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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태복음 21:28~32, 원영한문, 한글 성경이 서로 다른 이유※☞◇ 2017-04-12 00: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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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1:28~32, 원영한문과 한글 성경 기술 내용이 서로 다른 이유에 대해서


작성자/ 김종신 선교사

 

- 시작하는 글

- 마태복음의 21:28~32절의 두 아들 비유, 어느 성경이 옳게 번 

  역된 내용인가?

- 사본과 성경 정경형성 역사의 대략적 고찰

- 처음부터 신약시대를 부정하는 “육신적 유대인들”의 힘의 작용

- 유대인들이 규정하는 3 세기 교회 기반 문제

- 맺는 글 

 

 

 

시작하는 글

 

 

너무 오랜만에 귀한 분을 만나게 되었다. 1차 중국 선교를 마치고 그 곳에서 얻은 아내와 함께 고국으로 돌아 온 직후에 소개를 받아 알게 된 분이다.

 

 

사춘기를 너무 격렬한 갈등으로 어머니와 심하게 부딪혔다. 하나님의 섭리는 한 분 전도사님을 보내심으로써 그 질풍노도의 과정에서 구원을 받게 하셨다. 하나님은 이 분의 역할을 통해서 문제가 많았던 나를 승화 되게 해 주셨고, 이 분이 가슴에 크게 자리 잡게 되면서 지도자의 중요성을 크게 깨닫게 하셨다.

 

 

이 때의 회복은 오히려 어머니의 신앙 교육이 감사가 되게 하여 오늘에 이르게 하였다고 본다. 이때부터 하나님의 개입이 어떤 의미인가를 알게 해 주신 순간이었던 것이다. 참으로 교회 지도자들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 대한 깨달음으로 잘 인도하는 지도자 말이다.

 

 

주 안에서 마음의 스승이 되어버린 목사님을 선교 1차 과정을 마치고 아내를 얻어서 돌아왔을 때, 십 수 년 만에 회우(會遇)를 하도록 해 주셨던 것이다. 이 때 중국 문서 선교에 있어서 매우 귀한 한 분을 소개 받아 알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이어오며 특히 중국 선교의 한 중 대조 성경에 도움을 받도록 하신 귀한 분이었다. 한 동안 뵙지 못하다 얼마 전 다시 재회를 하게 되었다. 오랜 만에 만나서 그런지, 아니면 중국 선교와 관계해서 맺혔던 부분이 많아서 그랬던지 내 이야기만 많이 한 것 빼고는 귀한 교제를 갖게 되었다.

 

 

많은 결례가 된 것은 아닌가 싶지만 대화 중에 너무 충격적인 사실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 던 중 자연스럽게 중국어 문제가 나왔고, 이어서 성경 번역상의 문제를 나누다 한글 성경 번역상의 오류 문제로 이어졌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글본, 영어본, 중국어본, 원어로 된 성경 내용들을 대조하다보면 종종 우리 한국어 번역에 있어서 문제점을 발견하게 될 때가 많았다. 통일 성경이 나온 후로 더 그 같은 문제가 많이 발견되는 추세였다. 물론 그럴 때마다 체크 해 두지 못한 것이 오늘과 같은 때는 정말 후회가 된다.

 

 

모든 것을 제처 두고서라도 번역상의 오류가 발견 되었다면 그것을 성도들에게 알려서 바르게 알도록 해 주어야 하는데 우리 한국 교회 풍토가 현실과 직결되는 내용들이 아니면 터부시하는 경향성이 강한 환경 때문에 정작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설교 차원에서 다루어 왔을 뿐이다.

 

 

그런데 오늘 뜻하지 않게 너무 놀랄 수밖에 없는 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내가 크게 놀랐던 것은 오래 전부터 우려가 되어 왔던 그 같은 현상이 직접 눈앞에서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이 같은 사실들을 미리 글로써 다루었던 것이다.

 

 

현재 시리즈로 다루고 있는 선교적인 관점에서 기술해가고 있는 교회관의 글에서도 밝히고 있는 범위의 내용이었기 때문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본격적으로 성경의 내용들을 바꾸어가기 시작하는 시발점을 접했기 때문에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제 이 부분을 소상하게 다루고자 한다. 앞으로 더욱 본격적으로 이 문제들이 우리 한국교회를 시험할 것이기 때문에 밝히지 않을 수가 없어서 부족하지만 거론해 보고자 한다. 이것이 작은 일성의 소리가 되어 우리 한국교회를 깨울 수 있기를 기도할 뿐이다.

 

 

 

마태복음의 21:28~32절의 두 아들 비유, 어느 성경이 옳 게 번역 된 내용인가?

 

 

며칠 전의 만남을 통해서 들은 이 본문 내용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충격이었다. 일직히 예감을 해 왔지만 실제로 접하다보니 그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기존의 개념이 다르게 기술되었던 내용 차원이 아니라 아예원본 내용과 한글 성경 내용이 완전히 뒤바뀌어서 전달되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것은 마태복음의 21:28~32절의 두 아들 비유이다.

 

 

우리 한국 교회는 지금까지 줄 곧 둘째 아들을 주인공으로 해서 해석을 해 왔다. 즉, 첫 째 아들이 ‘아니고’, 둘 째 아들이 ‘예스’였던 것이다. 게다가 이를 확대해석하여 첫째는 유대인으로 둘째는 이방인으로 연결해서 영적으로 해석을 하기까지 해 왔다. 이는 영적으로 교회 전통적인 해석 방법으로 신약 성경 전체 맥락의 핵심으로 연결 되는 문제가 아닌가?

 

 

물론 본문의 중점은 세리와 창기가 요한의 가르침을 받고 순종하였기 때문에 바로 “싫어요” 했던 둘 째 아들이 “뉘우치고 순종했다”는 맥락으로 동일시하는 것이 해석의 정론이다. 헌데 이것이 잘못 번역 된 것이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그러니 충격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조금 이성을 가다듬고 이전에 성경이 전수 되어 온 역사를 연구했을 때를 조금만 생각 했다면 바로 그렇게 된 이유에 대해서 충분한 설명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헬라어 성경과 영어본, 중국어 본 모두가 첫째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하며 스마트 폰으로 들이미니까 황망(慌忙)하고 당혹(當惑)감으로 ‘얼른 집에 가서 확인 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가득 찼던 것이다.

 

 

첫째가 선한 아들, 즉 유대인들이 순종을 한 선한 대상들로 기술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성경은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라고 명시를 했다. 하지만 영적으로 상징성은 유대인들로 본다. 왜, 유대인들이 줄기차게 4복음서 중에서 마태복음을 제외한 나머지와 바울 서신 전부를 극렬하게 부정하며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바로 본문 같은 내용들 때문이었다.

 

 

신약 성경은 첫째 아들과 둘 째 아들로 구분해서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아니한 유대인들(고전 10장에서는 “육신적 이스라엘”로 묘사하고 있다)을 첫 째 아들로, 구약에서는 언약 백성에 속하지 않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양자가 된 이방인들을 둘 째 아들로 비유하여 다룬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비유로 진리와 천국 복음을 설명하기를 많은 부분에서 할당을 하여 배설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가지고 오신 천국 복음의 비밀이었다. 이미 구약 이사야와 미가서를 비롯한 다수의 선지서와 예언서들에서 이 같은 복음의 비밀을 미리 예고해 놓으셨다.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성취된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 마태복음 21장의 내용이 서로 다르게 기술되어 있단 말인가? 집에 돌아와서 헬라어는 물론 영문과 중국어 성경 등, 모두를 펴서 대조를 해보니 실제로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한국 성경이 왜곡 번역을 했고, 그것이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주도 되었단 말인가? 생각을 하게 되니 가슴이 탁탁 막히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딘가 분명히 함정이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일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신약성경 전체의 맥락은 둘째 아들에게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고 이는 로마서 11장의 원가지와 곁가지 문제와도 연결되는 말씀인데 첫 째 아들이라면 맞지 않은 맥락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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