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민의 부역자들 대한 예수교 장로회 와 국가 조찬기도회
1975년 유신정권의 긴급조치 9호 발동 이후 한국사회 전체가 유신체제의 강압 통치로 인해 질식하고 있었다.
강요된 침묵의 한해를 보내고 1976년도를 맞이하게 되자 사회의 양심 세력들 내에서는 경직된 상황을 타개하고
국민들에게 민주화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한 어떤 노력이 재개되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움텄다.
기독교계에 부는 민주화의 바람을 차단하기 위헤 박정희는 사이비 이단 최태민을 이용해 관제 기도회 구국십자군을 창설하여 정교분리를 외치고 유신을 반대하는 기독교 세력을 탄압하고 사탄세력으로 몰아간다.
박정희의 후광을 받은 민족복음화의 타이틀을 걸고 그럴싸하게 포장된 최태민의 구국 십자군은 사이비 주술을 동원하여 한국 교계를 농락하고
처참하게 하나님의 정의를 뭉개버린다. 한국교계 특히 예수교 장로회 종합측은 선두에서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끌어 모으고 거짓교리를 설파한다. 당시 경향신문 등은 예장통합 강신명 목사와 예장합동 최훈 목사 감리교 박장원 목사 등이 최태민의 구국선교단에 참여하며 십자군 창설에 나섰음을 보도했다.

1975년, 최태민씨가 구국선교단을 만들고 활동할 때, 교단차원에서 이를 경계하는 공고도 나왔지만, 많은 주류교단 목회자들이 최 씨에게 놀아난 정황을 볼 수 있다.
1975년 4월 대한구국선교단을 만든 최태민은 두 달 뒤인 6월 21일 구국십자군을 창설한다.
당시 신문에 따르면 구국십자군은 목회자와 세례교인을 모집해 매주 정기적으로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등 반공주의를 내세웠다.
기독신보는 '소위 대한구국선교단이란 정체가 불투명한 단체로서 그 단체의 총재 최태민이라는 분은 그의 신원을 고계에서는 아는 이가 없으며 그와 동조하는 이들 중에는 정상적인 순서로 목사가 되지 않고 교단 소속이 없는 이들이있다'며 단체 자체의 불투명성과 총재 최태민의 신분에 의혹을 제기했다.
합동 뿐 아니라 다른 교단들도 구국선교단에 현혹되지 말도록 단속했다. 1975년 7월 12일자 기독신보에 따르면 기독교대한성결교회와 예수교대한감리회 임원회는 각각 대한구국선교단이나 구국십자군에 동조하거나 관여하는 일이 없기를 해당 교단 교회에 당부했다.
예장통합총회도 그 해 12월 임원회가 구국선교단과 관계가 없다는 담화문을 발표하고 교단 산하 교직자와 교인들의 간여를 금지했다.
그러나 이같은 교단 지도부의 권고에도 아랑곳없이 여러 주류교단 목회자들이 최태민의 활동에 동참했다. 그 후 기독교는 유신정권의 그늘아래서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민족복음화의 구호아래 박정희의 인권탄압을 외면한 조건으로 다양한 이익을 챙겨간다.
기독교의 흑역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