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의 한 가운데인 배부위에 2~3mm의 시꺼먼 생채기 3개를 내려 다 보면서 참 지독하다는 생각을 했던 적도 가끔 있었다.
그렇지만 단전 아래 복막염 수술부위와 단전과 기해혈 부위를 매일같이 7~15개를 붙이는데 비하면 직구 법은 鳥足之血(조족지혈)이었다.
아마 수술한 사람이 비록 완치를 했더라도 수술자국 부위에 뜸을 하게 되면 거의 모든 사람이 그 수술부위의 고름(화농)은 다 나오게 되어서 그 부위에서 피고름이든 멀건 고름이든지 절대 피해갈 수 없을 거라고 단언한다.
특히 수술부위를 손으로 눌러 조금이라도 통증을 느끼고, 미약하나마 통점이 잡혀 壓點(압점)이 느낌으로 수반된다면 그건 100% 그러하다.
필자의 복막염 수술자리는 돌이켜 생각해 보건데 참으로 요란했다. 수술이후에도 옆구리가 간헐적으로 통증이 항상 존재했기 때문이다.
통증을 잡으려고 수술을 2~3회를 연거푸 하고 항생제를 매일같이 복용했다. 하지만 결국은 알뜸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매일같이 단전과 기해혈 자리에 米粒(미립)대 크기의 직구를 하다가 수술부위에 까지 직구를 댄다는 게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복부의 집중한 쑥뜸을 알뜸으로 돌아선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직구를 시술했을 때는 고름이 별로 잡히지 않고 딱지가 바로 생겼다.
그런데 복막염 수술 부위는직구가 米粒(미립)대 크기라도 이미 수술을 한 부위이기에 이름 모를 공포가 밀려오고 나름 불안해서 직구를 댈 엄두가 전혀 생겨나지 않았던 것.
그런 결정을 하고도 상처부위와 단전, 기해혈 자리에 알뜸을 시작하자마자 모든 부위가 화농이 생기며 알뜸 크기로 부풀어 올라와 처음으로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수포가 2~3일에 부풀어 올라 이내 터지고 딱지가 생길락 말락 했다.
일주일정도 쉬었다가 다시 알뜸을 7~11개 정도했다.
또 똑같은 증상이 생겼다. ‘에헤라, 이렇게 된 이상 계속해보자!!’라는 각오로 단전과 기해혈자리, 복막염 수술부위에 알뜸을 계속했다.
이게 2004~5년 무렵이니 지금까지 10 여 년 동안 꾸준히 해온 생활 패턴식 방식이었다.
피고름과 멀건 고름을 10L는 족히 받아냈다고 대략 짐작해 본다.
속옷을 뚫고나온 피고름이 바지 혁대부위까지 뭍고 했으니 정말 지독하게 해 댔다.
그런데도 쑥 성분이 마냥 신기한 건 알뜸으로 인한 상처부위가 더 덧나거나 그로인해 2차감염이 전혀 없었다.
거의 날마다 술을 斗酒不辭(두주불사)식으로 마시고 사우나 이후 거의 매일 반신욕을 하는데도 2차감염이나 상채기 등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그토록 피고름이 나왔지만 소독 한 번 한 적이 없다. 다만 한 여름날 상처부위가 너무 쓰라려서 밴드를 붙였지만 그것도 심한 경우에만 사용했으니 손가락으로 꼽아 충분히 헤아릴 정도 밖에 안 된다.
얼마나 화농이 깊었으면 7~8년간 계속 고름이 알뜸 부위에서 나오고 또 나왔겠는가
7~8년 이후부터 고름이 점차 줄어들더니 2014년부터는 알뜸을 집중적으로 그렇게나 많이 해대도 아무런 생채기가 생기지도 않고 마찰이 혁대와 굵은실로 짠 속옷에 긁혀도 이젠 전혀 아프지도 않다.
다만, 아침이 오면 가슴이 벅차오르고 매일 아침이 날마다 새로울 뿐이다!!
이제 와서야 마을 아낙들을 겁탈해 92세에 죽임을 당한 왕초장군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당시는 손무기로만 싸우던 때이니 전쟁터에 나가면 거의 모든 남자들은 죽어 나오고 자연히 주변 마을에는 과부들이 늘어나고 왕초장군이 몽골 유목민에게 배웠다는 쑥뜸이 회춘과 남성건강에 도움이 되었다는 걸 비로소 실감나게 느낀다.
그리하여, 필자에게도 一日又日新(일일우일신)하여 日新又日新(일신우일신)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이어19회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