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김일성(金日成)의 위대한 항일공적으로 선전되는 보천보 사건은 1937년 6월 4일밤 10시경에 일어났다. 그러나 보천보 사건을 일으킨 실제의 김일성은 5개월 후 사살(射殺)된 것이 확실하므로 북한 김일성은 가짜이다. 하지만 종북 세력이 다수를 점령한 남한 역사학계에서는 이런 수많은 보천보 김일성 사살 기록도 무시하고, 북한의 주장을 답습하며 김일성이 진짜가 맞다고 우긴다.
보천보 김일성(金日成) 1937년 11월 13일 피살, 보도일자 11월 18일
쇼와(昭和) 12년 = 1937년 [昭和 연도에 1925를 더하면 서기 연도가 됨.]
언론에 보도된 사망한 김일성의 신원은 함경남도 출신으로 당시 36세(1901년생)였으며, 모스크바 공산대학(共産大學) 출신이라고 하였으니, 1912년 평양 출생의 북한 김일성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아래에 지금까지 발견된 보천보 김일성 사살과 관련한 당시 언론 보도와 기록들을 모두 열거한다. 종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것들이 많다.
共匪 金日成 被殺 / 十三日 滿洲國 討伐軍에
매일신보 1937-11-18 3면 2단
十七日 朝鮮軍當局談 == 김일성비(金日成匪) 일파는 일즉 압녹강(鴨綠江) 대안 장백무송현(長白撫松縣)에 반거하고 『콤민테룬』 사상하에 소재 주민에 대하야 공산주의(共産主義)를 고취하고 반만항일(反滿抗日)에 노력하며 또는 살인약탈을 함부로하야 주민을 괴롭게하며 엇던 때에는 일만군(日滿軍)에 대한 부정책동을하야 만주국 치안(治安)을 방해하고 잇던 중이엿는데 정보에 의하면 지난 十三일 만군토비대(滿軍討匪隊)가 김일성의 소재를 탐지하고 공격하야 격전 五시간만에 드듸여 목을 비고 개가를 올리엿다한다. 사실 그러타하면은 오래 동안 고민을 당한 주민들과 조선군 당국의 질거워함은 물논 만주토비대의 고심과 노력에 대하야 경의를 표하야 마지안는 바이다.
金日成 所經歷
밀림(密林)의 영웅이라고 하야 동변도(東邊道)를 호령하던 김일성(金日成)이가 필경 피살의 최후를 맛치엿다함은 긔보(旣報)한 바이어니와 그는 도대체 어떤한 인물인가? 어떤 사람은 평남(平南) 출생이라고도 하고 혹은 함남(咸南) 출신이라고도 하야 도저히 알수는 업는터이나 그가 어렷슬 때에 그의 아버지를 따러 고국을 떠나 동변도(東邊道)에 근거를 두고 살다가 ○○혁명운동을 이르키여 그의 아버지는 수령이 되고 자긔는 부하가 되어 활약을 거듭하고 잇섯는데 그 운동이 대안(對岸)에 확대하여짐에따러 적색마(赤色魔)가 배후에 출현하야 드듸여 공산사상에 공명하게 되엿다. 이 사상에 물든 김일성은 十九세에 인민전선(人民戰線)의 『메카』 막사과(莫斯科)에 잠입하야 十년동안을 잇스면서 공산대학(共産大學)을 맛치고 다시 적위군(赤衛軍)에 입대하야 반일(反日) 운동의 실천자가 되엇다. 그리하야 만주(滿洲) 사변이 발생하자 동변도(東邊道)로 돌라와서 비적단(匪賊團)에 가입하야 반만항일(反滿抗日)군을 이르켜 국경을 시끄럽게하던 터인데 금년 봄에 함남 국경을 습격하야 국경 제二선 보천보(普天堡)를 습격하야 혜산진(惠山鎭) 서원의 수명을 히생시킨 일도 잇섯다.
막사과(莫斯科) : 모스크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