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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소한 계명도 지켜야만 기도 응답을 받을 수 있다.◀▽◁ 2017-02-10 14:2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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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신자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한 부탁(내용)들을 기도한 그 순간에만 기억할 뿐, 조금만 시간이 경과되면 자신들이 하나님께 무얼 구했는지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기가 일쑤입니다. 즉 자신들이 하나님께 간구한 기도 내용을 자신들이 먼저 망각해 버리고 믿지 않습니다. 처음에 열심히 기도한 자신들의 말(기도 내용)을 믿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는 자신들이 하나님께 무슨 부탁을 하였고 어떤 내용의 말을 하였는지조차도 아예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태복음17:20) 하셨고 또,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누가복음17:6) 하셨습니다.

 위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은, 참으로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는지에 대한 탄식과도 같습니다. 오죽 믿음이 없었으면, 눈으로 식별하기조차 어려운 겨자씨 한알 같은 믿음이라도 있으면 산을 옮기고 또 뽕나무를 뽑아 바다에 심을 수 있다고 하셨겠습니까? 대부분의 신앙인들이 기도 시간에 많은 말들을 장황하게 늘어 놓기만 하고 그 모든 말들을 자신들이 기억하지도 못하거니와 그 시간만 지나면 기도 내용을 잊어버리고, 오직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처럼 듣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와 같은 기도를 하는 사람이다."라는 권위만 세우는 데 치중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야고보서1:5~8)라는 말씀과 같이, 우리가 하나님께 부탁드린 일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과연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까 하는 의심 때문에 기도 드린 내용에 대해 우리들 자신이 먼저 응답 받을 것을 잊어버리거나 포기해 버립니다.

 어떤 상전이 아랫 사람이 간구한 내용에 대해 아랫 사람보다 더 신중히 기억하고 그에 대한 응답(해결)에 몰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윗 상전이 막상 아랫 사람이 간구한 내용대로 무얼 들어주려고 그를 살펴 보면, 아랫 사람은 간구한 내용대로 해결받을 생각도 하지 않거니와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면 상전도 
"응, 그 일을 스스로 해결하였거나 아니면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취하해 버렸구나." 하시며 해결해 주시고자 하는 일들을 모두 접어 버립니다.

 신자들이 이처럼 기도한 내용을 잊어버리거나 응답 자체를 포기하게 되는 경우는 대체적으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즉 믿는 사람 자신이 먼저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말씀들을 평소에 알면서도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례를 들어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에베소서5:4) 하신 말씀의 중요성을 가볍게 취급하고 그 말씀을 지키지 않습니다. 즉 농담(희롱)하지 말고 감사하는 말을 하고 지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신자들이 농담조차 하지 않고 사람들이 어떻게 살 수 있나라고 하며 그런 말은 무시해 버리고 지키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의 응답을 믿지 못하게 하는 망각의 질병입니다.

 이와 같은 성향으로 신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것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태복음5:28) 하신 말씀은 신자들이 더더욱 무시하고 믿지 않고 살아갑니다. 즉 컴퓨터, TV, 신문, 잡지 등등 천지 사방에 널려 있는 것이 벗은 여인들의 사진과 화면들입니다. 건전한 영화라고 하는 것도 음욕을 과시하는 여인의 벗은 몸은 양념처럼 등장시킵니다. 이것을 그냥보고 스치면 다행이지만, 다윗처럼 그 벗은 몸을 음미하는 순간부터 간음죄에 빠져들게 됩니다.

 거룩을 추구하는 사람이면 그런 장면에 대해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돌리지만, 지금 세상에 그런 태도를 취하면 아예 세상 바깥으로 나가야 하는, 즉 속세를 등지는 일로 취급합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신자들이 그 같은 말씀을 액면 그대로 믿고 지키는 것은 예수님이나 가능한 삶일 뿐, 자신들은 그런 말씀을 도저히 지킬 수 없는 것으로 기정 사실화하고 점점 더 화인맞은 양심으로 굳어져 가 회개치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소한 말씀들을 믿고 지키지 않는 것이 바로 자신들이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의 응답을 믿지 못하게 하거나, 잊어버리게 하거나, 포기하게 되는 근본 원인이 됩니다.

 농담 마음대로 하고 여인들의 벗은 몸을 자유롭게 탐닉하는 나의 사생활과, 내가 하나님께 기도해 응답받아야 할 일들을 한번 쯤 비교해 보고 어느 것이 자신에게 시급히 선결되어야 할 문제인가 생각해 보십시오. 여인의 나체가 등장하는 영화 한편을 못 본 쾌락의 손실과, 내가 지금 당면하고 있는 개인적, 가정적, 사회적, 국가적 환란과 재앙에 대한 손실 중, 어느 것이 우선적으로 제거되어야 할 근본 손실입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들은 어느 것 하나 만만한 사건이나 일들이 아닙니다. 그 모두가 자기의 생명과 가족과 친지와 이웃과 나라의 민족의 생사화복이 걸린 문제들입니다. 이런 중차대한 문제들을 해결받으려면, 최소한 농담과 음란한 악취미는 마땅히 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앙인들이 자신과 이웃과 나라와 민족을 구하는 것은 곧 생사화복이 달린 전쟁과도 같은 일들입니다. 이런 중차대한 문제를 거룩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해결)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입술을 희롱과 농담으로 더럽히지 말아야 하고 또 하나님(성령)이 찾아와 거하시는 자신의 심령을 음란으로 더럽히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하여야만 자신과 가족과 친지와 이웃과 민족의 생명과 평안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한 기도 내용이 절실하고도 소중하다는 것을 하나님과 자기 양심이 함께 공인하는 일이 됩니다. 그렇지 못할 때에는 아직도 자신이 간구한 기도 내용이, 농담과 음란을 즐기고자 하는 사단의 악취미보다 덜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믿고 지키는 사람들에게만, 그 말의 소중함을 인식해 간구한 모든 부탁을 들어주시려고 할 뿐, 그렇지 못한 자들의 모든 간구는 모두다 주변 사람들이 듣기 좋은 허구적(외식하는) 기도로 간주해 무시해 버립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모든 분들은, 기도하는 그 사건(내용)과 함께 하나님과 동행한 상태이니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내 심령의 보좌에서 불합당하게 여기시는 누추함과 추악한 생각들을 병균처럼, 강도처럼, 적군처럼 대적해 싸워 물리쳐야 합니다.
그리하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능력들을 나타내시어 그 기도한 모든 내용들을 진실되게 이루도록 도와 주십니다. 할렐루야! 아멘!

http://cafe.daum.net/kblw 기독 애국 신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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