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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강진원(姜振遠) 의병장 추모 전시회

<강진원 의병장 추모 야외 전시회> 개최 순천을 사랑하는 시민들에게 숭고한 구국 정신 널리 홍보해
등록날짜 [ 2017년09월14일 17시26분 ]

【강진원 의병장 추모전시회 현수막】

이데이뉴스 전남동부지역본부장 강진원 기자
순천시, 행복순천시민운동추진위원회(위원장 김길환, 최두례, 이하 위원회라 부른다)는 2015년도부터 매2개월마다 1회씩  순천 발전에 큰 업적을 남긴 <순천의 인물을 선정>해 발표하고 선정된 인물에 대하여 정신운동 차원에서 각급 기관단체와 학교의 행사장을 순회하며 추모 전시회 개최 및 순회 교육․홍보를 해오고 있다.

【독립운동가 의병장 강진원 장군 추모 야외 전시 사진】
 

 순천시, 행복순천시민운동추진위원회는 <독립운동가 의병장 聖山(성산) 강진원(姜振遠)>
장군의 숭고한 구국정신을 영원히 기리고자  <2017년 7월의 순천인물>로  <불요불굴의 독립운동가 강진원 의병장>을 선정하고, 2017년 9월 13일(수) 15:00~16:00 순천시 석현동 소재 국립순천대학교 정문 입구에서 약 5천여명의 대학생들이 통행하는 가운데 <강진원 의병장 추모 야외 전시회>를 개최하여 순천을 사랑하는 시민들에게 강 장군의 숭고한 구국 정신을 널리 홍보하였다.

 【독립운동가 의병장 강진원 장군 추모 야외 전시  홍보활동 사진1】
 

 전시자료는 현수막 <불요불굴의 독립운동가 강진원 의병장> 현수막 1점과 전시 판넬 <독립운동가 의병장 聖山(성산) 강진원(姜振遠)>,  <가난한 서생, 나라의 위기앞에 의병장이 되다.>,  <강진원 장군의 의병활동>,  <불요불굴의 독립운동가 강진원 의병장>, 네개의 판넬이 전시 되었다.

【독립운동가 의병장 강진원 장군 추모 야외 전시  홍보활동 사진2】
 

 야외 전시장에는 <위원회 위원 12명>이 현장에서 왕래하는 시민과 학생 1천여명에게 전시자료를 일일이 설명을 해 주는 등 시민과 학생들의 큰 호응과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앞으로도 각급 기관단체와 학교의 행사장을 순회하며 행복순천 시민운동 차원에서 추모 전시회 개최 및 순회 교육․홍보를 계속하게 된다.

 

일제강점기(1910~1945) 순천의 독립운동가 의병장 聖山 姜振遠(1878.3.15.~1921.12.29.) 장군은 전남 승주군(昇州郡) 쌍암면(雙巖面) 두월리에서  포태(胞胎)하여 서면(西面) 당천리(堂川里)에서  가난한 양반가문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독립운동가 의병장 강진원 장군 추모 전시판넬 1】
 

 승주군(昇州郡) 쌍암면(雙巖面)은 1983년 3월 14일 昇州邑으로 변경되었고, 1995년 1월 1일 정부의 都市農村 행정구역 통합 정책에거 승주군은 통합 순천시(順天市)로 변경되었다.
 

 【가난한 서생 의병장이 되다 전시판넬 2】
 

  강진원(姜振遠)장군은 1907년 일제가 우리나라 군대해산을 강행하자, 1908년 6월부터 항일 의병부대 500여명을 모집하여 곡성, 구례, 순천, 여수, 광양, 고흥 등에서 50여차례 전투를 벌여 왜군 수백여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거두었는데,  주요 전투 성과로는 순천 괴목장전투, 과역시장전투, 동복 운월치전투, 쌍암 접치전투와 서정전투, 남원 가정전투, 곡성 압록전투와 동리사전투 등이 널리 알려졌다.

 【시골 서당에서 의병을 일으켜 3】
 

 항일 의병활동에 큰 전과를 거두던 중 1909년 6월 순천시 서면 색천사정(索川社亭)에서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의병 대부분이 뿔뿔이 흩어졌고, 선생 또한 순천시 해룡면 신성포에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경남 통영의 연내도(蓮內島)로 피신하였다.

 【강진원 장군의 의병활동 추모 전시판넬 4】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국권을 상실한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庚戌國恥) 당시 강제적으로 한일합병조약이 체결되어 일제의 강력한 의병부대 토벌로 부득히 10여 년 동안 승주읍 두모리 외가 장영섭(長永燮)의 집에서 장영섭을 비롯한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 은신해 있던 중이던  1921년 7월 16일 일본군에게 포위되어 우두머리 『마쓰다』를 죽이고 저항하였다.
 
이후 체포되어 곧 바로 일본군 헌병부대에 이송되었고, 모진 고문과 자백강요로부터 의병활동 비밀을 지키기 위해 7월 19일 혀를 깨물었으나 고문과 문서로 자백 강요는 계속되다가 그해 12월 29일 향년 44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불요불굴의 독립운동가  강진원 의병장 추모 전시판넬 5】
 

  강 장군의 목숨을 바친 구국 충정을 안타깝게 여겨오고 있었던 시민들은 1968년 성산양로원 회원 일동이 지방유지들의 도움을 받아 향림사 사찰소유  시민공원에 『의병장 義兵長 姜振遠 將軍의 추모 순의비(殉義碑)』를 세웠다.
 
【강진원 의병장 추모 순의비 사진】
 
2007년 6월 순천보훈지청의 지원과 진주강씨 순천청년회의 주관으로 이 비를 개보수한 『제55-1-35호 국가보훈청지정 현충시설물 』로 지정하여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강진원 의병장 약전 영인본】

정부는 의병장 강진원 장군(義兵長 姜振遠 將軍)의 구국 항일투쟁의 독립운동 功績을 認定해  死後 56년이 지난 1977년 11월 13일 建國勳章 國民章 추서(追敍)하였고, 국가보훈처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국권회복과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死後 85년이 지난 2006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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