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제일고등학교는 일제강점기 식민지 노예교육 거부와 민족해방을 위해 동맹 휴교 투쟁을 주도하다 광주고보(현 광주일고)에서 퇴학당한 허창두 씨(고인)를 대신하여 그분의 아들 허경민 씨에게 84년 만인12일(수), 명예졸업장을 수여했다.
1928년 4월, 항일 불온(不穩)전단을 인쇄하여 전파하였다는 이유로 광주고보(現;광주일고) 5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경채 학생이 구속된 것이 기폭제가 되어, 1928년 6월 26일부터 10월까지 광주고보 2, 3, 4, 5학년 전 학생이 동맹 휴학을 단행하였다.
이들은 학교 당국에 '한국인 교사를 많이 채용하고, 한국 역사를 가르치며 한국어 시간을 증설하고, 도서실에 한국 서적과 한국 신문을 비치하라'고 주장하고 매우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태세를 갖추었으며, 동맹 휴교 정신도 명백하여 식민지 노예 교육을 거부하고 피압박 민족의 해방을 요구하였다.
5개월에 걸쳐 학생, 학부모, 졸업생이 합세하여 격렬한 투쟁을 전개하여 학생계의 의식적인 항일성을 명백하게 부각시켰으나 일제 당국의 폭압으로 중단되고 말았다. 당시 대맹휴 사건으로 광주고보 학생 15명이 실형(實刑)을 선고받았으며 39명이 주모자로 퇴학을 당하였다.
휴학 투쟁을 주도하였던 5학년 허창두(許昌斗) 학생도 퇴학을 당했다. 그는 본래 제주도에서 광주고보로 유학하던 학생이었으며 퇴학을 당한 후에는 일본 오사카(大阪)로 이주하여 연락이 두절되었다.
해방 이후 1949년부터 광주제일고에서는 학생독립운동 유공자에게 명예졸업장 수여하였으나 허창두 씨에게는 연락을 취할 길이 없었다. 작년 3월, 허창두 씨의 연락만을 기다리고 있던 광주일고 및 동문들에게 현재 일본 오사카(大阪)에 거주하고 있는 허창두 씨의 아들(허경민)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비록 허창두씨는 고인(故人)이 되셨지만 부친의 명예졸업장을 찾아드리고 싶다고 연락을 취한 것.
12일, 84년이라는 참으로 오랜 기다림 끝에 광주일고에서는 허창두 씨에게 그 분의 학생 운동 정신과 의지를 기리며 명예로운 졸업장을 수여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