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바 딘 광장은 길고 험난했던 베트남 혁명의 상징이다. 여기에는 주석궁, 호치민이 살던 집 나산, 호치민 영묘와 호치민 기념관이 모여 있다.
1969년 9월2일 아침 9시45분에 호치민(1890-1969)이 나산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그런데 이 날은 베트남 독립기념일 24주년이었다.
북베트남 정부는 호치민의 사망을 감추고 있다가, 9월3일에야 사망 소식을 발표했다. 호치민의 사망소식이 알려지자 전 세계에서 논평이 쏟아졌다. 모스크바는 공식 성명을 통해 호치민을 “영웅적인 베트남 인민의 위대한 아들이며, 국제공산주의 운동과 민족해방운동의 뛰어난 지도자이며, 소련의 훌륭한 친구”라고 찬양했다.
인도의 어떤 글은 그를 “인민의 정수(精髓)이며 자유를 향한 열렬한 갈망과 인내와 투쟁의 화신”이라 묘사했다.
우루과이의 한 신문에는 이런 사설이 실렸다. “그는 우주만큼 넓은 심장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아이들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모든 분야에서 소박함의 모범이었다.”
미국 백악관은 논평을 거부했다. 그렇지만 미국 국민들의 관심을 나타내듯 CBS의 크론카이트는 호찌민의 사망 소식을 톱뉴스로 보도하면서 상업 광고 없이 7분을 할애했다. 반전운동을 지지하던 신문들은 호치민이 훌륭한 적이며, 약하고 억압받은 사람들의 옹호자였다고 묘사했다
(윌리엄 J. 듀이커 · 정영목 옮김, 호치민 평전, 푸른숲, 2003, p 817)
바딘 광장에는 날마다 조문객들이 줄을 섰다. 외신 기자 마이클 매클리어는 현지에서 이렇게 기사를 썼다.
“위대한 지도자를 잃은 비탄과 감동, 혼란이 함께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넋을 잃은 듯이 행동했다. 한 사람의 정치지도자를 잃고 애도하는 그런 슬픔이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이 슬픔을 꾹 참고 견디는 모습이었다.
호치민의 인민들은 ‘호 아저씨’가 부르기만 하면 누구라도 달려와 목숨을 걸고 싸울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그런 순간들이었다.”
(마이클 매클리어 지음 · 유경찬 옮김, 베트남 : 10,000일의 전쟁, 을유문화사, 2003,p 444)
9월8일에 바 딘 광장에서 호치민의 장례식이 열렸다. 광장에 모인 10만 명의 인파는 흐느꼈고, 군악대는 ‘남베트남을 해방하라’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장례식은 단 35분 만에 간소하게 치러졌다.
이는 호치민의 유언에 따른 것이었다. “사적인 문제에 대하여 말씀드립니다. 제가 떠난 후, 인민들이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대규모 장례식을 치르지 않았으면 합니다.”
호치민은 1965년 75세 생일에 비밀리에 유언장을 작성했다. 마지막 유언장은 그가 79세인 1969년 5월10일에 작성되었다. 주1)
그러나 시신을 화장해달라는 그의 유언은 지켜지지 않았다.
"내 시신은 화장해서 재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 도자기 상자에 담아 하나는 북부에, 하나는 중부에, 하나는 남부 베트남에 뿌려다오. 무덤에는 비석도 동상도 세우지 말라. 다만 단순하고 넓으며 튼튼하고 통풍이 잘 되는 집을 세워 방문객들이 쉬어갔으면 좋겠다. 방문객마다 추모의 뜻으로 한두 그루씩 나무를 심게 하라. 세월이 지나면 나무들은 숲을 이룰 것이다"
북베트남 정부는 화장해 달라는 호치민의 유언 부분은 아예 삭제하고 소련의 레닌처럼 영묘에 전시하기로 했다. 국부 호치민이 베트남 민족에게 미치는 영향력과 상징성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호치민은 유언장에서 당의 단결과 전쟁 후 국토 재건을 당부하였고, 자작시도 수록했다.
“우리의 산도
우리의 강도
우리 인민도 영원하리.
양키가 패전하면
우리는 열배이상 더 아름답게 이 땅을 다시 세우리.”
(호치민 지음 · 배기현 옮김, 호치민 식민주의를 타도하라, p 311-314)
한편 1975년 8월29일에 호치민의 영묘가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영묘 입구에는 하얀 제복을 입은 경비병이 밀랍인형처럼 꼿꼿하게 서 있고 매주 2만여 명이 찾는다.
바딘 광장에는 호치민의 영묘를 중심으로 좌우에 기다란 구호를 적은 담장이 있다. 좌측에는 ‘사회주의 국가 베트남 만세’, 우측에는 ‘호치민 주석은 우리 사업에 영원히 살아있다.’고 적혀있다.
반은 레닌, 반은 간디인 호치민! 그는 민족주의자이자 공산주의자였다.
사진 10-1 하노이 바딘 광장 – 호치민 영묘 좌우에 적힌 구호가 인상적이다.
사진 10-2 호치민 영묘
주1) 호치민 사망 직후 북베트남은 유서 내용 일부만을 공개하였으며, 유언장 전문의 공개는 호치민 서거 20주기인 1989년에야 이루어졌다.
(연재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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