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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고조선 역사속의 우리나라꽃 무궁화

행정자치부, 2016광복절 맞아 무궁화 의미 되찾기 나서
등록날짜 [ 2016년08월09일 07시46분 ]

  행정자치부(장관 홍윤식)는 제71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선열들의 독립운동과 함께 한 무궁화를 되돌아보고, 국가상징으로서 무궁화의 의미 확산과 선양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연구용역을 추진한다.

  이번 연구는 시대별로 문헌 고찰를 통해 우리 민족 5천년의 역사 속에서 무궁화의 기록과 흔적을 찾기 위해 추진하는 것으로, 9월말 본 연구가 마무리 되면 국화로서의 무궁화의 가치와 의미를 재발견하고 국민들이 국화에 대한 자부심을 더 가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무궁화는 우리 민족의 시원(始原)과 함께 고조선 시대에서부터 조선시대를 거쳐 역사 속에서 존재*해 왔으며, 특히 일제강점기에 독립지사들에 의해 우리나라의 표상으로서 전통이 계승되어 민족혼을 일깨우고 광복이라는 희망을 상징하는 꽃으로 국민들에게 널리 인식되었다.

 연구용역에 참여한 신구대학교 김영만 교수의 연구자료에 의하면『역사속의 무궁화 사례』는 다음과 같다.

1. 고조선시대
 단군조선 건국 이전인 신시시대에 환(桓)나라의 꽃인‘환화(桓花)’로 불리며 우리 민족과 관계를 가졌고, 고조선 시대에는 무궁화를 하늘에 제사 지내는 신단(神壇) 둘레에 심어 존귀하게 여김, 단군은 무궁화를 뜰아래에 심어 정자(亭子)를 만들었으며, 국자랑(國子郞)들은 천지화(天指花)를 머리에 꽂고 다니기도 하였는데‘천지화’는 무궁화를 말하는 것으로 이와 같은 사실들은 중국 고대 지리서 《산해경》의‘훈화초(薰華草)’의 기록 이후 우리 문헌인《조대기》,《단군세기》,《단기고사》등에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지봉유설》등에 언급된《산해경》내용에 따르면 무궁화는 이미 2천 5백 년 이전부터 우리 강역에 피어 있었고, 하늘에 제사 지내는 성스러운 장소와 제례단 주변에 많은 무궁화를 심은 것 등으로 보아 당시 우리 선조들은 무궁화를 존귀하고 신성한 꽃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2. 삼국시대 ~ 고려시대
 신라시대에는 897년에 당나라에 보낸 국서(國書)에‘근화향’(槿花鄕)이라 표기하여 스스로를‘무궁화 나라’라고 하였으며, 고려시대에도 위와 같은 호칭이 사용되었고 또한‘무궁화(無窮花)’라는 명칭이 처음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신라와 고려시대 국서에 근화향, 즉 ‘무궁화 나라’라고 명기한 것을 통해 신라시대에 이미 무궁화가 국내외에 나라의 표상으로 인식되어 있었으며 나라꽃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이 국화를 지정한 것보다 천년이 앞선 것이며, 특히 외국에서 우리나라를 무궁화 나라로 인식하였다는 점은 오늘날 국가상징은 물론 국가 브랜드 관점에서도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3. 조선시대
 조선시대 초기에는 조선왕조의 상징인 이화(梨花)에 무궁화가 가려 있었으나 실학자들에 의해 많은 문헌으로 소개되었으며, 국학운동에 의해 무궁화가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꽃으로 부각된 것을 알 수 있었다. 한편 조선시대에는 백단심계 무궁화와 홍단심계 무궁화가 있었던 것을 문헌을 통해 확인하였다. 그리고 당시 한양에는 백단심계 무궁화를 일상에서 보기 힘들만큼 널리 보급되어 있지 않았던 반면에 홍단심계 무궁화는 상대적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4. 일제강점기
  일제 강점기에 무궁화는 민족의 이름으로 수난을 겪었지만 광복구국운동의 표상으로 인식되어 민족혼을 일깨우고 국민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꽃이었다. 특히 독립군이 불렀던 군가와 시가 중 38편에서 무궁화가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를 통해 무궁화가 일제 강점기에 독립군 등 애국지사들에게 널리 애창되었다는 것은 물론, 독립군의 가슴에 무궁화가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당시 왕실의 꽃이 있음에도 무궁화가 국민에 의해 나라꽃으로 인정되고 있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5. 대한민국
  광복 후 한국전쟁을 겪은 1950년대까지 재봉틀, 자전거, 사이다, 캐러멜과 같은 당시 매우 귀한 제품의 이름(브랜드명)으로 무궁화가 사용되었다. 시대에 따라 국민적 관심과 가치가 높게 평가되는 유무형의 것이 산업, 특히 브랜드명으로 활용된다는 면에서 당시 국민들이 무궁화를 매우 귀하게 여겼으며, 또한 무궁화에 대한 이미지가 매우 높이 평가됐던 것을 알 수 있었다.

  2000년도, 무궁화에 대한 국민 의식 조사 결과를 통해 우리 국민은 무궁화에 대해 아름다움(심미성), 상징성, 친밀도 면에서 높게 긍정하고 있으며,‘애국’에 대한 이미지가 강하게 고착되어 있고, 무궁화에 대한 역사적 인지도와 주변 접촉 빈도가 낮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처럼 무궁화는 시대에 따라 신시·고조선 시대에는 ‘신의 꽃’, ‘하늘의 꽃’으로,  신라와 고려시대에는 ‘나라의 꽃’으로,  일제 강점기에는 광복구국운동의 표상인 ‘희망의 꽃’,  ‘백성의 꽃’으로 자리매김하며 우리 민족과 관계를 가져왔다.

무궁화(출처:스마트과학관,네이버지식백과)
스마트과학관의 『우리나라 야생화 무궁화』의 기록을 보면 무궁화의 종류는 200종 이상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의 주요 품종은 꽃잎의 형태에 따라 홑꽃, 반겹꽃, 겹꽃의 3종류로 구분하고, 꽃잎 색깔에 따라 배달계, 단심계, 아사달계의 3종류로 구분한다.

 꽃의 중심부에 단심(붉은색)이 없는 순백색의 흰꽃은 배달계라 하며, 단심이 있고 꽃잎에 무늬가 있는 종류는 아사달계라고 한다. 단심계는 꽃의 중심부에 붉은 무늬가 있는 것으로 백단심계, 홍단심계, 청단심계로 구분된다.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선정한 것은 1896년 독립문 주춧돌을 놓는 의식 때 애국가 후렴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구절을 넣으면서 나라꽃이 되었다고 한다.

 앞으로 행정자치부는 독립운동 과정에서 함께 해 온 무궁화에 담긴 나라사랑 정신과 의미가 국민 속에 확산되도록 ‘무궁화 선양 및 확산 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위해 관련부처와 지자체 등과의 협업도 적극 추진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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