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친일문제...
좌파들에 따르면 "다까기 마사오" 박정희는 일본군에 혈서를 쓰고 자원입대한 장교로써,
독립군을 토발하고 민간인을 학살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친일파! 라고 주장한다.
팩트만 가지고 말해보자.
-1917년 경북 구미 태생
-머리는 영리하고 좋아서 당시에 엘리트만 간다는 사범대학(대구)에 입학
-성깔은 있어가지고 일본인 교장한테 들이받고 교사직 사임.
-군대체질이라고 생각했는지 만주군관학교에 입교하려 했는데,
출신성분이 안좋아서 대구사범 은사의 추천을 받아서 겨우 입학 (이때 천황에게 충성을 다하겠다는 혈서를 씀)
-만주군관학교에서 성적이 우수해서 3등까지에게 주어지는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할수 있는 기회가 주어짐.
-1942년4월 일본육군사관학교 입교 / 44년 3월 졸업
-1944년 4월 만주군보병제8단 육군소위로 임관. / 보직은 대대장 부사관이였음.(전투병과 아님)
-1945년 8월 일본패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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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실에서 알수 있듯이...
박정희의 친일행각은 만주군관학교에 가려구 혈서를 쓴것과, 일본군에 배속되어 고작 1년간 복무한 기록이다.
친일파라고 매도하기에는 굉장히 민망하고 경미한 전과이다!
그런데 왜 박통이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친일파가 되었는가???
그건 바로 보수와 우파를 상징하는 박정희를 흠집내고 까기 위함이고,
그를 통해 자신들의(좌파)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함이다.
물타기가 아니라
그당시에 지리산 청학동에 들어가 살지 않는이상, 국민의 90%가 창씨개명을 했고,
신사참배를 했으며, 천황폐하 만세를 외쳤다.
사회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면, 좋든싫든 일제에 협조해야 했으며, 안그러면 살수가 없었다.
37년 중일전쟁으로 중국본토까지 먹으면서 일제의 힘은 최고조에 달했고,조선민들의 박탈감은 더욱 컸을것이다.
일본도를차고 수업에 들어가서 기미가요를 부르게하고, 천황폐하 만세를 강요했던 조선인 출신교사들..
박정희 외에도 수천명의 조선인출신 장교들과 군무원들..
조선인 출신 순사와 형사 하급공무원들...
일본이 지주에게 빌붙어서 농민들을 더욱 수탈했던 조선인 마름놈들...
유명한 가미가제 특공대에는 조선인 출신들도 수십명에 달했다.
그중에는 17살짜리 박동훈라는 조선이 청년도 포함되어 있다.
그의 위패가 지금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있다고 한다.
이 17살 조선인 청년은 친일파인가 아닌가???
해방후 이뤄진 반민특위에서도 많은 친일파들의 이름이 오르내렸지만,
거기에서도 박정희의 이름은 거론된 적도 없고, 그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박정희 정도의 경미한 친일은 친일도 아니였고,
그걸 걸고 넘어지면 독립운동을 하지 않은이상, 자유로울 수 있는사람 별로 없었다.
후대에 구데타를 일으켜 대통령이 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박정희도 누군지도 모르고 시골촌부로 늙어죽었겠지.
군부독재시절, 민주화 투쟁하지않고, 정권에 협조하고 장교임관하고 공무원 한 사람들은 다 독재의 공모자들인가?
두번째 박정희의 좌익경력...
좌파들 입장에선 정말 때려주겨도 시원치않을 배신자이기 때문에 쌍욕을 퍼붓는건 이해를 한다...
박정희가 좌익에 가담했던건 명백한 펙트이다.
좋아하고 따르던 둘째형 박상희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그는 형 사후에도 군대내 남로당 간부로써 활동을 했었다.
그러다가 6.25 직전 남한내 좌익들의 활동이 극에 달해 있고, 미군의 첩보를 통해 남한 군대내에까지
하사관을 중심으로 좌익들이 상당히 침투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고,
숙군작업 과정에서 남로당에 가입된 좌익들과 박정희의 존재가 드러나게 된다.
이때 박정희는 살려고 했는지 한두명 동료를 분게 아니라,
아예 군내 남로당 조직도를 통째로 넘겨주고 적극적으로 숙군작업에 협조한다.
그당시 전체 군의 15%를 숙군했다고 하니, 그 수가 어마어마 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사형을 면하고 겨우 살아날수 있었다.
좌익들 입장에선 다된밥에 코를 빠트려도 유분수고, 정말 철천지 원수겠지만...
그가 철저한 기회주의자고 처세술의 달인이라고 말하지만...그딴건 다 필요없다...
철저하게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그를 해석해야 한다.
박정희가 15%나 되는 군내 좌익 조직도를 넘겨주지 않았다면,
우리 국군은 내부의 적이 누군지도 모른채 6.25라는 큰 전쟁을 치러야 했을것이고,
그 결과는 불을보듯 뻔했을 것이다.
박정희의 전향이 대한민국에게는 너무나 다행스런 일이였다.
박정희는 전향후 철저하게 반공의 길을 걷는다. 간첩 황태성을 사형시킨것만 봐도 알수있듯...
세번째 구테타...
5.16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이승만과 자유당정권의 독재와 부패 때문이였다..
5.16이 있기 바로 한달전에 이미 4.19라는 민중혁명이 일어나서 이승만이 하야하고 장면내각이 들어섰지만,
여전히 1960년 서울은 혼란 그 자체였다~
가자!북으로~~오라!남으로~~를 외치며 일부 지식인(?)들과 대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서 위험하고
가능성 희박한 통일을 논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장면내각은 혼란을 수습할 능력이 전혀 없었으며,
내각제를 통한 민주주의를 기치로 내걸었지만 당시 남한은 GNP 100불도 안되는 세계 최빈국이였으며,
뭘해도 민주주의가 성공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국민의식도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만큼 성숙하지 못했엇다.
그저 고무신이나 국수먹여주면 표를 아낌없이 던지던 시절이였으니...
민주 인사라는 사람들 조차도 부패해 있었으며, 실제로 민주주의를 해본 경험도 전무했고,
민주주의가 뭔지도 잘 모르던 시절이였다...
내 생각에 적어도 박통만큼은 진정한 애국충정으로 구데타를 일으켰다고 본다~~~
그 초심에서 그 어떤 다른 구데타와는 차별이 된다...
김일성이 두고두고 후회하는게,
4.19 이후에 남한의 무정부상태에 가까운 찬스볼을 놓친것을 후회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니...
이런 불안한 상황에서 박정희의 구데타가 일어난 것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박통이 반공과 경제발전만을 위해서 민주주의를 짓밟았다고 비난하지만,
실제로는 참으로 아이러니 하지만,
박정희의 경제발전 우선정책이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꽃피울 수 있는 경제적 토양을 마련했다는걸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것도 입으로로만 하는게 절대 아니고,
필수적으로 국민들이 어느정도 등따시고 배불러서 경제적 여유를 느낄수 있을때 성공할 수 있는것이다...
최초 민주주의의 발상지 유럽에서도,
식민지 개척을 통해 형성된 부의 축척이 귀족이 아닌 일반 브루주아지 계층을 형성하게 만들었고,
그들의 경제력속에 형성된 의식수준 향상이 왕정이 아닌 민주주의의 탄생을 가져오게 된것이다.
박통은 공과실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사람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초심에서 개인의 영달이나 야욕을 위해 구데타를 일으킨 사람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장기집권을 하면서 나 아니면 안된다는 오만이 그를 독재자의 길로 내몰고,
또 무리하게 장기집권하다가 어이없이 중도하차하면서 또 다른 구데타 세력이 집권하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지만, 그 초심과 집권초기 눈부신 경제발전만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을만 하며,
개인적으로는 5.16을 혁명으로 평가해 주고 싶다...
* 물론 박통의 과오 또한 말해야 겠지요...
박통의 가장 큰 핸디캡은 바로 유신이죠.
일본의 "메이지 유신"에서 유신이란 말만 따와서 '낡은것을 고치고 새롭게 한다는' 거창한 뜻이였지만...
실제로 바뀐것은 아무것도 없었죠~~
그저 자신의 영구독재를 견고히하고, 반대파를 쉽게 제거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죠~~
국회를 해산하고...말안듣는 놈들 다 잡아 가두고...고문하고...죽이고...
"경제발전"과 "반공" 이라는 절대명제아래...
다른말을 할수 없는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반대하는 놈들은 모조리 빨갱이, 간첩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1972년에 있었던 이 유신개헌이야말로, 박정희가 독재자의 길로 들어가는 수렁이 됩니다~~
(아직도 많은수의 국민들이 박정희를 독재자로 기억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적어도 박통이 유신개헌전에 정권을 이양했더라면.....
어쩌면 지금까지도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을지도 모를일이죠~
(그 이전의 업적만으로도 민주주의가 꽃 필수 있는 기틀을 충분히 마련했고..
김대중(개인적으로 좋게 평가함)이라는 민주인사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있던상황)
그러나 어차피 정권을 내줄 생각도 없었고...자기아니면 안된다는 오만이 그를 독재자의 길로 빠져들게 합니다~
또 무리하게 영구독재를 강행하다가...어이없이 도중하차 하면서, 절대로 나와서는 안될정권...
별로 도움도 안되었던...정권들이 줄줄히 탄생하는 계기를 제공합니다...
하여간 박통은 공과 과오가 분명한 인물이긴 하지만...
섣불리 그를 민족을 구한 영웅이니...국민의 피땀을 수탈한 독재자니...
이렇게 단순하게 평할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