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민주화운동의 발발 - 작전명령'화려한휴가'
- 1. 비극의 시작
- 1980년 5월 17일 21시 40분, 임시국무회의가 비상계엄 확대선포 안을 의결하자 신군부는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등 전국 대도시에 신속히 군대를 투입했다.
특히 서울과 광주가 신군부의 주요한 공격 목표였다. 서울에는 1, 3, 5, 9, 11, 13공수여단이 배치되었고 광주에는 7공수여단 33대대와 35대대가 전남대와 조선대에 배치되었다.
이들은 수개월 동안 오직 '시위진압훈련'에만 몰두해온 신군부의 정예부대로서 전투장비를 잔뜩 가지고 내려왔다.
공수부대는 유사시 적 후방지역 깊숙이 침투하여 비정규전을 수행하고 적의 비정규전을 대비하는 특수한 부대다. 평시에는 대침투작전 및 충정작전에 대비하여 교육훈련을 실시하고 있는 공수부대는 강한 훈련과 체력단련을 통해 육군 최강의 전투력을 가지고 있는 부대이다.
이 공수부대는 낙하훈련 등과 정기적인 천리행군 등의 혹독한 훈련을 받고 있는데 임무의 특수함과 이를 수행하기 위한 훈련의 어려움은 일반 보병부대와는 다르게 끈끈한 인간관계를 형성시켜 최고의 군기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특수부대를 박정희 정권 이래 소요진압을 위한 충정작전의 중요 수행부대로 사용하여 왔으며 1980년 5월의 광주항쟁 당시에는 공수부대가 광주에 투입되어 무력 진압하였다. 비극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공수여단 33, 35대대 광주투입경위와 병력 및 출동장비 현황]
| 일시 |
내용 |
출처 |
| 5. 14. 13:40 |
특전부대 이동을 위한 차량 245대 지원지시 |
육본, 정기작전 보고 80-5 |
| 17:05 |
885수자대, 전남 광주에서 7공수(금마)로 차량 31대 이동 |
| 5. 17. 22:30 |
부대 투입 작전명령 하달 |
| 22:37 |
7공수여단 33, 35대대 금마 출발 |
육본, 작전상황 일지 | ☞ 자료출처 : 정상용외, 광주민중항쟁, 1990, 돌베개, 156쪽에서 인용
| 대대\구분 |
33대대 |
35대대 |
본 부 |
계 |
비고 |
| 출동 병력 |
45/321 |
39/283 |
10/76 |
148/1,143 |
장교 /사병 |
| M16 실탄 |
24,600발 |
24,600발 |
600발 |
85,880발 |
개인당 60발 |
| 권총 실탄 |
154발 |
154발 |
84발 |
700발 |
|
| 캐리바50 |
|
|
|
630발/1정 |
|
개스탄 (사과탄) |
100발 |
100발 |
|
400발 |
|
| M60 실탄 |
3,200발 |
3,200발 |
|
12,000발 |
|
분말 개스 (CS) |
3통 |
3통 |
|
12통 |
|
| 차량 |
2½톤 |
1대 |
1대 |
|
4대 |
|
| 2½톤 |
19대 |
18대 |
|
66대 |
| ☞ 자료출처 : 정상용외, 광주민중항쟁, 1990, 돌베개, 139, 140쪽에서 인용
- 2. 7공수여단과의 첫 충돌
- 계엄확대로 인한 당국의 연행을 일단 피한 전남대 총학생회 지도부는 계속 상황을 점검하면서 상호 연락을 시도하였으나 학생지도부의 상당수는 이미 검거되었으며, 검거되지 않은 지도부와의 연락은 두절된 상태였다. 그리하여 이들은 불과 몇 시간 뒤에 일어날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일단 몸을 피하게 된다.
그 결과 광주민중항쟁의 최초의 도화선이 된 18일 아침의 전남대 교문 앞 시위는 도서관에 공부하러 나왔다가 계엄군에 의하여 제지를 당하게 된 학생들이나 '휴교령이 내리면 그 다음날 10시에 교문 앞에 모이자'고 했던 당초의 약속을 기억하고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나왔던 학생들에 의해 완전히 자연발생적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전남대 정문 앞에는 완전 무장한 7공수여단 33대대(대대장 권승만 중령)가 교문을 통제하고 있었다. 이들은 휴교령이 내린 사실을 말하면서 학생들에게 귀가하라고 종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쉽게 돌아서지 않았고, 10시가 넘어서자 그들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던 100여 명의 학생들이 정문 앞 다리에서 농성을 시작하였다. 이들의 수가 200∼300여 명으로 불어나자 자연스럽게 노래와 구호가 나오기 시작하였고, 이에 공수부대원들은 함성을 지르며 돌격, 진압을 개시하였다. 특수훈련을 받은 공수부대와 맨손인 학생들의 저항은 일방적인 것이었다. 진압봉으로 가차없이 머리를 갈기는 공수부대원들에게 학생들은 부상자 십여 명을 남긴 채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그냥 도망치지 않았다. 뒤로 밀려나는 와중에서도 서로 연락을 취하면서 광주역 광장에 재집결하여 대오를 정비한 300∼400여 명의 학생들은 우선 금남로 도청 앞 광장을 목표로 시외버스 공용터미날을 지나서 카톨릭센터 앞까지 진출하였다. 당시 이들이 외친 구호는 '비상계엄 해제하라' '김대중씨 석방하라''휴교령을 철회하라''전두환은 물러가라''계엄군은 물러가라' 등이었다. 그러나 이들 초기 시위대는 아직 소수였으며, 진압경찰에 대항하지 못하고 쫓겨 다니는 정도였다.
- 3. 광주를 무차별 진압하라. - 작전명령 '화련한 휴가'
- 공수부대는 아직은 광주시민에게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다. 18일 오후까지의 학생시위는 초보적인 수준이었고 경찰력만으로도 충분히 진압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7공수여단은 주둔지였던 대학교내를 나와 오후 1시경 수창초등학교에 집결하였다. 이어 오후 2시경 수창초등학교 부근에는 학생 60여명이 "계엄해제"구호를 외치며 공수부대와 마주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대오를 정비한 공수부대는 순식간에 '돌격 앞으로'라는 명령과 함께 무자비한 강제해산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오후 4시경 7공수는 도청방향으로 전진하면서 금남로 및 카톨릭센타, 충장로 등을 중심으로 강력한 시위진압을 실시하였다. 이들은 시위진압을 개시하자마자 시위가담여부와 상관없이 도로주변에 있는 젊은 사람이면 남녀를 불문하고 무조건 쫓아가서 곤봉으로 때리고 구타하였다. 또한 조금이라도 반항하는 기색이 보이면 여럿이 몰려들어 무차별로 때리고 짓밟았다. 그리고는 쓰러진 사람들을 질질 끌고가 트럭에 실었다. 이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시위진압이 아니었다. 학교점령은 04:00 이전, 불순분자 체포는 00:01이전까지 완료.(전교사 전투상보)
오후 5시쯤에는 청산학원 근처에서 처참한 살상극이 벌어졌다. 공수부대가 진입한 곳은 단 30분도 못되어 거리가 조용해졌으며 길 바닥에는 군데군데 핏물이 흥건히 고였다.
이날 계엄군은 전국의 모든 주요도시에 진주하였다. 그러나 계엄확대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학생시위를 감행했던 곳은 오직 광주 뿐이었다. 사실 학생운동 지도부의 지도력이 마비된 상태에 있기는 광주나 다른 지역이나 마찬가지였다. 휴교령이 내릴 경우의 학생들의 행동지침도 전국적으로 공통적이었다.
이미 18일 오후부터 학생시위를 통해 '김대중의 체포와 전두환의 쿠데타' 소식에 접한 시민들은 충격 속에서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 동안 김대중이라는 동향 출신 정치인의 핍박과 수난을 자신들의 그것과 동일시 해 온 광주시민들은 그의 투옥을 민주화에 대한 그들의 열망과 기대가 무참하게 좌절된 것으로 받아들였다. 또한 시민들은 시위학생들에 대해 야만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공수부대에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하면서도 이 같은 유혈극에 너무도 겁에 질려 항의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7공수부대원들의 행동반경은 금남로 등 시내중심부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들은 도주하는 학생과 청년들을 뒤쫓아 시내 곳곳을 누비면서 민가에까지 들어가 젊은 남자들을 보이는 대로 끌어내어 무자비하게 두들겨 팬 후, 옷을 벗기고, 포박하여 연행해 갔다.
단지 소수의 학생들만이 두려움에 떨면서도 서로 격려해가며 7공수병력의 추격을 피해 이리저리 쫓겨 다니면서 "비상계엄 해제하라" "김대중을 석방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쳤을 뿐이다. 오후 5시 15분경 전남도청 옆 노동청 앞에 약 500∼600명 정도가 모여 시위를 벌였지만 공수부대가 강력히 돌진하자 곧바로 해산된다. 오후 7시경 계림동 광주고 부근에 수백명의 청년, 학생들이 나타나 공수부대에 맞섰지만 역부족이긴 마찬가지였다. 밤 8시 15분경 금남로 카톨릭센터 앞에 학생, 시민 약 600여명이 대오를 형성하고 공수부대와 투석전을 벌였지만 단 10분만에 해산 당하고 만다.
5월 18일의 시위는 이것이 전부였다. 상무대에 있는 전남·북 계엄분소는 오후 6시 '계엄공고 제4호'를 발표하여 자정부터 새벽4시까지였던 통금시간을 밤 9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로 연장하는 조치를 취한다. 그리고 밤 11시 20분경에는 계엄군 1개 지대와 경찰 1개 분대씩을 묶어 광주시내 36개 주요지점에 전투경찰과 합동으로 배치시킨 뒤 삼엄한 경계를 폈다.
5월 18일의 7여단 33대대와 35대대 시위진압 행위는 광주시민을 상대로 한 학살극이라 불러야 할 만큼 무자비하고 광폭했다. 그들은 진압봉을 주로 사용했고 부분적으로는 대검을 진압무기로 사용했다.
2군사령부의 「계엄상황일지」에 의하면 5월 18일 하루 연행자가 대학생 114명, 전문대생 35명, 고교생 6명, 재수생 66명, 일반시민 184명 등 405명이나 되었는데 이중 68명이 두부외상, 타박상, 자상(대검사용에 의한 부상) 등을 입었고 12명은 중태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연행자와 부상자는 이보다 훨씬 많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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