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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구칼럼> 정율성선생 신춘음악회

‘정율성 작은 음악회’ 등을 만들어 한중교류를 활발히 했으면 한다!!
등록날짜 [ 2016년01월25일 11시16분 ]
지난 22일 광주 동구 불로동 정율성선생의 생가인 히딩크호텔 공연장에서 한중문화교류회와 정율성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하동정씨종친회와 한국종합문화예술단의 후원으로 광주지역 명사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정율성선생 신춘음악회가 열였다.

  정율성선생 사업을 시작한 것은 한일월드컵 기간인 2002년부터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정율성생가로 지정하여 ‘정율성선생탄생지비’를 세워 현재 매년 3만 여명 이상의 중국인 관광객이 모여들고 있다. 광주 전남 지역의 대표적인 ‘중국인 관광 1번지’로 각광을 받고 있어 관광객 유치에 한몫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매일 오전 9시경이면 각 호텔에서 몰려온 관광객들이 들어오자마자 정율성선생이 작곡한 연안송, 연수요, 인민해방군가 등을 들려주자 춤을 추면서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많을 때는 200여명 이상이 오기도 한다.

  그 동안 정율성생가는 중국의 이조성 외교부장관, 왕몽 문화부장관, 구국홍 중국대사외 전 중국대사 등, 호헌 남창시장 등 각 시장 등, 사서림 주한 중국문화원장과 주영걸 전문화원장, 왕헌민 주광주총영사와 하영, 염봉란, 등안군 전총영사 등 중국인 유명인사 100여명이 방문하기도 하였다.
 

  광주지역 대학에 다니고 있는 중국인 유학생들도 매년 1천명 이상이 찾고 있으며, 중국 영화감독 50여명도 방문했으며, 중국 국영 CCTV 석양홍(夕陽紅) 촬영진이나 연변방송국에서도 수차례 촬영하기도 하였다. 시진핑(習近平: 습근평) 중국 국가주석은 2014년 7월 4일 중국 최고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의 대학을 찾아 특별강연에서 정율성선생에 대해 언급하였다.

  정율성은 신중국 창건영웅 100인에 선정된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 그의 기념관은 안중근의사 기념관이 있는 하얼빈에 있다. 그곳에 가면 생전에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부른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를 생생한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

  기념관에 들어서면 처음 화면에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우리의 대오는 태양을 향하여…' 중국 건국 60주년 열병식에서 중국 인민해방군이 행진할 때 울려 퍼진 장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진다. 중국과 한국에서 찾아오는 관람객들은 그의 삶이 주는 의미를 되새기며, 그가 한중 두 나라를 잇는 다리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기념관에 진열된 200여점의 자료 중 첫 부분은 정율성이 1933년 의열단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였던, 셋째 형을 따라 중국에 와서 항일투쟁을 계속하면서도, 음악에 대한 꿈을 키워가던 모습들이다. 정율성이 작곡한 연안송은 백성들의 입을 통해 전국으로 널리 퍼져나갔고, 군인들의 사기를 드높인ꡐ팔로군행진곡ꡑ을 1988년 등소평(鄧小平)에 의해ꡐ중국인민해방군가ꡑ로 확정됐다.

  정율성은 1914년 불로동에서 태어난 후 능주초등학교, 숭일학교, 전주신흥중학교를 다녔으며, 1933년 그의 형을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러시아의 음악가 ‘크리노와’로부터 본격적인 음악공부를 하게 되었다.

  20여년전 중국에 갔을 때, ‘인민해방군가’를 들을 수가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 때 “저 노래를 작곡한 분이 한국인이다”라고 말하자 깜짝 놀랐다. 중국인들은 정율성선생이 중국인으로 알고 있었다. 심양 동포들의 민족축제가 열릴 때 역시 정율성이 지은 곡이 울려 퍼지자 사회자가 “이 노래는 우리 민족의 영웅이신 정율성선생이 작곡한 노래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 때 정율성선생은 광주가 고향이라고 말하자, 광주라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그는 남경(南京)에서 생활하다 민족주의자인 김산(金山)에 의해 연안으로 가게 되었으며, 혁명 성지인 그곳에서 작곡하게 되었다. 당시 험난한 만리장정(萬里長征) 끝에 연안(延安)에 근거지를 마련한 중국 공산당은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항해야 했다.

  중국 공산당 정부가 존망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수많은 젊은이들이 바로 ‘연안송’을 부르며, 전국 각지에서 연안으로 몰려왔다. 그곳에서 주덕(朱德)을 만났는데 둘째 형 정충룡이 곤명에 있는 육군강무학교를 같이 다녔다하여 더욱 친하게 대했다고 한다.

강무학교 출신으로 우리나라 국무총리를 역임한 이범석장군이 있고, 1955년 7월부터 1958년 3월까지 북한 내각부총리, 1958년 3월부터 1972년 12월까지 북한의 제2대 국가수반 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역임한 최용건(崔庸健)도 이범석장군과 함께 학교에 다녔다. 광주에 중국인 관광객 유치와 지역발전을 위해 정율성을 내세울 필요가 있다. 정율성선생을 통해서 음악교류는 물론, 관광객 유치를 위한 선전활동, 지역발전을 위한 경제교류 등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광주에는 볼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어쩌면 정율성 생가가 돋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곳에 커다랗게 만들어 놓은 정율성선생의 비석에 기념사진이라도 찍기 위해 많이 모여들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앞으로 중국인 관광객유치를 위하여 ‘정율성기념관’을 만들어 체계적으로 관광객 유치나 ‘정율성 작은 음악회’ 등을 만들어 한중교류를 활발히 했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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