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팀 셔록 기자는 올 봄에 광주에 2개월간 체재하면서 이 자료들을 분류‧정리하고, 해제작업과 주요 이슈에 대한 토론, 논평도 작성할 계획이다.
나간채 관장은 “5‧18당시 미국정부의 공식 문서가 기록관에 기증됨으로써 그 당시 미국정부와 신군부의 관계, 미국 정부의 역할 등 숨겨진 진실을 규명할 소중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록관 기존 기록물과 상호 보완성을 갖고 완성도를 높임으로써 우리는 5‧18의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고 밝혔다.
【붙임1】 팀 셔록 기증자료 목록
▶ 팀 셔록 기증자료 내역 : 58FILE / 3,514쪽
- FedEX 도착(광주) : 2017. 1. 9. 12:00경
- 화물상태 : FedEX BOX 1EA, 속 플라스틱 바켓스 2EA
1979-80년 남한 광주에 관한 분류해제 FOIA자료(일자별,파일명,설명,권번호/샘플서류 인용)
(* 표시는 최근 입수되어 아직 발표된 적 없는 문서임)
○ 1979년
CIA-1979
CIA 정보 자산(공개예정 극희귀본): 124쪽 예상
● “박정희대통령 및 남한의 반체제인사 개요”(13쪽)
● “동아시아 리뷰-남한 : YH방직회사 사건의 관점에서”(5쪽)
● “경제 정보 주간 리뷰”(28쪽)
● “1급비밀-1979년 10월 29일 상황 리포트”(2쪽)
● “남한 : 승계 전망”(15쪽)
● “남한 : 정치적 평가”(30쪽)
● (국무성 비밀 리포트) : “대한민국 안정 및 정치적 발전에 관한 또다른 평가”-1980년 3월, 글라이스틴 대사 작성(30쪽)
○ 1979년
1979년 암살 이전
박정희 사망 이전 한국 경제, 북한, 한국 정치에 관한 국무부 리포트 약 100쪽
샘플 : “한국 여성의 지위”
○ 1979-1980
전두환에 대한 미국의 승인
1979년 글라이스틴대사 보고서(12/12이후 “실질적인 쿠데타”) ; “쿠데타가 아니다”는 국무부 몬조의 발언 ; 1980년 10월, 브라운 국방장관의 비밀 서울방문에 대한 워런 크리스토퍼의 승인 등을 포함한 미국대사관으로부터 보내온 고급 국무부 전문. 약 200쪽.
샘플 : “1980년 1월 신군부 지도부와의 협의”
○ 1979-1980년
리차드 홀부르크-국무부 차관보이자 미국내 한국정책 핵심인사
미국대사관발신 홀부르크수신(그리고 홀부르크발신 미국대사관 수신) 고급 전문. 약 80쪽.
샘플 : “홀부르크 차관보와 박정희대통령의 대화,”3/79(비밀)
○ 1979년 1월-5월
카터-박정희 정상회담 준비
카터 대통령의 서울방문 지연에 관한 (고도로 편집된)국무성 기밀 메모. 약 50쪽.
샘플 : “1년 내내 대사관은 전반적인 또는 부분적인 1979년 인권현황 보고서 초안을 텔레그램을 통해 받았다...[전 부분 보도통제-당시 남한내 정치범의 숫자에 관한 핵심적인 정책분쟁]
○ 1979년 봄-가을
1979년 가을-일반상황
남한 정치상황에 대한 국무성 기밀 전문. 약 300쪽.
샘플 : “우리는 한국내 정치적 자유의 확장 및 속도에 관해 우리가 만족하고 있다는 잘못된 인상을 한국정부에 주는 정상회담이라는 결정을 바라지 원치 않는다”
○ 1979년 4월-1979년 12월
1979년 카터 방문
1979년 6월 지미 카터 대통령과 박정희의 정상회담에 관한 미국무부 기밀 전문. 약 80쪽.
샘플 : “카터-박정희 정상회담은 인권상황에 미미한 영향력만을 발휘할 것이라는 점을 확신한다”
○ 1979년 5월-1979년 6월
1979년 정상회담 협상
지미 카터와 박정희 정상회담에 관한 미대사관/국무부 기밀 전문
; 박정희와의 회담에 관한 글라이스틴 대사의 소견. 약 50쪽.
샘플 : “다음 문건 초안에 관한 대사관의 언급에 감사드린다”
[언급내용 완전 보도 통제]
○ 1979년 4월-1979년 12월
1979년 봄-여름 #2
정치재판 등을 포함한 남한내 사건들에 관한 미국무부 기밀 요약본. 약 200쪽.
샘플 : “외국언론에 관한 한국정부의 검열”
○ 1979년 9월-1980년 6월
섞인 파일-살즈버그/아마코스트
2명의 미국 외교관(살즈버그 및 마이클 아마코스트) 작성한 서울발신 워싱턴 수신의 기밀 및 비밀 국무부 전문 및 남한 정치상황과 관련된 글라이스틴 대사의 추가 작성분.
샘플 : “한미안보협의회의의 한도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한국이 약속된 정치일정의 첫걸음을 내딛기 전까지는 우리는 최소한 물러서지 말아야 한다....”
○ 1979년 10월-1980년 6월
최규하
최규하대통령의 움직임에 관한 국무부 기밀 전문. 약 80쪽.
샘플 : “최규하대통령의 취임연설문”
○ 1979년 11월-12월
체로키 파일, 1979년 11월-12월
박정희 암살 이후 1급비밀 체로키 커뮤니케이션의 조직. 약 150쪽.
샘플 : 다가오는 의회 청문회와 관련-“한국상황에 관한 공개 청문회는 한국정부뿐만 아니라 수많은 한국 국민들에게도 경악할 만한 내용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 1979년 11월-1980년 3월
김대중, 김종필
김대중, 김종필 및 정치상황에 관한 국무부 기밀 전문. 약 30쪽.
샘플 : “김대중의 정치적 야망은 그를 신임하지 않고 있는 군부의 시각이라는 강력한 장애물에 직면했다”
○ 1979년 11월-1980년 5월
체로키 파일 : 최규하대통령의 기자회견 설명 등을 포함한 체로키 시리즈 중 1급비밀문서의 시간순 컬렉션. 약 120쪽.
샘플 : “반스 미국무장관의 언급을 반복한 뒤, 공개적인 비판을 피하고 중재방안을 조언하기 위해 나는 최규하의 정부가 매우 힘든 갈등조정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 1979년 11월-1980년 9월
체로키 파일, 11-6-79부터 9-13-80
박정희 암살 직후 남한에 관한 글라이스틴 대사의 정밀 분석 등을 포함한 체로키 시리즈 중 1급비밀문서의 시간순 컬렉션. 약 80쪽.
샘플 : “다른 세력[야당]에 대한 영향은 명백하게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어서 우리는 계엄당국에 대한 지속적인 도전을 멈출 수 없었다”
○ 1979년 11월-1979년 12월
12.12사건과 그 후
12.12 직전 직후 한국 국내정치에 관한 국무부 기밀 전문. 약 100쪽.
샘플 : 최규하 대통령이 대 내각을 발표한다“
○ 1979년 11월-1980년 1월
박정희 암살 이후
국무부 기밀 요약본. 약 50쪽.
샘플 : “야당성향의 그룹들에게서 박대통령의 죽음은 쿠데타 시도의 결과라는 느낌이 강하게 나타난다”
○ 1979년 12월-1980년 1월
김영삼
김영삼에 관한 국무부 비밀 전문. 약 300쪽.
샘플 : “12월 20일 통화중 김영삼은 최규하대통령의 정치일정에는 1981년 5월까지 선거가 없다고 불만을 표하고 급진좌파들은 그토록 오랜 지연시간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 1979년 12월*
신 국방부 문서
12.12사건 및 미-한작전통제권에 관한 국방부 및 국무부 고급 메모. 약 80쪽.
샘플 : “12월 19일 위컴 장군이 보낸 비밀 메시지”
○ 1980년 3월-1980년 8월
US 프레스, 광주 이전과 이후
한국과 워싱턴의 사건들에 대한 국무부 기밀 요약본. 약 40쪽.
샘플 : 상원핵심청문회에서 리차드 홀부르크는 전두환 군사그룹에 대해 긍정적인 발언을 하다. 1980년 8월.
○ 1980년 3월-1980년 8월
워런 크리스토퍼-국무부 기자회견
남한내 사건들에 관한 US 프레스 브리핑 텍스트. 약 30쪽.
샘플 : “우리는 김대중을 포함한 정치범들의 처우에 대해 한국 당국에 지속적으로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 1980년 4월-5월
DIA(국방정보국)
남한 내부의 상황, 특히 전두환 그룹의 부상에 관한 국방부 보고용 국방정보국 비밀보고서. 약 200쪽.
샘플 : “전두환 중장의 중앙정보부방 임명에 관한 합리적 이유”
○ 1980년 5월
1980년 3월-카터와 미국정부 성명
광주에 관한 카터대통령의 기자회견 핵심 발언. 약 30쪽.
샘플 : “공산화나 침략으로부터 나라의 안전을 유지하는 것이 인권이나 민주적 일정을 진행하는 것보다 선행조건이다....”
○ 1980년 5월*
광주 관련 일본의 역할
일본 자위대 해군의 광주관련 상황 정보수집이라는 역할에 관한 국방부(미국 태평양 사령부) 1급 비밀 교신; CIA를 통해 국방부 합동정보센터로부터 취득. 약 20쪽.
샘플 : “일본 자위대 해군은 한국 서남부지역의 상황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그 불행한 땅(한국)의 불안정화가 일본에 미칠 수많은 위험인자들”
○ 1980년 5월 22일
1980년 5월 22일-백악관
미국이 광주위기를 군사적으로 해결하기로 결정한 백악관 회의 속기록-매우 중요한 역사적 문건. 4쪽.
샘플 : “최선행사항은 최소 물리력 사용으로 향후 불안요소 확장요소를 제거한 한국 당국에 의한 광주의 질서 회복이다”
○ 1980년 5월 22일-6월
광주-US보고서
항쟁기간동안 광주에 있었던 국무부 목격자가 발신한 상황보고서(“SITREPS”)-중요한 역사적 의의. 약 100쪽.
샘플 : “우리는 귀측이 이미 공무와 관련된 모든 미국인들에게 광주를 떠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사실과 전라도 지역의 미국인들에게도 떠나라는 조언은 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다”
○ 1980년 5월-6월
핵심 정책 문서
글라이스틴 대사 발신 홀부르크 및 기타 국무부 관계자들 수신 전문. 8쪽.
샘플 : “나는 또한 전두환에게 우리를 공격하지 말라고 정중하게 경고하려 한다”
○ 1980년 5월-6월
광주 이후-체포-전두환의 방문
광주항쟁 이후 국무부 기밀 보고서. 약 50쪽.
샘플 : “5월 17일까지 미국의 반응에 대한 언론의 왜곡 및 다른 사건들”
○ 1980년 6월-9월
종반 시사 #3
미국이 전두환의 합법성을 인정키로 결정한 시기 미국 대사관의 기밀 전문. 약 100쪽.
샘플 : “전두환장군을 지원키로 한 미국의 의도에 관한 언론 보고서에 대한 대응...미국 정부가 현재 떠오른 한국의 지도부를 수용하는 과정을 밟기 시작하자 한국인들은 실용주의가 원칙을 이긴 것으로 상정하고 있다.”
○ 1980년 8월
서울발 미국 대사관 일일 브리핑
주한미국대사관발신 국무부 수신 공식 기밀 발언내용. 약 60쪽.
샘플 : “한국내 대학 정화”
○ 1980년 6월-1980년 9월
남한 경제 및 미국 수출업자에 관한 미국 대사관 일일 브리핑
쌀, 에너지, 국방부, 미국통상대표부/보험에 관한 미대사관직원이 작성한 기밀/비밀 발언내용. 약 80쪽.
샘플 : 1980년 6월 미국 수출입은행과의 미팅: “대사는 정치범들에 대한 체포와 관련한 우리의 의사를 미리 알렸다시피, 그 체포범위가 비즈니스 리더들까지 확장된다면 국내외적으로 심각한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1980년 가을
1980년 가을/김대중 재판(1)
김대중 재판에 관한 미국대사관(존 몬조) 기밀 보고서. 약 300쪽.
샘플 : “기소장 및 대상자의 이름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 1996년
FOIA/국무부
팀 셔록이 자료수집을 위해 국방부 FOIA 관계자와 교환한 서신. 약 20쪽.
○ 국방부 및 CIA 항소장 등