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다야 마르다야 (2)
저희가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촌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0:38 ~ 42)
마르다는 누구이고 마리아는 누구일까요?
성경의 말씀은 항상 먼저된 자와 나중된 자의 말씀으로 서로 대조적인 모습의 사람을 통해서 그 속에 메세지를 숨겨 놓으셨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다면 마르다와 마리아도 같은 모습이냐고요?
그렇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도 먼저된 자와 나중된 자의 모습으로 보시면 됩니다.
에서와 야곱, 사울왕과 다윗왕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소위 믿는다고 하는 성도들의 모습을 하고 있는 마르다…….
왜 마르다가 믿는다고하는 성도의 모습 이냐고요?
마르다는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영접하면서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하고 걱정이 많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본다면 예수님을 집으로 초대하고 영접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르다가 믿음이 신실하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눈에는 마르다 보다는 마리아가 훨씬 믿음이 좋아 보일 것입니다.
우리들은 교회에 나가서 예수님을 영접한다고 하면서 찬송을 준비하고 기도를 하고 제단에 꽃을 올려놓고 좋은 옷으로 갈아입고 헌금을 하고 금식을 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보이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처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하기를 강요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믿음이 없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보시는 것은 그 사람의 믿는 마음입니다.
성경의 말씀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 속에 숨어 있는 메세지를 알고 싶어 하는냐늘 보십니다.
그런데 그 속에 숨어 있는 메세지를 알기 위해서는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만약에 슬기롭고 지혜있는 자에게만 그 숨은 뜻을 알려 주셨다면 저 같은 사람은 백전백패이고 믿는자에게서 점점 멀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머리의 똑똑함과는 관계없이 얼마나 하나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원하느냐에 따라서 말씀의 숨은 뜻을 알려주시니 저로서는 정말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 아닌지 모릅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려도 ….. 그래도 뭔가 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0:41 ~42)
제가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마르다처럼 예수님을 영접한다고 그렇게 분주하게 준비하고 근심하지 마시고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서 주의 말씀을 하나라도 더 듣고 깨달으시기를 진정으로 바랍니다.
출처: http://cafe.daum.net/philipdeac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