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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구칼럼>남경(南京)대학살과 관동(關東)대학살

일본은 침략역사를 왜곡하고 참회나 반성을 하지않는 후안무치로 일관 해
등록날짜 [ 2013년12월05일 23시35분 ]

  북경대학이 양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중국인 응답자 대다수가 일본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으로 ‘1937년 남경대학살’을 꼽았다. 이것을 보면 중국은 일본에 대한 감정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1937년 여름 노구교사건으로 중일전쟁을 시작한 일본군은 천진, 북경 등을 거쳐 11월 상해를 점령했다. 그들의 목표는 장개석 정부가 수도로 삼고 있던 남경이었다. 9만 명의 일본군이 3면으로 포위해 들어가자 장개석은 함락 5일전 군대를 이끌고 중경으로 퇴각했다.

  남경에 입성한 일본군은 1937년 12월 13일부터 시민 30만 명을 살해하였다. 어찌나 목을 빨리 자르던지 목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이미 칼날이 목 밑을 지나가는 사진은 당시 일본군의 잔학성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사람을 산채로 파묻고 배를 가르거나 사지를 자르는가 하면 연료를 쏟아 부은 뒤 불태워 죽이기도 했다. 한 생존자는 “마치 하늘에서 비 아닌 피가 쏟아져 내린 듯했다”고 참살현장을 되새기고 있다.

  미국 새너제이 머큐리지는 ‘사망자들이 손을 잡으면 남경~항주의 3백 22㎞를 이을 수 있고, 흘린 피의 양은 1천 2백톤, 시체는 기차 2천 5백량을 가득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싣기도 했다. 

  남경대학살 기념관에 들어갈 때마다 입장료를 받기에 “왜 이런 기념관에서 돈을 받는가?, 이런 것을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려 일본의 잔혹함을 알려야지!”라고 갈 때마다 말하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입장료를 받지 않기 시작했다.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일본 수도 동경(東京)에 속한 관동(關東) 지방에서 규모 7.9의 큰 지진이 일어났다. 이 관동대지진에 수많은 한국인들이 일본인 손에 학살되었다.

  '관동 대학살'로 기억되는 이 사건에 대해 당시 일본 정부는 '조선인이 방화·폭동을 저지르고 있다'는 유언비어를 유포했고, '조선인은 죽여도 괜찮다'는 선동까지 하는 잔혹한 인종 청소와 대량 학살이었다. 학살된 한국인은 6600여명이라고 말하지만, 2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 정부가 1953년에 전국적으로 조사한 3·1운동과 일본 관동대지진 피살자 명부가 사상 처음으로 발견하여 공개됐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나라 최초의 일제 강제 징병자 세부 명부도 발견되어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3·1운동시 피살자명부’에는 1권 217매에 지역별로 모두 630명의 희생자가 실려 있으며 읍·면 단위로 이름, 나이, 주소, 순국일시, 순국장소, 순국상황 등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관동대지진 직후 일본 니혼바시(日本橋) 부근에서 복구 작업에 동원된 조선인들. 국가기록원이 제공한 내용을 보면 일본 동경(東京) 주일대사관에서 발견된 일제강점기 피해자 명부에 일본 관동(關東)대지진 희생자가 250명이 포함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 가운데 20∼30명에 대해서는 피살 경위가 언급됐는데, 죽창, 곡괭이 등을 이용한 잔인한 학살 정황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국가기록원과 독립기념관 등에 따르면 이번에 발견된 명부 67권에 수록된 피해자 23만여 명 가운데 관동대지진 때 피살된 수는 250명으로 분석됐다. 250명의 희생자 가운데 피살 정황까지 기록된 것은 10% 남짓. 그중에서도 대부분은 ‘타살’이라는 간단한 내용만 적혀 있다.
 

  정부 관계자는 “총이나 칼이 아닌 흉기로 자행된 학살은 가해자가 군인이나 경찰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며 “당시 폭도로 변신한 자경단원과 이에 동조한 일반인들이 저질렀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직 군경 등으로 이뤄진 일종의 ‘반관반민(半官半民)’ 조직이었다.
 

  이런 자료가 계속 나오는데도 일본은 여전히 침략역사를 왜곡하고 제대로 참회나 반성을 한 적이 없다. 일본 역사교과서에 그나마 기술되던 수박 겉핥기식 내용도 지워지고 있는 마당이다. 더군다나 일본정부 대변인은 ‘안중근은 범죄자’라는 일본의 입장을 계속 한국정부에 전하고 있다.

  일본이 역사를 부정하는 한 한중일(韓中日)의 동북아(東北亞) 정세는 끊임없이 시끄러울 수밖에 없어 새로운 삼국전국시대(三國戰國時代)가 열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2013.  12.  6 


  강원구 행정학박사. 한중문화교류회 중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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