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매국매족 방씨족벌신문 조선일보의 뿌리(222) 작성일 2001일3월27일
조선일보 80년...史?-6 방응모2-
조선일보 80년...史? -6 방응모2-
2.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리다-호가호위(狐假虎威)
'조선일보 80년史'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방응모와 고당 조만식선생, 만해 한용운선생, 그리고 백범 김구선생 등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이 분들과의 관계를 부각시켜 방응모의 친일행각을 은폐시키려는 얄팍한 수작일텐데, 문제는 이 사람들이 거기서 더 나가 아예 방응모를 그 분들과 거의 같은 반열에 올려 놓는다는 겁니다.
뭐 뚫린 입이니까, 제 입가지고 무슨 말은 못하겠습니까만 한가지 신기한 사실이 눈에 띄더군요. 정작 당사자인 고당이나 만해, 또 백범같은 분들이 방응모에 대해 한 말, 즉 "방응모라는 인물이 이러저러하더라" 같은 내용은 없고 방일영 고문의 말이나 방응모의 전기인 '계초 방응모'의 내용을 인용한 '자기식구'들의 말만 잔뜩 늘어 놓았더란 말입니다.
방응모가 그렇게 훌륭한 인물이었다면 그 분들이 다른 사람에게 한 말이나 자신들의 글에서 당연히 한번쯤은 거론을 했겠지요. 같은 자랑이라도 제가 하기 보다는 상대가 추켜줘야 폼이 나는 법, 조선일보도 그런걸 실어놓고 자랑을 하는게 훨씬 보기좋지 않겠습니까.
조선일보가 어떤 신문입니까? 필요하다면 어디서(남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데서) 용하게 자기들 입맛에 맞는 기사만 찾아서 인용하는 신문 아닙니까. 그런데 왜, 어째서, 뭣때매, why 이 부분은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뭐 그 답이야 간단한 거지요. 그 분들이 방응모에 대해 언급한게 아예 없으니까 못한 겁니다.
그렇다면 그 분들이 '싸가지 없이(!)' 그 훌륭한 민족지도자 방응모에 대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요? 그 분들끼리 '작당'을 해서 방응모를 왕따시킨 걸까요? 요거 참 궁금한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지금부터 그 궁금증을 한번 풀어봅시다.
김구와 방응모
'조선일보 80년史'에는 또 이런 까무라 칠 귀절이 나옵니다.
[계초의 재산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계초(방응모)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金九가 귀국하자 박학전 목사를 통해 생활비를 보냈다...김구와 방응모, 두 선각자는 언제 만났을까. 일제하에서는 그런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백범과 계초는 광복 후 그렇게 가까울 수가 없었다. 계초家에는 그 많던 재산을 계초가 은밀히 임시정부 지원금으로 보냈다는 이야기가 조용하게 흘러다니고 있다.(8-4-2)]
말타면 견마잡히고 싶은게 인간이라더군요. 이 사람들 민족주의자 몇 분의 이름을 팔아 재미를 좀 보더니 이제는 아예 김구선생에게 생활비를 보내고 임시정부에 재산을 바쳤다는 얘기까지 하네요. 참 보자보자하니 이제 별 짓을 다 합니다.
- 김구선생에게 생활비를?
리영희 선생님이 김구선생을 기리는 글의 일부입니다.
[김구 선생이 환국한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경교장에 전화가 걸려 왔다. 선우 비서가 받으니 유명한 친일 재벌 ㅂ씨의 비서였다. ㅂ씨의 비서는 ㅂ씨가 김구 선생을 숙소로 찾아 뵙고 싶어 한다는 뜻을 전하면서 선생의 허락을 요청하였다. 선우 비서가 선생에게 그 뜻을 전하자 선생은 한마디로 거절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잠시 뒤에 ㅂ씨는 승용차를 타고 경교장 정문에 나타났다. 안내하고 들어온 비서의 손에는 녹색 보따리가 들려 있었다. 선우 비서가 선생에게 아뢰자 역시 돌려 보내라는 명령을 했다. 그래도 막무가내로 간청하니 선생이 못 이겨 허락하였다. 집안에 들어온 ㅂ씨는 온갖 아첨 끝에 비서가 들고 온 보따리를 풀어 놓고 정치 자금으로 헌납하려 하니 받아 달라고 청원했다. 지폐로 삼백만원이었다고 한다. 그때로서는 거액이었다. 그것을 본 김구 선생은 낯이 붉어지더니 대갈일성했다.
"나를 왜놈으로 착각하는가! 친일파의 근성을 바로잡지 못하거든 썩 물러 가시오!"
ㅂ씨는 비서로 하여금 돈보따리를 챙겨들게 하여 총총히 문밖으로 사라졌다.]
이 글에 등장하는 ㅂ씨가 방응모인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다만 이런 김구선생이 방응모의 생활비를 받을 리가 없다는 얘깁니다.
- 조선일보의 고백
하긴 자기네 입으로도 이렇게 실토(?)를 하긴 합니다.
[1961년 12월 22일자 조선일보 사보에는 최용진 당시 부사장이 ‘金九 선생’을 회고하는 글이 실렸다. 金九의 얼굴사진과 함께 ‘올바른 춘추필법을……한천이면 생각나는 金九 先生의 충고’라는 제목으로 실린 이 글은 金九를 존경했던 방응모의 마음과 조선일보에 거는 金九의 기대를 잔잔히 전해준다.
...一九四八年 어느 날 아침이었다...나는 계초(방응모) 先生을 대신하여 양복점 주인을 데리고 경교장으로 白凡 金九 先生을 방문하였다. 수일전에 白凡 先生은 불쌍한 고아들을 同情하여 단 한 벌밖에 없는 외투를 팔았다는 기사를 보고 느낀 바 있어서 외투 치수를 재려고 방문한 것이다.
先生에게 간단히 來意를 말하였더니 先生은 한참 있다가 “고맙습니다.... 그러나...方先生에게 나의 심정을 잘 전달하여 주시기를 부탁합니다”하면서 완곡히 사절하였다.
나는 先生의 승락을 얻으려고 재삼 요청하였다. 그러나 先生은 그말에는 一切 언급치 아니하고 한참 침묵하다가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였다.
“...우리나라 작금 형편은 선진국의 신문경영과는 사정이 다르므로 言論人들의 책임과 신문사업의 정신은 진실로 소중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신문의 소망과 위엄을 높이는 데 따라 민중은 암야에 燈불을 지향하는 것과 같이 환영할 것입니다. 그러하자면 新聞의 윤리와 정확성을 고양시켜야 할 것입니다...나라가 바로되고 民族이 발전하려면 불의를 꺾고 의인을 확호하며 숭상하는 민족정기를 찾아야 합니다....”....세모한천에 누내릴 적마다 애국자의 충언이 머리에 떠오른다.](9-5-8)
물론 조선일보의 부사장이 자기네 신문을 자랑하려고 쓴 글이니 내용을 그대로 믿기도 어렵겠고 더구나 십여년이나 지난후 쓴 글이니 천상 글의 행간을 읽어야겠지요. 간단히 말한다면, 방응모가 외투를 하나 해 주려고 사람을 보냈는데 김구선생이 거절을 하고 오히려 제대로 된 신문이 되라고 충고를 하더라는 얘깁니다.
이렇게 외투 한벌도 함부로 얻어입지 않고 오히려 충고까지 해서 돌려보낸 백범이 방응모가 보낸 생활비를 받았다니, 이게 믿겨지는 얘깁니까?
- 임시정부에 재산을?
이건 뭐 길게 얘기할 필요도 없을것 같군요. 백범일지를 비롯 임시정부의 어느 누구도, 또 해방 후 독립운동사를 연구한 어느 학자도 그런 이야기를 한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뭐 딴 건 다 그만 두더라도 당사자인 방응모 자신도 그런 얘기는 한 적이 없으니 말입니다. 개 풀뜯어 먹는 소리라는건 이런때 쓰는 말이겠죠.
아 참, 얘들이 계초의 재산이 모두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구 하네요. 이거 말 나온 김에 없어진 조선일보 재산이나 찾아 줘야겠군요. 자, 방응모가 일제에 고사포도 사주고 비행기 만드는 회사에도 간여하고 한건 다 아는 사실입니다. 어디 고사포나 비행기 뿐이었겠슴니까? 뭐 현금도 좀 바쳤겠지요. 그러니까 아마 조선총독부나 일본 정부의 당시 기록을 잘 찾아보면 조선일보의 '없어진 재산'이 '뿅!'하고 튀어나오지 않을까요.
사정이 이러니 그 분들이 방응모라는 인간에 대해서 무슨 얘기를 할게 있었겠습니까. 욕이나 안한 것 만도 다행으로 생각해야겠지요.
마지막으로 한마디. 이 사람들이 만해나 백범, 또 벽초나 도산 등 민족지도자들과 방응모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가장 강조하는게 뭔지 아십니까? 바로 돈얘기입니다. 집을 지어줬네, 생활비를 보냈네, 병원비를 보태줬네, 옷을 해주려했네, 심지어 임시정부에 재산을 보냈네.....
아니, 어차피 거짓말인데 기왕이면 좀 뽀다구나는 얘기를 해야 하는것 아닐까요? '그분들과 민족과 나라를 위해 걱정을 하고 밤새워 울분을 토로했다더라', 뭐 이런 얘기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얘기는 별로 없고 그저 돈을 보냈다는 얘기만 줄창 해 대는 겁니다. 하기야 돈 말고는 별로 내세울게 없기도 할테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 천박함이라니....
(자료출처= 안?조선 우리모두 홈페이지 http://neo.urimodu.com/index.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