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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구칼럼>대구와 광주의 달빛동맹

고속도로 개통으로 광주서 대구 훨씬 가까워졌으므로 왕래 자주해야 할 것
등록날짜 [ 2016년03월10일 20시20분 ]

달빛동맹이란 대구광역시와 광주광역시는 영・호남 갈등을 해소하고, 상생 발전하기 위해 지난 2013년 달빛동맹(달구벌+빛고을) 교류협약을 하고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상호 교류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윤장현 광주시장과 권영진 대구시장은 대구광역시 두류공원 내 2‧28학생의거기념탑 광장에서 열린 대구2‧28민주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2·28민주운동과 5·18민주화운동을 이끈 대구와 광주는 자랑스러운 역사만큼이나 큰 사명을 가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중문화교류회는 지난 2월 27일 대구시를 답사하게 되었다. 팔공산의 동화사는 오래 전에 가보았지만, 역시 아름답고, 팔공산이 뒤에 병풍처럼 받치고 있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동화사는 오동나무(桐)가 상서롭게 꽃(華)을 피웠다하여 동화사(桐華寺)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어 대구 근대문화골목을 누비며 고풍스런 그 시절 정취를 체험했다. 대구는 한국전쟁때 다른 지역보다 피해가 적어 근대 건축물이나 거리가 비교적 온전히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광주 양림동에 미국 선교사들이 거주한 곳이 많이 있는데, 대구에도 1910년경에 미국인 선교사들이 거주했다던 주택이 자리 잡고 있다. 대구시 유형문화제인 이곳은 튼튼한 콘크리트로 그 위에 붉은 벽돌을 쌓아 올렸는데 이러한 건축 양식은 외국에서나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의 청라언덕은 ‘동무생각’으로 유명하다. 이은상 작사, 박태준 작곡의 ‘동무생각 노래비’의 노래를 보면 “봄의 교향곡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 나는 흰 나리 꽃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독립만세운동의 발상지가 되었던 길은 대구 제일교회 옆에 위치한 계단은 ‘대구 조선 독립만세운동의 발상지가 되었던 길’이라는 90계단이다. 만세운동을 준비하던 대구의 학생들이 경찰의 감시를 피해 다녔던 길이어서, 우리도 이곳에서 만세삼창과 동무생각을 부르니 마음이 후련했다.

계산성당은 프랑스 신부에 의해 설계된 계산동 성당은 1902년에 완공되었는데 중국인들에 의해 세워졌다. 그래서 주변으로 화교들이 많이 살고 있는 모습을 알 수 있어 차이나타운이 형성되어 있다. 광주에도 차이나타운을 만들려고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상화선생의 고택을 찾았다. 이상화선생은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큰아버지에 의해 공부하게 되었다. 열아홉 되던 대구에서 친구들과 함께 3·1 만세 운동 거사를 모의하다, 밀정의 추적으로 주요 인물들이 잡혀가자 서울로 올라가 은신하였다. 그는 현진건의 소개로 박종화와 만나 〈백조〉 동인에 참여했고, 홍사용, 이광수, 최남선 등 문인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상화선생은 파리 유학을 목적으로 동경(東京)에서 2년간 프랑스문학을 공부하였으며, 유학 중에도 틈틈이 작품 활동을 하여 국내의 잡지사로 송고하기도 하였다. 1923년 관동 대지진이 나자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몰려 일본인 폭도들로부터 암살 위협을 겪었으나 극적으로 어느 일본인의 배려로 살게 되었다.

그의 반일(反日) 민족의식을 표출한 저항정신이 강력하게 깔려 있다. 비록 나라는 빼앗겨 얼어붙어 있지만, 봄이 되면 민족혼이 조국의 대자연과 함께 우리를 일깨워준다는 것이다. 나라는 빼앗겼다 하더라도 우리의 혼을 불러일으킬 봄은 빼앗길 수 없다는 몸부림을 일제에게 강력하게 저항의식을 나타내고 있다.
 

국채보상운동에 앞장섰던 독립운동가 서상돈선생의 고택이 있다. 그는 지물(紙物) 및 포목상을 시작하여 상당한 재벌로 부상하였으며, 외세의 국권침탈에 맞서 수호에 앞장선 독립협회의 주요 회원으로 활약하였고, 담배를 끊어 당시의 국채 보상할 것을 제의하였다. 국채보상운동은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를 비롯한 민족 언론기관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얻어 전국적인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이에 불안을 느낀 일제의 탄압으로 실패하고 말았지만, 우리나라 최초로 일어났다는 것이 훌륭한 일이었다.
 

대구 서문시장을 찾아 "근대문화의 유산과 연결되어 있는 서문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기능을 넘어 문화관광의 중심으로 대구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누구나 이 시장 골목을 다니면서 즐거움을 만끽하고, 막걸리 한잔씩 기울일 수 있는 곳이라 더욱 정감이 가는 곳이다. 

음악에 조예가 없어 김광석을 잘 몰랐으나, 김광석 거리에서 공연에 함께 참여하였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 노래를 부르고 즐기는 것을 볼 때, 광주에도 정율성 음악을 공연하는 거리를 김광석 거리처럼 만드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속도로 개통으로 광주에서 대구가 훨씬 가까워졌으므로 왕래를 자주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남북으로는 자주 다니면서 동서로 다니지 않는 것은 국가 발전에도 좋지 않는 일이다. 대구 근대문화골목을 답사하면서 느낀 점은 영남의 중심도시 대구는 우리 광주보다 문화가 휠씬 앞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시아문화전당이 있다고 하여도 우리에게 와 닿지 않는다. 우리 일행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대구를 방문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달빛동맹을 이어 가자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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