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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모의 지극정성,당골할매의 치성 뿌리치고 떠나간 아개추천 2017-02-02 23:2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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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지극정성,당골할매의 치성 뿌리치고 떠나간 아이들의 돌무덤 아장 부모 앞세우고 북망산으로 간 아이들 무덤 아장 이젠 찾아 볼 수 없다
보릿고개 시절에도 집안의 기쁨이었던 아이들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시골마을 주변 야산에는 여기 저기 돌 무더기들이 많았다.아장(兒葬)이라 불리던 죽은 아이들의 무덤이었다.한가정 한자녀 낳기 가족계획이 정부 차원에서 시행되기 전이었던 당시에는 집집마다 평균 6~7남매 이상씩 자녀를 낳아 길렀다.


먹고 살기 힘든 보릿고개가 없는 집구석 제사 돌아오듯 매년 되풀이 되어도 아이를 낳는건 집안의 경사요 축복이었다.자손을 많이 낳아 대를 잇고 가문을 번성시키는게 조상에 대한 후손의 도리라는 정서가 강했던 탓이다.

이처럼 자식을 많이 두는걸 다복한 가정의 가장 큰 덕목으로 여기다 보니 아이에 대한 기대가 남다를 수 밖에 없었다.따라서 아무리 가난해도 제 먹을 복은 가지고 태어난다며 임신을 하게 되면 경사났다고 기뻐하고 아이가 태어나면 온 가족이 모여 축복해 주는걸 가족의 도리라 여겼다.

이처럼 아이의 탄생을 온 가족이 축복해 주는건 새생명 탄생에 대한 기쁨,가문 번성에 대한 기대때문이기도 했지만 건강하게 무사히 성장하길 바라는 기원의 의미도 컷다.당시만하여도 중소도시급 이상의 도회지의 경우 많지는 않았지만 병원과 약국 등 현대적인 의료시설이 있어 도시 사람들은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의료 혜택과 거리 멀어 높았던 유아 사망율

그러나 시골 마을은 의료시설이 거의 전무할 정도로 열악했다.요즈음에는 면단위 벽지 마을까지 버스가 다니고 작은 동네라 할지라도 한 두대 정도 자가용을 보유하고 있고 농사용 트럭이 있어 환자가 생기면 곧장 시내 병원이나 보건소로 이송할 수 있다.또 급하면 소방서 119구급대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생명을 잃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러나 교통수단이 전무하던 당시는 중환자가 생길 경우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라며 살고 죽는걸 주관하는 하늘과 천지신명을 향해 기도하거나 여유가 있는 집에 한해 무당을 불러 굿을 하는 정도였다.이처럼 의료 혜택과 거리가 멀던 때인지라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어린 나이에 이승을 하직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지금은 큰 병 축에 들지 못하는 홍역,장티푸스,식중독이 당시에는 어린 아이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질병이었다.아이가 아프게 되면 깨끗한 물을 떠 놓고 조왕신에게 빌거나 물수건을 이마에 번갈아 올려 놓아 열을 내리도록 하던가 침을 놓고 뜸을 뜨는 전통 민간요법을 동원한다.

한편으로는 주술치료 방식으로 사실상 마을 의사 노릇하는 당골할매에게 도움을 청한다. 당골 할매는 아이가 급체하거나 광란이 난 경우 필자가 어렸을때 경험한바에 의하면 보자기에 콩,또는 쌀,보리쌀을 한 뒷박 가량을 싸서 화롯불에 아랫 부분을 쬐어 뜨뜻하게 만든다.

시골마을의 주치의 당골할매

어느정도 뜨뜻해지면 당골할매는 아픈 아이의 상의를 걷어 올린후 배에 대고 슬슬 문지르면서 "비나이다.비나이다.개똥이에게 씌인 잡귀를 쉬이 물러가게 하여 주시옵소서.쉬이~쉬이 쐬쐬~"등 알아듣기 어려운 주문을 중얼거리며 수십분 가량 배를 문지르는 & #39;잔밥멕이기& #39;를 한 후 옆에 준비해 놓은 칼을 마당으로 홱~ 내던지며"써~억 물러가거라" 고함을 내지른다.

당골 할매의 & #39;잔밥멕이기& #39; 주문 진료를 받고 아팠던 배가 시원하게 나았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당시 아장 신세가 되지 않은걸 보면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당골 할매는& #39;잔밥 멕이기& #39;진료뿐만 아니라 다른 민간 요법도 자주 선보였다.

동네 골목가에 서 있던 아름드리 추자나무(호두나무)에 금줄을 둘러놓고 바닥에 짚을 깔아 천지신명께 바치는 밥과 음식을 차려놓고 옆에 엎어 놓은 꽹과리를 두들기거나 두 손을 모아 싹싹 비비면서 주문을 외우며 환자가 낫길 바라는& #39;손비비기& #39;도 성행하였다.

눈에 핏발이 서는 결막염을 시골에서는 순 우리말로& #39;눈에피& #39;라고 불렀는데 & #39;눈에피& #39;가 걸려도 당골할매를 모셔다 추자나무 아래에 음식을 차려놓고 낫게 해 달라고 치성을 드리곤 하였다.허리가 아프거나 넘어져 다쳐도 마찬가지였다.



부모 앞세우고 북망산으로 간 아이들 무덤 아장 이젠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나 부모들의 간구와 간병,당골 할매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부모보다 먼저 가는 불효자가 되어 이승을 떠나게 되면 숨을 거둔 그날 이불이나 포대기에 싸서 지게에 짊어지고 집을 떠나 주변 산 적당한 곳을 골라 묻고 그 위에 주변에 있는 돌들을 주워다 둥그렇게 함지박 엎어 놓은 형태로 쌓아 올린다.

무덤에 돌을 쌓는것은 지금은 멸종되었지만 옛날 여우 등 짐승이 파헤쳐 훼손하는걸 막고 다른 집 아이들이 죽었을때 무덤으로 쓰기위해 모르고 파내는걸 방지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또 죽은 아이가 생각날때 찾아보기 위한 표식 성격의 의미도 있지 않았나 여겨진다.나이 먹은 총각도 장가들기 전에 사망하면 아이 취급을 받기 때문에 관속에 누워 꽃상여를 타는 장례식을 거치지 못하고 당일치기 이불말이 아장으로 일생을 마치게 된다.

어렸을때 나무하러 가거나 머루,때왈이라고 불렀던 산딸기 등 산열매를 따 먹기 위해 산에 갔을때 아장이 있으면 섬뜩함을 느껴 가까이 가지 않았었다.부모님들도 행여 아이를 죽게 만든 몹쓸 병이나 귀신이 씌일까봐 그러셨는지 절대 아장 곁에 가지 말라고 신신 당부 하셨다.때문에 일부러 아장 옆에 가는 가는일은 거의 없었다.

슬픔과 섬뜩한 추억이 깃들어 있는 아장도 1970년대 개간바람이 불면서 야산 대부분이 논밭,과수원으로 변하면서 이젠 마을 주변 어디에서도 찾아 볼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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