 찾는 길은 막막할 뿐이다.
3대 증손 정씨는 "정용선 증조부는 한민족 재산을 수탈한 일본재산가나 친일파 재산가 집을 털거나 살해 또는 피해를 주고 탈출하고, 탈취한 재산을 독립군자금으로 조달키위해 중국 간도땅 독립군 운반책에게 넘겨주는 특수임무 수행도 했다“고 주장했다.
정씨"당시 일제의 삼엄한 감시망이 좁혀져 이를 피하기 위해 여러차례 다른 이름으로도 변경(가명사용)하고 다른 호적에 올린 경우도 있었다며 정용선의 처인 증조모 역시 상상도 못하는 모진 시련을 겪었고, 조부도 마찬가지였다"고 설명했다.
"심지어는 군자금을 성공적으로 간도 땅 독립군에게 넘겨주기 위해 중간전달자들의 얼굴도 모르게 하는 체제였다"며“그 이유는, 만일 일본군에 잡히면 잔학한 심문에 못견뎌 동지들을 불면 모조리 잡혀 죽기 때문에 그랬다"고 말을 이었다.
정씨에따르면 "예를 들면, 어느 달 초생 달이 뜨면 어디지역 큰 나무 밑에 땅을 파고 독립운동용 군자금을 쥐도 새도 모르게 땅속에 묻고 무사히 탈출하면, 아무도 모르는 다음 운반책이 파내서 간도 땅 독립군에 전달하는 방식이라고 선조들에게서 들었다"고 증언했다.
"3대증조부가 체포 된 후 저희 독립운동가 집안은 파산되어 남의 집 머슴살이와 그 고통은 조부께서 목숨 부지 해 온 것 만으로도 다행이었다"며 한숨을 지었다.
정씨는“그동안 돈 때문이라는 오해를 많이 받았는데 증조부가 항일투사로 인정이 돼도 손자에게는 혜택이 없다”며“다만 바른 역사를 세우기기위해 이렇게 노력 하는 것이라”고 말을 맺었다.
경성감옥의 문화역사관 건립에대해 정병기씨는 “모진고문과 탄압 그리고 굶주림, 붉은 벽돌 생산하는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 병사, 그래도 독립의지 지켜낸 의지와 투지 그리고 애국정신을 교훈 삼아야 할 것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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