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
이제부터 박정희의 실체
개 봉 박 두!
고 장준하 선생 장남 장호권 대표 <한겨례 인터뷰>

| ▲장준하 선생의 장남 장호권씨가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자신의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며 심경을 밝히고 있다. 한겨례 류우종 기자 |
-박정희와 장준하, 두 인물을 평가한다면?
“박정희의 실체를 보라. 조국과 민족을 배신하고 이름을 두번이나 바꿨다. 첫번째 창씨개명은 어쩔 수 없다 쳐도, 일본군 장교가 되겠다고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사람 이름을 따라 또 이름을 바꿨다.
박정희가 했다는 근대화사업도, 장면 정권 때 국토건설본부 기획부장을 맡은 부친이 세웠던 계획이었다. 국토건설요원으로 일할 대졸 공무원 2000명을 뽑아 임명장을 주려던 때 5·16이 터졌다. 이들은 교육받은 엘리트였고, 근대화사업의 동력이 됐다.”
----------------------------------------- "박정희, 남의 장작으로 밥 해놓고 생색"
[오마이뉴스 박수원 기자]
박정희는 밥을 많이 지어 놓은 모범적인 대통령이라고 이야기 된다. 그러나 부동산 정책의 관점에서 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가능하다. 박정희는 미래의 남의 장작까지 미리 사용해서 밥을 해놓고 생색낸 대통령이라고 평가 받아 마땅하다."참여정부 정책실장과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교수가 내놓은 박정희 정권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평가다. 연 평균 지가 상승률과 생산소득 대비 불로소득의 비율을 근거로 역대 정권에 대한 부동산 성적표를 제시했다. (표 참조)
역대 정권의 부동산 성적표

ⓒ 오마이뉴스 한은희
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 50년 동안 대한민국 부동산 가격의 가장 큰 특징은 박정희, 노태우 3인의 군사정권에서는 부동산 가격의 폭등이 두드러졌던 반면 문민 정부인 김영삼, 김대중 정권에서는 부동산 가격이 크게 안정된 점이다. 이정우 교수는 "박정희 집권기간인 16년 동안 전국의 지가(땅값) 총액이 3조 4000억원에서 329조로 무려 100배 상승했고, 연평균 지가상승률은 33%에 이른다"면서 "만약 지금 박정희 정권 때처럼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폭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박정희 정권 당시 생산소득보다 불로소득이 2.5배에 이른 점을 들어 '배보다 배꼽이 큰' 거품 경제가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이정우 교수는 박정희가 국민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서 밥을 많이 지은 모범적 대통령이 아니라, 미래의 장작까지 미리 사용해 밥을 해놓고 생색낸 대통령에 불과하다고 혹평했다.
강남개발이전
한국인들은 국민 전체의 81%가
자기집에 살! 았! 다!

▲ 1955년, 한 중학교 학생들의 소풍 장면.
이 당시 우리 국민의 81 퍼센트가 자기 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리고 55 년이 지난 지금, 우리 국민의 주택 보유 비율은 55 퍼센트로 떨어졌다. 산업화를 시작하기 전에도 자기 집이 있던 사람들이 고향도 잃고, 집도 잃어버린, 이 기막힌 일이 2010년, 우리 앞에 펼쳐진 것 아닌가?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하여 지금의 개발 경제와 토건 경제를 끌고온 것인가? ⓒ뉴시스
'아파트 전세'의 종말, 우리는 왜 그 고생을 했나"
[우석훈 칼럼] 55년 전 인구통계, 그리고 지금
기사입력 2010-07-20 오전 8:27:27우리나라는 5년마다 한 번씩 인구 총조사를 하고, 가장 최근의 자료는 2005년까지 정리되어 있다. 이러한 고민을 하면서 1955년, 즉 6.25가 끝나고 '재건 데이트', 남녀가 그냥 시내를 걸어다니는 방식으로 데이트를 하고 중매결혼이 일반화되었던 시절, 그 시절의 주거 점유형태를 살펴보았다.

이 그림은, 좀 충격적인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1955년, 우리나라 국민의 81 퍼센트가 자기 집에서 살고 있었다. 이것이 원래의 우리의 전통적인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면,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그리고 한국 전쟁까지 거친 다음, 우리가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이라고 늘 하급으로 평가하던 1955년에도 한국인들은 다섯 명 중에 네 명은 자기 집에 살고 있었던 셈이다. 주거의 안정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아직 어떤 OECD 국가들도 달성하지 못했던 높은 수준의 안정성을 우리가 이미 도달하고 있었던 것이고, 전후 재건 기간이라는 점을 감안한다고 하면 더욱 더 놀라운 수치인 셈이다.
2010년, 당시의 인구 총조사로부터 55년이 흘렀다. 그 동안에 새마을 운동도 있었고, 산업화를 통한 북한과의 경제 전쟁을 명분으로 진행되었던 유신 경제와 군사 독재도 거쳤다.
전쟁 직후에도 80퍼센트 이상의 국민이 자기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지금은 55퍼센트의 국민만이 자기 집에서 살고 있다. 의식주라는 경제를 구성하는 세 가지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사람들이 다들 인정하는 주거 복지 그리고 주거 안정성이라는 면에서,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힘들게 살아왔는가? OECD 국가 중 최장 노동시간, 최저의 레저 및 문화 향수 조건, 과로, 비정규직,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가 지금과 같은 방식의 고강도 노동을 55년 동안이나 참아낸 것인가? 그런 경제 주체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는 고향을 잃었다. 서울도 개발, 경기도도 개발, 그리고 나머지 지역도 개발, 이렇게 더 풍요로운 경제적 미래를 위해 열심히 토건주의로 매진하고 있지만, 산업화를 시작하기 전에도 자기 집이 있던 사람들이 고향도 잃고, 집도 잃어버린, 이 기막힌 일이 2010년, 우리 앞에 펼쳐진 것 아닌가? 그야말로 존재론적인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하여 지금의 개발 경제와 토건 경제를 끌고온 것인가?
/우석훈 2.1 연구소 소장 Copyright ⓒ PRESSian Corp.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이 내집이
2009년
작년 전국 주택보급률 101.2%
입력시간 :2010.04.18
[이데일리 하지나 기자] 작년 전국 주택보급률이 소폭이나마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작년 전국 주택보급률은 101.2%(새 주택보급률 기준)를 기록했다. 가구수는 1686만가구이고, 주택수는 1707만채다. 2008년 추계치는 100.7%였다. [내집마련노트]주택보급률 피부에 와닿지 않아
최근의 자료를 보면 전국의 주택보급률은 108%인데 비해 자가소유율은 60%이다. 1990년에는 전국 주택보급률이 72.1% 였고 자가소유율은 50.6%였다. 자가소유율의 경우는 70년 68.2% 이후 계속 떨어져 90년에 50.6%까지 떨어지다 2000년 54.2%로 높아졌다. 주택보급률은 지속적으로 올라갔지만 자가소유율은 반대로 떨어져 30%~40%이상의 격차를 보이고 있다. 2011년
입력: 2011-07-24 17:21 / 수정: 2011-07-25 01:52 [통계로 읽는 경제] 주택보급률 100% 넘는데… 10가구 중 4가구는 무주택?
빈집·미분양도 주택수에 포함…'주거의 질' 반영 못하는 한계도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10년 인구주택 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주택보급률은 101.9%로 5년 전인 2005년보다 3.6%포인트 상승했다. 주택보급률은 전국 주택 수를 가구 수로 나눈 것으로 이 수치가 100%를 넘었다는 것은 주택 수가 가구 수보다 많다는 의미다. 조사시점인 지난해 11월1일 현재 전국 주택 수는 1767만2000호로 가구 수 1733만9000가구보다 33만3000호 많았다.
주택보급률만 보면 주택 공급이 충분해 모든 국민이 집을 갖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자기 집을 갖고 있는 가구가 얼마나 되는지를 나타내는 자가보유율은 지난해 61.3%로 주택보급률에 크게 못 미쳤다. 자가보유율은 자가 거주 가구 및 전 · 월세 가구 중 다른 곳에 집을 갖고 있는 가구를 합쳐 전체 가구 수로 나눠 계산한다. 절대적인 주택 수는 부족하지 않지만 10가구 중 4가구는 여전히 집을 갖지 못한 것이다. 자가보유율의 2005년 대비 상승폭도 1%포인트에 그쳐 주택보급률 상승폭 3.6%포인트보다 낮았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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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일까?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으면 자기집에
살지 않는 국민이 단 한사람도 없어야 한
다. 그런데 국민의 절반이 자기집이 없다.
왜일까?
그 이유는 바로 '부동산 폭등'
이 뿐만이 아니다.
부동산 폭등이 불러온 부동산 투기가 만
들어낸 또하나의 위기.
바로 대한민국의 시한폭탄인
1천조가 넘는 부동산 담보대출 가계부채.
부동산 침체 핵심은 ‘집값 내림세’ 경향신문, 입력 : 2010-07-20 이미 지난해 전국 주택보급률은 101.2%(새 주택보급률 기준)를 기록했다. 그나마 그동안 적용하지 않았던 다가구주택과 1인가구를 반영해 수치는 예전보다 낮아졌지만 여전히 보급률은 100%를 웃돈다. 그러나 자가주택 보유율은 54.2%에 불과하다. 2가구 중 1가구는 전세나 월세를 살고 있는 셈이다.
가계부채 900조 돌파 특히 개인빚은 9백조원을 돌파했습니다. 가계 부채는 부동산 담보 대출 의존도가 높아서,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면 가계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일부에서는 가계 부채가 우리 경제의 시한폭탄이다, 이런말도 하고 있습니다.
(2011한국경제과제)
⑥가계빚 900조 '시한폭탄' 터질라
 [뉴스토마토 명정선기자]
"올해 한국경제 큰 숙제는 가계빚"(박현주 미래에셋자산운용 회장) "가계빚은 한국경제의 만성적 고질병이다"(이성태 한국은행 전 총재) "가계부채가 한국경제의 짐이 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김석동 금융위원장
공포의 가계부채, 마침내 '1천조 돌파'
박근혜 "저금리가 주범", 김중수 "당장 내일 위기는 아니다" 2011-06-15 15:04:29
한국경제의 최대뇌관인 가계부채가 마침내 1천조원을 공식 돌파했다. 한국은행이 15일 발표한 `2011년 1분기중 자금순환동향(잠정)'에 따르면, 3월말 현재 개인 금융부채는 석달전보다 11조7천억원 늘어난 949조원으로 집계됐다. 여기에다가 사실상 개인으로 분류되는 소규모 개인기업(영세사업자)의 부채까지 포함할 경우 개인 금융부채는 1천6조6천억원으로 집계되면서 사상최초로 1천조원대를 돌파했다. 여기에다가 통계에는 잡히지 않고 있는 대부업이나 사채 대출 등까지 합할 경우 가계부채는 1천조원을 크게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가계부채 1천조-하우스푸어 157만, 탈출구는? (100분 토론) 2011-06-23 17:30:59 [뉴스엔 이민지 기자] 가계부채가 1,000조를 넘어섰다. 6월23일 밤12시10분 방송되는 MBC '100분 토론'에서는 금융당국, 경제 전문가들과 함께 가계부채의 심각성과 해법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한다. 한국경제의 시한폭탄으로 떠오른 가계부채의 근본 원인도 본석해본다
무디스, '한국 1천조 가계부채' 거듭 경고 WSJ "한국 가계부채, 미국 서브프라임보다 심각", 경고음 계속 2011-05-30 14:19:29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1천조원에 도달한 한국의 가계부채에 대해 거듭 강력 경고했다. 무디스의 최영일 부대표 겸 수석애널리스트는 30일 '한국 은행시스템' 보고서를 통해 "한국 은행권이 직면하고 있는 주요 신용문제는 이미 높은 수준에서 증가세를 보이는 가계부채"라며 "가처분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고 지적했다.


韓불평등개선은 착시…부채 양극화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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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발에 미치고 투기에 목맨 우리 시대의 자화상 |
| [허민호의 평범한 발작] 개발과 투기의 일상화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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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21일 (월) 14:56:16 |
허민호/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mediaus@mediau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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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은 무엇인가를 새롭게 만드는 생성의 과정이지만, 필연적으로 폭력적 파괴를 수반한다. 과거에는 토건국가와 건설자본이 자연을 훼손시키고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는 폭력의 주체였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그들과 조용히 공모하여 스스로의 목을 죄기 시작했다. 스스로 나서 자연을 훼손시키고 서로의 삶을 파탄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풍경이 왜 그리고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는지 두 편의 글을 통해 간략한 윤곽을 그려보도록 하겠다.
개발이나 부동산 투기와 관련하여, 저자가 분명히 밝히고 있듯이 지금까지 “정부나 기업이 만들어 온 통계는 대부분 부동산 이데올로기를 합리화하려는 것”이었다. “건설회사가 집을 많이 지어야 주택문제가 해결된다는 논리를 뒷받침하는 데 쓸 만한 통계”나 “주택 공급을 확대함으로써 주택 사정이 좋아졌다는 통계는 많아도 지하실, 판잣집, 움막, 동굴과 같이 처참한 곳에서 몇 명이 살고 있는지에 대한 통계”는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그가 제시하는 가장 흥미로운 통계 중 하나는 부동산값 폭등기를 정부의 개발정책과 관련하여 4단계로 나누어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다. 1차 폭등기는 1965~69년으로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맞물려 있다. 1968년 경부고속도로 착공을 계기로 이 시기의 부동산 투기는 정점에 달한다. 2차 폭등기는 1975~79년 사이이다. 이는 중화학공업 육성을 선언한 박정희 정권의 대규모 개발 정책과 각종 특혜를 받으며 땅 개발과 주택 공급에 나선 민간 건설회사의 급성장, 중동 건술 붐에서 벌어들인 외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부동산값 폭등을 야기한 것이다. 3차 폭등기는 1988~89년 사이로 86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을 위한 대규모 개발 사업, 서해안 개발, 3저 호황으로 발생한 여유 자금의 투기 자금화 등이 겹치면서 발생했다. 끝으로 4차 폭등기는 IMF 외환위기 이후부터 지금까지이다. 4차 폭등기는 아파트값 폭등, 강남 투기 열풍의 강북·수도권으로의 확산, 지역 도시 개발 정책 등의 영향 때문이었다. 손낙구는 이러한 4차례의 부동산값 폭등의 주체를 부동산 5적이라 부르며 비판한다. 부동산 5적은 건설재벌, 부동산 관벌, 정치인, 보수언론, 일부 학자 등을 가리키며, 그는 이들의 투기 동맹이 부동산값 폭등의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결국 토건 국가 관료와 건설 재벌, 그리고 그들에게 빌붙은 언론과 학자들이 개발과 부동산 투기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서 중요한 변화 하나를 놓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정부와 재벌 그리고 그들과 공모한 일부 특권 계층 이외에) 개발과 부동산 투기 주체로 일반 시민이 등장하는 과정이다. * '개발과 투기의 일상화 2'가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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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공화국’의 미스테리
한겨레21|입력2005.12.27 09:22
[한겨레][강준만의 세상읽기]
외국인 학자의 연구주제까지 된 아파트를 향한 한국인들의 열광
"당신은 몇평에 사나" 처절한 구별짓기의 현장, 보이지 않는 카스트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고현정, 김남주, 김지호, 김현주, 김희애, 송혜교, 신애라, 이영애, 채시라, 최지우, 한가인(가나다 순) 등 한국을 대표할 만한 이 빼어난 미녀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다 아파트 광고 모델이다. 대다수 한국인에게 아파트는 꿈이다. 아파트라고 해서 다 같은 아파트가 아니기 때문에 아파트를 향한 꿈은 늘 더 높은 곳을 향해 계속 나래를 펴고, 그 꿈을 인도하기 위해 한국의 미녀들이 총출동한 것이다.
압구정동, 여기가 슬럼가냐?ⓒ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왜 한국 부동산은 폭등하고 집값은 올라야
만 했을까?
이 모든 것의 시작은 바로 강남부동산
강남 현상은 곧 전국으로 확대,
오늘날의 강남 지역이 서울특별시에 편입된 것은 1963년의 일이다. 당시 강남은 인구가 3만명도 채 안되는, 배밭이 듬성듬성 흩어진 농촌이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한강 이남으로 눈을 돌렸다.
69년 강남과 강북 도심을 잇는 최초의 다리인 제3한강교(현 한남대교)가 완공되면서 강남 개발에 본격적으로 시동이 걸렸다. 75년 강남구가 생기고 이듬해 압구정동, 도곡동, 반포동 등이 ‘아파트 지구’로 지정됐다. 교육환경이 좋지 않아 이사를 꺼린다는 분석이 나오자, 정부는 강북의 전통적 명문고들을 대거 강남으로 이전시켰다. 경기고와 서울고가 먼저 총대를 멨고 휘문고, 경기여고, 숙명여고 등이 뒤를 따랐다. 8학군의 시작이었다.
강남 개발 초기, 강남 신드롬의 중심에는 압구정동 현대아파트가 있었다. 78년 당시 현대그룹 계열사이던 한국도시개발은 사원용으로 지은 아파트 900여가구 중 600여가구를 고위공직자 등에게 특혜 분양했다. 이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었지만, 엄청난 프리미엄 액수가 공개되면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를 고급 아파트의 대명사로 만드는 구실도 했다. 신흥 부유층은 물론 전문직 종사자와 해외 거주 경험이 있는 사람들까지 줄줄이 압구정동으로 몰려갔다. 중산층도 뒤질세라 앞다퉈 강남으로 향했고, 투기 행렬 속에 ‘부동산 졸부’니 ‘복부인’이니 하는 말들이 회자됐다. 돈이 옮겨가자 환락의 중심지도 이동했다. 80년대 나온 주현미의 ‘비 내리는 영동교’나 ‘신사동 그 사람’은 이런 세태 변화를 드러내는 가요다.
[100년을 엿보다] 강남 아파트
76년 아파트 지구로 개발 ‘부의 상징’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고층빌딩이 빽빽이 들어찬 서울 강남의 모습. | 경향신문 자료사진
강남은 이제 단순한 지역의 이름을 넘어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누군가가 “저, 강남에 살아요”라고 말할 때, 듣는 이들은 재산은 물론 학력과 외모, 스타일, 문화적 취향까지 함께 떠올린다. 진입장벽이 높은, 완전히 새로운 계급의 출현이다.
한국 경제의 근본적인 도덕성을 위협하는 부동산 투기가 시작된 강남
‘투기의 뿌리, 강남공화국’
온 국민들이 땅과 아파트에 목을 매게 만든 부동산 투기 바람의 뿌리는? 부동산 문제에 관해서는 ‘대통령도 불패’라며 정부가 강력한 부동산 투기억제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강남불패신화’로 대변되는 망국적인 부동산 투기는 정부의 의지를 비웃듯 계속되고 있다. ‘강남공화국’, ‘강남특별시’라는 별칭이 말해주 듯 대한민국 권력과 경제의 특권층을 상징하는 지역이 된 강남. 지난 70년대 망국적인 부동산 투기가 시작된 곳이 바로 강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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