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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12.8.∼12.9.)의 하반기 안보연수를 다녀와서 가장 와닿았던 느낌은 현장탐방에서 느꼈던 안보와 통일의 중요성이 공존하는 것에 대한 묘함이었다.
처음연수에 참여하게 됐을 때 어릴적부터 통일・안보라는 단어를 글자 그대로 보고 들어 왔기에 막연하게 ‘중요하다’는 느낌만을 가지며 안보연수에 참여하게 되었다.
임진각에 들러 통일의 염원을 담아 시교육청에서 준비한 “우리의 소원은 통일” 리본을 철조망에 달아놓고, 판문점으로 가 공동경비구역(JSA) 안보견학관에서 영상으로 준비되어있는 부대소개 등 교육을 받고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장소로 향했다.
그 사이에 북한과 맞닿아 있는 우리나라의 대성동마을을 지나갔고 북한의 기정동마을도 멀리서나마 바라볼 수 있었다. 같은 땅위에 절묘하게 분단되어 있는 우리의 현실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판문점 회의장소에 도착하여 북쪽을 바라보니 같은 장소에서 나란히 있는 건물들조차도 색을 달리하여 나뉘어 있는 것과 북한측판문각 앞에서 우리를 주시하며 감시하는 북측병사와 북한측을 바라보며 주시하는 우리 헌병을 보며 다시한번 우리가 분단국가임을 느끼게 되었다.
이후 우리가 바로 향한 판문점 남방 4km지점에서 발견된 제3땅굴의 높이는 아파트 25층의 높이로 당시 땅굴이 발견되자 북한측에서는 석탄을 채취 위한 땅굴이었다라는 등의 변명을 하지만 자연동굴로 위장하기 위해 약간의 석탄을 묻혀놓고 암반을 폭파하기 위한 다이너마이트 장전공이 우리쪽으로 향해 있다는 것과 북쪽으로 물이 흐르게 되어 있다는 점에서 남침용 땅굴로 판명됐다는 교육을 헌병에게서 듣고 땅굴로 향했다. 자연동굴로 위장하기 위한석탄이 곳곳에 보였고, 다이너마이트 장전공도 곳곳에 보이며 안보의 중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이후 향한 제3땅굴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도라전망대에서는 날씨가 좋으면 망원경이나 육안으로 보면 개성이 보이고, 지금은 폐쇄된 개성공단이 보이는 곳인데, 날씨가 흐린 탓에 잘 보이지 않아서 다소 서운했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대성동에 위치한 깃대와 북한 기정동마을의 깃대가 마주보고 있었는데 멀리서 보이는 적막감은 겨울날씨의 추위만큼 시리게 느껴졌다.
첫째날,
일정이 마무리 되는 즈음에 강화안보수련원에 도착하여 숙소 배정과 저녁식사를 마친후, 강당에서 탈북민의 강연을 듣고 생생한 북한주민의 실상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탈북 강사님은 가족과 함께 목숨을 걸고 어려운 악조건의 역경을 극복하면서 제3국을 경유하여 3개월이라는 오랜시간을 보낸후 한국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 했을 때에는 탈북 주민들의 삶이 너무 안타깝고, 아무리 평양에서 잘 먹고, 잘 산다고 하더라도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었던 북한주민의 생활보다 더욱 열악한 상황의 실상을 듣고 같은 시대의 같은 민족으로서 통일의 중요성을 더욱 느끼게 되었다.
다음날,
신미양요 당시 가장 격렬했던 격전지로 알려진 광성보(사적 제 227호)를 경유하여 천년간의 외세의 침략을 막아낸 호국의 거점이면서 국방의 요충지인 강화 갑곶돈(사적 제306호) 내에 자리 잡은 강화전쟁박물관을 견학하였으며, 마지막으로 강화제적봉평화전망대에서 강줄기 건너 육안으로 뚜렷이 북한을 더욱 가까이에서 볼 수 있으며, 지금은 새들만이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곳이다.
이틀내내 날씨가 흐린 탓에 자세히 그리고 멀리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내부에 설치된 망원경을 통해 북한주민과 건물들을 볼 수 있었다. 여기에서 직접 북한을 바라보니 북한과 가까운 만큼 긴장과 평화로움이 공존하는 것에 대한 묘한 느낌이 들었다.
이틀의 안보연수과정의 많은 안보교육과 현장탐방을 통해 머릿속에서만 그리던 안보와 통일이 아닌 실제 현장에서 안보와 통일을 더욱 가깝게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