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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통령께서 건국주장, 국민의 의견은 있을까요?△→□ 2017-03-09 00:3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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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부 논쟁과 김구 맥아더 하지 이승만 박정희 평가,

 

단순히 사실을 가지고 따진다면 12년을 통치한 이승만보다 18년을 통치한 박정희대통령이 국부 제1순위임은 분명하고 확실합니다.

 

맥아더 장군은 일본 점령에 대비해서 약 2천 명의 장교들을 선발 사전 교육을 통해 일본에 파견하였다. 미군은 한국에 대해 아무런 사전 준비가 없어 자생적인 독립운동 단체인 건준과 임시 정부를 배격하고 조선총독부 친일파들을 중용하는 과오를 저질렀다.

 

해방 전에 3.1운동이 전국에서 전개되어 상해 임시 정부가 탄생했고, 이에 발맞추어 국내에서 여운형이 전국에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하고 상해 임정과 무장투쟁을 기하고 있었다.

 

8?15 일본의 항복으로 맥아더는 한국에 하지장군을 군정장관으로 하는 미군정을 실시하기 위해 약간의 군사 고문단을 서울에 선발대로 파견하였다.

 

일본의 항복으로 당시 치안총수 인 엔도는 건준의 여운형에게 압박을 받고 있었기에 미군 선발대가 도착하자 스스로 무장을 해제하고 미군들을 융숭히 호텔로 모셔 연회를 베풀었다,

 

미군들은 일본의 엔도의 자진해서 무장해제와 정권인수에 협조하는데 반대가 없었을 것이고, 엔도가 건준(여운형)에게 치안을 넘겨주기로 각서를 해주었음에도 미군에게 치안을 넘겨주기 위해 항복 연회에 건준을 초대하지 않았었다.

 

엔도는 건준의 압박에 앙심까지 품어 미군정 선발대에 조선인 일본 경찰들과 형사들을 미군정에 자연스럽게 소개하여 미군에 협조하게 하였다,

 

친일파 일본 앞잡이들은 무장해제 대상도 아니었고 그들에 대한 처리지침이 없는 상태에서 미군정은 이들을 중용, 건준이 맡기로한 치안은 친일 경찰에 맡겨지게 된 것이다.

 

8.15를 이후 정부수립을 건국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결국 맥아더와 하지 장군 이승만이 국부라는 주장을 하는 셈이다.

 

정부수립에 맥아더 장군이나 하지장군의 역할이 이승만 대통령보다 적다고 할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상해 임정의 주석 김구와 건준의 여운형이 분단이 아닌 독립 자주국가를 세우겠다고 무장투쟁을 기치로 국내외에서 일제 치하에 조직적으로 저항한 건국노력도 국가적으로 실패한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

 

뭐 개인적으로 모두 암살당했지만, 국가라는 조직의 연속성을 놓고 볼때 건국을 위한 노력들이 개인에 암살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제헌 의회에 인수되고 승겨되었다는 헌법의 정신 이다,

 

 

김구나 여운형은 우리 민족이 낸 거인들이고 당시 민족의 정신을 잘 수렴했던 지도자들임은 분명하다.

 

역사란 단순히 사실의 기록이 아니란 점이다. 단순히 사실을 가지고 따진다면 12년을 통치한 이승만보다 18년을 통치한 박정희대통령이 국부 제1순위란 말이 되고 역사교과서도 그래주장하는 필진이 있다.

국부는 그렇다치고 국모는 누구로 할거냐? 이문제도 동상제작하고 관련된 것이니 자유총연맹에 물어봐야 할 사항은 아닌 것 같다.

 

김구나 여운형이 비명에 스러졌지만 한국의 통일과 건국을 시작했던 인물임에는 분명하다

암살로 인해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었으니 그가 국부여야 한다는 논리라면 그런 정부수립을 가능하게한 엔도도 국부반열에 오르게 되고 맥아더와 하지장군도 정부수립에 국부의 반열에 부족할게 없게 된다.

그 뿐인가? 친일경찰들 모두도 국부와 같이 나라를 세웠다는 논리가 된다.

 

일제 강점기 그리고 미군정기는 대한민국 건국과 배치되는 이익관계에 놓여 있었든 사실은 분명하고 그런 과정을 거친 암울한 시기가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자유 민주 독립(자주)의 대한민국 건국을 위해 노력하다 암살 당하지 않았는가?

 

(출처:다음 블로그 부동산시장)

맥아더 하지 엔도 이승만 박정희 대한민국 국부로 해야 할지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상해 임정도 건국을 시작한 정부로로 봐도 무방할 듯도 한데 최근 먹고 살만하게 되었다는 주장과 함께 국부 논쟁이 본격화 하고 있습니다. 먹고 살만한것과 국부 논쟁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도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한민국 건국정신, 건국일에 대하여,

 

대한민국관보1호 에는 1948년 8월15일은 재건일 임을 명확하게 공표하고 있고, 대한민국의 국호를 최초로 사용한 건국일은1919년 4월 13일 임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1945년 샌프란시스코연합국회에서 국제연합을 탄생시킬 때도 인정하지 않았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표의 참석을 묵살하려했는데 비해 중국정부는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인정하고 지원하였다.

 

중국이나 미국의 또는 다른 외국의 지지를 받는다고 합법정부라고 주장할 수는 있으나, 나라라고 하는 것은 자기 영토와 주민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지, 어느 외국의 지지로 국가가 수립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한반도 모든 주민이 일제에 항거하고 대한민국을 불가피하게 외국에 세웠다고 해서 임시정부가 가상의 정부가 될 수 없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하나의 엄연한 건국으로서 외국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한반도 주민의 지지를 기반으로 세워진 자주 독립 국가인 것이다.

 

 

제헌헌법의 전문(헌법정신)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민국은 기미 3.1 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정의 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며… (중략) 분명히 8월 15일은 건국절이 아니라 광복절이다.

 

제헌의회는 8·15광복 후 미군정하에서 국제연합(UN)의 감시 아래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를 실시하여 구성된 국회를 말하고 대한민국을 재건한 날이라는데 당시 의원들과 초대 대통령이 제헌국회에서 의장 이승만(李承晩)은 개원식사(開院式辭)에서 “오늘 여기에서 열리는 국회는 기미년에 서울에서 수립된 민국임시정부의 계승이다.”라고 확인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1948. 8. 15.)유엔을 창설한 미국은 한반도 유일합법정부로 유엔 승인 인정했다.  유엔과 미국의 유일 합법정부로 남한 단독정부만을 인정하였으나, 북한에서도 조선 정권이 정식으로 정권 수립을 발표했고(1948. 9. 9.) 중국과 소련이 조선 정부를 인정하는 태도를 취하게 됨으로써 한반도에는 동서 냉전의 두개의 정부가 대치하게 되었다.

 

일본의 패망과 함께 대한민국을 수립하려든 한국 민의 뜻과는 다르게 동서 냉전의 시작과 함께 연합국이 한반도에  두개의 정부를 세워 대치하며, 서로 상대 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국제적인 승인을 주장하고 대치하였으며, 한국전쟁이 발발했었다.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망명정부가 한반도와 부속 도서를 영토로 연합군의 승리로 한반도에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되어 "미군정, 대한민국 정부 수립" 그리고 "소련군 진주와 조선정부 수립,"이라는 비극적 상황이 전개되어 한반도는 분단 상태로 각각의 정부 수립을 주장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명목상의 정부가 아니라 실지 회복을 위한 헌법과 정부기구와 조직과 체제를 갖추고 군사 조직인 광복군 투쟁과 독립군단체 지원 같은 정치와 군사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연합군이 먼저 일본을 굴복시킴으로서 우리의 힘으로 실지를 회복하고 광복을 맞고자한 운동들이 좌절되고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연합군의 지배하에 개인 자격으로 환국하게 되었으며, 당시 주둔하든 외국군대의 앞잡이 노릇을 자처하든 일제 식민지배 세력들에 의해 건국정신은 펼쳐지지 못하고 일시수난을 받았다.

 

 

카이로선언

각 군사 사절단은 일본에 대한 장래의 군사행동을 협정하였다. 3대 동맹국은 일본의 침략을 정지시키며 이를 벌하기 위하여 이번 전쟁을 속행하고 있는 것으로, 위 동맹국은 자국을 위하여 어떠한 이익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며 또 영토를 확장할 의도도 없다.

 

위 동맹국의 목적은 일본이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개시 이후에 탈취 또는 점령한 태평양의 도서 일체를 박탈할 것과 만주, 대만 및 팽호도와 같이 일본이 청국으로부터 빼앗은 지역 일체를 중화민국에 반환함에 있다. 또한 일본은 폭력과 탐욕으로 약탈한 다른 일체의 지역으로부터 구축될 것이다. 앞의 3대국은 한국 민의 노예상태에 유의하여 적당한 시기에 한국을 자주 독립시킬 결의를 한다. 이와 같은 목적으로 3대 동맹국은 일본과 교전 중인 여러 국가와 협조하여 일본의 무조건항복을 촉진하는데 필요한 중대하고도 장기적인 행동을 속행한다.(출처는 위키백과)

 

 

한국의 독립의 전제가 되는 카이로 회담이 한국 민이 일제에 저항하는 3.1운동에서 영향 받은 것으로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이 정식으로 승인되자, 1944년 프랑스, 폴란드, 소련정부는 주중대사관을 통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승인을 통고하였고, 1945년 포츠담선언에서 한국의 독립은 다시 확인되었다.

1919년 3·1운동과 그 결과로 세워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의해 자유 민주 독립공화국을 천명한 것은 대한민국으로의 길을 확실히 제시한 것으로 많은 수난을 격고 전쟁을 거치면서도 한결같이 대한민국으로 이어졌다.


한반도에서 자유 민주 독립이 보장되는 통일이 완성되어야 한다는 것은 대한민국 건국 정신이 이미 천명한 것을 존중하고 실천해 나가서 한반도의 통일과 세계에 나아갈 바를 제시한 것이다.

 

 

 

 

 

대한민국 건국정신, 
한반도에서 자유 민주 독립(자주)이 보장되는 통일이 완성되어야 한다는 것은 건국이 이미 천명한 건국 정신을 존중하고 실천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배영규 초일류국가를 향하여~~2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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