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번 날,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는 것은 제 몫입니다. 아이들을 깨워서 씻으라 하고, 대충 가벼운 아침 챙겨 주고,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에 갑니다. 지원이가 마침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간다고 합니다. 자기 절친이 전학가는 날이라, 일찍부터 학교에 같이 있고 싶다고 합니다.
지원이를 데려다 주고 늑장을 피우는 지호를 다시 학교로 데리고 가는 길, 앞에 가던 노란 버스가 비상등을 깜빡거리면서 멈춰 섭니다. 그리고 그 바로 뒤를 따라가던 저는 물론, 건너편 차선에서 오던 차들까지 모두 일단 정지 모드로 들어갑니다. 미국에서 말하는 '만 차의 제왕', 스쿨버스가 정차한 겁니다.
스쿨버스가 정차하면 하이웨이가 아닌 이상 양쪽 차선의 모든 차는 정지해야 합니다. 등하교길의 학생들이 모두 승차하거나 하차할 때까지. 만일 스쿨버스가 정차했는데도 차를 계속 운행해 버스를 지나칠 경우, 그 벌금은 최소 몇 백 달러입니다. 게다가 요즘은 스쿨버스들에 카메라까지도 달아 놓아서, 차 번호가 그대로 녹화되기 때문에 위반 운전자는 벌금 폭탄을 맞을 수 있습니다.
꼭 이런 이유에서가 아니라도, 애초에 운전을 배울 때부터 스쿨버스, 경광등을 켠 경찰차나 구급차, 소방차가 지나갈 경우엔 반드시 갓길에 세우도록 교육받는것이 여기의 문화입니다.
가끔 한국에서 비상 차량을 뒤따라 주행하다가 사고를 내는 얌체 운전자들의 이야길 많이 듣는데, 여기서 그랬다간 당장 수갑찰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운전을 하지 못하면 어디 나가기가 정말 불편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운전하는 것을 권리(right)가 아니라 특권(privilege)으로 인식하고 있는 이곳에서 운전자의 책임은 엄청나게 강조됩니다.
스쿨버스 정차 관련 법규 위반시 벌금 액수보다 더 비싼 건 아마 음주운전 정도일 겁니다. 그리고 비슷비슷한 액수로 책정된 것이 장애인 주차구역에 일반 차량이 주차했을 때 정도. 그리고 이건 봐 주지도 않습니다. 과속 티켓 같은 건 법원에서 벌금을 깎아 볼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스쿨버스나 장애인구역 주차위반 등의 티켓을 받고 벌금 좀 깎아 보겠다고 법원에 날짜 잡아 갔다가 판사로부터 핀잔만 받고 그대로 벌금 다 물어내는 경우를 꽤 많이 봤습니다.
이는 이쪽 문화에 녹아 있는 약자에 대한 배려 때문입니다. 물론 이를 깨닫게 될 때까지 수많은 목숨들이 죽었고, 셀 수 없는 불평등하고 몰지각한 일들이 있었고, 여기에 대한 속 깊은 반성과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에 지금의 미국적인 문화라는 게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렇다고 해서 미국 사회가 다른 서구 사회보다 평등하고 배려가 강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사회적 약자는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컨센서스는 분명히 갖춰졌다는 것이지요.
적어도 미국이 지금까지 몇십년을 신자유주의의 물결 아래서 정글로 변해왔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던 배경엔 이들의 패권주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라는 컨센서스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것마저 무너졌을 때, 미국의 민중들도 결국은 그들의 분노를 극적인 방식으로 표출했습니다. 흔히 LA에서 1992년 4월 29일에 일어난 폭동을 인종폭동이라고들 생각하지만, 이것은 사회적 약자들의 불만의 폭발이었습니다. 가장 최근 발표된 이 사건에 대한 연구 자료들에서는 이것을 '민중 항쟁 People's Uprising' 으로까지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발적이고 내재된 약자에 대한 배려만으로는 미국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미국 사회의 불안을 달랠 수 없을 지경이 됐습니다. 지금 미국에서 불고 있는 버니 샌더스 열풍은 바로 이 지점을 정확히 가격하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는 다른 정치가들이 이야기하지 않았던, 미국의 진짜 아픈 부분을 드러내 이야기했습니다. 권력을 가지고 있는 금융자본들의 개혁을 이야기하고, 잘못된 세금 정책을 이야기했고, 너무나 비싼 대학등록금과 의료비를 개혁하기 위한 본질적인 방법이 부자들에 대한 증세라고 말했습니다. 하긴 미국은 레이건 이후 계속해 부자들의 세율을 낮춰 왔습니다.
한때 미국이 '노인의 천국'이라고까지 불리울 수 있었던것은 바로 공평한 조세 제도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금융자본의 거의 농간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행태들을 통해 왜곡됐고, 미국의 일반 민중들이 그 불평등으로 인한 손해를 떠 안아야 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것들이 결국 미국 국내 소비를 위축시켰고, 그것을 불식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미국은 계속해 주식 조작을 통한 거품 경제를 통해 여기서 소비를 유지시키거나, 혹은 해외에서 소비재를 터무니없이 싼 가격으로 들여와 소비를 유지시키거나, 가장 끔찍하게는 전쟁을 일으켜 이를 통해 정부 재정을 뿌리는 식의 해법을 써 왔고, 여기서 발생하는 적자들은 국민들에게 마땅히 돌아가야 할 복지를 줄이는 식으로 부담을 안겨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젠 이것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 될 수 없음을, 버니 샌더스는 명확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어제 미시간에서 모든 여론조사기관들의 예상을 뒤엎고 힐러리 클린턴에 승리를 거둠으로서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고, 동시에 지금 시대의 미국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드러내 보였습니다. 힐러리는 이 패배로 인해 대세론에 금이 가 버렸습니다.
물론 버니가 대통령이 될 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그는 힐러리 클린턴의 정책을 훨씬 왼쪽으로 끌어오는 데 기여했고, 심지어는 월가 개혁의 약속까지도 받아 냈습니다. Enough is Enough! 지금 미국 사람들이 가진 생각을 말하자면 아마 이럴 겁니다. 심지어는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조차도 사실은 미국의 기존 정치권력들이 보여준 행태에 질려 있기 때문에 그를 지지하는 것일 테구요. 물론 최근에 SNL 등 미국 유수의 코미디 프로그램들을 보고 있으면 트럼프에 대한 조롱으로 넘치고 있긴 합니다만.
노란색 스쿨버스 뒤에 천천히 제 차를 제동시키면서, 저는 바로 여기서 미국의 힘을 봅니다. 그리고 사회가 만들어 낸 컨센서스를 통해, 이제 다시 미국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봅니다. 한국의 정치를 보면 갑갑하고 답답하지만, 적어도 저는 미국 정치를 보면서 그 스트레스를 조금씩 씻어내고 있습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