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조직법상 자문기관인 판사회의를 의결기구화하는 한편 전국 판사들을 대표하는 기관인 '전국법관회의'를 상설기구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일선 판사들이 사법행정의 실질적인 의사결정 주체가 돼 사법 민주화를 촉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진보 성향의 판사들이 사실상 '법관 노조'를 만들어 사법행정에 상시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부장판사 출신인 이용구(53·사법연수원 23기)·유지원(43·29기) 법무법인 엘케이비앤파트너스(L.K.B & Partners) 대표변호사는 1일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대법원장의 권한 분산과 법원행정처 개혁 방안 모색'을 주제로 개최한 토론회에서 이 같은 내용의 사법개혁 방안이 담긴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대표는 판사 재직 시절 개혁 성향 판사모임인 우리법연구회의 핵심 멤버로, 서울북부지원 판사로 일하던 지난 2003년 8월 당시 대법관 인선에 항의하며 '대법관 제청에 관한 소장 법관들의 의견'이라는 글을 올려 이른바 '4차 사법파동'을 촉발시킨 주역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문재인정부 첫 대통령비서실 법무비서관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기도 했다. 특히 지난달 21일 법무비서관에 기용된 국제인권법연구회 간사 출신의 김형연(51·29기) 전 인천지법 부장판사와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이날 토론회에서 "최근 법원 내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행사 축소 외압 의혹과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 일부 법관의 비리 등은 법원과 사법행정에 대한 감시와 견제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비판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각급 법원 판사들의 대표로 구성된 전국법관회의의 상설기구화를 통한 사법민주화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에 집중된 사법행정권을 대법관회의와 각급 법원 단위로 분산 △법원행정처 기능 재편을 통한 사법행정권 남용 방지 △사법부 외부와 사법행정에 의한 법관의 독립을 견제·감시하기 위한 대법원 산하 (가칭)법관독립위원회 설치·윤리감사관 외부 공모 등의 개혁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비민주적 자원 배분'이 사법행정권의 비대화와 사법관료화 심화 사태를 불러왔다고 지목했다. 판사의 사무분담과 전보·승진 등 사법부 인적 자원의 보임권한을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 법원장, 수석부장판사 등이 행사하는 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문제 해결의 핵심은 법원 내에서의 민주성 회복, 즉 판사가 한정된 자원의 문제 해결을 담당하는 참여와 자치의 강화에서 찾을 수 있다"며 "판사의 참여와 자치를 위한 제도는 판사회의이고, 참여와 자치를 통한 의사결정은 이해당사자들의 승복도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판사의 사무분담 △판사 평정결과에 대한 이의 △판사 징계청구에 관한 동의 △다른 법령에 따라 판사회의의 권한에 속하는 사항 등은 판사회의의 의결을 거치도록 법원조직법에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특히 판사회의가 '법원 내부 민주화의 핵심이자 사법관료화 완화의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현행법상 판사회의는 각급 법원(지원의 경우 판사 정원 10명 이상) 단위로 설치되는 사법행정에 관한 자문기관으로 규정돼 있다.
그는 나아가 "각급 법원 판사회의만으로는 전국 법관들을 대표하는 기능을 하기에는 미흡하다. 사법부 내부에서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일선 판사들은 전체 판사회의의 설치를 계속 요구해왔다"며 "사법행정에 대한 감시·심의기구로서 전국법관회의를 법원조직법상 상설기구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제시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에 따르면, 판사회의의 대표로 구성되는 전국법관회의에는 상임 의장을 두고 실무 지원을 위한 사무기구도 둘 수 있도록 돼 있다. 대법원장은 법원의 조직·인사·재판절차 등 판사 인사와 복리, 재판 관련 사법행정사무에 대해 전국법관회의의 심의를 받아야 하며, 전국법관회의는 대법원장에게 사법행정사무에 관한 설명을 요청하거나 사법행정에 관한 의견을 제시할 수도 있다. 법원장 등 사법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직책에 있는 판사는 전국법관회의에 참여할 수 없도록 했다.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으로 전국법관대표회의 구성을 촉구해 온 차성안(40·35기) 군산지원 판사도 이날 지정토론에서 "판사회의가 사법행정의 견제기구로 작동하려면 판사회의에 실질적·주도적 권한을 부여해 사법권력을 수평적으로 분산해야 하며, 전국법관회의도 수백명이 참가하는 총회 형태가 아니라 선거로 구성되는 슬림한 대의제 형태로 구성돼야 한다"고 했다.
한편 이 대표는 이날 사법행정의 전문화와 탈(脫)판사화를 위해 판사를 법원행정처 직위에 보임·겸임할 수 없도록 없도록 하는 대신 변호사를 법원공무원으로 선발, 사법행정을 담당하게 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판사들의 법원행정처 겸직발령은 선발성 인사이기 때문에 법원행정처 출신과 그렇지 않은 판사 간에 차별이 생기고, 이후 고등법원 부장판사 발탁 인사 때까지 그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이 방안에 따르면 법원행정처 차장도 대법원장이 변호사 중에서 임명하게 되고, 법원행정처에서 사법행정을 담당한 사람이 퇴직 후 바로 대법관이나 판사로 임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3년 간 경과 규정도 두게 된다. 또 현재 법원행정처가 맡고 있는 재판·사법제도 연구 기능은 사법정책연구원으로 이관된다.
이 대표는 대법관 임명제도와 관련해서는 "대법원장이 아닌 대법관회의가 실질적인 최고 사법행정기관이 되기 위해서는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대등한 지위에 있게 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을 폐지해야 하며, 대법관 제청과정에서 일반 법관 등 전체 법률가의 관여를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 법관 평정제도에 대해서도 "현행법상 사건 처리율, 처리기간, 상소율, 파기율, 파기사유 등 근무평정 항목을 구체적으로 정한 것은 법관의 독립을 훼손할 우려가 있어 부적절하다"며 "평정 제도의 핵심은 판사의 성실성 측정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또 "평정 항목을 삭제하고 법원 내부에 위임하는 한편 재판의 독립성을 해칠 우려가 있는 항목에 대해서는 평정할 수 없음을 명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이국운 한동대 국제법률대학원 교수는 "개헌까지 염두에 두고 제도를 설계한다면 굳이 현행 체제를 전제로 논의할 필요는 없다. 사법행정은 그 분야 전문가들로서 국회나 다른 대의기구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 전담하는 것이 합리적이다"라며 "최근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 사법부 분과는 유럽식 사법평의회를 헌법기관으로 신설하는 내용의 개헌안을 마련했다"고 전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사법평의회는 법관 인사와 법원 예산·사법정책 수립 등 사법행정권은 물론 대법원규칙 제정권을 독립적으로 행사하며, 독립성과 중립성·최고성을 보장하기 위해 △국회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 찬성으로 선출하는 8명 △대통령이 지명하는 2명 △법관회의에서 선출하는 6명 등 16명으로 구성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법조계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전국법관회의를 상설화하고 사무국까지 두면서 대법원장으로부터 인사 등 주요 현안을 보고 받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사실상 법관 노조를 창설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며 "일선 판사들의 사법행정 참여 기회가 확대·보장되어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전국법관회의가 특정 성향의 인사들로 장악될 경우 사법의 정치화를 초래할 우려도 있는 만큼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신중하게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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