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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의칼럼>광양 수월정 기록의 오류

옛 선인의 잘못 알려진 발자취는 즉각 바로 잡아야
등록날짜 [ 2015년07월02일 23시01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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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수월정 기록의 오류
7월 1일 광양시청 신청사를 네비게이션도 잘 찾지 못 하는 길을 물어물어 찾는다. 그것도 며칠전 팩스공문을 보냈기에 담당 학술연구사와 전화 통화하고 차분히 찾아 들어갔다.

공문의 효력이 있어 연구사는 많은 참고자료를 찾아 놓고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2005년도 발행한 광양시보와 1990년대초에 발행한 광양군보 등에 수월정기를 송강 정철선생이 지은 걸로 되어 있다. 그러나 수은문집에 보면 수월정기문은 분명코 수은 강항선생이 지었다고 명시되어 있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송언종도지사시절에 도청에서 수은 강항선생문집을 이을호박사의 번역본으로 나온 기록에도 보면 수월정기문은 분명히 수은 강항선생의 작품으로 나오고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광양시청의 광양시보에 왜 송강 정철로 나오는 것이며 과연 어디에서 문제가 있는 걸까??

먼저 조선 선조 때 나주목사를 지냈던 수월당 정설(정접)(鄭渫)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이곳 광양출신으로 가장 낮은 곳에서 있으면서도 빛을 발하였던 선비로 세간에 알려져 있다.

그는 평생을 청렴결백한 공직생활로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왔던 인물로, 만년에는 모든 욕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정자를 짓고 지역의 선비들과 어울려 여생을 보냈다.

다압면 매화마을(섬진마을) 섬진강변에 있는 수월정(水月亭)은 정설(정접)(鄭渫)이 만년을 보냈던 곳으로 수월정 유허비는 정설(정접)이 부친인 정옥천의 유업을 추모하기 위해 송강 정철에게 수월정유허비(水月亭遺墟碑)란 비명을 받아 비를 세웠는데 정옥천유허비<광양시 다압면 도사리 섬진강변에 있는 정옥천(鄭玉川)의 유업을 추모하기 위한 비이다)정옥천유허비(鄭玉川遺墟碑>라고도 한다. 이 유허비를 송강 정철(鄭澈)이 지었을 것으로 추정해 본다

이 정자는 정설(정접)(鄭渫)이 나주목사에서 물러나 1573년에 건립됐다는 설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송강 정철이 43세 때이니까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강항선생은 1597년 정유재란에 일본으로 끌려가 3년여 만에 귀국해 수월당을 찾아온 기록이 수은 문집에 있는데 10여 년 만에 찾은 수월정이 전쟁에도 피해를 입지 않고 잘 보존되어 있는 상태를 글로 나타낸 부분이 기록되어 있다.(강항선생은 1600년 일본에서 풀려나온 뒤 1602년 대구교수를 거쳐 1608년 순천교수에 임명되자 정설의 요청을 받아들여 수월정의 유래를 기록한 수월정기(水月亭記)와 주변의 승경(勝景) 서른 곳을 노래한 수월정 삼십영(水月亭三十詠)’을 지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수은문집에 자연스레 수월정기(水月亭記)문이 전개되어 있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수은 강항선생의 수월정기(水月亭記)일부를 음미해 본다.
백운산 동쪽 능선을 옥상으로 삼고 섬진강의 상류를 옥하로 삼은즉 경치에 대하여는 말할 나위 없다. 하물며 천하의 삼신산에 방장이 그 하나이니 불을 때서 밥을 지어 먹는 사람으로써 이 세상에 살아 이 산의 이름을 들은 자가 또한 드믄데, 거기서 기거하고 마시고 먹으며 아침 저녁으로 상대하니 그 즐거움이 어떠 하겠는가?

왼쪽은 영(嶺)이며 오른쪽은 호수라, 섬과 산봉우리를 껴 안은 듯 하며 배는 왔다갔다 하고 구름은 높이 떴다. 호수는 나룻터와 빈들과 고기떼들이 모여 위천(渭川)은 넓고 물은 붉고 빛나서 학동(鶴同)의 아지랭이와 악양(岳陽)의 저녁 연기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특히 붉은 구름이 봉우리를 이루어 서리가 내리면 천림(天林)이 붉게 물들고 얼음이 얼면 장천(長川)이 희어 천태만상이 모두 방(房)아래서 보게 되니 수월의 터는 이러한 경치를 선택하여 지은 것이리라.

수은 강항선생은 이렇게 수려한 언어를 자주 사용했다. 보성의 대계서원 안방준선생 신축기문, 상량문에도 그렇고 무안의 화설당에도, 광주향교 상량문에도 글이 수려하게 전개되는 틀이 비슷하다.

그렇다면
당시 당파싸움으로 호남지역으로 유배왔던 송강 정철(1536~1593)이 이곳의 풍광과 정자의 아름다움에 반해 즉석에서 수월정기(水月亭記)란 가사를 지어 노래했다고 일각에서는 말하는데 그건 1573년도 무렵이지 1590년대 이후정철의 말년 무렵이 될 수 없으므로 수월정기문을 지은 게 아니라 1573년도 정옥천유허비(鄭玉川遺墟碑)를 지었다고 말해야 하며 그 부분은 수긍할 수 도 있다.

물론 이부분은 역사학자들의 치열한 난상토론의 부분으로 세미나를 9~10월경에 준비키로 했다고 전한다.

이처럼 수은 강항(1567~ 1618)은 ‘수월정기문’ 외에 ‘수월정 30영’이란 시조 30수를 지어 이 정자를 노래했다.

선생은 일본에 억류되어 있을 때에도 사서오경 간행에 참여하여 그 발문을 썼고, 『곡례전경』(曲禮全經), 『소학』(小學), 『근사록』(近思錄) 등 16종을 수록한 『강항휘초』(康沆彙抄)를 남겨 일본 내각 문고에 소장되어 있을 정도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이쯤해서 모든 것이 올바른 역사의 흐름과 선순환의 고리로 풀릴 법하니 선생의 수려한 글이 넘쳐나는 ‘수월정삼십영(水月亭三十詠)’을 음미해 보며 수월정기문에 대한 오류를 한 번쯤 생각해 보기로 하자.

‘수월정삼십영(水月亭三十詠)’
 강항(姜沆)

이 정자의 주인은 정설인데 벼슬이 목사에 이르렀다.<亭主鄭渫 官至牧使>

제1영 대동의 풍월〔大洞風月〕
덧없는 세상 공명 오십년 간 헤매다가 浮世功名五十年
돌아오니 사방 벽에는 객이 앉을 자리도 없네 歸來四壁客無氈
계곡에 부는 바람과 삼나무에 비친 달만은 惟有溪風與杉月
아무리 취하여도 돈 한 푼 들지 않구려 取之應不費文錢

제2영 악양의 연하〔岳陽煙霞〕
연하에 깊이 잠긴 악양 동천은 煙霞深鎖岳陽天
마치 개벽 전 세상과 같구나 正似鴻濛未判前
분명코 방장산에 사는 신선들이 分明方丈神仙子
진나라 뱃사공의 배를 막은 것이리라 隔斷漁樵晉客船 

제3영 빼어남을 다투는 바위들〔競秀千岩〕
일천 바위 일천 부용인 양 다투어 솟아나 千岩競學千芙蓉
천상의 구중궁궐에 곧바로 들어갔네 直入閶門第九重
여와 황제가 하늘을 기웠던 돌 기둥이 疑是媧皇補天石
지금 조각조각 종횡으로 떨어진 것인가 至今片片落橫縱

제4영 뭇 골짜기에 다투어 흐르는 물〔爭流萬壑〕
떠들썩한 온 산골짝 석문으로 빗장 쳤는데 衆皺喧豗石扇關
비갠 숲속에 우레 소리가 요란하구나 洞林晴日殷晴雷
그대는 향로봉의 폭포를 자랑하지 말게나 憑君莫詑香爐瀑
어찌 일만 골짜기에서 흐르는 것 만 같으리오 爭似分從萬壑來

제5영 분지에 핀 봄 꽃〔分地春花〕
한 번 봄을 지나 또 한 번 새로워지니 一度韶陽一度新
산속에 떨어져 사는 생활 가난하지 않구려 山家契闊未全貧
울긋불긋 온갖 꽃들 시절을 다투어 피어나니 任他紅紫競時節
단장한 정자에는 봄기운이 가득하네

제6영 방장산의 여름 구름〔方丈夏雲〕
방장산의 구름 산 위에 산이니 方丈山雲山上山
유무간에 시름이 첩첩히 겹치네 愁心千疊有無間
용을 따라 생겨나나 농부의 희망 달래지 않고 從龍未慰三農望
푸른 하늘에 둥둥 떠서 왔다갔다 할뿐 碧落飄然去又還

제7영 백운산의 가을 달 〔白雲秋月〕
한 조각 보름달 만리에 떠서 一片氷輪萬里浮
가을날 백운산 위 흰 구름을 비추네 白雲山上白雲秋
누구에게 이 달 비춘 곳 물어볼까 憑誰問着此時月
응당 장안의 명월루도 비췄을 테지 應照長安明月樓

제8영 순암에 내린 겨울 눈〔蓴岩冬雪〕
순암에 내린 겨울눈 무더기로 쌓이니 蓴岩冬雪積成堆
마치 주나라 목왕의 중벽대 같구나 疑是穆王重璧臺
누가 왕공의 학창의를 입고 앉아 있나 誰着王恭鶴氅坐
신선이 처음으로 곤륜산 낭풍에 나왔나 보네 神仙初出閬風來

제9영 동산의 아침 해〔東嶺朝暾〕
화륜이 석문 동쪽에서 솟아오르니 火輪飛出石門東
부상을 비춘 빛 만리를 붉게 물들이누나 光射扶桑萬里紅
아! 동룡에 연화루 시각이 다 되었으니 却憶銅龍蓮漏盡
아침 해가 구중궁궐 임금께 비추었겠지 九城初日映重瞳

제10영 서산의 낙조〔西山落照〕
흰 구름 사이로 뉘엿뉘엿 지는 해가 微陽瀲瀲白雲間
멀리 타오르며 또렷이 산 사이로 들어가네 遠燒分明入亂山
원래 해는 서쪽에 산다고 그대 말하지 말게나 元在住西君莫道
아침저녁 고리 따라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니 夜朝還往自循環

제11영 바다로 흐르는 강물〔朝宗逝水〕
뭇 골짜기 본래 받드는 바가 있어서 百谷從來有所尊
맑은 강물이 밤낮으로 동쪽 향해 달리네 澄江日夜向東奔
일천 봉우리도 바다로 가는 길 막지 않으니 千峯不閉朝宗路
밤낮으로 웅덩이 채워가며 해문(海門)에 이르는구려 日夜盈科到海門 

제12영 저자에 가는 행인 〔歸市行人〕
옛부터 섬진 나루는 요새지였으니 從古蟾津號要津
연잎에 싼 밥이 고기비늘처럼 즐비하네 綠荷包飯似魚鱗
분명 한번 다툼에도 음양의 이치가 있는데 分明一閧有奇偶
우습구나, 구구하게 이익을 농단하는 이여 堪笑區區壟斷人

제13영 평사에 내려앉은 기러기〔平沙落雁〕
맑은 모래 드넓게 펼쳐진 십리 벌판에 平沙十里淨漫漫
변방의 기러기 줄 지어 날아오네 塞雁行行點羽翰
내려 앉아도 주살 맞는 것 또한 괴로우니 翔集更妨矰繳苦
슬피 울며 곡식 찾는 것 한스러워하네 哀鳴莫恨稻粱難

제14영 버드나무 기슭을 나는 꾀꼬리〔柳岸飛鶯〕
푸르른 버들가지에 삼월이 저무는데 楊柳靑靑三月暮
금빛 옷 입은 공자(公子)가 시인을 부르네 金衣公子喚詩人
꾀꼴꾀꼴 울어대는 네가 어찌 필요할까마는 笙簧百囀寧須汝
해마다 가난 버리지 않고 찾아오니 그저 사랑스러울 뿐 只愛年年不棄貧 

제15영 푸른 언덕의 송아지〔靑坡牧犢〕
이월의 봄바람 불 지핀 터에 불어올 때면 二月春風入燒痕
어미 소가 송아지 거느리고 무리를 이루네 㹀牛將犢自成群
언덕에서 풀 뜯고 시내가에서 물 마시니 上坡齧草下溪飮
태묘의 희생이 되는 것 듣고 싶지 않구려 太廟犧牲不願聞 

제16영 죽림에 깃든 까마귀〔竹林棲烏〕
지친 새 날라 와 깃들어 있는데 倦鳥飛還各有棲
위천(渭川)의 천 이랑은 구름 속에 잠겨있네 渭川千畝與雲齊
서릿바람 솔솔 불고 달빛 교교하면 霜風獵獵月皎皎
놀라 일어나 때로 한밤중에 우는구나 驚起時聞半夜啼
 
제17영 들판에서 부는 목동의 피리〔長郊牧笛〕
소가 잠든 저녁 안개 낀 풀 언덕에 眠牛隴上草如煙
목동의 피리 소리 저녁 하늘을 가로 지르네 牧笛一聲橫晩天
해년마다 강 어귀 버들 다 꺾여지는데 年年折盡江頭柳
풍악 울리고 벽제하는 것은 쉬이 꼬꾸라진다네 鼓吹傳呼恐疾顚 

제18영 먼 포구에서 들리는 어부의 노래〔遠浦漁歌〕
어디선지 들려오는 어부의 힘찬 노래 소리 一聲何處漁歌傲
비낀 바람과 가랑비 따라 들려 오네 聲逐斜風細雨過
화려한 집 패옥의 구름 휘감는 소리가 畫堂玉佩縈雲響
어찌 도롱이 입은 늙은이가 부르는 이 노래만 하리오 爭似蓑翁歌此歌

제19영 죽통에 끌어드린 샘물〔竹桶引泉〕
산중에 사는 법 온갖 꾀를 다하는 것이니 山客理生窮百巧
대나무에 홈을 파 맑은 샘물 끌어왔네 竹竿分引細泉淸
물소리가 백보 떨어진 푸른 구름을 적시었으니 傳聲百步靑雲濕
소갈병 앓던 사마상여도 일으켜 세우겠지 可起消中病馬卿

제20영 물레방아로 곡식을 찧다〔水砧舂粱〕
수문의 맑은 샘물 한길로 끌어와 閘得淸泉一道長
가늘게 빻은 곡식 서리처럼 하얗네 細舂香稻白如霜
부엌에서 장군의 배 저버리지 않았으니 三虛不負將軍腹
절구도 늙은 맹광을 수고롭지 않게 하겠구려 砧杵無勞老孟光

제21영 대나무 사이의 매화와 국화〔間竹梅菊〕
노란 국화와 매화는 좋은 이웃이니 黃菊梅花德有隣
늘그막에 생활을 대숲에 맡겼네 暮年生活托叢筠
어찌 도화 꽃 오얏 꽃과 안색을 다투리오마는 肯將桃李競顏色
얼음 얼고 서리 내릴 때라야 참모습을 본다네 直待氷霜方見眞

제22영 눈 속에도 오연한 소나무와 대숲〔傲雪松篁〕
꽃 시들어 곱지 않고 새도 노래 그치니 花枯無艶鳥沈歌
잿빛 청산에는 한기가 가득하네 死瓦靑山寒氣多
오직 푸른 솔과 푸른 대나무만은 惟有靑松兼綠竹
한겨울 깊은 눈도 어찌하지 못하네 大冬深雪奈君何 

제23영 물고기가 연지(蓮池)에서 뛰다〔魚躍蓮池〕
푸른 이끼 걷어내고 만든 조그마한 연못 鑿破蒼苔一席許
푸른 샘물 몇 섬에 열 줄기 연꽃을 띄웠네 淸泉數斛十莖荷
하늘 빛과 구름 그림자 홀연 부서지니 天光雲影忽破碎
알겠노라 물고기 힘차게 노니는 것임을 知有遊魚潑潑過 

제24영 서리 무성한 단풍나무 언덕〔霜酣楓岸〕
강 언덕 단풍나무에 서리가 무성히 내리니 靑女偏侵楚岸楓
온 숲이 하루저녁에 붉게 물들었네 千林一夜染成紅
누구더러 서풍에게 말을 전하게 할까나 憑誰說與西風道
함부로 바람 불어 비단 잎 떨어뜨리지 말라고 切莫斜飄錦葉空

제25영 남교에서 객을 송별하다〔南橋送客〕
남교의 방초는 푸르고 무성한데 南橋芳草綠萋萋
백사장에서 술 마시며 이별을 아쉬어하네 把酒沙頭惜解携
이러한 강산 이러한 정경에 如此江山如此景
그대여 잠시 머무름을 아끼지 말게나 勸君無惜暫時稽

제26영 북리에서 벗을 부르다 〔北里招明〕
북리에서 부른 벗 자리에 가득하니 北里招朋朋滿座
시냇가에 사는 벗이 아니면 촌 농사꾼일세 若非溪友卽園翁
은근하게 주부에게 알리노니 殷勤爲報主孟道
집 가난하여 새로 빚은 술 없다 하지 말구려 莫說家貧新釀空 

제27영 용탄에 배를 띄우다〔龍灘泛舟〕
근년에 나의 도를 창주에 부치고 年來吾道付滄洲
용탄 여울에서 노닐기 좋아하네. 愛向龍灘灘上遊
물속의 어룡도 백발의 나를 알아보니 水底魚龍諳白髮
파도 일으켜 빈 배 부술까는 근심되지 않구려 不愁驚浪破虛舟

제28영 귀연에서 낚시하다 (龜淵釣魚)
귀연의 물고기는 면남의 물고기와 같으니 龜淵魚似沔南魚
가랑비 지나간 뒤 낚싯대를 던지네 把釣來投細雨餘
삶은 생선 솥에 있고 소반에는 회가 있으니 鼎有烹鮮盤有鱠
늘그막에 배불리 먹는 계책 그리 궁하지 않구려 老來謀飽未全疏

제29영 소나무 아래서 차를 다리다〔松下煎茶〕
소나무 그늘 속에서 솔방울로 차를 다리니 松子煎茶松影裏
뒤엉킨 솔뿌리에서 솔바람 소리 들리네 松根盤礴聽松風
솔바람은 본시 소나무 가지에 부는 것인데 松風本在松枝上
문득 선생의 돌솥 안으로 들어 왔구려 忽入先生石鼎中 

제30영 매화꽃 옆에서 술을 마시다〔梅邊酌酒〕
술잔 들고 늙은 매화나무에 옮겨 가니 一觴移就老梅根
맑은 향기 술동이에 스치기 위해서라네 爲是淸香撲酒尊
취하여 산에 해 저무는 줄 몰랐더니 醉後不知山日暮
옅은 안개에 달빛 성긴 황혼이 되었구려 淡煙疏月正黃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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