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04월13일sun
 
티커뉴스
OFF
뉴스홈 > 뉴스 > 스포츠
kakao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영원한 프로레슬링 박치기왕 김일(金一)

대한민국의 국민적 영웅 프로레슬링 1세대, 고흥군 거금도 김일기념체육관
등록날짜 [ 2017년01월05일 02시14분 ]


 전남 고흥군 금산면 거금중앙길 40(금산면 어전리 1413-6, 전화번호061-830-6720)에 있는 〔영원한 프로레슬링 세계 헤비급 챔피언 박치기왕 김일(金一)기념체육관〕이 있다.
 

 남해의 청정바다 고흥의 대표 항구 녹동항에서 한때 한센인들의 집단거주지 소록도 대교를 지나니  거금대교가 보이고 약 16분 이동하니 고흥군 금산면 거금중앙길 40(금산면 어전리 1413-6)에 있는 김일기념체육관이 보인다.

 암울한 시대에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해 준 사람들을 체육계 국민적 스타를 몇 사람 소개하면
일제시대인 1936년 8월 11일 독일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경기(42.195km)에서 당당하게 세계 올림픽 신기록으로 우승을 하여 열광의 도가니로 손기정(孫基禎) 선수와 3위로 입상한 남승룡(南昇龍) 선수, 

속칭 해방 대한민국의 보리고개로 희망이 없는 1960~70년대 프로레슬링 선수로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오른 박치기왕 김일(金一) 선수, 

1997년 발생한 외환위기로 암울한 시대 이듬해인 1998년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adies Professional Golf Association/LPGA) 투어에 참가해 첫 해에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과 U.S. 여자 오픈에서 우승하면서 신인상을 수상해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으며 2001~2002년 세계 메이저 골프대회 4승·2007년 6월에 최연소로 LPGA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던 골프여제 박세리(1977년생~현재) 선수가 있다.

 오늘은 위 3세대 국민적 영웅 중 김일(金一) 프로레슬링선수에 대하여 소개한다.
 

 거금도에 있는 김일기념체육관에 들어서니 넓은 부지 입구 커다란 『김일기념체육관 표지석』 , 이어서 야외공원에 『김일 석상』, 우측으로는 주차장이 있고, 맨 뒤에 『김일기념체육관』이 보인다.
 
  『김일기념체육관』 건물안에 들어서니, 넓다란 실내체육관이 중앙에 있고, 우측에는 사무실과 화장실, 좌측에는 기념전시관이 보인다.

  『김일기념전시관』은 약 70평정도의  생전의 활동상을 담은 각종 김일 선수 조형물(실물크기 形像·챔피언 벨트·복장·3회의 체육훈장·사진·선수생활 자료가 있다.
 

 김일 선수의 약력을 소개한 안내표지판에는 『영원한 챔피언 박치기왕 김일』이라는 약력 소개와 김일 선수 흉상이 보인다. 
 

 속칭 해방 대한민국의 보리 고개로 희망이 없는 1960~70년대에 장영철, 천규덕과 함께 한국 프로레슬링 1세대로 활약하며 1960년대~70년대 중반까지 일본과 한국에서 '박치기 왕'으로 불렸다.

김일(金一, 일본어: 大木金太郎 おおき きんたろう 오오키 긴타로, 1929년 2월 24일 ~ 2006년 10월 26일)은 대한민국의 프로레슬링 선수인 그는 프로레슬러 역도산의 제자이다.
 

 김일 선수는 1929년 2월 24일 전라남도 고흥군 금산면 어전리 평지마을에서 출생했고 1948년부터 1957년까지는 고흥에서 씨름 선수로 활동하였다.
 

 국내 씨름판을 주름잡다 역도산의 레슬링 기사를 보고 1956년 일본으로 밀항했다. 불법체류자로 잡혀 일본에서 1년간 형무소에서 복역하면서도 역도산에게 계속 편지를 써, 1957년 5월 7일 도쿄의 역도산체육관 문하생 1기로 입문하면서 레슬링을 시작했다.
 

 스승 역도산에게서 호랑이를 때려잡는 사나이라는 뜻의 일본어 이름〔大木金太郎 おおき きんたろう(오오키 긴타로)〕라는 이름을 받고, 특기로 박치기를 연마했다. 일본 현지에서 '원폭 박치기'로 불릴 만큼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 그의 박치기는 서양의 거구 프로레슬러도 한 번에 쓰러졌다.
 

 1963년 그의 프로레슬링 스승인 역도산이 별세하여 너무나 아쉬운 일이 발생했다.

 김일 선수는 스승 역도산 사후 1960년대와 1970년대 중반까지 '박치기 왕'으로 최고의 인기 절정을 누리며 1963년 미국 원정 세계레슬링협회 세계태그챔피언, 1964년 북아메리카 태그챔피언, 1965년 극동 헤비급 챔피언, 1966년 도쿄 올아시아 태그챔피언, 1967년 제23대 세계레슬링협회 세계헤비급 챔피언, 1972년 도쿄 인터내셔널 세계 헤비급 태그챔피언 등 20여 차례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고 30여 년간 3,000여 차례의 경기를 치렀다.
 

  한국 프로 레슬링 1세대 격인 장영철과 천규덕 등과 함께 레슬링의 전성기를 꾸려가다 1985년 현역 프로레슬링 선수에서 은퇴했다.
 

 현역 선수 은퇴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여러 사업을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런데다가 선수 생활중 박치기 등의 후유증으로 1987년부터는 각종 질병에 시달리다가 1994년 1월에 귀국하였고 서울 을지종합병원에서 입원하여 투병 생활을 하였다. 투병 생활하는 순간까지도 우리나라 프로레슬링 발전과 후진 양성에 앞장섰다.
 

 현역 시절의 라이벌로인 일본의 세계적인 프로레슬링 선수 『안토니오 이노키 선수』 김일 선수가 병환으로 입원하자 문병하기도 했다.
 

 2006년 10월 26일에 그곳에서 향년 78세의 나이로 만성신부전증 및 심장혈관 이상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제자로는 이왕표 선수가 있다.
 

 김일 선수는 생전에 고향발전을 위하여 1968년 고흥군 금산면에 최초 한국전력 전기를 연결해주었다.

 또한 조국의 체육발전 위하여 1975년에는 서울 정동 김일 문화 체육관을 설립했주었고, 프로레슬링 발전과 후배 양성을 위하여 온 힘을 기울였다.

김일 선수는 이러한 우리나라 낙후된 체육발전과 지역사회 및 국가 발전 공적을 인정받아 지역사회 발전 유공으로 1966년 10월 22일 고흥군 군민의상 수상을 하였고,  1999년  8월 15일 고흥군 금산면 면민의 상 수상, 1999년 10월 25일 전라남도 도민의 상 수상하였다.
 

 국가발전 유공으로 1994년 4월 26일 국민훈장 석류장 수상, 2000년 3월 24일 대한민국 체육훈장 맹호장 수상을 하였고, 故人(고인)이 된지 37일만인  2006년 12월 1일 대한민국 체육훈장 청룡장이 추서되었다.

 

 
 한편, 김일기념체육관은 지난 2006년 12월 김일 체육관 건립 계획을 수립하여 2009년 9월 고흥스포츠파크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총 40억 원(국비20, 군비20)의 사업비를 투자하여 전남 고흥군 금산면 어전리 일원에 2,186㎡ 규모의 김일 기념체육관을 비롯해 기념전시관, 야외공원 등을 조성하여 2011년 12월 17일 “박치기 왕 김일 기년체육관 개관식”을 했었으며, 매년 김일 선수를 추모하는 박치기 대회와 프로레슬링 대회 등이 열리고, 전국각지에서 추모관광객이 연중 다녀가고 있다.

저작권자 ⓒ 이데이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 0 내려 0
강진원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손세련 선수 레슬링 국가대표 선발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대구시, 제10회 전국새해알몸마라톤대회 개최 (2017-01-06 15:49:58)
순천시, 겨울철 전지훈련 명소로 각광 (2016-12-20 19:11:24)
장성군, ㈜고려시멘트 건동광산...
영광형 기본소득 이행 기본계획...
나주시, 반다비 체육센터 개관
광주동·서부교육지원청, 초 2...
광주시교육청, 학생 맞춤형 ‘...
순천만국가정원, 꽃이 피는 자...
순천시, 청년정책 106개 사업 5...
현재접속자 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