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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0월대구폭동사건◇◆☆ 2017-03-14 13:5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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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대구폭동사건

十月大邱暴動事件

요약

1946년 10월 1일 대구에서 일어난 경찰과시민들 간의 충돌로 시작된 대규모 유혈사건.

전개과정

남조선노동당의 지시 아래 남조선총파업대구시투쟁위원회를 중심으로 시작된 1946년 9월 총파업 기간에 대구지역의 좌익세력들은 노동자와 일반시민들의 쌀획득투쟁을 중심으로 대중시위를 전개했다.

10월 1일 대중시위에 밀린 경찰이 시위대에 발포, 1명이 사망함으로써 대구시민의 평화적 시위는 급격히 폭력화되어 경찰서 습격, 유치장 개방, 경찰 살해 등으로 전화되어갔다. 이에 미군정은 10월 2일 대구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미 전술군과 중앙의 경찰병력을 동원하여 점거된 경찰서·지서 등을 원상 복구시켰다. 미군의 출동과 계엄령의 선포로 대구시 내의 질서는 회복되었으나, 대중들의 시위는 경산·성주·영천 등 경상북도의 각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폭동이 일어난 경상북도 내 각 군은 달성·고령·성주·칠곡·군위·의성·선산·김천·영천·경산·청도·경주·영일·영덕(달산면)·예천·문경(산양면)·상주(이안면)·영주·봉화 등 전체 22개군이고 이중 3개군에서는 1개면에서만 발생했다.
10월대구폭동사건으로 인해 야기된 사상자와 피해에 대해서는 정확한 통계가 거의 없다.

이것은 당시 폭동에 참여한 사람들이 보복이 두려워 신고하지 못했다는 점과 폭동발생시 많은 경찰이 도망가 행방불명이 많았다는 점이 주된 이유이다. 경상북도지역에만 국한해 살펴보면 ① 사망자 : 관리 63명, 일반인 73명, ② 부상자 : 관리 133명, 일반인 129명, ③ 건물전소 : 관청 4, 일반 6, ④ 건물파괴 : 관청 240, 일반 526 등이었다. 피해액은 당시 경무부장이었던 조병옥에 따르면 민간측 피해액이 2억 2,000만 원, 경찰측 피해액이 1억 2,000만 원, 기타 관공서의 피해액이 1,600만 원이라 했으나, 10월대구폭동사건대책위원회에서 발표한 피해상황에 나타난 영천군만의 피해액이 10억 원이 넘는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앞의 발표는 지나치게 적게 보고된 것이라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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