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에 홍콩 여행을 갔다. 시내 구경 중에 교통사고를 목격하였다. 경미한 차량 접촉 사고였다. 그런데 경찰이 10명 넘게 출동하여 사고처리를 하고 있었다. 가이드는 홍콩 경찰의 서비스 정신을 칭찬하면서 청렴경찰이란 말을 덧붙였다. ‘홍콩 느와르’ 영화를 본 적이 있는 나는   정말로 ‘홍콩이 청렴도시’냐고 가이드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가이드는 공무원이 뇌물을 받으면 퇴직 후에도 처벌한다고 하면서 정색을 하였다. 
  
그렇다. 홍콩은 2014년 국가부패인식지수에서 175개국 중 17위이다. 그런데 1970년대 초까지만 하여도 홍콩은 부패와 비리의 도시였다. 관시(關係)의 관습에 물들어 있었고, 병원 · 장례식장 · 경찰서와 관공서 · 학교 등 어느 곳이나  찻값(Tea Money)이 존재했다. 홍콩인들은 찻값을 일종의 윤활유로 인식하였다.  

심지어 1969년에  트렌치 홍콩 총독은 의회 연설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하였다. “홍콩의 부패는 오랜 관행이다. 여느 사회처럼 여기에도 존재한다. 부패의 정도는 추측만 무성할 뿐이다. 하지만 도처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감내할 수 없는 것이며 가능한 한 모든 것을 없애야 한다.”

1971년에 홍콩 정부는 부패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뇌물방지법’을 제정하였다. 여기에는 지나친 재력을 지녔거나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공무원을 부패한 것으로 판단해서 기소할 수 있게 하고, 경제생활(은행계좌 · 금고 등)에 대한 조사와 가택수색까지 가능하게 했다. 뇌물에 대한 처벌 규정도 강화되어 홍콩 달러로 최고 10만 달러(1,450만원)의 벌금과 징역 7년형까지 처할 수 있게 되었다.

홍콩 경찰청 수사국내에 설치된 반부패국(ACB)도 확대되어 반부패부(ACO)로 격상되었다. 그리하여 2년 동안에 152건을 기소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그런데 대형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1973년에 경찰 최고책임자 가드버(Peter Godber)가 부패행위로 영국으로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 사건은 시민들의 분노를 불러 일으켰으며 시민들은 6개월간 빅토리아 파크에서 시위를 하였다. 특히 학생들이 이 시위를 이끌었는데 그들은 “부패척결과 고드바 체포(Fight Corruption, Arrest Godber)"를 정부에 강력히 요구하였다.

결국 홍콩 정부는 1973년 6월에 블레이어-케르(Sir Alastair Blair-Kerr) 판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조사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여기에는 두 가지 사항이 검토되었다. 하나는 고드바 관련 보고서였고 두 번째는 반부패조직을 경찰로부터 독립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침내 1974년 2월에 총독 직속의 염정공서(廉政公署:Independent Commisssion Against Corruption, ICAC)가 탄생하였다.  

염정공서의 첫 번째 임무는 고드바를 법정에 세우는 일이었다. 1975년 초에 고드바는 영국에서 홍콩으로 송환되어 법정에 세워졌고 징역 4년형을 받았다. 이후 홍콩 정부는  각종 부패방지법과 조례를 제정해 공직사회의 청렴도를 끌어올리는 데 온 힘을 쏟았고, 염정공서는 대대적인 부패척결에 나섰다.

그런데 염정공서가 주요 수사대상이 된 부패경찰관들을 모두 잡아들이자 염정공서와 경찰은 큰 갈등을 겪게 되었다. 어떤 경찰서는 부패 경찰관들이 줄줄이 엮이는 바람에 사무실이 텅 비었고, 1977년에는 경찰 2천여 명이 반(反) 염정공서 시위를 벌일 정도였다. 

상황이 이러하자 맥러호스 홍콩 총독은 1977년 이전에 행한 부패행위 중 극히 악질적인 경우를 제외한 가벼운 혐의는 불문에 부치는 부분사면을 단행했다. 홍콩 신문들은 "많은 부패한 경찰관들이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졌음을 느끼고 개혁에 동참했다"며 "맥러호스 총독은 당시 다른 사람들은 생각하지 못했던 '용서와 갱생의 힘'을 이해했다"고 대서특필하였다.  

염정공서의 활동은 홍콩 시민들에게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받았다. 2004년 국가부패지수는 146개국 가운데 16위였고 2011년에는 12위로 청렴성이 크게 높아졌다. 하지만 안심 할 수 없다. 2014년에는 17위로 후퇴하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