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병신년에는 ‘병들지 말고 신명나게 연말까지 모두 잘살아보자!!’고 삼행시가 나돌았다.
신기에 가까운 침술가!!
다들 나름대로 현대의학과 자신에 맞는 한방, 단방, 민간요법으로 건강에 대해 자부하고 살아가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그런데 자기 몸에 대한 과신은 옛날에도 있었고 과학과 의학이 발달된 지금도 존재한다. 문제는 첨단의학을 넘어 자기처방전이 훌쩍 앞 서 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그래서 건강을 걱정해 주면 우선 생활이 풍족해져서 금전적인 부담이 없어 곧장 전문병원으로 한약방으로 또는 용하다는 그 무엇을 찾아 나서고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고 자기병에 맞춤식 처방전을 강구해 적극 대처하고 있다. 자기 나름대로 의술 책을 보며 공부를 하고 전적으로 신봉해 주변에서 아무리 뭐라고 해도 그 이상의 의학상식은 아예 필터링되지 않는다.
박원장님도 이러한 자기처방에 밝은 환자를 포함해 여러 단골환자에 의해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았고 가끔 속절없이 지나가는 말로 털어놓기도 했다.
2013년에 마지막으로 찾았을 때 5,000원 받던 침술비가 두배로 인상되어 10,000원을 받고 있었다. 두말 않고 그래도 저렴하지 않나 하고 나왔지만 이러한 여러 가지 사정으로 침술원의 변화가 불가피했던 것 같다.
그런데 2014년도에 귀한 분을 모시고 갔는데 이미 침술원은 폐업을 하고 오래된 간판만 을씨년스럽게 나뒹굴고 있었다.
이 침술원을 처음 찾게된 건 1990년 말경 어린이집원장들 모임에서 족구를 하다가 오른쪽발목을 삐어 소위 염좌증상이었다. 인근 신경외과를 급히 찾아갔는데 당장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어야 한다고 해 그대로 튀쳐 나와 이 침술원에 오게 된 것이다.
침을 맞는데 다짜고짜 하시는 말씀이 나를 자주보고 싶으면 그냥 내일오고 삼일 후에 보고 싶으면 생감자를 으깨어 발목 염좌된 부위에 감싸고 잠자리에 들라했다. 그리고는 거짓말처럼 비록 절둑거렸지만 목발 없이 걸어 다녔고 두 번의 침술에 신기하리만큼 거짓말같이 다 나았다.
인생이 어떤 면에서는 참 우습다. 6개월 후에 또 운동을 하다가 이번에는 왼쪽 발목을 삐어 신경외과병원은 생각자체도 않고 이곳을 찾아 똑같은 방법으로 수월하게 나았다.
눈주변에 침을 맞다!!
이런 믿음이 생기니까 온통 침술원에 온 몸을 다 맡기듯 했다. 과감히 두 눈이 자꾸 시리고 자주 깜박거리는 증상에 대해 상담하고 곧장 두 눈에 침을 맞기로 결정했다.
도저히 신뢰 없이는 불가능했다. 양 손을 더듬거리며 다가오는데 공포감이란 이런 거구나 할 정도로 엄습해 왔다. 침이 눈 주변으로 들어오는 순간 자신도 모르는 공포감이 파도처럼 밀려오기도 했지만 굳은 믿음으로 버텼다.
눈 부위의 침이 가장 아프고 통증이 심하다. 실핏줄이 켜켜이 몰려있는 부위여서 더 그렇다고 말한다.이후로도 눈부위를 10여 차례 더 침을 눈주변에 맞았다.
한 번은 머리에 수십개의 침을 꼽아 놓았는데 앞에 주차된 차가 못 나가고 있으니 차를 빼달라고 해 침을 꼽은 체 나가 차를 빼줬더니 차를 빼달라는 사람이 기겁을 하고 도망치듯 차를 몰고 간 적도 있다.
박원장님은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나라에서 침을 가장 잘맞는 사람이라며 환자들이 올 때마다 자랑삼아 말씀하셨다.
이 분은 진정한 오프라인 스승이요, 20여년을 일주일에 꼭 한 번 씩 들러 1시간이상 의논도 하고 침술과 쑥뜸에 대해 직, 간접으로 전수받는 식으로 자세히 모든걸 내주셨다.
지금 생각해 봐도 고맙고 또 고마운 건 다른 사람에게 시침하는 시간과 필자에게 시침하는 시간이 달랐다.
물론 시침시간이 단순경우에는 15분을 넘지 않고 시침시간이 짧고 만성적인 병에는 40~50분을 시침하지만 유독이 매번 시침시간이 60분 이상으로 변함없이 시술해 줬다.
침을 오래 꼽으면 그 부위가 오래될수록 간질거리고 혈행의 흐름으로 처음 시침시술자라 하더라도 침의 호전반응과 기능을 금방 알 수도 있다.
그런 여러 가지 방법을 시침하면서 자세하게 비유를 들며 말씀하시기도 했고 직접 알려주기도 했다. 지금 칼럼을 써 내려가면서도 점자로 신체 각 부위에 치료방법과 묘책, 단방치료법을 기록해 논 걸 머리에서 발끝까지 적당한 처방 법을 적재적소에 알맞게 기술해 언젠가는 출판을 해야겠다고 대면할 때마다 자주 토로했다.
필자가 적극 개입해 도와드리겠다고 수차례에 걸쳐 말씀드렸지만 알량한 도움을 싫어하는 성품이기에 그게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가 지금와선 사뭇 궁금하다.
이러하듯 박 모 침구가(앞으로 호칭을 침술원을 운영했으니 박원장으로 표기함)는 이 시대의 가장 토착적인 명의이시다.
아픈 혈자리를 짚어보곤 그 사람의 상태를 그 자리에서 보고 여느 사람, 여느 병이든 곧바로 손의 감각으로 풀어줬다.
그런 연유로 참 많은 사람을 그 침술원에 함께 가 놀기도 하면서 귀동냥으로 침술과 쑥뜸에 대해 많은 말씀을 들었다.
필자의 부모님을 비롯해 아주 재벌로 유명한 회장님도, 모 언론사 회장님도, 그리고 대전시에 사는 지인도 내려와 박원장님의 침술의 神技와 효과를 직접 체험하고 알아줬다.
군대까지 다녀온 침구사 박원장님은 갑자기 시력을 잃은 케이스로 좌절과 방탕한 생활로 가정까지 포기했으나 맹인들을 위한 침구사과정 2년제를 60~70년대에 드물게 수료한 그런 분이었다.
<이어 13호로 게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