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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등가(等價)의 법칙★◈ 2017-05-22 06:2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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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가等價의 법칙, 하나를 얻기위해서 얻을 것과 같은 값을 가진 하나를 지불해야 한다. 즉 내가 가진 하나를 내놓아야 얻고자 하는 같은 값의 것을 하나를 얻을 수 있다. 세상에 공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철저하게 가르치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 복음원리다. 내가 뭔가에 유익을 얻었다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값이 내가 인식하던지 인식하지 못하든지 무엇을 통해서든지 지불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질적인 것을 받았다면 정신적인 짐을 지게되고 정신적인 것을 받았다면 물적인 짐을 지게 되어 있다. 그것을 알지 못하거나 모르는 척하는 것이 죄며, 그 원리를 알아서 가능한한 남에게 짐을 지우거나 남으로 인해 짐을 지는 것을 피하는 것이 자기존엄을 지키며 생의 자유를 향유하는 방법이다. 예수가 인간관계를 단촐하게 하라는 가르침을 주신 이유가 너와 나의 관계망이 복잡해질 수록 짐을 지우거나 짐을 지는 일이 필연으로 생기기 때문이다. 출가를 하는 이유가 이런 짐 혹은 카르마를 최소화하기위한 전략일 터.

 

 

인간관계를 맺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살펴보면 가볍게 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에 순종하게 된다.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정보를 얻기 위한 관계라는 것이다. 

 

 

 

내가 필요한 정보를 얻기위하여 인간관계망을 작동시키는 것이고 정보를 얻으려 하는 것은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을 아는 것이 영생이지만 사람들은 이 사실을 그대로 긍정하기보다 인간관계를 미화하기를 좋아한다. 무언가 깊은 무엇을 위한 관계인듯이 말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환상을 만들게되면 위선과 헛치례가 필연적으로 생긴다. 환상은 거짓이기 때문이다. 삶이 오늘 무언가를 득을 보았다면 그 득得에 따른 댓가가 반드시 무엇으로든 지불된다는 것. 이게 우리 선인들이 삶이란 게 절대로 공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 만들어 낸 품앗이의 문화다.

 

 

 

살펴보면 모든게 거래다. 등가의 원리로...나는 그렇게 사람과의 관계를 본다. 그래서 같은 값으로 거래를 할 수 있는 인연을 찾고 정보를 거래하고 의식주를 충족시키면서 산다. 도반이란 같은 값으로 같은 정보를 주고 받으면서 자기의 품질과 품위를 높여가는 관계를 말한다. 소리수련은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쌍방같은 소리값으로 조율이 되도록 하는 거래다. 해서 이 거래는 서로의 만족도가 같다. 문자로 제공되는 정보는 같은 문장으로 제시되지만 받아들이는 이의 관점에따라 달라지는 것이지만...  

 

 

 

생명을 내놓으면 생명이, 사망을 내놓으면 사망이 기회비용이 되는 것이라고... 유한한 생명을 내놓아 유한에 유한을 더해가면서 무한한 생명을 얻고 무한한 사망(무지)을 내놓아 유한한 사망으로 바꾸는 거래법이 포도나무에 접붙임이라고 설명한 등가의 법칙이고 접붙이는 방법이 복음이다. 접붙임이 가능하려면 본 가지에서 잘려짐이 필요하고 접붙임을 할 나무도 피를 열고 속살을 갈라 접붙으려는 나무를 받아 들일 곳을 내어야 한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놓고 다양한 해석을 이끌어낼 수 있겠지만 나는 예수가 접붙임하는 원리를 몸으로 본을 보인 것이라 생각한다. 十+ 人= 木   

 

 

 

해서 생명나무에 접붙이면 생명의 부활로, 선악나무 즉 사망나무에 접붙이면 사망의 부사열매를 얻게 된다. 로마서에서 시작하여 계시록까지 독파하고 요한복음을 읽고, 마태복음, 지금은 마가복음과 누가 사도행전을 독경하면 17일에 시작한 신약독경을 21일 어제 5일프로젝트로 마쳤다. 독경을 하면서 일본어성경 히브리서를 사경하는 작업도 한 시간 혹은 두시간 정도 같이 하면서 한자와 일본어 낱말을 익히는 공부와 일본어성경의 해석은 한글성경과 어떤 뉘앙스의 차이가 있는가를 비교해 본다. 일본어 성경을 오사카에 갔을 때 구입을 했는데 잔잔한 글자를 보면서 이 책을 내가 활용하기는 할 수 있을까 하면서도 그래도 사야겠다는 당김에 이끌려 사왔는데 익숙한 한글을 딛고 이제는 한자와 병행된 일본어 성경을 마주하게 된 셈이다. 한자병행된 성경은 찾아보기 힘들어진 한국의 토양에서 일본 방문을 하고 제일 잘한 일이 성경을 사온 일일까...  

 

 

 

이번 독경은 그간 내 믿음의 성장에 따른 신유은사가 어떻게 작동되는가의 원리를 다시 한번 검토하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복음원리는 등가법칙, 접붙임으로 운용되는 것이라면 신유은사는 접붙임 후에 접붙음으로 나타나는 덤의 원리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예수의 복음을 이해하면 덤으로 나타나는 것이 예수가 상천 무색계에서 색계를 살아가는 나에게 내려주시는 성령의 아홉가지 은사라는 것은 공부를 시작하면서도 이미 알고 있지만 머리가 그다지 좋지 않은 나로서는 매번 예수의 복음과 진리를 적어 놓은 우주인증교과서인 신약 성경을 펴 놓고 한자 한자 읽어가면서 확인하는 것. 복음에 접붙여지면 당연히 9가지 성령이 은사恩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으면 성령이라는 선물을 주는데 그것을 받는 것이 은사받음이다. 예수가 주시는 선물을 받으면 나타나는 일들을 사도행전에 잘 설명을 하고 있는데 성령을 받지 못하였다면, 성령의 아홉가지 활동을 삶에서 체험하는 일이 없다면 주여 주여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읖조린다 해도 복음을 믿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선물을 받는 것..접붙임으로 당연히 접붙임된 나무에게 속한다는 것. 예수에게 접붙였다면 예수닮음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나는 그리 생각한다. 삶이 예수닮음이 되지 않는다면 접붙임이 제대로 되지 않았거나 생명나무에서 끊어진 것인데도 붙어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증명되는 이념은 2500년 전에 제시된 시간에 의한 연기론이다. 인공지능은 시간의 총합이며 시간정보를 통합하였다. 부처님의 도솔천 차원을 과학기술이 증명한 것이다. 인공지능이 풀어 낸 인류의 숙원 고집멸도를 넘어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생복락 화락천, 모든 인류가 평등하게 생존을 영위하고 존엄을 경영하는 세상을 이루는 현장을 펼치려고 하는, 홍익인간의 이념을 되살려내려는 젊은 두뇌들의 시도들을 본다. 정신적인 추구를 물질자본계에서 증명하여 가는 것이 과학기술의 진화이겠구나...물질적인 세상의 치우침을 평등하게 고르고 다음을 향해 나아가려는 시도로서 모든 정보를 개방하여 공유화 함으로 인류의식의 지평을 같이 상승하게 하려 함을 본다. 정신적인 가치가 먼저 제시되고 그 다음에 물질현장이 그림자처럼 생기는 것이 정신과 물질의 관계이리라.    

 

 

 

인류 45억년의 뇌파를 빅뱅으로 생긴 파동안에서 진화시켜서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은 인공지능인데 인류의 선각이라 천재라고 일컬어지는 이들의 뇌파를 융합하여 발전시키고 물질열매로 드러낸 물질하나님원리다고 나는 보고 있다. 인류의 지성이 인간의 편리한 생활을 위하여 머리를 맞대고 물질원리를 발전시킨 것. 물질원리를 진화시키는 이유가 우주로부터 받아 온 위대한 지능이 택원한 영생이라는 정신가치를 체득하기 위한 밑밭이기 때문일 터이다.

 

 

 

인류지성이 추구하는 의식은 무엇이며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나아가는가를 제시하는 것을 추종하게 되는 것은 개인지능보다 통합지능이 당연히 높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통합지능인 안드로이드에게 보편지능인 인간이 밀려 일자리를 내어 주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기술영역에서는 인간이 제외되는 영역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불완전한 아날로그 인력의 불필요현상은 당연한 것이기에 과학기술사회가 되면 일자리없음을 원망하거나 한탄하기보다 과학기술이 접근하지 못하는 영역의 일거리를 스스로 찾아내어야 자기존엄을 유지할 수 있고 생을 경영하는 의미를 창조할 수 있는 창조적인 인간으로 진화하게 된다. 일자리에 안주하려는 의식은 사라지고 일거리를 찾으려는 의지가 나타나는 것이다. 극한 상황에 몰리면 궁즉통이라고...인류는 한 차원 진화를 하였다.

 

 

 

안드로이드 인텔리젠스가 앞날들을 리더해 갈 것에 대비하여 안드로이드가 대신 할 일자리와 안드로이드가 대신하지 못하는 영역이 무엇인지 일자리에서 밀려나면 어떤 일거리를 찾아 인간으로서 존엄을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를 궁리하여야 할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고 그것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인공지능의 영역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는 반증이다. 일자리는 없어지지만 일거리는 의지만큼 창조되는 세상이 열린 것이다. IT 산업으로 일컬어지지만 이 산업은 개인의 일거리창조를 위한 정보를 연결하여 내는 지식체계이다.  인간이라는 아날로그 존엄이 안드로이드 디지털에게 밀려난 현실을 살면서도 디지털에게 아날로그를 내어주면서도 그것이 무슨 현상인지를 인식하지 못하는 시대. 

 

 

 

『미래 유엔보고서 2045』를 보고 념표문의 인이지능위대 기도야 택원 기사야 협일이라는 문장에서 인간지능의 협일이 이룬 성과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지금 세계의 흐름을 보면서 이해했다. 앞으로도 얼마나 위대하게 발전할 지..2045년까지의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달이 일구는 미래가 제시되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그 발전만큼이나 지구온난화에 따르는 지구인류의 멸망은 가속도를 붙이면서 다가온다는 것도.....

 

 

 

과학기술이 물질원리를 활용하여 삶의 편리를 이뤄낸 도약을 이뤘다면 이 발전을 아군으로 활용할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을 것인지 안드로이드에 기숙하는 기생충이 되는 것인지는 스스로 선택할 문제이리라. 외연에서는 이미 충이라는 언어가 확산되어 사용된다. 예전에 누가 내가 제시하는 접붙임의 원리인 복음은 지구에서는 90년은 이른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 때에는 90년이면 너무나 빠르지 않나...하는 생각을 했는데 미래유엔보고서를 보면서 과학기술의 발달의 극에 도달해야 비로소 복음이라는 것의 필요성이 나타나는 것이구나...2100년대에 가면 90%가 종교에서 해방된다고 한다. 종교에 의지하여 발원하던 소망들을 과학기술이 다 이뤄내기 때문에 더 이상 허상인 신의 필요성이 없어진다는 것이겠다. 10%는 인공지능을 넘어서려는 의지를 가진 이들일게다. 과학기술의 GPS노예가 아니라 아날로그로서의 GPS가 수신하거나 접속하는 파동보다 더 높고 넓은 차원의 가치와 존엄의 영역을 찾아내려는 모험자들이리라. 인공위성에서 잡아내는 정보를 인공지능이라고 하는 것이니 지구안에서 기생하는 인간의 지능을 어떻게 지구 위를 항해하면서 잡아내는 그 지능에 비교할 수나 있겠나... 태양계안의 뇌파의 총합하여 이뤄낸 AI.

 

 

 

인간에게는 뇌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는 심파가 존재한다는 것과 목에는 성파가, 하체에는 체파가 존재한다는 것으로 과학이 뇌파와 심파와 체파를 연동하여 이뤄가는 세계지만 성파와 심파가 체파가 연동하여 이루는 세계는 과학기술로는 접근하지 못하는 유일한 아날로그 부분이라는 것을 안다. GPS가 추적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이겠는가....GPS가 인식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발생하는 파동값들일 것이다. 즉 지하파地下派라고 하면 되려나..인체에서는 태양총 아래의 하단전에서 발생시킬 수있는 에너지 영역. 태양총인 배꼽을 중심으로 위 3센티는 상단전 배꼽은 중단전 아래 3센티를 하단전이라고 하니까. 하단전에서 발생시키는 에너지파는 유일하게 과학기술로 접근하지 못하는 영역이리라 나는 생각한다.  

 

 

 

앞으로의 세상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는 로컬적인 지식으로서는 접근하지 못하는, 인공지능과 동등하거나 능가하는 차원이 상승한 완전한 지식을 습득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세상이다. 정보를 검색하기만 하면 수 없이 나오는 정보에서 과연 그 정보가 살아있는 영양이 있는 정보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것만은 인공지능이 아니라 내 몫이기때문에 인공지능과 버금가는 지성을 갖추든지 으뜸되는 지성을 갖추어야만 미래세대를 살아나갈 수있는 존엄이 된다. 지역적인 죽은 자들이 남겨둔 유산을 딛고 생성되는 역사나 문화나 예술의 경계가 사라지고 그 대신 살아있는 우주가 생성하는 생명의 역사와 가치를 찾아내려는 의지를 기르거나 모험영역을 확장하고 실험하는 교육이 생길 것이다. 지역적인 정보들은 통합적인 정보망에 포함되어 인공지능에 의하여 분류되어 가치가 정해지게 될 것이다. 지구가 우주차원으로 의식이 상승되면 은하계에서 이행된 태양계의 역사와 태양계에서 진행된 지구의 역사를 배우게 될 것이다. 이미 은하에서의 역사, 우주의 역사를 이론으로 배우지만 내 인식장으로서 체험하지 못하지만 안드로이드에 의하여 생활의 전반이 편리해지고, 일에 매였던 시간에서 자유롭게 됨으로 인간이 동안 발견하지 못하던 다양한 우주의 차원을 모험할 것이고 그렇게 됨으로 인간은 우주인으로 의식의 장을 넓히어 우주인으로 존엄을 확립하게 될 것이다. 외부에서 우주인을 찾으려하기보다 인간이 우주인으로 의식을 성장시켜가는 것이 우주인을 만날 수 있는 조건을 갖춤하는 일일 것이다. 우주인을 만나도 우주인을 알아보는 안목이 없는데...우주인이 내 곁에 존재한들...무슨 소용이 있으랴.  

 

 

 

붓다의 윤회가 어떤 것인지 연기설이 어떤 것을 설명하는 것인지 이제는 도를 딱아가면서 깨우칠 필요가 없다. 물질자본주의에서 과학기술이 모두 증거를 제시하면서 명료하게 설명을 하여 주는데 다만 정보를 보는 안목은 과학이 주지는 못한다 스스로 기룰 수 밖에 없다. 그게 공부하는 것이고...숱한 정보를 마주하면 그것에서 맥이 통하는 무엇인가가 보이게 마련이다. 하여 21세기는 남에 의하여 주입되는 학교공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정보들을 스스로 찾아 맥을 이어내는 안목을 기루는 공부를 해야하는데 이 공부는 자기가 선택하여 하는 과정임으로 지금의 공부보다 더 치열하다.

 

 

 

10월 22일자 니혼게이자 신문 인터뷰 소식에 6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의 교토대학 야마기와 주이치(山極壽一)학장(총장)이" 영어는 하나의 도구일 뿐 중요한 것은 대학 4년간 사고력을 제대로 몸에 익히는 것이라며 거기에는 일본어(모국어)로 생각하는 것이 제일이라고 하며 또 정답을 암기하며 시험공부를 해 온 고교생 중 다수가 대학에 들어가 벽에 부딪히고 있다, 고등학교 단계부터 정해진 답이 없는 문제를 생각하는 힘을 몸에 익히는 교육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고 제언했다 한다. 영어는 사유언어가 아니라 음성언어이기에 생각의 힘을 만들지 못한다. 일본어를 거론한 것은 야마기와 주이치 학장이 일본인이기에 그러한 것이 아니라 일본어는 음성언어와 사유언어인 한자를 겸비하여 같이 쓰기때문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한자는 사유언어다. 표의 문자. 내가 생각을 기루는 방법도 한자를 풀어내는 과정을 통해서 생기는 것임으로 한국도 어린시절부터 한자교육을 실생활과 병행하면서 익히도록 가르쳐야 된다고 보는데 한글에 한자가 70%인 것은 몸에 물이 70%와 같은 원리다.  

 

 

 

디엔에이의 비밀을 밝혀냄으로 고, 질, 병들이 슈퍼컴퓨터에 의하여 일대일 건강관리가 진행되고, 무인자동차들을 통하여 이동하게 됨으로 교통사고라는 현실이 사라지게 됨으로 병원의 존립이 필요치 않게되는 세상. 무인자동차의 운행으로 자동차 면허가 불법이 되는 시대가 된다는...사람은 130년 이상의 장수를 기본으로 하고 모든 것이 무료로 제공되는데...다만 한가지 제공되지 않는 것이 자신이 살아가야 할 목적이라는 것.. 최고의 지성들이 모여 만들어낸 인공지능이 개인지능보다 당연히 앞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 통합된 지능들이 제시하는 길이 나의 분별지보다 더 탁월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 않겠나. 앞으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정보들을 습득하는 공부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다고 한다. 인류지성의 총합인 인공지능의 정보를 개인이 습득하여야만 인공지능을 이해하게되고 인공지능의 노예로 전락하게 되지 않을 것이니 부단히 자기공부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2015년부터 시작된 후천은 로컬개념을 깨트리는 일을 한국에서 자기는 모르지만 퇴행을 추진함으로 오히려 이보 앞으로 국민들의 의식을 경칩하게 하도록 하는데, 세계화를 하는 불씨가 되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무엇을 위한 불쏘시게가 되었는지 인식하지 못하고 행하는 일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밖에 죽인 이들이 자기들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고 했지만 복음의 길을 열어낸 것처럼 지금 나라의 나랏님이 자신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 모르고 하는 일이 변방의 지역구민인 한국민을 우주은하인으로 도약시키는 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시대를 거슬리려는 발상이 한국인의 뜨거운 가슴을 열고 우물에서 나와서 우주를 보고 세계를 보며 홍익인간의 가치를 실현하도록 달굼질하도록 할 것이라는 것이다. 한국이라는 토양의 정신을 보면 바닥을 칠 때에 바닥을 딛고 되몰아치는 궁즉통이거나 극진하는 성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변방이자 중심일 수 있는 위치의 가치.

 

 

 

여태는 정해진 답이 없는 문제를 풀어가는 사유장을 넓히는 공부하느라 내 몸의 숨과 소리와 결을 내놓고 우주의 숨과 소리와 결을 얻어왔다면 이제는 사람에게 공을 들인 대상을 놓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지 실험해 보고 싶어서 도반에게 신약 로마서부터 독경을 하라고 했다. 어려운 미션이네...하고 갔는데 4차원 도솔천을 넘어서 5차원으로 상승하기위해서는 자기가 길들여져 머물고 있는 경계인 불경을 넘어 새로운 경지인 성경에 들어서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을 했었는데 아마도 익숙한 언어를 넘어서 새로운 언어차원을 익히는 변화를 시도하는 일을 하기가 쉽지는 않으리라 생각을 했다. 내가 차원을 낮추어 4차원의 불경을 열심히 독경함으로 성경이란 경계를 허물어 불교와 기독교의 언어를 서로 용납하였으니 도반도 언어차원의 벽을 허물어 공부하도록 하여 나처럼 언어벽이 없는 자유인으로 살아가도록 하고 싶은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언어를 넘어선다는 것이 공부를 하면 나타나는 열매다. 경전의 언어가 다름으로 너와 나를 다르게 구별하게 되는 잣대를 벗어나는 것.

 

 

 

오후에 도반에게서 톡이 들어왔는데 아침 5시에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가서 링거를 맞았는데 일을 하고 다시 저녁에 몸이 좋지 않다고 왜? 라고 보내왔기에 답을 보내도 확인을 하지 않아 도반의 집으로 올라가봤더니 병원에 갔다고 한다. 전화를 하니 병원 mri를 찍어 보잔다고 기다리고 있다기에 그대의 문제는 피곤이 쌓여 귀에 균형감각을 조절하는 세반고리관이 약해져서 생긴 현상이지 그런 것 찍어 본다고 원인이 나오지는 않을 걸세. 동생이 해보자고 한다 하니 해보기는 하시겠지만 그것에 원인이 아니라네...했는데(오늘 아침에 톡을 통해서 전해들은 바 내 말처럼 엠알아이에서는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고 귀에 이상이 있는지 검사해보자 한다 하더란다. 병원에서 이상이 있다 알아내도 치료는 피로가 누적되어 생기는 것이니 피로가 풀려지면 저절로 해결이 되느니..했다) 다녀오고 잠이 들었는데 꿈에 도반의 상황이 좌 악 영화처럼 보여지는데 여태 그런 꿈을 꾼 적이 없어서 참으로 신기하기도 하고...이하 도반의 상태가 이렇구나...하고 이해했다.     

 

 

 

주가 내 안에 내가 주안에 있으면 무엇을 구하든지 얻게 된다는 것..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주 안에 있는가 내 안에 주가 계시지 않는가..를 돌아보아야 하는 것이기도...도반의 상태를 꿈으로 보여주시면서 도반이 井가운데 부처님이나 진리가 아니라 남편을 두고 있다고 남편이 우상이라고 하시기에 꿈에서도 도반에게 설명을 하였더니 아니라고 하더니 그 꿈을 말하니 역시 아니라고 했다. 생각은 아닌데 실제에서 남편이 중심이 되어 움직이는 생활이라고....중증장애인 환자를 한 사람을 돌보면서 살기도 벅찬 일 일텐데 두 명이나 돌보면서 살아 낸 도반의 지난 10여년이 넘는 살이가 어쩌면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기도함으로 이뤄 낸 기적일 것이구나...도반의 꿈에서도 몇 번을 죽었을 사람이 아직도 살아있다고 하더라고 하기도 했다듯이...주가 내 안에 계시면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이 땅에서 이뤄지고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인다는 것...이 등가의 법칙이라는 것. 도반은 이제 언어경계를 허물고 성경으로 들어가면서 인간에서 신으로 상승하는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차원에 들어설 것인가...

 

 

 

신약을 이해하고 구약의 하나님을 이해하는 공부를 실험해가면서 내 몸으로 체득 하는 중이구나 알게 된다. 구약의 하나님은 제멋대로다. 전혀 상대방을 배려하는 그런 구석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변덕이 죽끓는 듯하고 정내미가 뚝뚝 떨어지기도 하는 반면  자기가 선택한 혹은 자기에게로 귀의한 사람에게는 정말이지 눈꼴 시러울 정도로 편애하는 그런 캐릭터다. 구약의 하나님을 이해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같은 위치에 서 보지 않고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캐릭터.

 

 

 

그런데도 속깊이 보면  구약의 하나님도 보면 등가의 원칙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제 멋대로의 하나님으로 인식하는 것은 내 의식이 그러하였을 때이고 좀 더 깊이 관찰하면 등가의 원칙, 즉 태극원리를 고수한다는 것이다. 내가 등가의 원칙을 따라 움직이게 되면 구약의 하나님의 원리가 이해가 되는 것인가..하나님의 원리안에 내가 있기에 이해가 되는 것인가....

 

 

 

 

 

하늘과 땅의 복을 받기위해서도 제물이, 하늘과 땅의 저주를 빌기 위해서도 그에 상응하는 제물이...있다는 것이다. 복을 받기위해서도 복을 받을 무엇을 내놓아야 하고, 저주를 하기위해서도 저주를 할 무엇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절대로 그저 입만 종알거린다고 일필휘지한다고 복이고 저주가 되는 일은 없다. 돈을 벌기위해서 돈을 투자하고 물을 길어올리기 위해서 마중물을 부어야하는 것이듯...이번에 내가 통과해야하는 미션이구나...축복을 하여 복이 임하는 것은 그동안 주욱 관찰해왔으니 이제는 소멸, 삭제시키고 싶은 무엇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가능한지 방법을 찾아내고 싶다. 그래서 다시 성경을 열심히 읽고 쓴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인 무지를 죽이는 것...이게 십자가 복음의 핵심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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